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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시크릿 스페이스

국내 대기업 영빈관의 실체

회장님 공간을 엿보다!

글·김유림 기자 사진·현일수 기자 동아일보 사진DB파트

2011. 03. 16

최근 삼성전자 이건희 회장이 서울 강남에 1백억원대 단독주택을 짓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건물 용도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일각에서 실거주용보다 연회장 같은 용도로 쓰일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이 나오는 가운데 ‘시크릿 가든’으로 통하는 우리나라 대기업들의 영빈관을 취재했다.

회장님의 공간은 뭐가 달라도 다르다. 웅장하면서 비밀스런 분위기를 풍기는 영빈관은 주로 외국 주요 인사와의 면담이나 VIP 초청 장소로 사용되는데, 철통보안은 필수이며 풍수지리상으로도 나무랄 데 없다.
서울 삼성동 까치공원 바로 앞에 지어지고 있는 삼성전자 이건희 회장 소유의 단독주택은 내·외관은 물론 용도도 아직 베일에 가려져 있다. 다만 신축 주택은 소규모 수영장이 설치되고, 고가 외국산 자재로 인테리어가 치장되는 등 1백억원대 최고급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보통 단독주택은 6개월이면 모든 공사가 끝나는 반면, 이곳은 지하를 3층 깊이로 파고 토목공사에만 6개월이 걸렸다고 한다. 건물 용도에 대해서는 연회장 같은 장소로 쓰일 것이라는 예측이 우세하다. 현재 터 파기와 지하 3~1층 토목공사가 끝났고, 11월 말 완공될 예정이다.
원래 삼성그룹 영빈관으로 알려진 곳은 서울 한남동에 자리한 ‘승지원’이다. 호암 이병철 회장의 거처였던 승지원은 1987년 이건희 회장이 물려받으면서 새롭게 변신했다. 전통 한옥인 본관은 이 회장의 집무실 겸 영빈관으로 사용되고, 양옥으로 지어진 부속 건물엔 상주 직원들이 근무하고 있다. 한옥 건물은 궁궐 건축의 국내 최고 전문가인 신응수 대목장이 지은 것으로 유명하다.
승지원은 비교적 대중에게 알려져 있다. 전경련 회장단 모임 등 공식 일정이 열릴 때마다 언론에 자주 노출됐기 때문이다. 이 회장은 지난해 3월 경영 복귀 후 줄곧 이곳에서 업무를 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에는 일본 최대 경제단체인 게이단렌의 회장 내정자이던 요네쿠라 히로마사 스미토모화학 회장 등과 이곳에서 회동한 바 있다. 그 밖에도 제프리 이멜트 제너럴일렉트릭 회장, 빌 게이츠 전 마이크로소프트 회장 등 글로벌 CEO들과의 만남도 승지원에서 이뤄졌다.

대부분 인적 드물고 명당인 성북동에 위치
대기업 영빈관 대부분이 자연경관이 뛰어나고, 도심에서 가까우며, 인적이 드문 성북동에 모여 있다. 서울 삼청동 북악터널을 지나 꼬불꼬불 산길을 따라가다 보면 성북동 부촌이 나온다. 소위 명당자리로 불리는 언덕길 양쪽에는 각국 대사관이 자리 잡고 있고, 유명 ‘회장님’들의 빌라가 즐비하다.
그중 ‘현대그룹 영빈관’은 삼청각 뒤편에 있다. 고 정주영 명예회장이 주요 인사를 만날 때 종종 활용했으며 자신의 생일 때는 영빈관에서 사장단과 만찬을 즐기기도 했다. 2006년에는 노현정 전 아나운서와 고 정몽우 현대알루미늄 회장의 셋째 아들 정대선씨가 이곳에서 상견례를 가져 화제가 됐다. 특히 현대가(家) 사람들은 영빈관을 중심으로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등이 모여 살아 성북동 330번지 일대는 현대가 사람들이 소유한 땅만 약 1만㎡(3천 평)가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그룹 계열 분리 이후에는 현대중공업에서 영빈관을 관리하고 있다.

국내 대기업 영빈관의 실체

1 삼성 영빈관 승지원. 2 새로 짓고 있는 이건희 회장 소유 건물. 3 현대 영빈관.



국내 대기업 영빈관의 실체

4 과거 LG 영빈관 연곡원. 5 과거 포스코 영빈관 영광원. 6 성북동 내 SK 영빈관.



현대가 못지않은 성북동 터줏대감인 LG그룹도 영빈관 ‘연곡원’을 뒀지만, 2006년 한 건설회사에 매각했다. 연곡원은 LG그룹 창업주인 고 구인회 회장이 생전에 머물렀던 저택으로 1988년부터 영빈관으로 사용됐다. 연곡원은 구인회 회장의 아호인 연암(蓮庵)의 연과 동생인 구태회 LS전선 명예회장의 아호인 춘곡(春谷)의 곡에서 따온 말이라고 한다. 이처럼 창업주의 손길이 어린 영빈관을 당시 시세 절반의 가격에 급하게 처분한 데는 ‘그룹 재무구조 자금 마련’이라는 이유가 숨어 있다.
연곡원은 매각 이전까지는 외부에 전혀 노출이 안 됐으나 최근에는 TV 드라마 촬영지로 많이 이용되고 있다. 넓은 정원을 낀 양옥으로 전형적인 재벌가 저택의 모습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2009년 방영된 KBS 드라마 ‘솔약국집 아들들’에서는 병원장의 집으로 등장했다.
과거 포스코 영빈관이었던 ‘영광원’은 이제 효성 조석래 회장의 둘째 아들인 조현문 부사장의 소유다. 지하 1층에서 지상 2층으로, 2003년 유상부 전 포스코 회장과 김대중 전 대통령의 셋째 아들 홍걸씨가 이곳에서 만난 것이 언론에 알려지면서 곤혹을 치르기도 했다. 현재는 아무도 살지 않는 빈집인데, 외관을 보더라도 페인트칠이 벗겨져 있거나 정원 수풀이 우거져 있는 등 관리되고 있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등기부상에는 아직 조 부사장 명의로 돼 있지만 주변 사람들의 전언에 따르면 몇 년째 이곳을 찾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한다.
워커힐 호텔 내 별채인 ‘애스톤하우스’를 임대해 게스트하우스로 사용하고 있는 SK그룹도 최근 몇 년 새 성북동 내에 영빈관을 따로 마련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언론 보도에 따르면 최태원 회장의 영빈관은 평범한 단독주택처럼 보이지만 집 안으로 들어가면 지하 벙커의 규모가 매우 크다고 한다. 층당 661.1㎡(200평) 남짓한 지하 1,2층 벙커가 존재해 많은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데, 지하 1층에는 당구대와 탁구대 등이 놓여 있고, 지하 2층에는 대규모 연회장이 마련돼 있다고. 또 건물 전체는 16m 높이의 담벼락으로 둘러싸여 어떤 지점에서도 내부를 들여다볼 수 없다고 한다.
애스톤하우스의 경우 침실, 응접실, 서재, 회의실, 드레스 룸 등을 갖추고 있다. 1층은 연회 공간, 2층은 침실과 응접실, 지하에는 음식을 조리할 수 있는 주방시설이 마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반인의 경우 하룻밤 숙박료가 1천5백만원으로 국내 호텔 중 가장 비싸다.



▼ 회장님 집에 지하가 있는 이유
한남동과 성북동, 청담동 일대 그룹 총수의 주택은 대부분 1~3층 정도 지하층을 확보하고 있다. 대신 지상층은 2층을 넘어서는 경우가 거의 없다. 이처럼 지하층을 선호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건축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우선 조망권 분쟁을 피하려는 조치로 보고 있다. 2005년 삼성전자 이건희 회장이 서울 이태원동에 지하 2층에서 지상 2층 규모의 새집을 짓는 과정에서 농심 신춘호 회장과 소음·조망권 피해 관련 소송이 일기도 했다. 물론 합의를 통해 소송은 취하됐다. 또 2009년에는 서울 한남동에서 부영그룹과 신세계그룹이 한강 조망권으로 맞붙은 바 있다. 이러한 재벌가의 소송은 분쟁 소지가 있는 지상보다 지하가 낫다는 ‘교훈’을 남겼다고 볼 수 있다.
또 다른 이유로는 철저한 사생활 보호를 꼽을 수 있다. 담장을 높이 세워도 옆 건물이 높으면 집 안이 노출되기 때문에, 차라리 지하층으로 내려가 마음 놓고 생활하는 편을 선택한 것.
무엇보다 지하층에는 회장님들만의 재미있는 여가시설이 가득하다. 운동 장비부터 오락시설까지, 넓은 지하 공간에 다양하게 갖춰놓고 있다. 실제로 홍하상씨가 쓴 책 ‘이건희’에 따르면 삼성 그룹 영빈관 ‘승지원’은 “내방객들이 개인 정보를 담은 핀을 옷깃에 꽂고 들어서는 순간부터 이 회장이 좋아하는 음악과 향기가 흘러나온다. 지하 집무실에는 위성통신 장비와 팩시밀리 등이 갖춰져 있고, 미래 주택이라는 홈 네트워크 시스템도 구축돼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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