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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 후 1년 6개월 만에 첫 고국 방문한 유엔 사무총장 반기문·유순택 부부

글·김명희 기자 / 사진·지호영 기자, 동아일보 사진DB파트

2008. 08. 22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부인 유순택 여사와 함께 지난 7월 초 방한했다. 4박5일 동안 한국에 머물며 서울대에서 명예 박사학위를 받고 아동 및 장애인 재활시설을 방문하는 등 바쁜 나날을 보낸 반 총장 부부와 동행하며 인간적인 면모, 성공의 비결을 취재했다.

취임 후 1년 6개월 만에 첫 고국 방문한 유엔 사무총장   반기문·유순택 부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62)과 부인 유순택 여사(62)가 지난 7월3일 한국을 찾았다. 2006년 12월 유엔 사무총장에 취임한 후 첫 고국 방문이다. 반 총장은 지난 5월 사이클론으로 대재앙에 가까울 정도의 피해를 입었음에도 국제사회의 지원을 거부하던 미얀마 군정을 설득, 구호의 빗장을 열게 하는 등 리더십을 발휘하며 세계 각국의 언론으로부터 ‘존경할 만한 지도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정부는 이러한 반 총장 부부를 국가 원수급 이상의 파격적인 예우로 맞았다.
먼저 한승수 국무총리가 경기도 성남 서울공항에 나가 반 총장 부부를 맞았다. 총리가 외빈을 공항에서 영접한 것은 10여 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한다. 여기에는 반 총장과 한 총리의 각별한 인연도 큰 몫을 했다. 서울대 외교학과 재학시절인 70년 외무고시에 합격해 주뉴델리 부영사를 시작으로 주미국대사관 참사관, 외무부장관 특보 등을 거치며 승승장구하던 반 총장도 지난 2001년 외교통상부 차관 시절 뜻하지 않은 시련을 겪었다. 실무진의 실수로 한·러 정상회담 공동성명 중 국가 미사일 방어체계(NMD) 관련 부분에서 미국의 오해를 산 것. 반 총장은 이 책임을 지고 30년간 지켜온 외교부를 떠났는데 이때 마침 제56차 유엔총회 의장을 맡고 있던 한승수 총리가 그를 비서실장으로 발탁, 유엔으로 부른 것이다. 이런 인연으로 한 총리는 반 총장의 맏딸 선용씨 주례를 맡기도 했다고.
방한 첫날인 7월3일 반기문 총장은 모교인 서울대에서 명예 외교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특유의 환한 미소를 지으며 식장에 입장한 반 총장 부부는 학생들이 5분 넘게 환호와 기립박수를 보내자 손을 흔들며 답례했다. 반 총장은 학위를 받은 후 ‘더 나은 세계를 위한 더 강한 유엔’이라는 제목으로 영어와 한국어를 번갈아 쓰며 강연을 했다.
취임 후 1년 6개월 만에 첫 고국 방문한 유엔 사무총장   반기문·유순택 부부

방한 중 기후변화포럼에 참석한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공연을 펼친 어린이들을 격려하고 있다.


반 총장의 성공 비결 중 하나가 겸손이라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 외교부에서 근무할 때 한참 어린 직원과 면담한 후 직접 문을 열어 배웅하는가 하면 고속승진을 한 게 미안해 동기와 선후배 1백여 명에게 일일이 편지를 쓰기도 했다는 그는 이날도 “여러모로 부족한 제가”라는 말로 연설을 시작했다. 반 총장은 이어 “그 누구보다도 먼 길을 돌아서 박사학위를 받게 된 것 같다”며“연구를 통해 직접 획득한 학위가 아니라 면구스럽지만 난생처음 받는 박사학위인 만큼 반납하지는 않겠다”고 말해 웃음을 이끌어 냈다.
이날 반 총장은 “지금 강연을 듣고 있는 학생들은 변화의 방향을 결정할 수 있고 또 결정해야 하는 세대”라고 정의하고 이들이 주력해야 할, 세계의 미래를 판가름할 중대한 과제 4가지를 제시했다. 기후변화와 환경파괴, 인구증가와 경제성장으로 인한 자원 부족, 인권, 초국가적인 분쟁과 테러 위협 등이 바로 그것. 반 총장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국가적·지역적·지구적 협력이 계속돼야 하며 이를 위해 학생들이 유엔과 같은 국제기구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줄 것을 당부했다. 고등학교 재학시절 처음 만나 결혼한 반 총장 부부는 슬하에 1남2녀를 두고 있는데 막내딸 현희씨 역시 유엔 산하기관인 유니세프에서 근무하고 있다.

한국 학생들에게 세계 문제와 유엔에 관심 가질 것을 당부
취임 후 1년 6개월 만에 첫 고국 방문한 유엔 사무총장   반기문·유순택 부부

은평천사원을 찾은 유순택 여사가 도자기에 방문 기념으로 글을 쓰고 학생들을 격려하고 있다.


방한 이튿날인 7월4일 유순택 여사는 아동 및 장애인 재활시설인 서울 은평천사원을 방문했다. 이날 유 여사와 동행, 한국을 방문한 소감을 묻자 그는 “오랜만에 친정에 온 것처럼 모든 것이 반갑고 행복하다”고 말했다. 유 여사는 은평천사원을 처음 방문하지만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여러 번 이곳을 찾은 적이 있는 반 총장이 여기 아이들과 찍은 사진을 지금까지 소중히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은평천사원 조규환 원장은 “이곳에 찾아온 많은 사람들 가운데 반 총장은 특히 기억에 남는다. 찾아올 때마다 아이들을 목욕시키고 직접 봉사활동을 했기 때문이다. 그런 정신이 있었기에 유엔 사무총장이 되신 게 아닌가 생각된다”고 말했다.
이날 방문에는 한승수 총리 부인 홍소자 여사, 유니세프한국위원회 친선대사인 영화배우 안성기가 동행했는데 안부를 물으며 자연스럽게 반 총장 부부의 뉴욕 생활에 관한 이야기가 오갔다. 안성기가 “유엔 사무총장의 관저는 어떠냐”고 묻자 유 여사는 “뉴욕 맨해튼에 있는 오래된 건물인데 수리를 거쳐 지난해 9월 입주했다”며 “이웃과도 친하게 지낸다”고 답했다.
“원래는 서양식 주택인데, 한국식으로 방을 꾸몄어요. 유엔이 돈이 많은 기구가 아니기 때문에 그림이나 집안 장식품들은 주로 대여를 해요. 내부 인테리어를 한국식으로 바꾸는 데는 한국 정부와 전주시의 도움을 받았고, 그림은 메트로폴리탄미술관 등에서 대여했어요. 카펫은 포르투갈 정부에서 지원을 해주었고요. 이런 식으로 세계 여러 나라와 단체에서 도움을 많이 받았는데 임기가 끝나면 모두 돌려줘야 한답니다(웃음).”
유 여사는 아이들이 악수를 청하자 일일이 손을 잡아주었다. 아이들이 불편한 몸에도 불구하고 국악 공연을 하는 모습, 비누 만드는 모습을 지켜보고 도자기 전시장을 둘러본 뒤 크게 감동한 유 여사는 도자기에 직접 ‘희망의 둥지 은평천사원’이라는 글귀를 써넣었다. 이를 본 천사원 관계자는 “지금까지 이곳을 방문한 사람 가운데 유 여사가 글씨를 두 번째로 잘 쓴 것 같다”고 말해 글씨를 가장 잘 쓴 사람이 누군지 궁금증을 자아냈는데 그는 이어서 “가장 글씨를 잘 쓴 분은 바로 반기문 총장”이라고 덧붙여 장내를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이날 유 여사는 중국·베트남·필리핀 등에서 한국으로 이주한 여성을 대상으로 가정폭력·가족갈등 문제 등을 상담해주는 이주여성 긴급지원센터를 찾아 이주여성이 겪는 어려움을 경청하고 상담원들의 노고에 고마움을 표했다.
이 외에도 반 총장은 이명박 대통령과 한승수 총리,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과 면담했으며 출국 하루 전에는 충북 음성의 고향 마을을 찾아 성묘하고 청주대에서 강연을 했다. 그는 가는 곳마다 “세계엔 우리보다 더 어려운 사람이 많고 대한민국의 도움을 기다리는 곳이 많다. 이제는 대한민국을 벗어나 세계로 눈을 돌려야 한다”고 역설했다. 한국을 찾은 4박5일 동안 5분 단위로 빠듯하게 짜인 일정을 소화하면서도 반 총장 부부는 항상 얼굴에 미소를 잃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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