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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계수미 전문기자의 Healing Power

숭실대 상담심리 전공 교수 오제은

사진 조영철 기자

2009. 05. 21

최근 KBS ‘아침마당’ ‘여성공감’ 등 주부 대상 프로그램에서 ‘부부대화의 기술’에 관한 명쾌한 강연으로 인기를 모은 숭실대 오제은 교수. 그가 “죽음의 문턱에 이를 정도로 고통스러웠던 마음의 병 때문에 상담심리를 전공하게 됐다”고 털어놓았다. 오 교수가 들려준 자신의 심리치료 체험과 ‘뜨거운’ 자기 사랑법.

숭실대 상담심리 전공 교수 오제은

약속시간을 조금 지나 숭실대 자신의 연구실에 들어선 오제은 교수(49). 한손에 카페라테 한 잔이 들려 있다. 첫인상이 참 밝다. 올해 마흔아홉 살이지만 그의 얼굴에서 개구쟁이 소년의 모습이 엿보인다. 격식에 얽매이지 않고 어떤 말을 해도 다 응해줄 것 같다.
“맞아요. 상담에 대한 이해가 안돼 있는 우리나라에서 역술인의 역할을 부정할 수 없어요. 특히 여성들은 오랫동안 가부장적인 제도하에서 억압돼 있던 한을 무당굿으로 풀어내곤 했죠. 저도 굿하는 데 가봤는데, 흥미로운 건 가족치료를 하고 있다는 겁니다. 굿할 때 돌아가신 시아버지, 시어머니 다 불러 잘못도 빌게 하고 남편 바람피운 것 들통도 내고 하잖아요.”
“우리나라에선 사람들이 상담치료사를 찾는 대신 점집을 찾아가 자기 얘기를 다 털어놓으며 가슴 후련하게 울지 않느냐”는 기자의 말에 오 교수는 흔쾌히 동의해준다. 상담문화가 정착되지 못한 데 안타까움을 보이는 그는 상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쉽게 풀어주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말을 들어줄 사람을 필요로 하잖아요? 내 말을 아무런 판단 없이, 추측 없이 내 입장에서 듣고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이 있으면 안고 있던 고민이 해결될 수 있어요. 내 말을 잘 듣고 알아주는 일, 그 일을 전문적으로 공부한 상담사가 하면 짧은 시간에 답답한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게 되죠. 털어놓지 못해 고통이 계속되는 거예요.”
그는 상담하는 데 있어 무엇보다 상담자와 내담자 사이의 믿음이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물론 비밀보장은 필수다. 미국 심리학자 칼 로저스의 인간 중심 상담기법을 따른다는 오 교수는 상담할 때 진심으로 마음을 나누며 함께 공감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에 대해 그는 “상담자가 내담자에게 무엇을 지시하기보다 상대의 옷을 입고 신발을 신고 상대의 눈을 봐주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그 또한 이런 상담치료를 통해 마음의 상처가 나았다고 덧붙인다.
숭실대 상담심리 전공 교수 오제은

오 교수는 최근 자신의 심리치료 체험을 담은 책 ‘자기사랑노트’를 펴내 잔잔한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세상에 이 책을 내놓기가 두려워 출간에 무려 7년이 걸렸다”고 털어놓는 그는 이제 자신의 아픔을 드러내는 데 주저함이 없다.
“저는 3년 반 동안 자살충동에 시달렸던 대인기피증 환자였습니다. 사춘기부터 20여 년간 아버지에 대한 미움과 분노를 품고 살았고, 아내와의 관계도 최악으로 치달았어요.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또한 너무 힘들었죠.”
그는 무엇이 문제일까, 너무 답답한 마음에 환자 입장에서 심리치료사를 찾아가고 종교기관에 가고 각종 심리치료 관련 프로그램에 참가하기 시작했다고. 그러다 “스스로 상처받은 내면을 들여다보게 되고, 상처의 원인을 이해하게 되고, 자신을 다시 한 번 발견하게 되면서 사람 관계가 치료되는 경험을 하게 됐다”고 한다.
“사람은 상처가 있으면 먼저 자신을 대하는 데 문제가 생기고요, 꼭 그만큼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문제가 생깁니다. 치유되지 않은 상처는 자신에게 큰 숙제로 남지만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그대로 다 전달이 되거든요.”

모든 인간관계가 어긋나 방황하다 자살기도
보수적인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난 오 교수는 엄격한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그가 중3 때 사업에 실패한 아버지가 중병으로 몸져누웠다. 당시 사춘기 소년이던 그는 아픈 아버지에게 연민을 갖기보다 원망을 품었다고 한다. 교회일과 전도, 봉사에 치중하느라 늘 가정은 뒷전이던 아버지가 고지식하게 빚쟁이들에게 재산을 모두 넘겨줘서 온 가족이 생활고에 시달리게 됐다는 생각에 분노가 일었다.
“갑자기 병원에서 연락이 와 갔더니 아버지가 유언으로 제게 목사가 되라고 하시더군요. 화가 나서 병실 벽을 주먹으로 치고 나왔어요. 어머니가 따라 나와 제 따귀를 때리며 야단을 치셨죠. 시한부 삶을 선고받고 집으로 돌아온 아버지가 자취를 감추셨을 때 그 참담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가족 모두 아버지를 찾아 나섰지만 찾을 수가 없었어요. 지인에게 연락해 가족 몰래 기도원으로 옮기신 것을 나중에 알았죠.”

그는 “아버지를 살려주시면 선교사, 목사가 되겠다”고 하나님에게 기도했고, 그의 아버지는 1년 반 만에 기적처럼 살아 돌아왔다. 하지만 그는 마음속에서 진심으로 아버지를 받아들이지 못했다고 한다. 힘겹게 고학으로 고등학교와 대학을 마친 그는 결혼 후 캐나다로 유학을 떠났다. 한국에 돌아오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는 캐나다에서 공부하면서 약속대로 목사가 돼 개척교회를 일궜다.
“겉으로는 큰 문제가 없어 보였지만 속마음은 늘 울고 있었어요. 인생의 방향을 잡지 못해 방황하고 있었죠. 결혼 초부터 아내와 불화가 계속됐고 성도들과의 관계도 어긋났습니다. 자살충동에 시달렸어요. 바다에 뛰어들려고 고속도로를 막 달리다가 브레이크를 잡고 ‘이 바보, 넌 죽지도 못하냐’ 소리치며 운전대에 머리를 박곤 했죠.”
열성적으로 교회 일을 돕던 신도에게 오해를 사 멱살을 잡힌 일은 그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그 즈음 아내도 그의 곁을 떠났다. 그는 대인기피증을 앓았다. 서너 달 후 이유 없이 이가 흔들거리더니 손으로 잡자 잇달아 힘없이 빠졌다. 치과의사는 특별한 병명을 찾지 못한 채 ‘신경성 스트레스’라는 진단을 내렸다.
어느 날 그는 술을 몇 병 사들고 집에 들어가 문을 다 잠그고 열쇠를 창문 밖으로 던져버렸다. 술은 하룻밤에 동이 났고 그는 며칠간 물만 조금 마시고 자다 깨다 하면서 정신을 놓고 지냈다. 의식이 혼미해지고 환각과 환청 증세가 생기기 시작했다. 칠흑 같은 어둠 속 죽음의 문턱에 다다랐다고 생각했을 때 그는 자신을 부둥켜안고 울어주는 어떤 존재를 느꼈다. 그리고 그 특별한 체험은 그에게 다시 새 삶을 주었다. 그날의 일에 대해 그는 ‘자기사랑노트’에 다음과 같이 적어놓았다.
‘학교도 결혼생활도 목회도 내 뜻대로 된 일이 하나도 없었을 때 나는 자살을 시도했고 바로 이 한마디를 들었다. “제은아, 네가 기쁘면 나도 기쁘고, 네가 슬프면 나도 슬프다. 네 가슴이 뛸 때 내 가슴도 뛴단다.” 하나님의 목소리였는지 내 내면 깊은 곳에서 울려나온 목소리였는지 알 수 없지만 생을 포기하려던 절박한 상황에서 들었던 그 한마디는 나를 위로하고 나에게 살아갈 힘을 주었다….’
그날 이후 그는 달라졌다. 누가 자신의 목을 조이는 것같이 답답해질 때마다 스스로 이름을 부르며 다짐했다고 한다. “오제은! 난 널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오 교수는 심리치료 프로그램을 열심히 찾아다녔다. 그는 ‘상처받은 내면아이 치료’라는 주제로 열린 3박4일간의 프로그램에 참가했을 때 큰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심리치료사가 제게 어렸을 때 아버지 얘기를 해보라는 거예요. 아버지를 불러보라 하고 당신이 힘들 때 아버지가 얼마나 사랑해줬느냐 그런 얘기를 물었습니다. 도대체 아버지와 나와의 어린 시절 경험이 오늘의 나와 무슨 관계가 있느냐, 제가 반발했죠. 그랬더니 당신이 이제 아버지이고 남편이지 않느냐, 당신의 힘은 바로 어린 시절에 아버지가 당신에게 어떻게 대해줬는가에 달려 있다고 하더군요. 지금 당신이 아버지와의 관계를 다시 한 번 맺는 게 중요하다고 해서 아버지를 더듬어보다가 제 인생에서 모든 문제의 핵심을 발견하게 됐어요.”
어린 시절 기억을 더듬던 그에게 한 장면이 영화처럼 생생히 떠올랐다. 목침 위에서 아버지에게 매를 맞고 있는 장면이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의 일이다. 주일 교회에 헌금할 돈으로 ‘달고나’를 사먹은 그는 아버지에게 회초리로 맞다가 기절을 해버렸다. 오 교수는 ‘자기사랑노트’에 이렇게 적고 있다.
‘인도자의 인도에 따라 매를 맞고 있는 어린 나와 대화를 시도했다. “제은아, 많이 아프지? 어서 도망 가!” 그러자 그 아이가 눈물이 뒤범벅이 된 채 말했다. “쉬잇! 지금 아버지가… 날… 죽이려고 해!” 그 말을 듣고 난 그만 숨이 멎을 뻔했다. 아이였던 내가 진정 두려워했던 것이 무엇인지 그때 알았다. 만일 아버지의 신앙교육 원칙에서 벗어나면 아버지는 날 버릴 수도 있고 죽일 수도 있다는, 그런 무서움과 불안감이 어린 내 무의식 깊숙이 박히게 됐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새카맣게 잊고 있던 사건이 떠올라 그를 흔들어놓았다. 나중에 그는 이것이 ‘내면아이 치료’라는 심리치료 과정의 한 단계임을 알았다고 한다. 즉 잃어버린 내 안의 아이, 상처 입은 내면의 나를 만나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그는 “극도의 공포심을 느꼈던 그날 이후 ‘까불이’ 오제은은 죽고 아버지가 원하는 모습이 되기 위해 애쓰는 ‘모범생’ 아들로 살았다”고 회상했다.
‘칭찬을 듣는 모범생이 돼갈수록 내 마음에서는 자발성이나 즐거움은 사라지고, 대신 나는 내가 누군지,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는 아이가 돼갔다. 아버지의 기준에 맞춰 내게 요구되는 역할을 하기 위해 거짓 가면을 쓴 ‘상처 입은 내면아이’, 나는 그 아이를 품은 채 몸은 성인이 됐지만 내면은 아이인 ‘성인아이’가 됐다. 그렇게 나의 자아분열이 시작된 것이다. 나의 방황과 끝도 없는 절망은 이미 그 시절부터 쓴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숭실대 상담심리 전공 교수 오제은

엄격한 아버지에 대한 뿌리 깊은 미움과 화해
그는 그 시절 아버지가 눈앞에 실제 있는 것처럼 “아버지! 아버지!” 하고 울부짖으며 온갖 얘기를 쏟아붓는 ‘속풀이’를 했다고 한다. “아버지가 날 한 번만 안아줬어도, 그때 날 안고 헌금은 함부로 쓰는 게 아니란다, 그 돈은 하나님께 드리는 거야. 그렇게 따뜻한 말 한마디만 해주었어도 내가 이렇게 아파하지는 않았을 텐데. 그럼 내가 반성하고 아버지를 더 사랑했을 텐데. 아버지는 허구한 날 하나님 사랑한다고만 했지, 이 아들을 사랑하지는 않았어. 아버지가 나한테 사랑을 줬어야 나도 사랑을 하지. 아버지는 바보야. 나는 아버지처럼 안 될 거야. 나는 사랑하면서 살 거야.”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마음이 홀가분해지며 아버지가 보고 싶더라고 했다. 아버지에게 “사랑한다”는 말이 하고 싶었다. 99년 귀국했을 때 그는 공항에서 아버지를 끌어안고 ‘사랑 고백’을 했다고 한다.
“제 평생 최고로 잘한 일인 것 같아요. 아버지를 두 팔로 힘차게 껴안고 볼에 정신없이 입을 맞추며 ‘너무너무 뵙고 싶었어요. 사랑해요. 아버지’ 귀에 속삭였어요. 처음엔 ‘얘가 외국 가서 오래 살더니 별 이상한 짓을 다 하네’ 하며 당황하셨던 아버지도 나중엔 큰 소리를 내며 우시더군요.”

오 교수는 “부모는 내 존재의 뿌리”라고 말한다. 부모와의 관계가 풀리지 않은 상태에서는 부부관계와 자녀관계는 물론 모든 인간관계에서 어려움을 겪는다는 것이다. 그는 “부모를 계속 원망하고 서운해하는 동안에는 건강한 삶을 살기 힘들다”고 지적한다. 어린 시절의 상처에 대해 분노를 표현하고 난 뒤 부둥켜안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얘기한다.
“아버지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나니 모든 사람을 안을 수 있게 됐어요. 초등학교 4학년 때 아이로 돌아간 듯 표정이 확 달라졌죠. 자유로워졌어요. 무엇보다 내가 자신에게 늘 매를 때리고 야단을 치고 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게 됐어요. 아버지의 엄격한 잣대를 스스로 들이대고 있었던 거죠.”
오 교수는 “어른이 되더라도 우리 안에는 아주 순수한 아이, 심리학자 칼 융이 ‘놀라운 아이’ ‘경이로운 아이’로 표현했듯이 아주 소중하고 아름다운 부분이 있다”고 설명한다. “우리가 아무리 상처를 받더라도 우리 안에 다 있는 그런 것들을 따뜻하게 끌어안고 봐줘야 한다”고. 또한 그는 “자신의 장단에 맞춰 춤추며 살아가야 한다”고 힘줘 말한다.
“남의 장단에 맞춰 나를 잃어버린 채 꼭두각시처럼 살아가기 쉬워요. 하지만 우리 모두는 자기만의 장단과 가락을 지니고 태어나죠. 우리가 할 일은 바로 그 마음의 장단을 찾는 것, 다른 사람의 장단에 맞춰 살던 삶을 멈추는 거예요. 내 장단이 아닌 아버지의 장단에 맞춰 살고, 어머니의 장단, 세상의 장단, 다른 사람들의 장단에 맞춰 사는 삶이 행복할 리 없어요. 나만의 독특한 장단에 맞춰 춤추며 살면 인생은 절로 흥이 나죠.”
그는 집단 상담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 참가자들이 춤을 추도록 댄스테라피 순서를 넣는다고 한다. “상담사가 되지 않았다면 춤꾼이 돼 있을 것”이라며 웃는 그는 “자신의 장단에 맞춰 마음껏 춤추면서 긴장을 풀다 보면 무의식 세계에 숨어 있는 상처들을 대면하고 치유하게 된다”는 말을 덧붙였다.


숭실대 상담심리 전공 교수 오제은

이혼 위기에 처했던 아내와의 관계회복
그는 이혼 위기에 처했던 아내와의 관계회복 과정에 대해서도 솔직히 들려주었다. 그는 자신의 부부문제 치료에 관심을 갖다가 상담심리학 중에서도 가족치료를 전공으로 택했다.
“부부는 보통 상처가 비슷한 사람들이 만납니다. 결혼 전엔 서로 상처를 나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결혼생활을 하면서 보니 성격도 너무 다르고 서로 상처를 치유해줄 수 없는 거예요. 기대를 하면 할수록 실망하게 되고. 이 사람도 날 이해해주지 못하는구나, 생각하니 너무 힘들었어요.”
어느 날 부부치료 세미나에 참석했던 그는 강의를 듣다 말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아내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하기 위해서였다. 폭우가 쏟아지고 있었지만 그는 운동장을 가로질러 공중전화 박스로 달려가 전화를 걸었다.
“아내가 깜짝 놀랐어요. 나한테 맞추라고 해서 정말 미안하다고, 당신이 바뀔 필요 없다고 말하는데 눈물이 쏟아지더군요. 아내도 엉엉 울었죠. 아내는 지금도 그날이 제 2의 생일이라고 말해요.”
오 교수는 “그때 부부문제는 서로 변하라고 하는 데 원인이 있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한다.
“모든 부부문제는 똑같아요. 당신이 변해야 한다, 아니면 내가 잘못이니 변하겠다고 하죠. 하지만 사람은 변하지 않습니다. 부부교육은 그러니까 있는 그대로 상대를 받아들이는 훈련을 하는 거죠.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것. 그것을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깨달아야 해요. 그때 가슴의 소리가 들리면서 아내에게 용서를 구한 거죠.”
그는 곧바로 아내와 함께 이마고(IMAGO) 부부 워크숍에 참가해 부부훈련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부부훈련은 다름 아닌 의사소통훈련”이라고 가리킨다.
“처음엔 말장난 같아요. 한 사람이 얘기하면 그 눈을 바라보면서 무조건 고개를 끄덕여주고 상대 입장에서 그 얘기를 확인해요. ‘내가 지금 당신을 잘 이해했나요?’ 상대가 아니라고 하면 ‘아, 그렇군요!’ 하면서 상대가 ‘그게 맞아요, 바로 그 말이에요’ 할 때까지 계속 반복해서 물어야 해요. 말을 이해해주는 것이 부부가 서로 깊이 이해하도록 돕는 데 필수적이죠. 한편으로는 상대의 존재를 받아들이는 훈련이에요. 깊은 무의식까지 연결이 되죠.
이마고 부부치료에서는 부부가 어린 시절 치유되지 않은 상처가 있다고 봐요. 특히 부모와의 관계에서.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받지 못한 관심이나 사랑을 나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배우자에게 원하고 있는데, 그 상처를 부부가 모르고 오히려 건드려요. 그래서 서로 더 화나게 하죠. 부부관계에 빵점인 사람이 너무 많아요. 저도 그랬어요.”
오 교수는 “부부훈련 후 우리 부부관계가 정말 달라졌다”고 자랑한다. 의사소통훈련을 통해 서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이해하게 됐다는 것이다.
“부부 대화 훈련법 중에 부부 미러링(mirroring·거울 비추기)이란 게 있어요. 서로 대화가 잘 안되면 ‘여보, 미러링 해줘’ 해요. 그러면 한쪽은 무조건적으로 그 사람이 하는 얘기를 반복해주고 그 사람 입장에서 이해해줘야 해요. 끝나면 다른 한쪽도 해줘야 하고. 이런 대화법을 알게 된 것이 우리 부부 최고의 터닝 포인트가 됐어요.”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게 치유의 출발
한국가족상담센터를 운영하고 있는 오 교수는 “자녀들의 성문제, 중독, 비행, 일탈 같은 모든 문제는 부부문제, 가족 전체의 문제가 자녀를 통해 드러나는 것일 뿐”이라고 과감히 지적한다. 따라서 “문제아라며 자녀를 앞세우고 오는 부모는 모두 치료를 받아야 된다”고 단언한다.
“아이에게 증상으로 나타난 것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에요. 의식하지 못하는 무의식의 차원까지 들여다봐야 하죠. 아이는 알람처럼 가족문제를 드러내고 있어요. 사랑을 통해 가족관계에 치유가 일어나야 근원적인 치료가 됩니다. 예를 들어 중독도 그 핵심은 관계에 있거든요. 아이가 게임 중독, 인터넷 중독이라 할 때 아이가 아빠, 엄마를 대신해 그것과 관계를 맺고 있는 거예요. 부모를 대신해 항상 그 자리에 있는 사물과 관계를 맺는 것이죠.”

자기 자신 힘든 어린 시절과 사춘기를 보냈고 그 고통이 성인이 됐을 때도 이어졌기에 오 교수는 무엇보다 자녀문제, 청소년문제 상담에 열정적이다. 그는 올해 대학에 들어간 외동딸이 사춘기였을 때 함께 여행을 하며 속마음을 나눴다고 한다. 자신도 상담실에서는 전문가지만 실제 자녀관계에서는 힘든 관계를 경험했다고 털어놓았다.
“치유를 경험한 사람들은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 압니다. 내가 뭘 잘해서가 아니에요. 외모나 가진 것이나 조건이 훌륭해서도 아니죠. 그저 있는 그대로 내 안에 얼마나 ‘아름답고 소중한 나’가 있는지 발견하게 되는 겁니다. 인생은 이런 ‘나’를 만나기 위한 여행이라 생각해요.”
그는 “외부에서 무엇을 찾으려던 지금까지의 헛된 발걸음을 멈추고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집중해보라”고 조언한다. 내 몸의 고통, 마음의 괴로움, 인간관계의 힘든 일들, 이 모든 것이 내가 들어줘야 하는 메시지이며, 여기서 치유가 출발한다는 것이다.
“내가 날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우주가 날 대접하게 돼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온 우주보다도 귀하고 소중한 자신의 아름다움을 느껴보세요. 자기 자신을 존중할 때 우주가 도와줍니다.”
오제은 교수는…
가족상담과 부부 치료, 내면아이 치료 전문가로 하버드대에서 가족치료 석사학위를, 토론토대에서 상담학 박사학위를 땄다. 지난해 아시아인으로는 처음으로 국제공인 이마고 부부치료전문가 자격을 얻어 주목받았다. 미국심리치료협회 임상감독이며 숭실대 상담심리 전공 교수로 재직 중이다. 비영리 사단법인 한국가족상담협회와 한국가족상담센터를 설립해 부부치료 세미나, 내면아이 치유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상처받은 내면아이를 가슴에 품은 채 성장한 성인은 다른 사람과도 고통과 상처를 주고 받는 관계를 맺게 된다.
숭실대 상담심리 전공 교수 오제은


오제은 교수의 ‘자기사랑노트’

상처받은 내면아이 치료는…
우리 자신의 내면아이를 발견하고 부둥켜안도록 도와주는 치료는 어린 시절에 ‘미처 해결(표현)하지 못했던 슬픔’을 표현할 수 있도록 돕는 데 그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어린 시절 각 시기에 따라 당연한 의존적인 욕구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것들이 충분히 채워지지 못했을 때 대부분 ‘상처받은 아이’를 품은 채 어른이 됩니다.
이렇게 어린 시절 당연히 받았어야 할 사랑과 관심을 제대로 받지 못해 상처받은 내면아이를 가슴에 품은 채 겉만 성장한 성인을 가리켜 ‘성인아이’라고 부릅니다. 상처받은 내면아이는 숨기면 숨길수록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 데 대항해 어떤 것에 과민반응하거나 반항하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계속 고통과 상처를 주고받는 관계를 만들게 됩니다.
내면아이의 슬픔을 나누고 돌보고 양육시킬 수 있는 최고의 치료사는 자기 자신입니다. 자신의 성숙한 힘을 사용해 어린 시절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부모 역할을 시도해봅니다. 당신이 새로운 부모 역할을 하게 되면 어린 시절 부모가 당신에게 해주지 못했던 것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기대하며 대리 욕구를 채우려 했던 모든 행위를 중단하게 될 것입니다.
내면아이를 발견해 대화하며 억눌려왔던 슬픔을 걷어내고 부둥켜안을 수 있게 되면, 당신 안에 창조적인 에너지의 근원인 ‘놀라운 아이’가 자리 잡게 됩니다.


따라해 보세요!

편안한 상상여행 하기
조용히 눈을 감고 편안히 누워 상상여행을 떠나봅니다. 조용한 음악을 틀어놓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먼저 숨을 천천히 들이마시고 내쉬기를 반복합니다. 조용한 숲 속으로 들어가는 상상을 합니다. 아름다운 숲길을 나 혼자 걷고 있습니다. 시냇물이 졸졸 흐르고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들립니다. 작은 호수에 걸터앉습니다. 그 호수에 얼굴을 비춰보며 말합니다.
“내가 정말 원하는 삶은 이런 것이다. 나는 이런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내가 이 세상을 떠날 때 사랑하는 사람들이 날 이렇게 기억해주면 좋겠다….”
내 마음에 꼭 드는 단어나 문장, ‘나’를 나타낼 수 있는 별칭, 삶의 빛깔 같은 것들을 표현해보세요.


힐링 이미지 모으기
당신의 삶에서 치유의 힘을 강화할 수 있는 열쇠는 ‘힐링 이미지’입니다. 당신에게 강력한 치유효과를 줄 수 있는 치유의 도구들을 모으세요. 치유적인 이미지들을 통해 자신에게 긍정적인 에너지들을 불어넣으세요. 나를 기쁘게 해주고 성장시키는 것이면 무엇이든 좋습니다. 생각나는 힐링 이미지들과 치유의 도구들을 적어보세요(예를 들어 어릴 때 사진, 좋아하는 그림, 영화 포스터, 문구, 시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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