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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Family Special/가족이 있어 행복한 사람들 2

“열째야, 환영한다~” 7남3녀 둔 권학도 목사 가족

글 김명희 기자 | 사진 조영철 기자

2009. 05. 21

아이가 주는 기쁨보다 더 큰 행복이 있을까. 얼마 전 열째를 얻은 권학도씨 부부는 아이 낳기를 기피하는 요즘 부부들에게 ‘이런저런 핑계로 진정한 행복을 잊고 사는 건 아닌가’라고 되묻는다.

“열째야, 환영한다~” 7남3녀 둔 권학도 목사 가족

중매로 만난 아가씨가 마음에 쏙 들었던 마흔 살 노총각은 프러포즈를 하며 세 가지 조건을 내걸었다. 농촌에 살 것, 연로한 시어머니를 모실 것, 아이는 생기는 대로 낳을 것. 아홉살 연하의 아가씨는 간 큰 남자의 청혼을 선뜻 받아들였다.
남자가 믿음직스러웠고 그가 내건 조건들이 자신이 생각했던 이상적인 결혼생활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결혼 17년 만인 지난 3월 초 열째 아이(7남3녀)를 낳은 권학도 목사(57)와 이재순씨(48) 이야기다.
충북 진천군에서도 한참 들어가는 권 목사의 집에 들어서자 마침 학교 수업을 마치고 돌아온 아이들이 저녁식사를 하고 있었다. 생선구이와 김치 반찬이 전부였지만, 누구 하나 투정하지 않고 부지런히 젓가락을 놀렸다.
“자기가 안 먹으면 아무도 안 챙겨주니까 각자 알아서 잘 먹어요. 80kg짜리 쌀 한 가마니를 들이면 한 달이 못 가요. 김치는 수시로 담가야 하고요.”
서른 평 남짓한 집에는 화장실이 2개, 컴퓨터가 3대였고 곳곳에는 책이 빼곡한 책장이 놓여 있었다. 거실 벽에는 아이들이 그린 “열째야, 환영한다”는 그림이 붙어 있었다. 시어머니(86)까지 열세 식구의 살림을 꾸리는 이 집의 안주인 이재순씨. 그는 아이들을 모두 자연분만하고, 모유수유로 키웠다. 배가 꺼질 날이 없었고, 아이를 임신한 상태에서 모유수유를 하다가 다음 아이가 태어나면 바통터치를 해서 또 젖을 물렸다. 아이들 중 여섯이 연년생이다. 출산할 때마다 항상 아내의 곁을 지켰던 권 목사는 “아이를 낳을 때 기억이 모두 생생하다”고 말했다.
“쉽게 낳은 아이가 한 명도 없어요. 그중에서도 여섯째 강찬이는 4.6kg 우량아라 힘들었고, 여덟째 예찬이는 갓난아기 때 장중첩증으로 고생했죠. 일곱째 은혜도 다섯 살 때 열이 나면서 경기를 해 마음을 졸인 적이 있어요. 아이들이 많으니까 하나쯤 아프더라도 대수롭지 않게 여길 거라고 생각하는 분도 있지만, 저희한테는 하나하나 다 소중한 아이들입니다.”
결혼할 때 하늘에서 주시는 생명은 모두 감사하게 받기로 약속한 권씨 부부는 임신 중 기형아 검사를 한 번도 받지 않았다고 한다. 설령 잘못된 아이가 태어나더라도 키울 각오가 돼 있기 때문이다.
이재순씨의 하루는 생각만큼이나 바쁘다. 오전에는 아이들 챙겨 학교에 보내고 낮에는 막내와 씨름하다가 아이가 잠든 후 집안일을 몰아서 하고 물에 밥 말아 한술 뜬 후 또다시 저녁 준비. 겨우 숨 좀 돌릴라 치면 동생에게 엄마를 빼앗겨 심술이 난 아홉째 경찬이(3)가 치마꼬리를 붙잡고 늘어진다. 그래도 학교에서 급식으로 받은 우유를 동생들 준다고 챙겨오고, 힘들다고 하소연하기 전에 알아서 집안일 척척 도와주는 아이들 덕분에 힘이 난다고. 오전 7시와 8시, 두 번 차로 아이들을 등교시키고 청소며 빨래는 눈에 띄는 대로 거들어주는 남편도 고마운 존재.
“힘들다고 푸념하고 경제적으로 쪼들린다고 계산기 두들기다 보면 아이들 못 키워요. 그리고 힘들 때보다 기쁠 때가 더 많고요. 또 아이들은 다 제 먹을 것을 갖고 태어난다고 하잖아요. 그동안 아이들을 풍족하게 키우지는 못했지만 돈 들어갈 일이 생기면 그때그때 해결할 방법도 생기더라고요.”
“일곱째를 낳을 때까지만 해도 정부가 산아제한 정책을 펴던 시기여서 둘째 밑으로는 의료보험 혜택도 받지 못했어요. 저희 가족을 향한 주변 시선도 그리 곱지 않았고요.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 저출산 문제가 대두되면서 정부나 지자체 차원의 지원이 많아졌죠.” 권학도씨가 한시름 놓았다는 표정이다.
“열째야, 환영한다~” 7남3녀 둔 권학도 목사 가족

새싹 돋아나는 들판을 마당 삼아 뛰노는 권학도씨 부부의 아이들. 고등학교에 다니는 첫째 은진이와 둘째 은찬이는 학교 수업 때문에 함께 사진을 찍지 못했다.


“온 가족이 함께 있을 때 느껴지는 훈기가 좋아요”
저출산 문제는 도시보다 시골이 더 심각하다. 맏이인 은진이(18)가 입학할 때만 해도 3개나 되던 인근 초등학교는 이제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 권 목사네 아이들은 서로에게 좋은 친구가 되고 있다.
“자연스럽게 나이가 비슷한 두세 명씩 그룹을 이뤄 놀고 같이 공부도 하더라고요. 큰 아이들은 동생들을 돌보고 공부도 봐줘야 하니까 책임감이 강하고 공부도 열심히 해요. 학원 한 번 보내지 않았지만, 모두 성적이 상위권이죠. 학급, 학교 임원도 도맡아 할 정도로 리더십도 강하고요.”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 날 없다’는 말처럼 아이들이 많다 보니 크고 작은 사고도 많다. 인터뷰를 하는 중에도 은혜가 넘어져 무릎이 까졌다. 권씨 부부는 웬만한 일에는 놀라거나 화를 내지 않는다. 은혜도 아무렇지 않은 듯 무릎을 툭툭 털고 일어섰다.
“도시의 젊은 엄마들은 아이들이 조금만 뛰어도 야단을 치더라고요. 부모가 ‘안 된다’는 말을 입에 달고 있으면 아이들이 무슨 일을 할 수 있겠어요. 매를 들고 야단치지 않더라도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아이는 저절로 반듯하게 큽니다.”
열째 선찬이에게 젖을 물리는 이씨에게 가끔 아이들에게서 벗어나 부부만의 오붓한 시간을 갖고 싶지 않은지 물었다.
“큰 아이들이 방학 때 수련회를 가느라 집을 비우면 시어머니와 어린 아이들이 있어도 허전해요. 온 가족이 함께 있을 때 느껴지는 훈기가 좋아요. 물론 아이들을 키우면서 힘들 때도 있었지만, 귀하고 좋은 건 그냥 주어지지 않는 거잖아요. 그 어떤 것에 투자하는 것보다 의미 있는 것이 아이를 낳아 키우는 것입니다. 앞으로도 힘닿는 데까지 더 낳을 생각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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