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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궁금한 그녀

실종·사망설 등 온갖 루머 홍진희 5년 만에 필리핀에서 돌아오다

“10년 만의 연기 복귀는 설렌 경험, 하지만 내 삶의 모토는 언제나 자유”

글·김유림 기자 사진·지호영 기자

2011. 05. 17

오랫동안 중단한 일인데도 다시 시작했을 때, 마치 어제까지 해오던 것처럼 ‘익숙함’이 느껴질 때가 있다. 연기도 마찬가지인가 보다. 5년 가까이 필리핀에서 머물렀던 홍진희는 10년 만에 영화에 출연하면서 비슷한 경험을 했다고 한다. ‘원조 4차원’ 홍진희의 연기 인생&싱글라이프.

실종·사망설 등 온갖 루머 홍진희 5년 만에 필리핀에서 돌아오다


마흔이 되던 해, 무작정 따뜻한 섬나라로 떠났다. 각박한 도시생활을 접고 자유로운 곳에서 홀가분한 마음으로 노후를 보내겠다는 다짐이었다. 그렇게 5년을 시곗바늘이 멈춘 듯 바쁠 것도 없고 부족할 것도 없이 살았다. 지난 2002년 MBC 사극 ‘상도’를 끝으로 연예계에서 자취를 감춘 홍진희(50) 얘기다. 갑자기 방송에서 모습을 감추자 항간에는 실종설·사망설이 떠돌기도 했지만 그는 예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은 모습으로 10년 만에 다시 연기자로 돌아왔다. 영화 ‘과속스캔들’을 만든 강형철 감독의 두 번째 영화 ‘써니’로 컴백한 것.
‘써니’는 찬란하게 빛나는 학창 시절을 함께한 칠공주파 ‘써니’가 25년 만에 우연히 재회하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그린 영화로, 극중 홍진희는 입에 욕을 달고 사는 강단 있는 소녀지만, 갑부와 결혼하면서 ‘내숭 9단’의 사모님으로 변신한 황진희를 연기했다. 홍진희 외에도 유호정, 진희경, 이연경 등이 ‘써니’ 동창생으로 출연한다.
영화 개봉을 며칠 앞두고 경기도 파주 홍진희의 집 근처에서 그를 만났다. 금발의 긴 생머리를 날리며 짧은 핫팬츠 차림으로 나타난 그는 오십의 나이가 무색할 만큼 여전히 젊은 스타일을 고수하고 있었다. 살짝 그을린 듯한 피부색에서 필리핀 생활의 흔적이 느껴졌는데, 홍진희는 지난 2009년 12월 필리핀 생활을 청산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후배들에게 창피당하지 않으려 대본 정독하며 연기 공부
이번 영화 출연은 그에게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지난해 여름, 강 감독으로부터 처음 영화 출연 제의를 받았을 때도 갖은 핑계를 대며 고사한 그였다. 오랜만에 카메라 앞에 설 용기가 선뜻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시나리오만 읽어볼 생각이었는데, 읽다 보니 정말 재미있더라고요. 나이도 어린 감독이 어떻게 80년대 정서를 이렇게 잘 알고 썼을까 싶었죠. 도대체 어떤 감독인가 궁금했어요. 그래도 다시 연기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감독님이 몇 번이나 찾아와 설득하는 바람에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문제는 차마 용기가 나지 않더라는 거예요. 영화는 처음인 데다 10년 만에 카메라 앞에 선다는 게…, 좋은 영화에 폐를 끼칠 것 같기도 하고요. 그러던 중 감독님이 ‘필름은 영원히 남는 거다. 나 역시 섣불리 선택하지 않는다. 절대 후회하지 않게 멋진 캐릭터로 만들어 주겠다’고 약속해서 그 말에 힘을 얻었어요.”
감독과의 미팅에서 결국 깊게 숨을 몰아쉰 뒤 출연에 응한 홍진희는 그날부터 대본을 정독하며 연기 공부에 돌입했다. 그는 “데뷔 이래 이렇게 시나리오를 열심히 본 적은 처음”이라며 멋쩍어했다. 여러 후배들과 연기하면서 적어도 창피는 당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고 한다. 첫 촬영은 골프장 라운지에서 이뤄졌다. 우아한 사모님 포스를 풍기며 그는 “우리 때는 고상하게 놀았잖아요. 책 읽고, 클래식 듣고…” 하며 첫 대사를 날린다. 카메라가 돌기 전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던 그가 ‘큐’ 사인을 받고 천연덕스럽게 연기하자 현장에 있던 스태프는 다들 웃느라 정신이 없었다.
“촬영 전날까지만 해도 너무 걱정돼서 잠을 잘 못 잤을 정도예요. 혹시 카메라 앞에서 떨면 어떡하나, 대사를 잊어버리면 어떡하나 별별 걱정이 다 들더라고요. 그런데 신기하게 카메라 앞에 서니까 오히려 긴장이 풀리면서 마치 어제도 촬영했던 사람처럼 편안한 기분이 드는 거예요. 저 자신도 깜짝 놀랐어요. 감독님도 ‘에이, 선배님 왜 거짓말했어요. 이렇게 잘하실 거면서’ 하더라고요(웃음). 한 신이 끝날 때마다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최고’라고 말해주는 감독님 덕분에 정말 즐겁고 행복하게 촬영했어요.”
함께 출연한 동료 배우들의 격려도 많은 도움이 됐다. 특히 진희경은 “언니, 이제야 언니의 진짜 모습이 나오는 것 같아”하면서 용기를 북돋아줬다. 홍진희는 “철없고 푼수 같은 나를 후배들이 따뜻하게 챙겨주고 편안하게 해줘서 고마웠다”며 웃었다.

4차원적 돌발 행동으로 불협화음 겪어

실종·사망설 등 온갖 루머 홍진희 5년 만에 필리핀에서 돌아오다




장고 끝에 컴백한 만큼 앞으로는 TV나 스크린에서 그의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을 것 같지만, 그는 여전히 “확신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 미리 고민하지 않겠다는 게 인생철학이기 때문이다. ‘써니’ 출연 후 주위 사람들로부터 다시 연기를 할 것인지에 대해 질문을 자주 받는데 그때마다 그는 “봐서 일 년에 영화 두 편 정도만 찍을래” 하고 농담으로 넘긴다고 한다.
“말이 그렇지, 누가 저를 영화에 꼬박꼬박 출연시켜주겠어요(웃음). 지난번에도 농담 삼아 강 감독님한테 ‘나 이제 감독님 작품만 할 거니까 일 년에 영화 두 편만 만들어요’ 했더니, 자신은 시나리오까지 직접 쓰기 때문에 두 편이나 만들기에는 역부족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러면 한 편도 괜찮다고 했어요(웃음).”
홍진희는 이번 영화를 통해 연기의 재미를 새삼 깨달은 듯했다. 연기가 싫어 10년 전 제 발로 연예계를 떠났지만 분명 그의 내면에 연기 본능이 자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그가 연기자의 길을 그만 걷기로 작심한 진짜 이유는 뭘까. 홍진희는 “어려서부터 나이가 마흔이 되면 모든 일을 접고 조용히 노년기를 맞을 생각이었다”고 말했다. 이는 곧 그가 필리핀으로 떠난 이유이기도 하다.
“그때는 왜 그랬는지, 마흔이면 할머니라고 생각했어요(웃음). 심지어 학창 시절에는 마흔 살이 되면 더는 살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죠. 따뜻하고 한가로운 섬나라에서 노후를 보내자고 마음먹은 건 그때부터예요. 그런데 막상 그렇게 살아보니 마흔의 나이가 결코 인생의 정년기가 아니더라고요. 그래서 예순이 되면 다시 떠나려고 한국으로 돌아온 거예요(웃음).”
필리핀행이 연기를 그만둔 직접적 이유라면, 연예활동 중 느낀 회의감, 사회성 부족 등은 간접적 이유로 꼽을 수 있다. MBC 공채 탤런트 출신인 그는 신인 때부터 돌발 행동으로 제작진 눈 밖에 나는 일이 많았다고 털어놓았다. 당시 공채 탤런트들은 1년간 방송국에 소속돼 월급을 받으면서 연기를 해야 했는데, 홍진희는 기수생끼리 우르르 몰려다니며 출연하는 걸 마뜩잖게 여겨 촬영에 빠지는 날이 많았다고 한다. 물론 지금에야 ‘그게 진짜 연기 공부였다’는 생각이 들지만 당시만 해도 그는 싫은 건 싫다고 말하는 성격이라 제작진, 특히 섭외 담당인 조연출들에게 미운털이 단단히 박힐 수밖에 없었다.
“조연출이 ‘월급 받고 일은 안 하면 어떡해요?’ 하고 야단치면 ‘월급 받아도 제가 하기 싫은 건 안 해요’하고 건방지게 굴었어요. 한창 연기할 때도 제작진이 마음에 들지 않는 걸 강요하면 ‘그럼 저는 안 할게요’ 하고 촬영을 중단하기도 했어요. 그러니 방송국에서 저에 대한 평판이 좋을 리가 없었죠. 지금이야 4차원이라는, 한결 미화된 단어로 불리지만 그때는 ‘똘아이’로 불렸어요(웃음). 하지만 어쩔 수 없는 것이, 그때나 지금이나 성격은 달라진 게 없어요. 일관된 제 성격 때문에 방송일 하면서 불협화음도 많이 냈고, 결국 다투는 게 싫어서 ‘이제 그만하자’ 하고 연기를 접은 거예요.”
예나 지금이나 철없는 자신의 성격이 문제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기에 그는 연기를 그만둔 것과 관련해 어느 누구도 원망하지 않는다. 그는 “나의 단점은 내가 잘 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끌려서 억지로 하면 오히려 후회하게 되더라. 앞으로도 하고 싶은 일 하면서 마음 편하게 살겠다”고 말했다.

고양이 두 마리와 ‘우리끼리’ 잘 살자

실종·사망설 등 온갖 루머 홍진희 5년 만에 필리핀에서 돌아오다

지난 10년 동안 그가 유일하게 한 활동은 누드 화보촬영. 필리핀에서 생활하던 중 용기를 내 한 일이다.



이러한 생각은 나이 들수록 더욱 확고해진다고 한다. 솔로 생활이 점점 더 편안하게 다가오는 것도 비슷한 맥락. 홍진희는 고양이 두 마리와 단출하게 지내는 지금이 더없이 행복하다고 한다. ‘우리끼리 잘 살자’는 의미로 고양이에게 ‘우리’와 ‘끼리’라는 이름도 붙여줬는데, 지난해 겨울 ‘우리’가 세상을 떠났고, 현재는 ‘끼리’와 또 다른 고양이 한 마리와 살고 있다. 평소 동물을 좋아하는 그는 필리핀에 살 때도 그랬고 지금도 자신이 사는 아파트 근처 길고양이들을 위해 아침마다 먹이통에 사료와 물을 담아주는 걸로 하루를 시작한다. 어쩌다 먹이통에 물이 얼마 남아 있지 않은 걸 보고 외출하면 하루 종일 그 모습이 눈에 밟혀 약속도 미루고 서둘러 집에 들어올 때도 있다.
“결혼 자체를 부정하는 건 아니지만, 지금 같아선 혼자 사는 게 더 좋을 거 같아요. 잔소리 듣지 않아도 되고, 먹고 싶을 때 먹고 자고 싶을 때 자면서요(웃음). 불편한 분위기를 참지 못해서인지 요즘 들어 통 사람 만나는 게 재미가 없어요. 집에 있는 게 좋아 외출도 거의 하지 않다 보니 말수도 줄어들고, 막상 친구들을 만나면 말하는 게 어색하고 그래요. 가장 편한 상대는 목욕탕에 함께 다니는 동네 친구들이에요. 필리핀 가기 전부터 만나온 사이라 허물없고, 그들도 저를 연예인으로 보지 않으니까 격 없이 대하게 되더라고요.”
경제적으로는 별 어려움이 없는지 궁금했는데, 그는 돈 얘기가 나오자 억울한 심경을 토로하기라도 하듯, 한동안 자신을 둘러싼 안 좋은 소문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았다. 지금껏 특별한 돈벌이 없이 해외에서 생활하자 “스폰서가 있다” “부적절한 관계인 외국인 남자와 살려고 필리핀에 정착했다” 등 근거 없는 얘기들이 떠돌았던 것. 하지만 이는 모두 사실이 아니라고 한다. 홍진희는 “떠도는 얘기를 마치 사실인 양 퍼뜨리는 사람들 때문에 상처를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혼자 생각하고 결론 내리고, 누군가의 말을 함부로 하는 건 너무 위험한 짓인 것 같아요. 잘못된 말 한마디가 당사자에게는 얼마나 깊은 상처를 주는데요. 억울한 것만큼 답답한 게 없거든요. 생활은 20년 동안 방송활동하면서 모아둔 돈으로 하고 있어요. 혼자 사니까 그렇게 큰돈도 안 들고요. 사람들은 화려한 제 이미지만 보고 사치스러울 거라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나름대로 알뜰한 편이에요. 필리핀에 있을 때도 시장에서 장 봐다가 현지 음식 해먹고, 매일 짧은 반바지에 티셔츠 차림으로 다니니까 옷값도 많이 들지 않았죠. 결코 돈이 많은 건 아니지만, 죽기 전까지 다 쓰고 가야 하는데…, 언제 죽는지만 알면 지금부터 잘 배분해서 쓸 텐데 말이죠(웃음).”
화통하게 웃을 때마다 옆머리를 살짝살짝 쓸어 올리는 홍진희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에게 금발을 택한 이유를 물었다. 처음에는 “원래 헤어스타일로 변신을 주는 걸 좋아한다”며 에둘러 말하던 그가 결국 더 이상 못 참겠다는 듯 웃음을 터뜨리며 “흰머리 가리기에 좋아요” 하고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당당하고 유쾌한 모습, 홍진희의 진짜 매력이 아닐까.

헤어·서휘
메이크업·남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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