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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쿠버 동계올림픽 스타 1

한국 스피드스케이팅 사상 첫 金 모태범 가족 인터뷰

글 백경선 사진 지호영 기자 동아일보 사진DB파트, 연합뉴스 제공

2010. 03. 15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500m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모태범 선수.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그가 특유의 배짱과 오기로 금메달을 확정짓고는 얼음판에서 가볍게 춤까지 추자 세계가 놀랐다. 모태범 선수 부모와 누나를 만나 겁 없이 도전하는 걸 즐기던 그의 어린 시절, 학창시절의 방황, 그리고 이상화 선수와의 관계까지 속속들이 얘기 나눴다.

한국 스피드스케이팅 사상 첫 金 모태범 가족 인터뷰


“몇 살인가?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 뭘 좋아하는가? 여자친구는 있는가? 인터넷을 뒤져봐도 정보가 없다. 당신에 대해 설명해달라.”
지난 2월16일(캐나다 현지시간 2월15일), 밴쿠버 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500m에서 한국의 모태범 선수(21)가 1위를 하자 해외 언론은 당황했다. 경기가 끝나고 열린 공식 기자회견에서 외국의 한 기자가 모 선수에게 던진 질문만 봐도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이 간다. 그는 세상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선수였다.
국내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경기 당일까지도 아무도 그를 주목하지 않았다. 모든 관심은 유력한 금메달 후보로 지목됐던 대표팀 맏형 이규혁과 이강석에게 쏠려 있었다. 전문가들은 지난해 기록과 운동 경력을 바탕으로 두 선수의 메달 획득을 의심치 않았다. 올림픽 출전을 앞두고 태릉에서 열린 미디어데이 행사에서조차 그는 쟁쟁한 선배들에 가려 기자들로부터 질문 하나 받지 못했다. 내심 서운했던 것일까. “그동안 아무도 저에게 관심이 없으셨죠?” 금메달이 확정되자 그가 한국 취재진에게 던진 첫마디가 이랬다. 그러고는 멋쩍어하는 취재진에게 “덕분에 더 잘해야겠다는 오기가 생겼다”며 유쾌하게 웃어 보였다.
모태범 선수의 주종목인 1000m 경기가 있던 지난 2월18일, 경기도 포천 그의 집을 찾았다. 전날 밤부터 새벽까지 눈이 많이 내렸음에도 그간의 무관심을 보상이라도 하는 듯 아침부터 취재진으로 북적였다. 취재진을 맞는 아버지 모영열씨(51)와 어머니 정연화씨(49), 누나 은영씨(24)의 얼굴엔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소방용품 제조업을 하고 있는 아버지 모씨는 아들이 출전하는 경기를 보려고 회사에도 나가지 않았다. 아버지 회사에서 일을 돕고 있는 은영씨도 마찬가지였다. 전날 밤엔 인터넷에 올라온 그의 사진을 보느라 온 가족이 뜬눈으로 지새웠다고 한다.
어머니 정씨는 500m가 모 선수의 주종목이 아니어서 가족들조차 큰 기대를 걸지 않고 있었던 터라 기쁨이 더 컸다고 말했다.
“1000m 경기였다면 그렇게 놀라진 않았을 거예요. 1000m는 태범이가 월드컵 랭킹 2위에 올라 있는 주종목이거든요. 하지만 500m는 월드컵 랭킹 14위에 불과해서 가족들도 큰 기대 없이 경기를 지켜봤어요. 태범이도 경기 전에 500m는 1000m에 대비해 속도 훈련을 한다는 생각으로 출전한다고 말했고요.”

“엄마 아빠, 이제 살 맛 나시죠?”

한국 스피드스케이팅 사상 첫 金 모태범 가족 인터뷰

기대 없이 경기를 지켜봤기에 기쁨이 더 컸다는 모태범 선수의 누나, 어머니, 아버지(왼쪽부터).



아들을 응원하느라 목이 쉰 아버지 모씨는 그때까지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묵묵히 훈련에 열중해온 그간의 노력이 결실을 봐서 고맙고 대견합니다. 워낙 남의 눈치 안 보고 주눅들지 않는 대범한 성격인데다 승부욕도 강해서 메달 하나쯤은 따지 않을까 은근히 기대했는데, 금메달을 딸 줄이야…(웃음).”
누나 은영씨는 “동생이 밴쿠버로 가기 전에 몸 상태도 좋고 자신 있다고 하더니 정말 해냈다”며 웃었다. 네티즌은 모 선수에게 ‘모터범’이란 별명을 붙였다. 마치 모터를 달고 달리는 것처럼 빠르다는 이유에서다. 은영씨는 “동생에게 딱 맞는 별명”이라고 인정했다.
“태범이는 어릴 때부터 빠른 건 다 좋아했어요. 초등학교 시절엔 스키장에서 상급자 코스를 쏜살같이 내려오면서 점프까지 해서 가족들이 깜짝 놀라기도 했고요. 그때 ‘참 간이 큰 아이’라고 생각했어요. 네 살 땐 화상을 입어 얼굴에 붕대를 감고도 자전거를 타고 온 동네를 돌아다녔을 만큼 에너지가 넘치는 아이였죠.”
2월16일 오후 3시 반경, 경기 후 도핑테스트를 마친 모 선수가 집에 전화를 걸어왔다고 한다. 금메달이 확정된 후 가장 먼저 부모님 얼굴을 떠올렸을 게 분명하다.
“텔레비전으로 봤냐고 하면서 ‘엄마 아빠, 이제 살 맛 나겠습니다’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잘했다, 최고다, 끝까지 다치지 말고 잘하고 돌아오라고 격려해줬어요.”(어머니 정씨)



한국 스피드스케이팅 사상 첫 金 모태범 가족 인터뷰


모 선수는 당찬 신세대답게 그날 누나 은영씨의 미니홈피에도 글을 남겼다. “모 여사, 힘내자. 웃어웃어, 파이팅.” 경기가 있기 전인 지난 2월14일엔 “쿵쿵, 재미있을 것 같아” 하면서 흥분된 마음을 누나에게 전했다고 한다. 대학 진학 후 줄곧 선수촌 생활을 하느라 주말에 한 번, 그것도 외박이 허락될 때라야 집에 올 수 있고 집에 와서는 잠자기 바빴던 막내. 애교가 많은 편은 아니지만 부모님과 누나를 살뜰하게 챙기는 듬직한 성격이라고.
모태범 선수는 동계올림픽 역사에 진기록을 추가했다. 밴쿠버 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가 운영하는 정보시스템 ‘INFO 2010’은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500m 경기 직후 모태범 선수를 역대 네 번째로 자신의 생일에 금메달을 딴 선수로 소개했다. 모 선수는 1989년 2월15일생.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500m 경기가 캐나다 현지 시간으로 2월15일에 있었다. 올림픽조직위원회는 그가 스물한 번째 생일에 금메달을 딴 것으로 공식 기록했다.
“나 자신에게 생애 최고의 생일 선물을 한 것 같아 기분이 좋다”고 말한 모 선수. 그의 아버지는 “우리가 생일선물을 해줘야 하는데 오히려 아들에게 좋은 선물을 받았다”고 말했다. 어머니는 다른 데 마음이 쓰이는 모양이었다.
“태범이가 열일곱 살에 주니어 국가대표로 발탁된 이후로 한 번도 생일에 미역국을 끓여주지 못했어요. 생일이 늘 시즌 중간에 있는 바람에요. 그게 늘 마음에 걸려요.”
그러면서 아들에게 줄 놀랄 만한 생일선물을 준비 중이라고 살짝 귀띔했다.
“이런 얘기 해도 되나…(웃음). 태범이는 상금 같은 부상이 걸려있으면 메달을 따고야 마는 성격이에요. 그래서 지금껏 중요한 대회를 앞두고 뭔가 내걸어 자극을 주면 효과가 있었어요. 이번에도 올림픽에 나가기 한참 전부터 새 차를 사달라고 조르기에 아이 아빠가 못 이기는 척 ‘올림픽에서 메달 따면 사주겠다’고 약속을 했어요. 이제 정말 새 차를 사줘야겠어요.”
듣고 있던 아버지 모씨가 “지금 타고 다니는 차가 아직 탈 만하다”며 웃자, 축하차 와 있던 큰아버지 모영주씨(53)가 “마음 같아선 자동차가 아니라 비행기를 못 사주겠느냐”고 화통하게 받아쳤다.

쇼트트랙 전향 권유받았지만 “몸싸움 싫다”며 거부
모태범 선수가 처음 스케이트와 인연을 맺은 건 초등학교 2학년 때다. 순전히 어머니 정씨의 결정이었다고 한다.
“태범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갔는데, 놀기만 좋아하고 공부를 통 안 하는 거예요. 공부는 안 되겠다 싶어 운동을 시키기로 마음먹었죠. 아이가 워낙 운동신경이 좋아서 운동은 뭐든 다 잘했거든요. 이것저것 알아보고 스케이트가 괜찮다고 판단했어요. 사실 스키를 시킬까 생각도 해봤는데, 경제적인 면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어서 스케이트로 결정했어요.”
정씨는 놀러가는 거라며 아들을 서울 어린이대공원 실내스케이트장으로 데리고 갔다. 그곳에 있던 박순식 코치에게 아들을 선보이기 위해서였다. 아들이 처음 스케이트를 타던 모습을 정씨는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스케이트화를 신자마자 단번에 서는 거예요. 그러더니 링크를 한 바퀴 돌고 오더라고요. 지켜보던 코치 선생님도 놀라시면서 ‘이런 아이는 꼭 스케이트를 시켜야 한다’고 권유하셨어요.”

한국 스피드스케이팅 사상 첫 金 모태범 가족 인터뷰

금메달 확정 후 익살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모태범 선수. 그는 어려서부터 대담하고 승부욕이 강했다고.



평소 축구와 야구를 좋아하던 아들도 스케이트를 타보더니 흥미를 보였다. 모태범 선수는 초등학교 3학년 때 본격적으로 스케이트를 배우기 위해 스케이트부가 있는 은석초등학교로 전학했다. 그전까지 다닌 면목초등학교에는 스케이트부가 없었기 때문이다. 금세 실력이 빛을 발했다. 5학년 때부터 각종 대회에 나가 상을 휩쓸었다. 거실 진열장을 가득 채운 메달과 상장이 그간의 영광을 증명하고 있었다. 정씨는 “어느 대회든 메달 하나라도 따지 않고 돌아온 적이 없었다”며 아들을 자랑스러워했다. 모 선수의 기량이 향상될수록 메달 가능성이 높은 쇼트트랙으로 종목을 바꾸라는 권유가 주위에 많았다. 아버지 모씨는 “쇼트트랙은 몸싸움을 해야 하는데 태범이는 그게 싫다고 고집을 피웠다. 지금 생각해보면 바꾸지 않길 잘했다”며 뿌듯해했다.
지금껏 아들을 키우면서 좋은 날만 있었을 리 없다. 지금은 177cm의 작지 않은 체구를 자랑하지만, 한동안 키가 작아 걱정이 많았다고 한다.
“어릴 땐 책가방을 질질 끌고 다녔어요. 중2 때까지 160cm 중반밖에 안 돼서 코치 선생님도 ‘키만 좀 컸으면’ 하고 아쉬워하셨어요. 태범이가 입이 짧아 잘 먹지도 않는 바람에 더 애를 태웠죠. 키를 크게 한다는 약도 구해 먹이고 그랬는데, 클 때 되니까 저절로 크더라고요. 중3 때부터 고1 때까지 10cm 이상 훌쩍 자랐어요.”

중3 때 오토바이 탄다고 훈련 이탈하기도
키가 자라기 시작하자 이제 걱정거리가 사라졌다고 생각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중3 겨울방학에 태범이가 갑자기 놀지도 못하는 게 싫다면서 스케이트를 그만두겠다는 거예요. 눈앞이 캄캄했죠.”
그때 당시 모 선수는 친구들과 어울려 오토바이 타는 재미에 푹 빠져 있었다. 3주간 훈련도 나가지 않았다. 어머니 정씨는 그런 아들을 일으켜세운 사람이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한국체육대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 지도해준 전풍성 코치라고 말했다.
“코치 선생님이 태범이를 붙잡고 많은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옛날에 당신이 오토바이 타던 얘기부터 시작해 훈련에 충실하지 못해 실패했던 경험담까지 들려주셨대요. 코치 선생님과 대화를 하면서 태범이도 깨달은 것이 있었나봐요. ‘내 길은 이 길인 것 같다’며 3주간의 방황을 접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더라고요. 그 뒤로는 태범이가 속을 썩인 적이 한 번도 없어요.”
외환위기 당시 아버지 모씨의 사업이 부도가 났을 때는 1년간 레슨비를 받지 않았을 정도로 전풍성 코치의 모 선수를 향한 애정이 각별했다고 한다.
스피드스케이팅 500m를 동반 석권한 모태범 선수와 이상화 선수가 ‘절친’으로 알려져 화제를 모았다. 나란히 한국체대 3학년에 재학 중인 두 선수는 은석초등학교 시절부터 전풍성 코치의 지도를 받으며 동고동락해왔다고 한다. 일부 네티즌은 공공연히 ‘금메달 커플’이라고 표현하면서 두 사람이 교제하기를 바라고 있는데, 어머니 정씨는 팬들의 이 같은 성화마저 즐거워했다.
“인터넷에 올라온 글들을 봤는데 그냥 웃음이 나더라고요. 둘은 어렸을 때부터 막역한 사이예요. 집안끼리도 잘 알고. 아이 아버지는 상화에게 우리 딸, 우리 딸 그래요.”
모태범 선수는 첫 금메달 소식을 전해온 지 이틀 만에 1000m 경기에서 은메달을 추가해 세계를 또 한번 놀라게 했다. 모 선수의 주종목이 1000m라 기대가 컸던 가족들은 못내 아쉬워했다. 하지만 이내 아버지 모씨가 “앞으로 남은 경기에서 더 잘하면 된다”며 “우리 아들 한번 지켜보라”고 힘주어 말했다. 어머니 정씨는 “남들처럼 제때 보약을 지어주지 못한 게 미안해서 이번에 큰맘먹고 산삼 한 뿌리를 달여 먹였는데, 금메달에 이어 은메달까지 땄으니 아무래도 산삼 덕을 본 것 같다”면서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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