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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외길 인생

퓨전 사극 ‘태왕사신기’ 눈길 끈 의상 만든 한복 디자이너 이인영

기획·김명희 기자 / 글·오진영‘자유기고가’ / 사진·지호영 기자

2007. 12. 24

화려한 캐스팅과 엄청난 스케일로 화제를 모으고 있는 퓨전 사극 ‘태왕사신기’에서 시청자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또 하나의 볼거리는 바로 의상이다. 상상력을 바탕으로 사료가 거의 없는 신화시대부터 고구려시대 의상까지 창조해낸 한복 디자이너 이인영씨를 만나 의상 제작 뒷얘기와 한복 디자이너 인생 30년에 대해 들었다.

퓨전 사극 ‘태왕사신기’ 눈길 끈 의상 만든 한복 디자이너 이인영

최근 각 방송사에서는 ‘사극 춘추전국시대’라 불릴 만큼 경쟁적으로 사극을 방영하고 있다. 사극을 시청하는 재미 가운데 놓칠 수 없는 것이 바로 ‘옷 구경’이다. 같은 시대를 배경으로 제작한 드라마라도 의상의 원단이나 색감, 디자인을 조금씩 달리 함으로써 색다른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는 것. 4백억 원을 투입해 제작한 ‘태왕사신기’의 경우, 드라마 촬영이 시작되기 전인 지난 2005년부터 일찌감치 의상 제작을 시작했다고 한다.
이 가운데 검정과 갈색을 많이 써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인상을 주는 담덕(배용준)의 의상, 난초와 꽃잎 문양으로 섬세한 이미지를 표현한 기하(문소리)의 의상 등은 30년간 한복 디자인을 해온 이인영씨(55)의 솜씨로 빚은 작품들이다. 그는 “사료가 거의 없는 신화시대와 고구려를 배경으로 만든 드라마라 더 자유롭게 상상의 나래를 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씨가 사극 의상 제작에 참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는 지난 2004년에도 대하드라마 ‘장길산’의 의상을 담당했는데 당시 극중 캐릭터와 꼭 맞는 의상을 선보인 점을 높이 평가받아 이번 ‘태왕사신기’ 제작에 참여하게 됐다고 한다.
“‘태왕사신기’는 해외 수출을 염두에 두고 기획된 작품이라 이전의 사극에서처럼 원색을 사용하는 대신 외국 사람들도 부담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파스텔 톤을 많이 썼어요. 또 사극의 무게를 살리기 위해 시중에서 보기 힘든 몇 십 년 된 원단을 이용했죠.”
이씨는 제작 초기에 겪었던 어려움도 털어놓았다. ‘태왕사신기’ 연출을 맡은 김종학 PD가 조명을 받으면 색감이 살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미 제작한 40여 벌의 의상을 폐기하고 새로 만들 것을 주문한 것.
“그냥 보기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는데 막상 조명을 받으니까 제작진이 의도했던 색감이 살아나지 않았던 모양이에요. 열흘 동안 부랴부랴 40벌을 다시 만들 때는 김 감독을 원망하기도 했는데 막상 드라마 방영이 시작돼 첫 회 방송을 보면서는 감동해서 혼자 눈물을 흘렸어요.”
이씨가 처음 한복의 매력에 빠진 것은 스물세 살에 비단 장사하는 집에 시집가면서였다고 한다.
“시아버지가 전국에 비단 납품하는 일을 하셨어요. 천 색깔이 굉장히 곱고 예뻐서 새색시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창고에 앉아 있다 보면 시부모님께서 ‘우리 새 아기 또 어디 갔나’ 하면서 찾으시곤 했죠.”
그는“그렇게 포목이 좋으면 그걸로 한 번 직접 옷을 만들어보라”는 시부모의 격려에 힘입어 동대문 운동장 앞 한복학원에 등록해 옷 만드는 법을 배웠다. 당시 서울의 최고 멋쟁이들이 옷을 해 입으러 가던 곳인 충무로 4가 양장점 골목에 ‘이인영 한복’을 처음 연 것이 지금으로부터 꼭 30년 전인 1977년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한복은 대중적으로 많이 입는 옷이 아니라 맞추러 오는 손님들도 자기가 어떤 옷을 원하는지 잘 몰랐어요. 그래서 어떤 옷을 만들면 좋을지 시부모님으로부터 조언을 많이 들었어요.”
처음에는 정성껏 옷을 만들어놓고도 손님의 마음에 들지 불안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혹시 손님이 마음에 들어하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 미리 여벌의 옷을 만들기도 했다고.
“한복은 좋은 일 있을 때 입는 옷이잖아요. 결혼식이나 잔치를 벌일 때 입는 옷이니만큼 옷 맞추러 오는 사람도 즐겁고 그 옷을 해주는 저도 기뻐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서로 얼굴 붉히는 일이 없도록 여벌의 옷을 준비했던 거죠.”

퓨전 사극 ‘태왕사신기’ 눈길 끈 의상 만든 한복 디자이너 이인영

이인영씨가 디자인한 ‘태왕사신기’ 의상들. 이씨는 지난 2005년부터 이 의상들을 준비해왔다고 한다.


옷 만드는 일이 행복하고 좋아서 작업실에서 살다 보니 30년 세월이 흘러
옷 만드는 일이 행복하고 좋아서 작업실 밖 세상일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고 살다가 어느 틈에 세월이 흘렀다고 한다. 그는 세상이 변하고 경제가 달라지는 바깥 사정도 한복을 통해서 읽었다고.
“70년대까지만 해도 사람들이 계절별로 한복을 장만했는데 80년대 지나면서 4계절 모두 ‘깨끼’ 한복으로 통일하는 분위기였어요. 그러다 생활의 여유가 생기면서 다시 한복을 계절별로 구분해 입는 분들이 늘어나고 있고요.”
그렇게 충무로에서 10년, 압구정동에서 10년을 거쳐 지금의 청담동으로 옮겨 10년이 흐르는 동안 초창기 멤버들이 지금까지 같이 일하는 것이 그가 운영하는 한복집의 큰 자랑거리라고 한다. 바느질부터 판매까지 30년 전 식구들이 그대로라는 것. 이 동반자들과 새로이 합류하게 된 디자이너들이 있으니 바로 이씨의 딸들이다. 큰딸은 사진을 전공했지만 “이처럼 아름답고 보람 있는 일이 없다”는 엄마 이씨의 권유로 일을 같이하게 됐다. 의상디자인을 전공하는 둘째 딸은 얼마 전 전국 신진 디자이너 선발대회에서 상을 받았다. 서양의상 전공이지만 작품을 보면 양장과 한복을 접목한 시도가 눈에 띈다고 한다. “전통도 중요하지만 신세대가 원하는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는 조언을 엄마에게 들려주는 딸이다.
그 밑으로 대학생인 쌍둥이 아들 둘까지 4남매는 언제 어디서든 엄마가 필요하다고 부르면 달려와서 가게 일을 거들며 자랐다고 한다. 어려서부터 가게 청소나 인테리어, 이사, 정리 등을 도왔기 때문에 4남매 모두 가게 안 상품 진열이나 색깔 배열에 따른 옷감 정리 등을 척척 해낸다고. 이처럼 아이들이 그를 따르는 이유는 엄마가 좋은 옷을 만든다는 믿음과 자부심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음식도 그렇고 세상 모든 물건이 그렇듯이 좋은 재료를 쓰고 원가가 많이 들어가야 고급 상품이 나와요. 보이지 않는 곳에도 그런 재료들을 사용했더니 이제 좀 인정을 받는 것 같고요. 옷을 사간 사람들이 ‘예쁘게 잘 입고 있다’는 전화를 해오고 새 손님을 소개시켜줄 때는 세상 어떤 부자도 부럽지 않아요.”
그래서 그는 오늘도 옷과 대화를 나눈다고 했다. 공들여 만든 옷을 걸어놓고 고운 색깔과 자태를 눈으로 어루만지고 손으로 느껴보며 “넓은 세상에 나가서 많이 뽐내고 자랑하고 다니렴” 하고 작별 인사를 건네는 순간이 그가 가장 사랑하는 시간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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