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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스타일 마스터

정윤기가 말하는 한국의 여배우들

톱스타에게 감각을 입히는 남자

글·이혜민 기자 사진·인트렌드 제공, 동아일보 사진DB파트

2011. 04. 15

김혜수를 관능적인 여배우로, 수애를 우아함의 대명사 ‘드레수애’로, 김희애를 주부들의 로망으로 탄생시킨 남자. 누구에게 어떤 옷을 입히면 대박이 날지 꿰뚫어보는 남자. 밤마다 한국 최고의 여배우들과 전화로 수다 떠는 남자. 국내 남성 스타일리스트 1호 정윤기에게 스타일의 시작과 끝을 물었다.

정윤기가 말하는 한국의 여배우들


드라마 ‘마이더스’ 주인공 김희애가 화제다. 마흔넷이라는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우아한 아름다움을 뿜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별은 홀로 빛나지 않는다는 말처럼 그의 곁에도 누군가가 있다. 정윤기 인트렌드 대표(42)가 그 주인공. 국내외 패션브랜드 홍보를 주 업무로 하지만 그가 좋아하는 건 역시 스타일링이다. 과연 1993년 광고대행사에 찾아가 무작정 “스타일링이 광고 효과에 중요하다”며 일을 달라고 요구한 ‘남성 스타일리스트 1호’답다.
정윤기는 김희애 룩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듯했다. 아이템을 한번 걸치기만 해도 ‘완판(완전히 판매)’시키는 힘을 가진 배우로 그만큼 스타일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되기까지 그는 드라마 캐릭터를 분석하는 데 많은 공을 들였다고 한다.
“김희애씨는 작품을 하기 전에 헤어스타일을 세 번이나 바꾸고, 옷도 백 벌 넘게 입어봤어요. 결국에는 클래식하면서도 ‘클린’한 스타일을 택했는데 많은 룩을 레이어드하지 않고, 원피스면 원피스, 투피스면 투피스로 딱 떨어지게 입죠. 액세서리로 원 포인트만 주고요.”
그나마 다행인 건 그가 김희애에게 올인할 수 있다는 점이다. 작년만 해도 드라마 ‘아테나’의 정우성·수애·최시원·차승원, ‘대물’의 권상우·고현정 등의 스타일링을 동시에 맡아 쉴 새 없이 일하느라 신체 배터리가 완전히 방전돼 버렸다. 술과 담배를 하지 않고, 비타민으로 영양 보충을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버틸 수 없었던 것이다.
물론 여유가 생겼다고 해서 삶의 패턴이 달라진 건 아니다. 요즘에도 하루 평균 5, 6개 스케줄을 소화한다. 인터뷰가 진행된 3월15일만 해도 패션쇼를 보고, 백화점에서 VIP 고객 대상으로 열린 스타일링 강연에서 스타 스타일링을 마친 뒤에야 겨우 짬을 낼 수 있었다. 그런 짬짬이 이탈리아 신발 브랜드 ‘아쉬’와 콜래버레이션(협업) 하고, 홈쇼핑을 통해 신개념 멀티숍을 운영하고, 케이블방송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그는 인터뷰 중간에 비타민 한 알을 입에 넣으며 “이것 없이는 못 산다”며 싱긋 웃었다.

여배우들과 2시간 통화하고 새벽녘에 잠들어
빠듯한 일정을 소화하고 집에 들어가면 녹초가 돼 쓰러질 것 같지만 그는 여배우들과 2, 3시간씩 통화한 새벽녘에야 잠이 든다. 늘 수면부족 상태지만 그들의 위로 덕분에 살아갈 힘을 얻기 때문이다. 때로는 힘들어서 ‘엉엉’ 소리 내 울다 잠들기도 하는데, 지난밤에도 하루 일과를 보내는 것이 힘들어 한바탕 울면서 감정을 정화시켰다고 한다. 그리고 여지없이 ‘어쨌든 옷이 있어 행복한 하루를 보내지 않았느냐’고 스스로를 달랬다.
그는 자신이 옷을 사랑하듯 다른 사람들도 옷을 좋아하길 바란다. 인터뷰 도중 대뜸 대중에게 옷 잘 입는 법을 알려주고 싶다고 말한 것도 그런 맥락이다. 잠들기 전 다음 날 입을 옷을 꼼꼼히 챙겨둔다는 정윤기는 “출근 전날 10분만 투자해 스타일을 점검하면 옷 입는 기쁨을 자연스레 알게 될 것”이라고 귀띔했다.
“본인이 입고 싶은 대로 마음껏 입어보라고 권하고 싶어요. 대신 상하의 색깔을 세 가지 이상은 섞지 마세요. 색이 많으면 복잡해 보이거든요. 위아래 모두 검정 옷을 입으면 상복 같지만 블랙 앤 화이트로 입고 블루 컬러로 포인트를 주면 예쁘죠. 색깔 톤만 잘 맞춰도 옷을 잘 입는 것처럼 보인다는 걸 기억하세요. 그리고 체형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으셨으면 해요. 체형이 좋지 않은 저도 스타일만큼은 포기하지 않잖아요(웃음).”
더 나아가 스타일리시한 주부를 꿈꾸는 이들에게 ‘잇 아이템’으로 롱 재킷, 카디건, 팬츠, 7cm 힐 구두, 플랫폼 슈즈(앞코에서 발꿈치까지 높은 굽을 댄 구두)를 추천했다.
“7cm 굽의 구두를 신으면 허리가 딱 세워지면서 스타일리시해 보여요. 플랫폼 슈즈도 마찬가지죠. 스카프를 해서 엘레강스한 느낌을 살리는 것도 좋고요. 아우터는 좋은 상품으로, 이너는 싼 걸로 믹스해 입으면 오래 입을 수 있죠. 백과 슈즈는 가능한 한 럭셔리한 느낌이 나는 것을 고르고 스타일에 따라 다른 구두를 신는 게 좋고요.”

정윤기가 말하는 한국의 여배우들

국내 남성 스타일리스트 1호인 정윤기는 스타들과의 진실한 소통을 스타일링의 기본으로 삼고 있다. 사진은 그가 스타일링한 여배우들의 모습.



그는 자신만의 스타일링 비결로 ‘당사자의 스타일 잘 알아내기’를 꼽으며, 옷을 잘 입기 위해서는 “본인의 스타일을 아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혜영의 럭셔리 룩, 김혜수의 파워 숄더, 김정은의 청담동 며느리 룩 역시 스타에 대한 그의 애정에서 비롯됐다는 설명이다. 의식적으로 노력하는 편은 아니지만 신뢰 속에 일하다 보면 진솔한 만남으로 이어져 자연스레 친구가 되곤 하는데, 이렇듯 “사람을 잘 아는 것이 스타일링할 때 유리하다”고 한다. 정윤기의 친구는 70%가 스타로, 인터뷰 날도 최지우와 저녁식사 약속이 돼 있었다.
대한민국의 내로라하는 스타들의 스타일링을 도맡아 하는 정윤기도 새로 배워야 할 게 있을까. 그는 “내 스타일링 중 10%는 워스트 드레서로 꼽힌다”며 이를 발전의 디딤돌로 삼는다고 했다. 해외 컬렉션에 가고, 백화점은 1주일에 한 번, 동대문은 적어도 2주일에 한 번은 들르는 것도 감각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한시도 여유를 부리지 않아요. 무슨 일을 하든 감각을 열어두죠. 생활의 발견을 해보는 거예요. 오늘처럼 인터뷰를 위해서 패션복합공간 ‘텐 코르소 코모’에 온 것도 그런 활동 중 하나죠. 이 일은 한 번만 잘못해도 감각을 잃었다는 소리를 듣거든요. 베스트 드레서와 워스트 드레서는 과하다, 과하지 않다는 미세한 차이가 있기 때문에 그만큼 스타일리스트는 긴장해야 해요.”
책은 그에게 없어서는 안 될 또 하나의 자극제. 유일한 낙이 서점에 가서 음악 들으며 책 보는 것이라고 말하는 그는 한 달 평균 60권의 잡지를 읽는 한편 옛 ‘보그’를 들추며 시대의 흐름을 관찰한다. 오드리 헵번을 뮤즈로 여기는 정윤기다운 선택이다.



동대문은 2주일에 한 번, 백화점은 1주일에 한 번

정윤기가 말하는 한국의 여배우들


최근 클래식 아이템에 꽂혀 있다는 그는, 따지고 보면 유치원생 때부터 클래식 애호가였다. ‘보타이(나비넥타이)’를 좋아해 늘 하고 다니고, 뿔테 안경을 고집하는 이유도 “클래식 아이템을 선택하면 적어도 실패하지 않는다”는 걸 일찍이 깨달았기 때문이다.
“스타일링할 때 노력이 50% 정도라면 나머지는 제 느낌과 끼로 하는 거죠. 중학생 때 교복자율화가 돼 옷을 자유롭게 입을 수 있었는데, 그때도 대충 입기 싫었어요. 남들한테 조언해주는 것을 좋아해, 친구들이 저와 같이 가서 옷을 사면 실패하지 않았죠. 위로 누나가 셋이다 보니 어려서부터 누나들이 보던 ‘보그’나 ‘논노’ 같은 잡지를 보며 나도 모르게 감각을 키운 것 같아요. 인천에 살았는데도 참고서 산다고 용돈을 받아 동대문시장, 남대문시장에 와서 옷을 샀어요. 끼가 있는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일찌감치 부모님께 제 의지를 보여드렸던 거죠.”
예나 지금이나 남들을 ‘어떻게 입히면 좋을까’ 고민하며 살아온 정윤기. 초가 자신을 태워 빛을 내듯 그의 손길 속에 스타들은 더욱 빛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헌신적으로 일만 하다 보면 간혹 허탈감이 들지 않을까 궁금했다. 그는 “왜 없겠느냐”며 “5년 주기로 친해지는 스타들이 바뀔 때마다 말할 수 없이 외로워진다”고 털어놓았다. 한때 외로움을 달래려고 연애를 해볼까도 생각했으나 이제는 “누군가와 함께 살면 불편할 것 같다”는 생각에 감정을 다스리고 있다고 한다.
현재 스타일리스트로서 최고의 시기를 보내고 있기에 휴식은 10년 뒤로 미뤘다는 그에게 이루고 싶은 꿈이 남았는지 물었다. 병원에 입원했을 때조차 환자복 대신 캐릭터 잠옷을 입었다는 그의 대답이 자못 궁금했다.
“직접 대중과 만날 수는 없지만 스타일링을 하면서 대중들에게 옷 입는 즐거움을 전하고 싶어요. 저는 한국의 패션을 움직이는 하나의 작은 점일 뿐이잖아요. 예전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렇겠지만 마음속으로는 항상 점이 아닌 별이 되고 싶어요(웃음).”

스타일리스트 정윤기가 꼽은 ‘절친’ 여배우 BEST 10

“순위를 정할 수 없을 정도로 소중한 친구들을 꼽아봤어요. 시간이 흐르면 우정이 변하기도 하지만 벌써 10년이 넘는 세월을 함께해온 돈독한 사이죠.”

지적인 카리스마 김희애
드라마 ‘마이더스’뿐 아니라 ‘내 남자의 여자’를 함께 작업하면서 스타일의 로망을 함께 만들어냈죠. 개인적으로 누나의 열렬한 팬인데 당당하면서도 따뜻한 분이에요. 작품이 끝날 때마다 편지와 함께 용돈을 주는데, 이렇게까지 하는 사람은 고소영씨랑 희애 누나밖에 없어요. 돈도 돈이지만(웃음) 감사 편지를 준다는 건 그만큼 상대를 배려할 줄 안다는 거잖아요. 누나는 저의 스타일을 누구보다 존중해주는 배우로, 스타일리스트에게는 몸과 같은 존재죠.

욕심쟁이 손예진
데뷔 때부터 봐왔는데 흐트러짐이 없어요. 자기 관리를 위해서 5, 6시간씩 운동하는 모습을 보면 감탄이 절로 나와요. 욕심이 많아서 스타일링을 세 사람에게 맡기고 있어요. 시상식장 룩만 제가 담당하죠. 그래서 얄미울 법도 하지만 그만큼 자기 역할에 충실하니까 미워하려야 미워할 수 없어요.

비타민 같은 김정은
같이 일하게 된 건 음악 프로그램 ‘초콜릿’을 진행하면서부터죠. 최근에는 드라마 ‘나는 전설이다’에서 청담동 며느리 룩을 함께 만들었죠. 본인도 옷을 많이 좋아해서 그런지 옷 입을 줄 알아요. 항상 밝고 예의바른 비타민 같은 친구라 로맨틱한 룩이 잘 어울리죠.

진정한 패셔니스타 이혜영
고향 친구예요. 데뷔 때부터 같이 작업했는데 ‘내조의 여왕’하면서 럭셔리한 느낌을 만들어냈죠. 진정한 패셔니스타라 패션에 대해 얘기하면 밤을 지새울 수 있을 정도고요. ‘명랑 소녀’ 같은 여자예요. 직선적으로 말하는 경향이 있지만 그만큼 진취적이죠.

초절정 럭셔리 스타 고소영
지금 봐도 대한민국의 최고 미인은 고소영씨인 것 같아요. 화장을 지워도 정말 아름답죠. 소영씨와 영화제 시상식뿐 아니라 결혼식도 함께 준비했는데 늘 최상의 스타일을 연출해줘요. 같은 옷이라도 고소영씨가 입으면 완벽하다 싶을 만큼 잘 어울리죠. 아이 낳고도 관리를 잘해서 예전 사이즈로 돌아왔고요. 게다가 본인이 옷을 정말 잘 입어요. 모유 수유를 할 정도로 헌신적이고, 음식도 잘하고, 내조도 잘하고, 일도 완벽하게 하고, 제겐 정말 특별한 친구죠. 하루에도 몇 번씩 통화하는 베스트 프렌드예요.

약속 지키는 배우 고현정
오랜 공백을 깨고 컴백한 뒤 드라마 ‘봄날’ 작업을 같이 했는데 중간에 헤어졌다 ‘대물’하면서 다시 만났죠. 무엇보다 연기대상 시상식 때 제 이름을 호명해줘서 고마웠어요. 열심히 연기해서 상 받아 제 이름을 꼭 말해주겠다고 했는데 그 약속을 잊지 않았더라고요. 고현정씨는 세심한 사람이에요.

드레스가 잘 어울리는 수애
여배우 중에서 가장 몸매가 아름다워요. 드레스를 입혀놓으면 절로 탄성이 나오죠. 드레스가 잘 어울려서 ‘드레수애’란 별명이 붙었는데 정말 잘 지은 것 같아요. 그리고 옷을 선택할 때 자신의 의견을 내세우지 않고 조언자의 말을 신뢰할 줄 아는 영리한 친구예요. 대종상 여우주연상 받고 나서 ‘고맙다’는 문자를 보내줘서 고마웠어요. 심성이 고운 친구죠.

근검절약 하는 여동생 송윤아
제가 울 때 위로해줄 수 있는 상냥한 여동생 같아요. 예쁜 목소리만큼 고운 마음을 갖고 있죠. 결혼식 준비할 때 속마음을 내비치면서 친해졌는데, 송윤아는 진실성 있는 친구예요. 그래서 여린 구석이 많지만 일할 때만큼은 철저하죠. 근검절약 하는 스타일이고 실제로도 수수해요. 할부로 좋은 옷 한 벌 사는 것보다 합리적인 가격대 옷을 구입하는 편이에요.

섹시 아이콘 김혜수
토크쇼 ‘김혜수 플러스유’와 영화제 시상식 의상을 준비할 때 만났어요. 저를 세상에 알려준 고마운 스타죠. 최근 드라마 ‘즐거운 나의 집’까지 함께 했는데 김혜수란 여배우는 정말 프로페셔널해요. 혜수씨에게 풍기는 완벽주의자 느낌 때문에 늘 감동하죠.

가장 의리 있는 이미연
‘세상에 의리를 아는 여자는 이미연밖에 없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의리가 있어요. 밥 냄새가 나는 사람이라고 표현하고 싶네요. 제 생일을 챙겨주는 배우는 고소영, 김정은, 이혜영, 이미연씨 정도인데, 미연씨는 카드도 빠지지 않고 써줘요. 가장 대범하지만 동시에 가장 여자다워요. 누구보다 일을 사랑하는 배우죠.
정윤기가 말하는 한국의 여배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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