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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월드컵 에필로그 ①

원정 첫 16강 이끈 사령탑 허정무 감독 속시원한 월드컵 비화

글 오진영 사진 지호영 기자, 동아일보 사진DB파트

2010. 08. 17

남아공 월드컵에서 사상 첫 원정 16강의 숙원을 달성하고 돌아온 허정무 전 국가대표 축구팀 감독. 뜨거웠던 함성을 뒤로하고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간 그가 온 국민이 함께 열광했던 그 순간들을 다시 떠올리며 못다한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원정 첫 16강 이끈 사령탑 허정무 감독 속시원한 월드컵 비화


4년을 기다렸던 뜨거운 축제는 막을 내렸고 그는 이제 무거운 책임을 내려놓았다. 2010년 6월 한 달 동안 축구는 단순히 한 스포츠 종목이 아니라 온 국민이 같은 마음이 되어 지켜보고 응원하며 엮어낸 인간 드라마였다. 그 드라마의 한 복판에서 땀과 열정과 환희의 오케스트라를 지휘했던 허정무 전 대표팀 감독(56)을 서울 반포동 서래마을 자택에서 만났다.
모두가 간절히 염원했던 원정 16강 목표를 달성하고 대표팀 사령탑에서 물러나 홀가분하게 일상으로 돌아온 허 감독은 긴장과 집중으로 굳은 표정을 벗어 버리고 한결 여유있고 밝은 모습이었다. 6월29일 귀국 직후, 계약기간이 완료된 대표팀 감독을 유임하지 않겠다고 밝힌 그는 요즘 휴식을 취하면서 각종 매체와의 인터뷰 등 축구 관련 일정을 소화하고 있는 중이었다.
“명예회복도 했고 반 분풀이는 했다고 봐야겠지요. ‘좀 더 올라갔으면 좋았을 텐데’ 라는 아쉬움은 남아도 후회는 없습니다.”
2대0으로 승리를 거둬 16강 진출에 중요한 발판이 됐던 그리스전이나 2대2 무승부로 본선 진출을 확정지었던 나이지리아전을 놔두고 허 감독은 아마도 가장 아쉬움이 많이 남았을 우루과이전과 아르헨티나와의 경기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경기 종료를 알리는 호각 소리가 들렸던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지인들과 함께 또는 조용한 시간에 혼자서 수없이 되새겨보고 복기했을 그 경기 장면들을 다시 떠올리면서.
“아르헨티나 전에서 너무 어이 없이 두 골을 먼저 먹으면서 우리가 세운 전략이 틀어져버렸어요. 전반전에 무실점으로 가면 우리에게 승산이 있다고 보고 메시 등 상대편 주요 선수를 봉쇄하려고 했는데 경기라는 게 그렇지 않습니까? 감독 마음대로 풀린다면 뭐가 걱정이겠어요. 거기다 세 번째는 오프사이드였는데 골로 선언돼버리니 경기의 흐름이 더욱 불리해졌지요.”
그래도 이번 월드컵의 가장 큰 소득은 아무리 강한 팀을 만나더라도 우리 선수들이 전혀 위축되지 않고 자기 기량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었다는 점이라는 것이 그의 견해다.
“제가 선수로 뛰던 시절인 86년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를 만났을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고 봅니다. 예전에는 공연히 기가 죽어 그나마 있는 실력도 발휘하지 못하고 주저앉은 경우가 많았는데 이번에는 나름대로 할 것을 다 해보지 않았나, 라고 생각하죠.”
한국 대표팀의 허정무 감독과 아르헨티나의 마라도나 감독은 86년 멕시코 월드컵 때 선수로서 맞대결을 했었다. 그 당시 대표팀 수비수였던 허정무 감독은 세계 최고의 공격수였던 마라도나를 전담 마크하며 몸을 아끼지 않는 수비를 해냈다.
“이번에도 결과적으로 4대1로 졌으니 잘한 경기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경기 진행 중에는 스코어에 연연하지 않고 열 골을 먹더라도 절대 포기하지 않는 자세로 끌고 나가야 했습니다. 경기가 끝나고 나서도 선수들에게 점수 차는 문제가 아니니 자책하지 말라고 다독였어요.”

두 번 다시 맡지 않으려던 대표팀 감독… 이제 명예롭게 물러날 것
전 국민의 관심사인 월드컵 축구는 한 경기 한 경기가 끝날 때마다 온갖 매체에서 평가와 분석이 쏟아져 나오고 모든 책임은 오롯이 사령탑인 감독에게 돌아간다. 그 때 그 선수를 왜 넣었냐는 비난, 왜 안 넣었냐는 타박, 초반부터 공격적으로 밀어붙여야 했다는 질책, 수비에 집중했어야 했다는 비판이 빗발치지만 경기가 다 끝난 뒤 결과를 놓고 말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실제로 경기를 벤치에서 지켜보면서 직접 지휘하는 감독의 자리에 서보지 못한 사람들이 너무 쉽게 던지는 말들이 그의 입장에서는 때로 서운할 법도 하다.
“마지막 우루과이전에서 왜 이동국 선수 대신 이승렬 선수를 투입하지 않았느냐는 말들을 많이 하는 모양인데 이승렬 선수를 집어넣었다가 잘 안 될 수도 있었고 마찬가지로 똑같은 얘기가 나왔을 겁니다.”

원정 첫 16강 이끈 사령탑 허정무 감독 속시원한 월드컵 비화

나이지리아전 직후 16강이 확정되자 김정우 선수와 포옹하고 있는 허정무 감독.



이번 월드컵 경기에서는 지난 2002년 4강 신화를 이끌었던 안정환, 이운재, 김남일 등이 벤치를 지키며 후배들에게 격려와 안정감을 실어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감독이 나이 많은 선수들을 데려갈 때는 그들이 후배를 이끌어주고 노하우를 전해주는 역할을 해주거나 꼭 필요한 순간에 긴요하게 써먹을 것을 기대하는데 이번에 우리 선수들이 그 몫을 아주 잘 해주었고 주장 박지성 선수도 자기 역할을 100점 이상 해주었다고 생각합니다.”
허정무 감독이 국가대표팀을 맡은 건 이번이 두 번째다. 지난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허 감독이 이끌었던 당시 대표팀은 2승을 올리고도 골 득실차에서 밀려 본선에 진출하지 못했고 결국 그는 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 감독직에서 물러나야 했다.
“2승을 하고도 탈락하는 건 정말 드문 경우였고 나름대로 할만큼 했는데…, 탈락이라는 결과만 갖고 이야기 하는 것에 회의를 많이 느꼈어요. 당시에는 두 번 다시 대표팀 감독을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2007년 말 생각지도 않고 있었는데 대표팀 감독직 제안을 받고 고심 끝에 “욕만 많이 먹고 좋은 소리는 못 듣는” 감독직을 다시 한 번 맡기로 했던 것은 “어느 정도 한풀이를 해보고 싶은 생각도 있어서”였다고 한다. 월드컵을 마치고 감독직에서 물러나는 것 역시 수락할 당시부터 염두에 뒀던 일이라고 한다.



중학교 2학년 때 뒤늦게 축구 시작, 선수 시절에도 늘 좋은 지도자 꿈 꿔
허 감독의 사임 이후 공석이 된 대표팀 감독 선임을 놓고 요즘 축구협회가 난항 중이다. 이럴 때면 솔솔 들려오는 소리가 외국인 감독 영입설이다. 허 감독은 외국인 감독 영입에 대해 평소 많은 질문을 받는다면서 국내파와 외국인을 구별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반문했다.
“구체적인 인물을 놓고 한국 축구 대표팀에 필요한 사람인지에 대해 논의를 해야지요. 외국인이냐, 한국인이냐 선을 긋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히딩크 감독이 2002년 월드컵 4강이라는 큰 성과를 이룩했지만 사람들은 2002년의 성공을 가능하게 한 것은 축구 대표팀 세대 교체였고 그 일을 시작한 사람은 그 전 대표팀 감독이었던 허 감독이었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허 감독은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대표팀을 꾸리면서 박지성, 이영표, 송종국, 김남일, 설기현, 이천수 등을 발탁했고 이들은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의 주인공으로 화려한 열매를 맺었다.
“히딩크 이후 5년 동안 대표팀을 맡았던 외국인 감독들은 한국 축구에 도움이 안 됐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대한민국 축구의 미래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 세대 교체인데 외국인 감독들 중 누가 그걸 했나요? 아무도 안 했어요. 제가 대표팀 맡고 나서 기성용, 이청용, 박주영 등 젊은 선수들 끌어올려서 차세대 대비를 한 겁니다. 축구 협회도 여론 눈치보지 말고 긴 안목을 갖고 우리나라 축구의 내일을 생각해야 합니다.”
신임 대표팀 감독이 누가 되든 당장의 승부에 연연할 게 아니라 자라나는 다음 세대 선수들을 발굴하고 기량을 성장시켜 연속적인 세대 교체를 이루어 미래를 준비해야 할 것이라는 조언이었다.
대표팀 감독이 될 줄은 몰랐지만 선수 시절 그는 장래 좋은 축구 지도자가 되는 것을 늘 꿈꿨다고 하니 그 꿈을 어느 정도 이룬 셈이다. 지도자가 되고 싶었던 이유로 그는 “남들보다 늦게 어렵게 축구를 시작했기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허 감독은 전남 진도 출신이다. 아버지가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이었지만 형제가 많아 살림이 넉넉지 않았다. 3남4녀의 넷째였던 그는 목포중학교 졸업 후 다시 서울 중동중 2학년에 편입해서 축구를 시작했다.
“어려운 형편이다보니 서울에 유학와 있는 저를 부모님이 보러오실 수 없었어요. 어린 나이에 자격지심이었는지 몰라도 학교에 부모들이 와서 축구 감독님을 만나고 가면 그 아이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는 것 같았어요. 이 다음에 내가 지도자가 되면 꼭 공명정대한 선생이 되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지요.”

축구 없이는 허정무 일생 없어, 한국 축구 미래 이끌어갈 꿈나무 키우고 싶어

원정 첫 16강 이끈 사령탑 허정무 감독 속시원한 월드컵 비화

월드컵 대표팀 해단식에서 쌍둥이 손자들과 함께 한 허정무 감독.



허 감독은 영등포공고와 연세대를 거쳐 74년부터 86년까지 국가대표 선수로 활약했다. 80년에는 당시 유명 스타 MC였던 최미나씨(57)와 결혼해 스포츠 선수와 인기 연예인 커플로 큰 화제가 됐다.
“결혼식 올리고 5일 만에 네덜란드 에인트호벤으로 떠났고 두 달쯤 후에 집사람이 왔어요. 그 당시 그곳에는 한국 사람이라고는 저희 부부밖에 없었답니다. ”
네덜란드에서 3년을 보내고 한국에 프로축구가 생긴 84년에 돌아와 활동하다 은퇴하고 87년부터 잠시 개인 사업을 하기도 했지만 축구장을 오래 떠나있지 않았다. 네덜란드에서 태어나 이름도 화란이라고 지었던 큰딸에게서 본 쌍둥이 손자가 지금 20개월이 됐다. 손자들을 무척 예뻐해 특별한 일이 없을 때는 이웃에 사는 딸의 집에 들러 손자들 재롱 보는 걸 큰 낙 중 하나로 삼고 있다. 네덜란드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가정이 안정돼야 운동도 잘 할 수 있다고 믿게 됐다는 그는 93년 포항 아톰즈 감독 시절 우리나라 축구 감독 중 처음으로 선수 합숙을 없애기도 했다.
“네덜란드에서 생활할 때 느낀 점이 많았어요. 프로 선수라면 스스로 자기 관리를 할 줄 알아야 하고 또 선수나 코칭 스태프나 가정이 안정돼야 자기 기량을 잘 발휘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결혼한 선수들은 집에서 다니라고 했지요. 제가 이렇게 축구 선수 합숙 생활을 없애는 데 기여한 사람인데 잘 모르는 사람들이 자꾸 엄하고 무서운 감독이라고 말하네요.”
그러면서도 자신이 ‘호랑이 선생’ 별명을 듣던 예전과는 확실히 달라진 걸 인정한다고 말했다.
“나는 참 정이 많은 사람이고 오히려 남한테 당하고 사는 편인데 선수들이 왜 나를 어려워하고 무섭다고 하나, 그건 아마 선수들을 대하는 방법이 잘못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고치려고 노력했어요. 잘못됐다면 제가 고쳐야지 ‘이건 내 스타일이니까’ 라고 우긴다면 리더로서 자격이 없겠지요. 감독에게 좀 어리숙한 면도 있어야 선수들이 다가오지 전혀 빈 틈이 없으면 선수들이 가까이 오기 어렵더라고요.”
대표팀에서는 물러났지만 축구 지도자로서는 현역으로 앞으로도 할 일이 많다는 각오와 의지가 그의 목소리에서 느껴졌다. 당분간 쉬면서 남미와 유럽을 여행하며 그 곳의 축구를 많이 보고 싶고 조만간 K 리그의 감독으로 활동할 생각이라고 한다.
“우스운 이야기지만 이제 좀 축구가 뭔지 알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월드컵뿐 아니라 그 동안 지도자 생활을 하면서 느끼고 배운 것이 많은데 벌써 현장을 떠나기에는 아깝지 않나요.”
허 감독에게는 나이 들어 지도자 자리에서 은퇴한 후에 꼭 하고 싶은 계획이 있다. 소질이 있고 축구를 좋아하지만 형편이 안 돼 배우지 못하는 청소년들을 위한 축구 교실을 만들고 싶은 것. 다행히 호응해주는 지인들이 있어 차근차근 추진 중이라고 한다.
“축구 없이는 허정무의 일생이 없고 축구를 통해 이렇게 많은 사랑을 받고 은혜를 입었으니 축구를 통해 그 사랑을 돌려줘야 한다는 생각을 오래 전부터 해왔습니다. 누구나 부담없이 아무 걱정 없이 축구를 배우고 즐길 수 있는 그런 곳을 만들어 한국 축구의 미래를 이끌어갈 꿈나무들을 키우고 싶습니다.”
한 번 국가대표팀 감독은 영원히 대표팀 감독으로서 생각하고 행동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어릴 때부터 축구 선수의 자질과 감각을 키워주는 토양을 잘 마련해 10년, 20년 후에는 월드컵 정상에까지 도전하는 것. 아마도 허정무 감독의 꿈이자 우리 모두의 꿈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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