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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송화선 기자의 키워드 토크

착한 남자의 끈질긴 매력 Park Su Hong

글·송화선 기자 / 사진·조영철 기자 || ■ 장소협찬·쿡피아 쿠킹스튜디오, 알라또레

2007. 11. 23

경쟁이 치열한 연예계에서 ‘착하다’는 것은 곧 ‘개성 없고 지루하다’는 말과 동의어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박수홍은 그 ‘착함’을 무기로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사람이다. ‘웃기지 않다’는, 개그맨으로서는 치명적인 약점을 선량한 미소로 극복하며 16년째 인기 정상의 자리를 놓치지 않고 있는 그를 만났다.

착한 남자의 끈질긴 매력 Park Su Hong

박수홍(37)의 착한 미소 뒤엔 뭐가 숨어 있을까. 그를 만나러 가는 내내 머릿속을 가득 채운 건 이 한 가지 호기심이었다. 박수홍은 누가 봐도 착한 남자다. 지난 91년 개그 콘테스트를 통해 방송계에 데뷔한 뒤 16년 동안 선한 웃음과 부드러운 말투, 따뜻한 배려로 인기를 모아왔다. 180cm가 넘는 헌칠한 키에 멋진 몸매를 갖고도 ‘섹시 스타’가 아닌 ‘이웃집 총각’ 같은 이미지를 갖고 있는 건 전적으로 그 ‘착함’ 때문일 것이다.
수많은 스타가 주목받기 위해 경쟁하는 버라이어티 쇼 프로그램에서도 박수홍은 눈에 띄려 하지 않는다. 함께 진행을 맡은 MC가 화려한 언변과 재치로 좌중을 압도하는 동안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열심히 듣다가, 허리가 접힐 만큼 크게 웃을 뿐이다. 자신을 적극적으로 드러내지도, 홀로 주목받지도 못하고 착하지만 그래서 개성없이 느껴질 수 있는 자리에 머물러 있는 동안 박수홍은 자신을 감싸고 있는 그 선량함의 벽이 답답하지 않았을까.

착한 남자의 끈질긴 매력 Park Su Hong

First keyword 빙수떡 - “모든 사람이 팥빙수 속 팥이나 얼음이 되려 하면 맛있는 팥빙수가 만들어질 수 있겠어요?”

‘하하하’.
박수홍은 ‘답답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예의 ‘사람 좋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눈 꼬리가 휘어지고 얼굴 가득 미소가 번지는 웃음을 띤 채 그는 “내가 추구하는 건 빙수떡 같은 존재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빙수떡’은 팥빙수 안에 들어가는 쫄깃하고 하얀 떡이에요. 빙수떡이 들어가지 않아도 팥빙수는 팥빙수죠. 하지만 떡이 없는 빙수를 먹다 보면 시원하고 달콤한 맛 사이 어딘가에서 텅 빈 듯한 허전함을 느끼게 되지 않나요?”
박수홍이 지향하는 방송인으로서의 목표는 바로 그것이라고 한다. 팥이나 얼음처럼 절대적이지 않지만, 있음으로써 팥빙수를 더 빛나게 하는 존재. 시원함과 달콤함으로 단숨에 입을 즐겁게 하지는 못해도 씹으면 씹을수록 감칠맛을 느끼게 하는 그런 존재 말이다.
“사람들이 제게 ‘묻어 간다’고 하잖아요(웃음). 강호동씨, 박경림씨, 이영자씨 등과 함께 방송하면서 좋게 얘기하면 그분들을 빛나게 한다는 평가를 받았고, 나쁘게는 ‘박수홍은 도대체 뭐하는 거냐’는 말을 들었어요. 그런데 저는 세상 모든 사람이 빛날 수는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말하는 사람이 있으면 들어주는 사람이 있어야 하는 것처럼, 누군가 빛나려면 그걸 받쳐주는 사람이 필요하죠. 저까지 빛나려 하면 방송이 어떻게 되겠어요(웃음).”
그래서 박수홍은 ‘2인자’가 아니다. 1인자 아래서 호시탐탐 틈을 노리며 자신에게 스포트라이트가 비치기를 기다리는 대신, 아예 그들과 다른 길을 걷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처음부터 그의 목표가 ‘빙수떡’이었던 건 아니다. 그는 “나 역시 팥이고 얼음이고 싶던 시절이 있었다”고 말한다. 특히 대학 시절 처음 응시한 개그 콘테스트에 합격한 뒤 참신한 신인 개그맨으로 화제를 모으며 승승장구했던 ‘어린 시절’, 그는 세상을 다 가진 듯 자신만만했다고 한다.
“아주 어릴 때부터 연예인 되는 게 꿈이었어요. 소풍이나 수학여행 가면 나서서 뭔가 하고 싶어했고요. 사실 그때도 잘하지는 못했던 거 같네요. 잘하는 친구들이랑 친하게 지냈죠. 그러고 보니 그때부터 묻어가기 시작했군요(웃음).”

고등학교 때는 가수가 되고 싶어 피아노와 기타를 배웠고, 매일 날계란을 먹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어느 날 문득 자신에게 재능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고. 대학 진학 뒤엔 모델이 될까 생각한 적도 있었다. 한번 알아보기나 하자는 심정으로 모델학원에 갔는데 관계자가 그를 보자마자 “오~ 이럴 수가, 이런 몸이~” 하며 감격스러워했다고 한다. “완전히 모델 몸이니 당장 등록하라. 한국 최고의 모델로 키워주겠다”는 말도 들었다.
“제가 귀가 얇아요. 그 자리에서 바로 장래희망을 모델로 정했죠(웃음). 그런데 보름정도 다녔을 무렵, 낮에 집에 있는데 같이 등록한 동기 모델 지망생한테 전화가 걸려온 거예요. 학원이 없어졌다고요(웃음). 허겁지겁 달려가 보니 그새 집기들이 싹 사라졌더군요. 회비만 가로채고 사라지는 유령회사였던 거죠.”
파란만장한 과정을 거쳐 그가 다시 찾은 ‘연예인’의 길이 바로 개그맨이 되는 것이었다. 지난 91년 KBS 대학 개그 콘테스트에서 동상을 받으며 데뷔한 그는 신인 시절 김국진·김용만·김수용 등과 이른바 ‘감자골 4인방’으로 불리며 주목받았고, 잘생긴 외모와 단정한 매너로 큰 인기를 모았다.
“그런데 데뷔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참 열심히 방송활동을 해야 할 시기에 현역으로 군대를 가게 됐어요. 연예사병이 되거나 문선대로 빠지지 못하고, 일반 부대에 배치됐죠. 거기서 정말 힘들게 3년을 보내며 많은 게 변한 거 같아요. 그때만 해도 어린 나이에 얼굴이 알려지고, 많은 사람이 알아봐주니 제가 잘난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막상 일반인과 똑같은 일이 주어지니 뭐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더라고요. 소각장에서 실수로 부탄가스통을 터뜨려 전 부대에 비상이 걸리게 하지 않나, 남들 다 가로로 페인트칠 하는데 혼자 세로로 칠해 색을 아예 바꾸게 만들지 않나…. 워낙 다채롭게 사고를 쳐서 제대하고도 한동안 부대 간부들이 후임병들에게 제 얘기를 했다고 들었어요.”
박수홍은 방송에서 군대 얘기를 거의 하지 않는다. 가볍게 웃어넘기기엔 군대 생활의 경험이 그에게 미친 영향이 너무 크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는 그곳에서 철저히 깨졌고, ‘살아남기 위해’ 적응하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구별하고 겸손하게 받아들이는 법을 배웠다. 이후 방송에 복귀했을 때 그가 갖게 된 삶의 태도가 바로 ‘빙수떡’이다.
“제가 시청자를 크게 웃기고, 카리스마를 발휘해 이끌어갈 만한 사람인가 냉정히 생각했어요. 답은 ‘아니다’였죠. 제가 좋아하는 건 누군가를 리드하는 게 아니라 함께 가는 거더라고요. 그래서 내 것이 아닌 것은 욕심내지 말자고 마음먹었어요. 내가 나서서 튀기보다는 크게 듣고 부드럽게 말하는 MC가 되자고 생각했죠.”

Second keyword 오래달리기 - “단거리에는 약해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달리는 건 자신 있어요”



그때 이후 박수홍의 트레이드 마크는 선량한 미소가 됐다. 자신보다 다른 사람을 먼저 앞세우고, 많이 맞장구쳐주며 프로그램의 중심을 잡는 것을 자신의 몫으로 삼은 것이다. 그래서일까. 박수홍에게는 약하고 소심할 것 같은 이미지가 따라다닌다. 누가 뭐라든 일단 동조하는 그에게서 도무지 근성이 느껴지지 않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의외로 박수홍은 자신의 특기가 ‘오래달리기’라고 했다.
“초등학교 때 유일하게 1등한 게 오래 달리기였어요. 한 번 시작하면 토할 때까지 뛰었거든요(웃음). 가장 빨리 뛰지는 못해도 제일 오래 뛸 수는 있다는 게 제 자랑거리였죠.”
박수홍은 “나를 아는 사람들은 다 놀랍게 끈질긴 놈이라고 한다”고도 했다.

착한 남자의 끈질긴 매력 Park Su Hong

그의 이런 면은 지난 2005년 바쁜 방송 활동 중에도 석 달 동안 매일 새벽 두 시간씩 요리 학원을 다닌 끝에 한식 조리사 자격증을 취득한 것을 통해 드러난 적이 있다. 박수홍은 “해외 촬영을 갈 때 비행기 안에서조차 필기시험 수험서를 봤을 정도로 열심히 준비하며 한식 요리 56가지를 모두 마스터한 끝에 시험에 붙었다”며 “자격증을 받았을 때는 개그맨 시험에 붙었을 때만큼이나 기뻤다”고 말했다.
박수홍은 이처럼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는 모든 것을 바치는 스타일이다. 소심해 보이는 겉모습과 달리 사랑에 관해서도 정열적이라고 한다. 2년 전 쯤, 4년간 만나던 여자친구와 헤어졌다는 그는 “한 때는 숨이 멎을 것처럼 사랑했고, 헤어진 뒤 많이 힘이 들었지만 이제는 조금씩 정리가 돼가는 것 같다”며 “지난해 웨딩 사업을 시작한 것도 실은 나 자신이 행복한 결혼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털어놓았다.
“웨딩 사업을 구상한 건 3~4년 전부터예요. 그때 저는 한창 행복한 연애 중이었고, 결혼에 대해 구체적으로 상상하곤 했거든요. 제 인생에서 가장 행복할 순간을 어떻게 만들면 좋을까 생각하다 자연스럽게 모든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어줄 회사를 만들자고 마음먹은 거예요. 그런데 사업이 본격적으로 진행될 무렵 제 사랑이 끝나버렸어요.”
두 사람이 헤어진 이유에 대해 그는 그저 “인연이 아니었기 때문”이라고만 했다. “최선을 다해 사랑했지만,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박수홍은 그 사랑이 끝난 뒤 난생 처음 담배를 배웠고, 2년이 다 돼가는 지금까지도 끊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제는 다시 잘 살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만큼 마음이 정리됐죠. 요새는 지난 사랑 덕분에 웨딩 컨설팅 사업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할 수 있게 된 것을 감사할 수 있는 여유도 생겼고요. 이 사업을 하면서 방송을 할 때와는 또 다른 행복을 느끼고 있거든요.”
박수홍은 자신의 웨딩업체를 통해 강호동, 박경림 등 절친한 지인들의 결혼식 진행을 도왔고, 일반인들의 웨딩 컨설팅도 꾸준히 해주고 있다. 그 과정에서 그는 결혼하는 커플들의 행복한 미소를 보며 방송을 할 때와는 또 다른,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큰 보람과 행복을 얻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최근에는 결혼뿐 아니라 돌잔치, 브라이덜 샤워, 베이비 샤워 등 다양한 가족 파티까지 진행할 수 있는 외식업체를 열고 사업 영역을 확장하기도 했다. 그는 요즘 MBC ‘해피 타임’, KBS 라디오 ‘두근두근 11시’, tvN ‘박수홍의 썸씽 뉴’ 등 한꺼번에 4개의 프로그램을 진행하느라 바쁘지만, 스케줄이 없을 때는 반드시 사무실을 지키며 사업에 열정을 쏟고 있다고 한다.
“저는 10년 후에도 지금처럼 살고 있을 것 같아요. 방송 활동과 사업을 열심히 하고 있겠죠. 단 한 가지 지금과 달라졌으면 하는 건 그때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면 좋겠다는 거예요. 제 곁에 저를 다 이해해주는, 아니 굳이 이해하려 노력하지 않아도 서로에 대해 속속들이 아는 진짜 소울메이트가 있으면 좋겠어요.”
박수홍이 지난 사랑으로 힘들어할 때 그의 아버지는 “평생 함께할 사람은 오래 지켜본 뒤 결정해야 한다. 기쁨, 슬픔, 편안함, 힘겨움 같은 인생의 4계절을 함께 보내야 비로소 한 사람에 대해 제대로 알게 된다”고 조언했다고 한다. 박수홍이 지금 기다리고 있는 소울메이트가 바로 그런 사람이다.

Third keyword 피터팬 - “모든 사람에게 삶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을 선물하고 싶어요”
착한 남자의 끈질긴 매력 Park Su Hong

오랜 얘기가 이어지는 동안 그는 변함없이 ‘착했다’. 반듯하고 단정했으며, 실연에조차 감사하고 있었다. 그에게는 단 한 번도 방황하거나 사고치거나 나쁜 짓을 한 경험이 없는 걸까. 그는 진지하게 “실은 요즘이 좀 그런 것 같다”고 답했다.
“사실 어머니가 걱정을 많이 하세요. 예전에는 술 담배를 전혀 안했는데 요즘 두 가지 다 하거든요. 담배는 내년부터 꼭 끊겠다고 약속했지만, 술은 사업 때문에 일주일에 한두 번씩 마시게 돼요. 그건 어쩔 수가 없죠.”
‘나쁜 짓’을 한 것에 대해 들려달라는 질문에 ‘술과 담배를 한다’는 사실을 고백하는 이 서른일곱 살의 사내는, 마치 투명한 유리막에 둘러싸여 살아온 것처럼 험한 세상과 격리돼 있는 듯 보였다. 그는 지금껏 단 한 번도 가출을 하거나, 술을 많이 먹고 필름이 끊어진 적이 없고, 심지어 누군가와 주먹다짐을 한 일조차 없다고 했다. 박수홍이 간신히 기억해 낸 단 한 번의 싸움은 중학교 3학년 때 단짝 친구가 자신을 ‘바보’라고 놀리는 것에 격분해 주먹을 날린 것. 그 일 역시 친구가 깨끗이 사과하면서 짧은 해프닝으로 끝났다고 한다. 그가 ‘빙수떡’의 여유를 갖고 꾸준히 ‘오래 달리기’를 할 수 있었던 건 어쩌면 이처럼 평온하고 따뜻한 삶 속에서 마음껏 행복하게 살아왔기 때문인지 모른다.
“제가 돌아봐도 큰 아픔이나 고비가 없었던 것 같아요. 어릴 때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해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적은 있지만, 그때도 저는 별다른 고통 없이 넘어갔거든요. 작은 아버지 두 분이 다 목사님이실 정도로 집안에 기독교적인 분위기가 강해서, 힘든 일이 생기면 기도하며 마음의 평화를 찾아요. 그 덕분인지 지금까지 특별히 방황하거나 일탈한 적이 없죠.”
그래서 그는 세상 모든 사람이 그렇게 행복한 세상을 꿈꾼다. 대한적십자사 등 각종 봉사단체의 홍보대사를 맡아 봉사활동에 앞장서고, 최근엔 방송 퀴즈프로그램에 출연해 받은 1억원의 상금을 사회단체에 기부하기도 했다. 지난 2005년 박수홍이 불우이웃돕기 자선 앨범에 참여해 부른 ‘선한 세상’이라는 노래는 ‘우리는 할 수 있죠. 할 수 있을 거란 말을 해봐요. 선한 세상을 함께 만들어요’라는 가사를 담고 있다. 그는 이 노래에 담긴 진심의 힘을 믿는다고 했다. 모두 함께 착한 마음으로 노력하면, 아무리 오랜 시간이 걸릴지라도 언젠가 꼭 좋은 세상이 올 것이라고 믿는다는 것이다.
“예전에 누군가 제게 피터팬 같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어요.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어린 아이의 세계에 사는 피터팬처럼 세상을 너무 모른다고요(웃음). 정말 그런지도 모르죠. 하지만 저는 앞으로도 이렇게 살고 싶어요. 제 주위의 좋은 사람들과 함께 좋은 세상을 꿈꾸면서, 그리고 언젠가는 방송과 사업을 통해 세상 사람들에게 생애 가장 행복한 순간을 선물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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