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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감동 사연

다큐멘터리 ‘풀빵엄마’ 동화로 펴낸 노경희 작가

“하늘나라 엄마가 두 아이에게 남기고 싶었던 말 담았어요”

글·김유림 기자 사진·지호영 기자

2011. 04. 15

‘풀빵엄마’. 2009년 ‘MBC 휴먼다큐 사랑’에서 아련한 슬픔을 안겼던 이름. 싱글맘이자 장애인, 말기 위암 환자였던 풀빵엄마 최정미씨는 많은 이들에게 사랑의 의미를 전해주고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3년 뒤 ‘풀빵엄마’ 이야기가 당시 방송작가였던 노경희씨에 의해 동화로 태어났다.

다큐멘터리 ‘풀빵엄마’ 동화로 펴낸 노경희 작가


눈보라가 몰아치는 추운 겨울밤, 엄마는 아픈 배를 부여잡고 골목에서 풀빵을 판다. 그 시간 일곱 살, 다섯 살 난 두 아이는 24시간 운영되는 어린이집에서 이불을 펴고 잠잘 준비를 한 뒤 두 손 모아 기도를 한다.
‘우리 엄마 아프지 않게 해주세요. 엄마가 빨리 나아서 저희도 집에 갈 수 있게 해주세요.’
3년 전 대한민국을 눈물바다로 만들었던 ‘MBC 휴먼다큐 사랑-풀빵엄마’(이하 ‘풀빵엄마’)의 한 장면이다. 싱글맘이자 위암 환자인 최정미씨는 항암 치료로 피폐해진 몸을 이끌고 새벽부터 풀빵 반죽을 준비한다. 사랑하는 가족,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어린 딸과 아들을 위해서다. 자신이 아파 쓰러지는 순간에도 아이들 걱정이 더 컸던 최씨, 그리고 엄마를 대신해 동생을 살뜰하게 챙기던 큰딸 은서와 천진난만한 아들 홍현이의 모습은 많은 이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결국 최씨는 방송이 나가고 두 달 뒤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그는 많은 사람들에게 가족과 사랑의 의미를 일깨워주었고, 한국 방송 최초로 ‘에미상’ 다큐멘터리 부문에서 수상하는 큰 성과도 안겨줬다. 최씨가 세상을 뜬 지 3년이 지난 지금까지 방송국으로 ‘풀빵엄마’ 아이들의 근황을 묻는 질문이 쇄도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두 아이, 이모·이모부를 엄마·아빠라 부르며 잘 지내

다큐멘터리 ‘풀빵엄마’ 동화로 펴낸 노경희 작가


최근에는 ‘풀빵엄마’ 이야기가 동화책으로 만들어졌다. 6개월 동안 최정미씨 가족을 옆에서 지켜보며 함께 눈물지었던 다큐멘터리 작가 노경희씨(43)가 작가적 상상력을 보태 동화로 탄생시켰다. 가장 감동적인 부분은 엄마가 아이들에게 남긴 영상편지인데, 노 작가 역시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죽음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아이들에게 남기고 싶었을 법한 이야기를 글로 옮겼다고 말한다.
“그동안 여러 번 ‘휴먼다큐 사랑’을 책으로 펴내자는 제의를 받았는데, 그때마다 고사했던 이유는 자칫하면 남의 슬픔을, 어렵게 저희에게 내준 속내를 함부로 이용하고 싶지 않아서였어요. 하지만 ‘풀빵엄마’를 동화로 만들자고 했을 때는 은서와 홍현이에게 작은 선물을 해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풀빵엄마’를 하고 나서 에미상 수상을 포함해 많은 사람들로부터 칭찬과 격려를 받았는데, 정작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건 그리 많지 않더라고요. 일 년에 두세 번 작은 선물을 들고 아이들을 만나러 가긴 하지만 제작진이 받은 것에 비하면 아주 미미한 거죠. 동화는 은서와 홍현이가 읽을 수도 있고, 50분 방송에서 미처 담지 못했던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현재 은서와 홍현이는 이모를 엄마, 이모부를 아빠라 부르며 잘 지내고 있다. 두 아이와 함께 살기로 하면서 이모는 방이 하나 더 있는 집으로 이사를 했다. 초등학교 3학년인 은서는 어린이집에 다닐 때처럼 여전히 춤추는 걸 좋아해 댄스아카데미에 다니고,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홍현이는 주말마다 축구교실에 다닌다. 노 작가는 “아이들의 최근 모습”이라며 자신의 휴대전화에 저장된 사진을 보여줬는데, 그 속에서 아이들은 환하게 웃고 있었다.
노 작가에 따르면 이모네 부부는 더 이상 아이들을 대중에 공개할 생각이 없다고 한다. 특집방송, 재방송의 형태로 여러 번 방송이 나가면서 아이들을 알아보는 사람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아이들과 함께 마트에 가면 자신의 아이들에게 대하는 것과 같이 은서와 홍현이에게 큰 소리를 낼 때도 있는데, 그럴 때마다 사람들의 시선이 의식되고 부담스럽다는 것. 이모는 노 작가에게 “사람들이 후원금만 챙기고 아이들은 구박한다고 할까봐, 그리고 아이들을 알아보고 건네는 말들이 도리어 아이들에게 상처로 남을까봐 두렵다”는 얘기를 했다고 한다.



다큐멘터리 ‘풀빵엄마’ 동화로 펴낸 노경희 작가

‘휴먼다큐 사랑-풀빵엄마’ 이야기가 동화로 태어났다. 엄마를 그리워하는 두 아이에게 작은 선물이 됐으면 하는 것이 노경희 작가의 바람이다.



방송 후 모인 후원금은 상당 부분 은서 이름으로 신탁돼 있고, 통장 내역도 공개하고 있다. 풀빵엄마 후원회 형식의 인터넷 카페도 세 군데가 운영 중인데, 이곳에서 다달이 지원하던 생활비도 이모부의 만류로 더 이상 보내지 않는다.
“이모와 이모부께서 카페 운영자들에게 자신들보다 힘든 다른 모자 가정을 돕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을 하셨대요. 경제적으로 넉넉한 건 아니지만 그동안 받은 후원금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또 풀빵엄마가 남기고 간 사랑을 또 다른 형식으로 이웃에게 전하고 싶은 마음이기도 할 거고요.”
다큐멘터리 촬영 중일 때만 해도 최씨와 친정식구들 사이는 그리 좋지 않았다. 집에서 반대하는 남자와 5년간 동거를 했지만 거듭된 불화로 끝내 헤어지면서 친정과의 왕래를 접었기 때문이다. 친정식구들 역시 최씨가 두 아이와 어떻게 지내는지 방송을 통해 처음 접할 만큼 멀었는데, 지금은 관계 회복이 많이 이뤄졌다.

마지막까지 삶의 의지 굽히지 않은 풀빵엄마
노경희 작가는 최정미씨를 지켜보면서 싱글맘이 얼마나 강한 의지로 사는 사람인지를 알게 됐다고 한다. 아이들을 자신의 성으로 따르게 한다는 것은 어떤 버팀목도 없이 두 아이를 책임지겠다는 강한 의지이고, 이는 곧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뜨거운 모성애로 분출되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최씨는 자신의 아픔 따위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당장 쓰러질 것 같은 고통 속에서도 풀빵을 구웠고, 모처럼 아이들과 함께 있는 날에는 엄마의 사랑이 아이들 가슴 깊은 곳까지 전해지도록 따뜻한 밥을 지었다. 아이들과 떨어져 지내는 걸 가장 가슴 아프게 생각한 최씨는 아이들이 집에 올 때만이라도 엄마 노릇을 하려 무척이나 애썼다고 한다.
“정미씨와 아이들은 방 한 칸에 부엌이 딸린 모자원에서 지냈어요. 일주일에 한두 번 아이들을 어린이집에서 데리고 왔는데, 어쩔 때는 배를 쥐어짜는 듯 심한 통증이 밀려와 제대로 아이들을 챙기지 못할 때도 있었죠. 그러면 은서가 알아서 동생을 다 챙겼어요. 뽀득뽀득 소리가 날 정도로 동생 세수를 시켜주고, 옷도 갈아입히고요. 그 모습이 참 대견하면서도 마음이 많이 아렸어요.”
은서의 의젓한 행동은 어린이집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동생에게 자기 몫의 간식을 군말 없이 내주고, 엄마 대신 누나의 귓불을 만져야만 잠이 드는 동생을 위해 밤마다 늘 옆자리를 내줬다. 해가 지자 능숙하게 잠자리를 펴는 두 아이의 모습을 보고 노 작가는 마음으로 많이 울었다고 한다.

다큐멘터리 ‘풀빵엄마’ 동화로 펴낸 노경희 작가


“오후 6시가 되면 대부분의 아이들이 엄마 아빠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요. 그러면 어린이집에 남는 아이들은 열 명 남짓 되죠. 차라리 고아원이면 아무도 집에 가지 않을 텐데, 남아 있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니 마음이 너무 아프더라고요. 저도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긴 적이 있는데, 하루는 일하느라 늦어서 헐레벌떡 뛰어갔더니 아이가 추석이라고 한복을 입고 있다가 그만 실례를 했더라고요. 그 모습을 보고 눈물을 삼킨 적이 있는데, 아이를 집으로 데리고 가지도 못하는 엄마들의 마음은 오죽할까 싶었죠. 엄마 없이도 씩씩하게 동생을 돌보고 의젓하게 잘 참아내는 은서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밟혀요.”
촬영 중 최정미씨는 결코 죽음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처럼 보였다고 한다. 실제로 처음 촬영을 시작할 때만 해도 최씨는 자신의 건강 상태를 제대로 알지 못했고, 의사로부터 시간이 1년밖에 남지 않았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는 촬영이 힘들 정도로 큰 충격을 받았다. 그럼에도 최씨는 삶의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카메라 앞에서 그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 대신 몇 번이고 “당연히 살아야죠. 살 수 있어요” 하며 스스로를 독려했다. 항암치료 후 체온이 낮아져 온몸이 바들바들 떨리는 순간에도 풀빵을 사러 오는 사람들에게 항상 따뜻한 미소를 선사했다. 노 작가는 “아이들을 대할 때는 물론이고 모든 사람을 바라보는 정미씨의 마음은 사랑 그 자체였다”고 말한다.

다큐멘터리 ‘풀빵엄마’ 동화로 펴낸 노경희 작가


노 작가는 처음 풀빵엄마 사연을 접했을 때 ‘은서’라는 이름에 강하게 마음이 움직였다고 한다. 현재 초등학교 5학년인 자신의 큰딸 이름과 같기 때문이다. 덕분에 다큐멘터리 내레이션을 쓸 때도, 동화를 쓸 때도 노 작가는 진짜 은서와 홍현이의 엄마가 됐다는 생각으로 감정을 몰입할 수 있었다.

사랑은 연민이자 측은지심이 아닐까
연세대 국문학과를 졸업한 노경희 작가는 93년 MBC ‘新인간시대’로 방송에 입문해 ‘북극의 눈물’ ‘휴먼다큐 사랑-너는 내 운명, 안녕 아빠’ 등 1백여 편의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 누구보다 바쁜 워킹맘이었던 그는 풀빵엄마를 만난 뒤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음을 깨달으면서 지난해부터 일을 줄이기 시작해 현재는 ‘휴먼다큐 사랑’에만 집중하고 있다.
“해마다 가정의 달 5월에는 사람들이 ‘휴먼다큐 사랑’을 보고 내 가족이 얼마나 소중한지, 나의 사랑이 얼마나 가치 있는지를 돌아볼 수 있으면 좋겠어요. 왜 매번 암으로 죽는 사람들의 이야기냐, 희망을 줘야 하는 것 아니냐며 항의하는 분들도 있지만, 그 어떤 사랑도 가족의 죽음을 앞둔 사람들, 사랑하는 사람들을 두고 홀로 떠나야 하는 이들의 사랑을 뛰어넘을 수 없다고 생각해요. 남녀 간의 사랑이 아무리 아름답다 한들, 죽음 앞에서의 사랑과 비교가 될까요. ‘휴먼다큐 사랑’은 보통 사람들은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진짜 사랑을 그리려고 해요. 그리고 판타지와도 같은 사랑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저 사람들에 비하면 내 삶은 그렇게 고단한 게 아니었구나, 소소한 걸로 죽자 사자 싸웠는데 참 부질없는 짓이었구나’ 하면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가족에 대한 사랑을 재점검해볼 수 있는, 그런 기회가 되면 좋겠어요.”

다큐멘터리 ‘풀빵엄마’ 동화로 펴낸 노경희 작가


그렇다면 오는 5월에는 어떤 사랑이 시청자들의 가슴을 울릴까. 노 작가는 총 네 편 중 두 편을 맡고 있는데, 하나는 백혈병을 앓고 있는 임신부 이야기고, 다른 하나는 원인 모를 출혈로 대부분의 장기를 잘라낸 채 병원에서 생활하고 있는 네 살배기 아이 이야기라고 한다. 백혈병 산모는 평생 항암제를 복용해야 하는 상황에서 기적처럼 임신이 됐지만 기형아를 출산할 확률이 일반 산모에 비해 100% 높다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항암제를 끊고 임신을 유지하는 강한 모성애를 보인다. 네 살배기 꼬마는 집에서보다 병원에서 지낸 날이 더 많지만 언제나 해맑은 웃음으로 엄마를 위로하고 가족에게 희망을 선물한다. 그런 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엄마는 “포기하라”는 주위의 권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아이를 온 마음으로 보살피고 사랑한다.
해마다 ‘휴먼다큐 사랑’을 준비하며 많은 사람들의 사랑 이야기를 옆집 문을 열고 들어가 보듯, 아주 가까운 곳에서 지켜봐온 노경희 작가. 그는 사랑을 이렇게 정의했다.
“사랑은…, 연민인 것 같아요.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의 고통이 가장 크다고 생각하잖아요. 부부 간에도 ‘피곤해’ 하고 말하면 ‘너만 피곤하냐’라고 답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그래, 당신 정말 수고가 많아. 피곤하겠다’ 하고 위로해주는 사람이 있잖아요. 상대를 안쓰럽게 여기는 마음이 있어야 잘해줘야겠다는 생각도 드는 거고, 그런 행동 하나하나가 곧 사랑으로 표현되는 게 아닐까 싶어요. 부모자식 간이든 형제자매 간이든, 직장동료 사이든 마찬가지죠. 측은지심, 그것이야말로 사랑의 가장 큰 본질이 아닐까 싶어요.”

삽화·김령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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