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PEOPLE

자녀교육 바이블

암 치료 새 지평 연 래리 곽 박사 부부, 네 자녀 교육법

‘타임’ 선정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글 이혜민 사진제공 래리 곽

2010. 07. 16

자녀는 부모의 거울이라고 한다. 지난 4월 ‘타임’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선정된 래리 곽 박사의 가족을 보면 그 말이 더욱 가슴에 와 닿는다. 그는 부모를 통해 열정과 사회적 헌신의 가치를 알게 됐고 이는 성공으로 이어졌다. 래리 곽 박사는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위대한 자산을 네 명의 자녀들에게 훌륭하게 대물림하고 있다.

지난 4월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이 발표됐을 때 두 명의 한국인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피겨여왕 김연아와 ‘미국 요식업계의 오스카상’으로 불리는 제임스 비어드상을 수상한 요리사 데이비드 장이 바로 그들이다. 그런데 뒤늦게 또 한 명의 한국인 수상자가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바로 한국계 미국인 과학자 래리 곽 박사(51·미국 텍사스대 MD 앤더슨 암센터 )가 그 주인공이다. 더글러스 시와전트러버 박사(53)와 암 백신을 개발해 암 치료의 새 지평을 연 공로를 인정받은 것이다.

암 백신 개발에 헌신한 것 인정받아 행복

암 치료 새 지평 연 래리 곽 박사 부부, 네 자녀 교육법


“한국에서 저의 수상 소식을 알고 계시다니 고맙습니다.”
그간 한국 언론으로부터 주목을 받지 못했는지 곽 박사는 기자의 연락에 놀라는 눈치였다. 그러나 이내 특유의 쾌활한 말투로 인터뷰에 응하겠다고 답했다. 전화선을 타고 전해지는 그의 음성은 부드러우면서도 힘이 넘쳤다. 곽 박사는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라 아쉽게도 한국말을 하지 못한다. 기자는 수상 소감과 의학적 업적을 묻는 인터뷰를 진행하다 곽 박사가 네 명의 아이를 훌륭히 키우는 ‘슈퍼대디’라는 점을 알게 돼 교육비책에 대해 재차 인터뷰를 했는데, 곽 박사와 그의 아내 루스 박씨는 질문마다 충실 그 이상의 답변을 보내왔다.
▼ ‘타임’지 ‘…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으로 선정된 소감은.
“20여 년 동안 암 백신 개발에 헌신한 것을 인정받아 기쁘다. 언젠가 환자가 “당신은 하느님의 도구”라고 말해줘 그 뒤부터 헌신하는 마음으로 일할 수 있었는데, 이번 일도 그런 계기가 될 것 같다.”
▼ 텍사스대 MD 앤더슨 암센터에서 주로 어떤 일을 하나.
“림프종과 골수종 분과 과장으로 있다. 미국의 최고 암센터로 선정된 곳에서 일하는 것에 늘 자부심을 느낀다. 실험실의 발견을 환자에게 적용하는 전환과학(Translational Research)에 관심이 있는데, 현재는 다음 세대를 위한 암 백신 개발에 전념하고 있다.”
▼ 이번에 개발한 암 백신이 일반인에게 어떤 의미가 있나.
“통상 화학요법으로 암을 치료했다고 해도 암세포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만일 백신을 통해 암세포의 재생 속도를 떨어뜨린다면, 암을 확실히 치유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 국립암센터의 지원으로 임상실험을 진행해, 암세포가 사라진 환자들에게 낭포성 림프종 백신을 맞혔는데 44개월 동안 암이 재발하지 않았다. 반면 똑같이 암세포가 죽었다 해도 그 백신을 투여하지 않은 환자는 30개월 동안만 암이 재발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낭포성 림프종 백신을 투여하자 암세포 발생을 14개월 늦출 수 있었다.(암 백신이 발전하면 당뇨처럼 암도 관리할 수 있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우리가 개발한 백신은 한정된 범위에서만 사용할 수 있지만 앞으로는 다양한 암에 맞는 백신들을 개발할 것이다.”

더 높은 목표 달성 위해 노력하는 기쁨 알게 해준 부모
래리 곽 박사가 의학에 관심을 두게 된 것은 훌륭한 교육 환경을 제공한 부모의 공이 컸다. 그의 아버지 곽노환 박사는 1952년 서울대를 졸업한 뒤 미국으로 건너가 터프트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캔자스대에서 40여 년간 물리학 교수로 지냈다. 덕분에 곽 박사는 고등학교 때 대학에서 선행 학습할 기회를 얻고, 그것을 계기로 의학 리서치를 할 수 있었다. 당시 래리 곽 박사가 멘토에게 들은 “암과 싸울 면역체계가 있을 수 있다”는 아이디어는 ‘인생 화두’가 됐다. 보통 12년 걸리는 공부를 노스웨스턴대에서 학사·석사·박사 통합과정을 통해 7년만에 끝내고, 내과 수련의를 거쳐 스탠퍼드대에서 종양학 펠로십을 마치며 의사와 과학자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은 것도 그 화두가 가슴속에 있었기 때문이다.



암 치료 새 지평 연 래리 곽 박사 부부, 네 자녀 교육법

‘타임’선정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뽑혀 파티에 참석한 래리 곽과 루스 박씨 부부.



그의 열정과 성실성은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다. 상공부 장관을 지낸 그의 외할아버지 오정수씨는 한국인으론 처음으로 MIT를 졸업(1927년)했고, 그의 어머니는 경기여고를 졸업하고 도미해 전액 장학금으로 음악 분야의 학사·석사 학위를 받았다. 그의 부모는 더 높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110% 노력하는 것의 기쁨을 알려주고, 사회적으로 이익이 될 수 있는 일을 추구하도록 격려했다. 그래선지 래리 곽 박사는 네명의 자녀에게도 “열정을 다할 수 있는 직업을 찾으면 그 일은 짐이 아니다”라고 충고하며 자신이 받은 교육을 아이들에게 전하고 있다.
▼ 부모님에게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은데, 부모님은 곽 박사에게 어떤 점을 가르치셨나.
“책임감을 가르치셨다. 나는 어릴 적에 쓰레기통을 비우고 장난감을 정리하면서 책임감을 키웠다. 작은 보상을 받긴 했지만 이것이 내 책임이라고 느끼게끔 도와주셨다. 부모님은 다른 사람들보다 열심히 일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가르치셨다. 행여 차별에 노출될 수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부지런한 사람을 존경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일깨워주신 것이다. 또한 부모님은 더 높이 목표를 정하고, 그것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편하고 즐거운 일을 미룰 줄 알아야 한다고 알려주셨다. 성취의 기쁨도 알려주셨는데, 100점을 맞아오면 25센트씩 주시기도 하고 맛있는 음식을 사주시기도 했다. 나는 이런 소소한 경험으로 성취에 따른 만족감을 배웠기 때문에 내 아이들에게 음악 연습을 마칠 때마다 젤리 곰을 주기도 했다.”
▼ 부모의 역할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아이들이 지닌 창조적인 장점과 부족한 점을 일찍이 파악해 도와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부모들은 종종 아이가 아닌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교육시키는데, 이는 좋은 방법이 아니다. 자신만의 특별한 재능을 가지지 않은 아이는 없다. 핵심은 부모가 그 재능을 발견해, 아이가 그 분야에서 긍정적인 경험을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해줘야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더 중요한 점은 아이가 부정적인 경험을 하게 될 때 이를 좋은 레슨의 기회라고 여겨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아이의 진짜 개성과 강점은 이런 실수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발현된다. 아이들이 언제나 최선을 다하고, 인류와 신을 위해 봉사할 수 있도록 부모는 자녀의 후원자이자 치어리더가 되어야 한다. 부모가 서로를 아끼고 배려하는 모습은 아이들에게 안정감을 주므로 이 또한 명심해야 한다.”

아이들과 함께하며 신뢰 쌓고 잠재력 이끌어내

암 치료 새 지평 연 래리 곽 박사 부부, 네 자녀 교육법

래리 곽씨 부부는 바쁜 가운데도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려 노력한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래리 곽 박사이지만 정작 그 자신은 가정의 성공을 더 중요시한다. 그는 “아내와 아이들은 내게 더없이 소중한 존재다. 다음 세대를 길러내고, 가족이 개인적인 성취를 할 수 있게끔 돕는 게 내 일을 하는 것보다 중요하다”고 말한다. 퇴근 후 잠들 때까지 오직 아이들 교육에 힘쓴다는 아버지 래리 곽 박사와 입양기관에서 근무하는 그의 아내 루스 곽 씨에게 교육비책을 물었다.
▼ 자녀가 네 명이라고 들었다. 아이들을 소개해달라.
세 아들과 막내딸이 있는데, 큰아들 나단(23)은 텍사스대에서 의사가 되기 위해 준비 중이다. 요즘에는 월드컵 기간이라 한국 축구팀이 최고 관심사다. 둘째 벤자민(19)은 브라운대에 재학 중인데 생명의학공학자가 되기 위해 석·박사 과정을 밟을 예정이다. 휴스턴 오케스트라 등 여러 오케스트라와 협연할 정도로 피아노에 재능이 있다. 야구와 비올라를 좋아하는 셋째 리안(17)은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했는데 코넬대에서 기계공학을 배울 예정이다. 막내딸 안나(15)는 고등학교 졸업을 2년 앞두고 있는데 축구에 관심이 많아서 거의 1년 내내 선수로 뛰고 있다.

암 치료 새 지평 연 래리 곽 박사 부부, 네 자녀 교육법


▼ 아이들에게 어떤 것을 가르치나.
“우리 부부는 아이들에게 공부, 음악, 체육활동, 사회활동 네 가지 모두를 골고루 가르치려고 한다. 미국에는 아이들을 위한 스포츠프로그램이 활성화돼 있어 참여시키는 방법이 수월한 편이다. 아이들 네 명 모두에게 운동을 시켰지만 끝내 한 아이가 원치 않는다며 그만뒀는데 재미있는 것은 이 아이가 나중에는 스스로 테니스와 태권도에 흥미를 갖게 됐다는 점이다. 또한 아이들이 다섯 살이 되기 전에 음악을 가르쳤는데, 이는 음악가로 키우고자 함이 아니고 아이들의 뇌를 발전시키고, 음악을 하면서 성과를 얻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해야 하는지 일깨워주기 위해서다. 많은 것보다 소수 몇 가지에 집중해야 그만큼 마스터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된다. 한 달에 한 번은 노인들에게 식사를 배달하는 프로그램에 가족들과 함께 참여하는데, 이런 활동을 통해 아이들이 사람의 가치를 배울 수 있다고 믿는다. 그 외에도 검소하게 사는 것과 스스로와의 경쟁에서 이기는 것 또한 중요하다고 가르친다.”
▼ 창의성을 높이기 위해 책도 많이 읽히나.
“어릴 적부터 책을 많이 읽어줬다. 방학 때는 읽어야 할 책을 정해 함께 읽기도 했다. 요즘에는 딸과 같은 책을 읽고 토론하기도 한다. 또한 긴 여행길에는 책 CD를 틀어줘 아이들이 저마다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돕는다. 가능한 한 텔레비전이나 게임기를 멀리하게 하고 주말에만 허락하는데 이런 요소들이 창의성을 방해한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 교육에서 우선시하는 가치는 무엇인가.
“도덕성이다. 한 예로 큰아들 나단이 초등학교 학생일 때 그를 이상하게 쳐다보던 사람에게 “닥쳐(Shut up)”라고 말한 적이 있다. 작은 일이라 그냥 넘어갈 수도 있었지만 아이에게 그 상황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알려주고 상대방에게 반드시 사과해야 한다는 점을 일깨워줬다. 실제로 아들은 전화를 걸어 사과를 했는데, 이후 우리는 아이를 껴안으며 “잘못을 사과할 줄 아는 네가 자랑스럽다”고 말해주었다. 행동이 모여 아이의 인성을 만들 뿐 아니라 성장 발판이 되기 때문에 작은 일도 중요하게 여긴다. 이렇듯 도덕성에 관심을 두는 이유는 사회적으로 성공했다손 치더라도 무례하다면 성공의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 아이들과 어떻게 소통하나.
“소통은 교육의 중요한 포인트다. 어린 시절에 부모님과 저녁을 먹으며 하루의 재미난 일들을 얘기하는 과정은 그 자체가 행복이었을 뿐 아니라 나의 지지 기반이었기 때문에 내 아이들에게도 그런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다. 그러려면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대화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어린아이들은 대화하는 과정에 열정적인데, 이를 귀찮다며 무시하고 넘어가면 아이들과의 소통관계가 깨질 수 있다. 그러므로 어릴 때부터 대화에 공을 들여야 한다. 최근에 아내는 아이들에게 5분씩이라도 일대일로 대화하는 시간을 보내고 부족하다 싶으면 함께 여행을 가거나 레스토랑에 가서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눈다. 주말에는 ‘가족 밤’이라는 걸 만들어서 가족끼리 식사하고 디저트 먹으며 대화하는 시간을 갖는다. 좋은 가족은 어느 한순간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 아버지들은 자녀와 소통하는 데 어려움을 많이 느낀다.
“내가 어릴 때 부모님이 전람회, 콘서트 등 좋은 문화적·교육적 경험을 제공하는 데 노력하셨듯이 나도 학회 때문에 세계 곳곳에 갈 때 아이들과 동행하며 문화적 경험을 제공하고 대화하는 시간을 갖는다. 큰아들은 베를린에 데리고 가고, 둘째 아들은 스페인, 최근에는 막내딸과 코스타리카에 다녀왔다. 어린 시절부터 아이들의 스포츠팀 코치도 했고, 아이들 음악활동에 거의 빠지지 않아 소통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진 않는다.”

인터뷰를 마치며 래리 곽 박사와 그의 아내는 자신들이 완전한 가정을 꾸리고 사는 것은 아니라는 단서를 달았다. 그들의 양육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그렇지만 이들은 지치지 않는다고 말한다. 돌이켜보면 결과적으로 유용하고 감사한 경험을 많이 했고, 무엇보다 즐겁고 유쾌한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가족은 헌신하는 부모와 노력하는 아이들이 꾸려가는 공동체라고 여기는 이들이 한국 독자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을 전해왔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즐거움을 잊지 마세요!”

  • 추천 0
  • 댓글 0
  • 목차
  • 공유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