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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부모, 그 위대한 이름

아들 백혈병으로 잃고 조혈모세포 기증 캠페인 벌이는 김명국 박귀자 부부

글 오진영 사진 홍중식 기자

2010. 04. 16

5년 전 여덟 살 아들 영길이를 백혈병으로 잃은 김명국 부부. 아이가 살아 있을 때부터 시작해 올해로 7년째 조혈모세포 기증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이 부부를 만나 어린 아들을 떠나보낸 후 생명을 살리는 나눔의 손길을 전파하게 된 사연을 들었다.

매월 마지막 일요일마다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는 백혈병 소아암 어린이를 위한 조혈모세포(골수) 기증 캠페인이 열린다. 탤런트 김명국(47)과 그의 아내 박귀자씨(47)는 2003년부터 올해까지 7년째 이 캠페인에 참여하고 있다. 백혈병을 앓다 세상을 떠난 아들 영길이의 병상을 함께 지킨 시간이 6년. 어느덧 캠페인에 참여한 시간이 아이 투병을 함께한 시간보다 길어졌다.
“자식을 잃는 아픔을 당해본 부모로서 이 일을 계속할 수밖에 없었어요. 우리 영길이처럼 예쁜 아이들이 부모를 두고 이 세상을 떠난다는 건 너무 슬픈 일입니다. 그런 일을 조금이라도 막아보고 싶습니다.”

6년간 항암치료 받다 여덟 살에 떠난 아들

아들 백혈병으로 잃고 조혈모세포 기증 캠페인 벌이는 김명국 박귀자 부부


동갑내기 부부는 연극무대에서 만나 93년 결혼했다. 이듬해 딸 소슬이를 낳았고 97년 아들 영길이가 태어났다. 두돌 무렵이던 2월 어느 날, 영길이가 감기 증상을 보여 거의 한 달 동안 동네 소아과 병원에 다녔지만 좀처럼 낫지 않았다고 한다. 그전에도 아이가 다리 아프다며 자꾸 업어달라고 했는데 ‘큰아이는 안 부리던 어리광을 부리네’ 정도로만 생각했다고.
“아이가 너무 오래 아프니까 소아과 병원에서 혈액 검사를 해보자고 해서 검사를 맡기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3·1절 전날 저녁에 아이가 오줌 마렵다고 해서 화장실에 데려갔는데 등허리에 큰 멍이 든 것처럼 반점이 생겨 있었어요.”
즉시 아이를 데리고 가까운 종합병원 응급실에 데려갔더니 입원해 검사를 받으라고 했다. 사흘 후 의사가 부부를 불러 급성림프구성 백혈병이라는 병명을 알려줬다. 알고 보니 아이 몸에 생긴 반점은 혈소판이 부족해 지혈이 안 돼 나타난 증상이었다.
“그날 마침 응급실에 있다가 아이를 진찰한 소아과 의사는 상태를 보자마자 병명을 짐작했다고, 나중에 말하더군요.”
백혈병 환자에게는 흔히 골수라고 부르는 조혈모세포, 즉 피를 만드는 어머니 역할을 하는 세포를 이식해주면 완치가 가능하지만 유전자형이 맞아 이식이 가능한 기증자를 만나기가 어렵다. 부모는 자식과 유전자형 6개 중 절반만 일치하기 때문에 이식해줄 수 없고 형제의 경우 유전자형이 맞을 확률이 25%다.
“딸에게는 미안하지만 동생과 유전자형이 맞아 이식해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는데 맞지 않았어요. 요즘은 다들 아이를 적게 낳는 시대라 비혈연 동종 이식을 기다리는 환자가 많습니다.”
유전자형이 맞는 비혈연 동종 이식자를 찾을 확률은 2만분의 1이었다. 기증자를 찾을 때까지는 항암 치료를 통해 암과 싸워야 했다. 항암 치료를 받는 아이가 있는 집의 남은 식구들은 정상적인 생활을 포기하고 아이 중심으로 살 수밖에 없다.

아들 백혈병으로 잃고 조혈모세포 기증 캠페인 벌이는 김명국 박귀자 부부




“항암치료제는 암 세포뿐 아니라 정상 세포까지 죽이는 일종의 독약이거든요. 백혈병을 치료하기 위한 것이지만, 치료로 인한 부작용을 또 치료해야 하는 악순환이 계속되지요.”
면역력이 약한 아이를 위해 바이러스의 온상이 될 수 있는 커튼·어항·화분 같은 것들은 다 없앴고 세균 감염을 막기 위해 매일 소독약으로 그릇·수저 포함해 집안의 모든 살림살이를 닦아야 했다. 감기만 걸려도 고열에 시달리며 의식을 잃는 아들을 안고 한밤중에 응급실에 달려가고, 잠든 사이에 아이가 잘못될까 무서워 아이 가슴이나 코 밑에 손을 올려놓고야 잠이 들던 날들이었다. 무엇보다 딸에게 손길이 덜 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 부부는 지금도 미안하다고 했다.
“큰아이는 동생이 아프기 시작한 다섯 살 때부터 혼자 집에서 라면 끓여먹고 자기 양말 빨아 신고 혼자 잠들곤 했어요. 지금 고등학교 1학년인데 어려서 그런 큰 시련을 겪어서 그런지 사막에 혼자 데려다놔도 살아남을 정도로 자립심 강한 아이로 컸습니다.”

아들 백혈병으로 잃고 조혈모세포 기증 캠페인 벌이는 김명국 박귀자 부부

1 부부는 사진을 볼 때마다 그립고 그리워 눈시울을 붉힌다. 2 아들 영길이의 마지막 모습.



아이가 병과 싸우는 동안 아버지는 방송에 나가 눈물로 조혈모세포 기증을 호소하기도 했고 캠페인을 널리 알리기 위해 두 번이나 마라톤 대회에 나갔다. 2000년 11월에는 SBS 방송국 창사 기념 특집 희귀병 어린이 돕기 마라톤 대회에 출전했다.
“42.195km를 달려와 스튜디오에 있는 아이와 포옹하는 설정이었는데 그걸 뛰고 나서 1주일 동안 계단을 내려가지 못했어요.”
2001년에는 중국 고비사막에서 6박7일 동안 250km를 달리는 서바이벌 마라톤 코스에 도전했다. 7일 동안 먹고 입을 짐가방을 등에 지고 골짜기, 구덩이가 있는 험한 코스를 달려 사막을 횡단하는 대회였다. 어떤 코스에서는 너무 힘들어 울면서 뛴 적도 있었지만 암과 싸우는 아들을 생각하며 끝까지 참고 완주해냈다. 대회가 끝나고 한국에 돌아와서 거의 한 달을 엉금엉금 기어다녀야 했다.

조혈모세포 기증자 찾지 못해 제대혈 이식 받았지만 실패
한동안은 아이의 항암 치료가 효과를 보는 것 같았다. 항암 치료로 완치가 되는지는 3년을 기다려봐야 알 수 있다고 했다. 간절한 바람에도 불구하고 3년을 얼마 안 남겨놓고 다시 암세포가 아이 몸에 나타났다. 이제 남은 방법은 조혈모세포 이식밖에 없었다.
“그때는 길을 다닐 때 스쳐 지나가는 낯선 사람들을 보면서 ‘저 사람의 유전자가 혹시 우리 아이와 맞을지도 모르는데’라는 생각뿐이었어요.”
저 수많은 사람 중 누군가는 우리 아이에게 피를 줘서 목숨을 살려줄 수 있을 텐데 찾을 수가 없다는 안타까움으로 가슴이 새카맣게 타들어갔다. 조혈모세포 기증자를 찾지 못해 대안으로 제대혈 이식을 받았다. 제대혈은 미성숙 세포라서 유전자형 4개만 맞아도 이식이 가능하기 때문에 비혈연 이식을 구할 확률이 조금 높고 그 대신 성공률은 낮은 편이다.
“제대혈은 탯줄에서 채취하는 거라서 정말 조금밖에 안 되는 양을 희석해서 아이 몸에 넣어줍니다. 피가 들어가 환자 몸에서 무사히 생착이 되면 새로 피를 만들어내기 시작하는데 우리 아이는 그게 안되었지요.”
제대혈 이식 과정에 두 달이 걸리는데 비용이 8천6백만원 정도 들었다. 그 치료를 받는 동안 온몸에 물집이 생기기 때문에 보통 옷은 입을 수 없고 메디폼이라는 것으로 몸을 감싸줘야 하는데 몸 전체를 감으려면 30만원쯤 들었다. 90년대 중반부터 김씨가 TV 드라마(모래시계)와 영화(약속·주유소 습격사건) 등에 출연하고 영길이가 태어날 무렵 맥도날드 CF를 찍게 돼 어렵던 형편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던 참이었지만 아이 병원비에 들어가는 돈은 적지 않은 부담이었다.
“오죽했으면 저희 부부가 의료보험 혜택을 더 받을 수 있는 의료보험 1종 자격을 얻으려고 협의이혼까지 했겠어요. 결국은 그 혜택도 받기 전에 아이가 떠나버렸지요.”
2005년 2월24일 마지막 순간이 왔다. 여덟 살 생일을 맞은 2주 후였다. ‘불멸의 이순신’ 촬영 때문에 지방에 갔던 아버지가 달려왔을 때는 이미 아이가 숨을 거둔 다음이었다. 인천 연안부두에 있는 바다장례식장에 한 줌 재로 남은 아들을 보냈다. 여행을 좋아했지만 자주 데려갈 수 없었던 아들이 그곳에서 매일 뜨고 내리는 비행기를 보라고 마음속으로 빌었다.
엄마는 휴대전화기 속에 아이를 마지막으로 촬영한 영상을 간직하고 있었다.
“세상 떠나기 사흘 전에 밥 먹던 모습이에요. 그날도 밥을 못 먹겠다고 식판을 물렸다가 누나가 오니까 기분이 좋아져서 다시 먹겠다고 해서 사진을 찍어줬는데 그것이 아이의 마지막 식사였어요. 저는 ‘자식은 가슴에 묻는다’는 말에 공감이 안 가요. 가슴속이든 그 어디든 아이는 묻을 수가 없어요. 항상 곁에 있는 것 같고 발길 가는 곳마다 있는 것 같고,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아들 백혈병으로 잃고 조혈모세포 기증 캠페인 벌이는 김명국 박귀자 부부


엄마는 아이가 좋아하던 옷, 연습장에 그린 그림, 가지고 놀던 장난감들을 차마 없앨 수 없어 내내 갖고 있었다. 특히 장난감이 두 박스가 넘었다.
“아동병원에 가보면 아이들 장난감이 많아요. 부모가 형편이 넉넉해서 많이 사주는 게 아니라 치료 받는 과정이 워낙 힘들다 보니 달래고 위로하느라고 자꾸 사주게 됩니다.”
아이가 갖고 놀던 장난감을 태워버릴 수도, 재활용 봉투에 넣어 버릴 수도 없어 간직하고 있었는데 재작년 겨울, 우연히 이 부부 집에 아프리카 모잠비크에서 온 아홉 살 소년이 한 달간 머물게 됐다. 영길이가 갖고 놀던 장난감을 다른 아이에게 선물할 좋은 기회인 것 같아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소년이 귀국할 때 들려보냈다.
“지난해 딸아이와 함께 모잠비크에 가서 그 소년을 만나고 왔어요. 장난감 덕분에 동네 아이들한테 대환영받았다는 이야기도 들었고요.”

“우리 아이처럼 아픈 아이 살려야겠다는 사명감으로 캠페인 참여”
부부는 아들이 투병 중이던 2003년 5월부터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열리는 조혈모세포 기증 캠페인에 나가기 시작했다. 고개를 들면 아들이 누워있던 서울대학병원이 바로 보이는 곳이었다.
“처음에는 아픈 아이와 부모가 힘들고 외롭게 싸울 수밖에 없도록 보호해주지 않는 우리 사회 의료 시스템에 대해 따지고 싶은 마음이 더 컸습니다. 그래서 기증을 권하는 말을 시작하면서 눈물부터 흘렀어요. 세월이 흘러 지금은 더 이상 울지 않고 말합니다. 단지 우리 아이 때문이 아니라 아픈 아이들을 살려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웃는 얼굴로 캠페인에 참여하게 됐습니다.”
날이 추워 거리 캠페인이 어려운 겨울에는 교회와 군부대를 돌아다니며 홍보를 한다. 수도방위사령부에서 군 생활을 한 김명국은 알고 지내던 상관들을 찾아다니며 사정을 설명하고 홍보회 개최를 부탁해왔다. 그런데 이번에 아예 수도방위사령부 홍보대사가 돼서 군 부대 홍보 기회가 더 많아질 것 같다고 한다. 그는 2년 전부터 CBS의 ‘수호천사 사랑의 달란트를 나눕시다’ 프로그램의 진행도 맡고 있다.
“난치병을 앓는 아이와 부모들이 얼마나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경험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분들에게 삶의 의욕과 희망을 주는 일에 힘을 보태라고, 그것을 사명으로 하는 삶을 살라는 것이 영길이가 우리에게 남겨주고 간 선물인 것 같습니다.”
조혈모세포 기증을 하고 싶은 사람은 혈액 4cc만 뽑아 혈액은행에 유전자 검사를 맡기면 된다고 한다. 유전자형이 맞는 환자가 있다고 하면 그때 다시 정밀 검사를 거쳐 적합 여부를 판단하고 기증자의 의사를 다시 확인한다. 비혈연 간에는 유전자형이 맞을 확률이 2만분의 1에 불과하기 때문에 주고 싶다고 다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2007년 탤런트 최강희가 이렇게 낮은 확률을 뚫고 조혈모세포를 기증한 적이 있다. 생명을 살리는 고귀한 행위는 특별한 행운을 타고난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인 것 같다.
“우리 부부가 기증을 서약한 것이 2000년인데 안타깝게도 지금까지 맞는 환자를 못 만났습니다. 기증자들 덕분에 1년에 1백30명이 생명을 구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매년 2천 명 넘는 소아암 환자가 발생하는 걸 생각하면 아직 기증자가 너무 적습니다.”
이 부부는 또 조혈모세포 이식에 대한 잘못된 편견을 바로잡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골수 이식은 척추에서 피를 뽑아 허리를 다치게 된다는 등 잘못 알고 있는 분들이 많은데 척추가 아니라 조혈모세포가 가장 많은 엉덩이뼈에서 뽑아냅니다. 요즘은 헌혈하듯이 팔에서 말초혈액을 뽑아 기계로 조혈모세포만 걸러내고 다시 몸에 넣어주는 방법을 많이 쓰고 있습니다.”
잠시의 아픔과 불편을 참으면 되는 조혈모세포 기증으로 한 아이가 사랑하는 엄마 아빠와 이별하지 않고 생명을 얻게 되는 놀랍고 아름다운 기적을 누려보지 않겠느냐고, 부부는 들어주는 사람이 있는 곳마다 찾아가서 설득하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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