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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오바마 인기 제친 브라질 ‘서민 대통령’ 룰라 리더십

글 김명희 기자 || ■ 사진제공 Rex ■ 참고도서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바다출판사)

2009. 11. 23

오바마 인기 제친  브라질 ‘서민 대통령’ 룰라 리더십

급속한 경제성장을 바탕으로 올림픽 개최권을 따낸 브라질 룰라 대통령.



지난 10월 초 덴마크 코펜하겐에는 오바마 미국 대통령 부부, 후안 카를로스 스페인 국왕, 하토야마 일본 신임 총리 부부 등 내로라하는 세계 정상들이 몰려들었다. 2016 하계올림픽 개최지 선정을 놓고 막바지 로비를 하기 위해서였다. 이 가운데 가장 이목을 끈 이는 오바마 대통령. 오바마는 직접 유치 설명회에 나섰고 세계 각국 미디어는 이를 헤드라인으로 다뤘다. 올림픽 개최에 대한 미국(시카고)의 의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결정적 순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들은 그간 올림픽의 변방에 머물던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손을 들어줬다. 올림픽 유치 역사상 가장 드라마틱한 순간으로 꼽히는 이번 개최지 선정의 주역은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실바 브라질 대통령(64). 그는 ‘슈퍼스타’ 오바마가 미디어 세례를 받는 동안 조용히 IOC 위원들과 접촉해 표밭을 다졌다.
리우의 올림픽 개최가 더욱 의미 있는 이유는 그간 ‘범죄 도시’ 오명을 안고 있던 이곳을 바라보는 세계의 시선이 바뀌었기 때문. 룰라 대통령은 “브라질은 이제 일류 국가로 존중받게 됐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러한 저력은 2002년 룰라 취임 이후의 눈부신 경제 성장에서 비롯됐다. 브라질 경제 시대 구분은 룰라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는 이야기가 있다. 룰라가 당선되던 2002년 12%였던 브라질 물가상승률은 현재 4%대로 낮아졌다. 당시 3백70억 달러에 불과하던 외환보유액은 2천1백억 달러로 늘었고 국내총생산(GDP)은 5천억 달러에서 지난해 기준 1조5천억달러(브라질 중앙은행 집계)로 룰라 집권 7년 동안 3배 넘게 늘어났다.

오바마 인기 제친  브라질 ‘서민 대통령’ 룰라 리더십


좌우 아우르는 유연한 카리스마가 인기 비결
급속한 경제 성장의 밑바탕에는 룰라의 실용주의 경제 정책이 있다. 룰라는 가난과 질병으로 다섯 살을 넘기기 힘들다는 브라질 북동부 빈민가에서 태어나 행상, 구두닦이, 세탁소 점원 등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힘든 시절을 거쳤다. 치료를 제때 받지 못해 첫 아내와 태아를 잃는 아픔도 겪었다. 그 자신도 금속공장에서 밤샘 작업을 하다가 왼손 새끼손가락을 잃었다. 1966년부터 노조 활동을 시작해 철강 노조위원장을 역임하며 70년대 금속노조 파업을 주도하기도 했다. 86년 연방하원에 진출했으며 4번의 도전 끝에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는 시련을 성공의 자양분으로 삼는 법을 알았다. 주위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일 줄 알았으며 노조 및 정치활동을 통해 훌륭한 협상가가 될 수 있었다. 또한 고통을 겪은 덕분에 뼛속 깊이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이해할 수 있게 됐다.
대통령 당선 후 그는 시장경제 원칙을 지키고, 기업 활동을 제약하는 규제를 과감히 풀었다. 이를 통해 좌파 정치인이라는 딱지를 떼고, 경제를 장악한 기득권층을 설득해냈다. ‘서민 대통령’이라는 정체성을 잃지 않아 대중들로부터 신뢰를 얻는 데도 성공했다. 이러한 유연함 덕분에 그는 좌우를 아우르는 브라질의 진정한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 그의 지지도는 현재 80%를 웃돈다.
vs
룰라
오바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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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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