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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가슴 뭉클한 사연

소아류머티스관절염·피부경화증과 싸우면서도 희망 잃지 않는 임순화·조성신 모자

기획·송화선 기자 / 글·이자화‘자유기고가’ / 사진·문형일 기자

2007. 10. 23

어릴 때부터 갖가지 질병에 시달리던 조성신군은 초등학교 4학년 때 소아류머티스관절염 진단을 받았다. 게다가 피부경화증까지 찾아와 온몸의 피부가 딱딱하게 굳어가고 있지만 조군은 늘 활짝 웃는다. 한시도 그의 곁을 떠나지 않으며 정성을 다해 간호하는 엄마 임순화씨 덕분이다. 임순화·조성신 모자의 감동 사연.

소아류머티스관절염·피부경화증과 싸우면서도 희망 잃지 않는 임순화·조성신 모자

전북 전주시 완산구 평화동 임순화씨(41) 자택을 찾은 날은 유난히 굵은 빗줄기가 쏟아져내렸다. 하지만 기자를 맞으며 활짝 웃는 조성신군(15)을 본 순간, 오랜 차량 이동의 피로도, 날씨에 대한 짜증도 가시는 듯했다.
성신군은 소아류머티스관절염을 앓고 있다. 소아류머티스관절염은 주로 노인들에게 발병하는 것으로 알려진 류머티스 관절염 증상이 만 15세 이하 어린이에게 나타나는 질병. 관절 부위를 오래 사용해 생기는 퇴행성 관절염과 달리 면역 조절기능의 이상으로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병에 걸리면 우리 몸의 관절부위 등 각종 조직에 염증이 생기며 뻣뻣하게 굳는다. 하지만 아직 정확한 원인과 치료방법은 밝혀지지 않은 상태. 성신군 역시 언제, 왜 이 병이 생겼는지 알지 못한다고 한다.
“성신이를 가졌을 때 임신성 당뇨와 고혈압으로 많이 고생했어요. 임신 6개월쯤 됐을 때 담당 의사가 아이가 기형아일 가능성이 높고, 제 목숨까지 위태로울 수 있다며 중절수술을 권하더군요. 하지만 그렇게 많이 자란 생명을 포기할 수 없더라고요. 그래서 고집을 부려 성신이를 낳았어요.”
다행히 성신군은 건강하게 태어나 부모를 기쁘게 했다고 한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은 뒤부터 갖가지 질병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소아천식과 뇌수막염, 뇌수종, 빈혈, 폐렴 등이 차례로 그를 괴롭혔고, 채 걸음마도 하기 전부터 입원과 퇴원이 반복됐다.
“늘 어딘가 아팠어요. 세 살 무렵엔 한쪽 눈의 시력이 너무 나빠 방치하면 시력을 잃을지 모른다는 진단을 받았고, 네 살 때는 목에 생긴 종양 제거수술을 했죠. 일곱 살엔 천식으로 인한 호흡 곤란이 나아지지 않아 산소호흡기까지 단 적이 있고요.”
임씨는 성신군이 다섯 살 때 병원에 입원했다가 옆 침대에 있는 아이가 가만히 누워 있지 않고 자꾸 움직이자 ‘너 그러다가 링거 바늘 빠지면 다시 꽂을 때 많이 아파. 가만히 있어’ 하고 충고하던 모습이 아직도 선명하다고 말했다. 성신군은 담담하게 말했지만 어린 나이에 이미 너무나 병원 생활에 익숙해져버린 아이의 모습을 보며 임씨는 혼자 많이 울었다고 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모든 잔병들이 소아류머티스관절염의 전조 증상이었던 것 같아요. 이 병은 외부의 나쁜 균을 막아야 하는 인체의 면역체계가 역으로 자신의 신체조직을 공격하면서 생기는 자가면역 질환이거든요. 만약 아이가 어릴 때 이유 없이 자주 병을 앓으면 혹시 다른 큰 병이 있는 건 아닌지 관심을 갖고 지켜봐야 해요. 성신이가 어릴 때 같이 병원에 자주 드나들던 또래 아이가 한 명 더 있었는데 나중에 그 아이는 백혈병 진단을 받더군요.”

소아류머티스관절염이 무엇인지도 몰랐던 탓에 치료 늦어져
전국적으로 소아류머티스관절염 환자는 2천 명이 넘는다고 한다. 하지만 아직 이런 질병이 있다는 사실조차 잘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에 어린 시절 성신군은 자신의 아픔을 이해받지 못한 채 남몰래 고통에 시달려야 했다.
“자주 병원에 드나드는 성신이에게 다양한 경험의 기회를 주고 싶어서 다섯 살 때부터 피아노를 가르쳤어요. 그런데 2001년, 성신이가 초등학교 3학년에 올라가더니 갑자기 ‘손가락이 아파서 피아노를 못 치겠다’고 하는 거예요. 저는 학원에 가기 싫어 꾀병을 부리는 거라고 생각하고 다그쳐서 억지로 보내곤 했죠. 언제부턴가 손이 붓고 주먹 쥐는 게 힘들다고 말하는 것을 듣고도 ‘살이 쪄서 그런가보다’ 하며 가볍게 넘겼어요.”
임씨가 성신군에게 이상이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처음 한 건 어느 날 아이가 태권도장에서 “주먹을 제대로 쥐지 못한다”는 이유로 체벌을 받고 돌아온 뒤부터였다고 한다. 매를 맞고 돌아온 아이를 보고 놀라 도장에 달려갔더니 관장은 “겨루기를 할 때 주먹을 꽉 쥐지 않으면 다칠 수 있는데 성신이가 자꾸 주먹이 풀려 주의를 준 것”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소아류머티스관절염·피부경화증과 싸우면서도 희망 잃지 않는 임순화·조성신 모자

“집에 돌아와 아이의 손을 자세히 보니 손가락 마디가 안쪽으로 굽어 있고 딱딱히 굳었더라고요. 마치 20년 동안 중풍으로 고생하다 돌아가신 저희 어머니 손 같았어요.”
놀란 마음에 아이를 데리고 정형외과로 달려갔지만, 의사는 성장통일 거라며 “별 이상 없으니 물리치료 몇 번 받으면 좋아질 것”이라고 했다고 한다. 하지만 증세는 점점 악화됐다. 손가락이 뻣뻣해져 밥을 먹다 수저를 놓치기 일쑤였고, 안으로 굽어들어 나중엔 손뼉조차 칠 수 없게 됐다고.
“그러던 어느 날 물리치료를 다녀오는데 성신이가 병원 벽에 걸린 사진을 가리키며 ‘엄마, 나 저거 같아’라고 하는 거예요. 손가락이 온통 굽어져 있는 류머티스 환자의 손 사진이었죠. 정말 우리 성신이 손이 저것과 비슷한 게 아닌가 싶어 깜짝 놀랐지만, 그때만 해도 어린아이에게 류머티스가 생길 수 있다는 건 상상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아닐 거라고 아이에게 말했어요.”
성신군이 소아류머티스관절염 진단을 받은 건 그로부터 두 달쯤 뒤인 초등학교 4학년 봄 무렵이었다고 한다. 아버지 조구형씨(46)가 우연히 조군의 다리를 만져보다가 피부가 단단하게 굳은 듯 느껴지는 게 이상해 전주 시내 종합병원을 찾은 것이다. MRI 검사, 조직검사 등 각종 검사를 받은 뒤 성신군은 소아류머티스관절염이 진행돼 피부경화증까지 앓고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소아류머티스관절염은 피부경화뿐 아니라 폐질환, 혈관염, 빈혈, 쇼그린(침샘·눈물샘 등이 마르는 증상) 등으로도 진행될 수 있는 상당히 위험한 병이라고 하더군요. 하지만 아직 정확한 치료법은 없다고요. 그저 꾸준히 물리치료를 받으며 약을 복용하는 수밖에 없다는 설명을 듣는데 눈물이 쏟아졌어요. 도대체 내가 무슨 죄를 지어 아이가 이런 고통을 당하나 싶은 마음에 하늘이 원망스러웠죠.”

“독한 약으로 인한 합병증과 경제적 어려움으로 힘들지만 희망이 있기에 포기하지 않아요”
성신군은 피부경화증도 이미 상당히 진행된 상태였다고 한다. 허리와 등, 배, 사타구니 쪽 피부가 듬성듬성 굳어 있었는데, 그 부위 피부는 나무껍질처럼 딱딱해 감각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고. 이때부터 본격적인 투병생활이 시작됐다. 진단을 받은 뒤부터 피부경화증 부위가 점점 넓어지면서 성신군은 평발이 돼 걷는 데 불편을 느끼기 시작했고, 관절 이상으로 두 다리의 길이도 많이 차이가 나게 됐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성신군을 고통스럽게 한 건 참기 힘든 통증. 그는 “관절 곳곳에서 마치 톱니가 있는 날카로운 칼로 뼈를 긁는 것 같은 통증이 느껴졌다”며 “특히 아침에 일어나거나 밤에 잠들 무렵에는 누군가의 손이 닿기만 해도 참을 수 없을 만큼 아팠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관절을 자극하는 물리치료를 받아야 했다. 그것이 소아류머티스관절염으로 인한 마비를 막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었기 때문이라고. 성신군은 하루에 수면제를 서너 알씩 먹고서야 잠을 이룰 수 있을 만큼 지독한 고통에 시달리면서도 6개월 동안 물리치료를 받았고, 항류머티스 치료제이면서 동시에 항암제로도 쓰이는 MTX 제제도 처방받아 복용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다른 환자로부터 서울의 한 병원이 류머티스 치료를 잘한다는 소개를 받았어요. 2003년부터 그리로 옮겨 치료를 받기 시작했죠. 한 달에 한 번씩 서울에 가서 진료받고 약을 사서 돌아온 거예요. 물리치료는 전주에서 계속 받고요. 그전엔 피부경화증 부분을 거의 치료하지 못했는데, 서울에서 그 치료도 병행하면서 피부도 많이 부드러워졌죠. 또 다른 변화는 날씬해진 거예요. 그전까지 또래에 비해 상당히 통통한 편이었는데 알고 보니 살이 찐 게 아니라 류머티스관절염 때문에 몸이 부은 거였더군요.”
그러나 몸이 좋아지고 있다는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2005년 겨울, 독한 약을 오랫동안 먹어야 했던 성신군이 위궤양에 걸리며 치료가 벽에 부딪힌 것이다. 성신군은 “그전에는 꾸준히 치료하면 좋아질 거라는 희망이 있었는데 몸이 그걸 견디지 못한다는 걸 알게 되자 말할 수 없이 실망스러웠다”며 “아프기 시작한 뒤 그때만큼 힘들었던 적이 없다”고 고백했다.
“어느 날 학교에 갔는데 자꾸 배가 고프더라고요. 그래서 간식을 엄청나게 사먹었어요. 아마 다른 날보다 세 배는 더 먹었을 거예요. 집에 돌아와서도 밥을 두 그릇이나 먹었죠. 그런데도 배가 고프더라고요. ‘이상하다’ 생각하며 잠이 들었는데 갑자기 누가 몸을 누르는 것처럼 아프기 시작하더니 구토가 시작되더군요. 밤새 먹은 것을 다 쏟아내고 나중엔 위액까지 토했어요. 혈변도 보고요. 검사 결과 위궤양이었죠.”

소아류머티스관절염·피부경화증과 싸우면서도 희망 잃지 않는 임순화·조성신 모자

오랜 투병생활에도 웃음을 잃지 않는 조성신군과 어머니 임순화씨.


임씨는 의사와 상담한 끝에 6개월 동안 관절염 치료제를 복용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위궤양 때문에 밥도 먹지 못하는 상태에서 류머티스를 치료하는 건 무리라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라고. 약을 먹지 않는 동안에도 계속 물리치료와 피부과 치료는 받았지만 그 사이 소아류머티스관절염은 악화되고 말았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다소 개선된 듯했던 통증과 피부경화가 다시 시작됐다고 한다.
“그 후 성신이는 약물 치료와 더불어 주사 요법도 받게 됐어요. 전화카드 크기 정도 되는 피부 면적에 약 50대의 스테로이드 주사를 촘촘히 놓는 치료법인데, 그냥 주사를 놓는 게 아니라 주사 바늘로 피부를 살짝 들어올린 뒤 그 안쪽으로 약을 넣어요.”
그 주사가 얼마나 아픈지 병원에 갈 때마다 성신군은 “이 주사를 맞느니 차라리 죽고 싶다”고 말한다고 한다. 간신히 달래 치료실에 들어가도 주사 바늘을 찌르는 순간 고통에 몸부림치기 때문에 주사를 놓는 의사 외에 네 명이 더 들어가 팔다리를 꼭 붙든 뒤 치료를 시작한다고.
“그 모습을 볼 때면 차라리 제가 대신 주사를 맞고 싶다는 생각이 들죠. 성신이 앞에서는 티도 못 내고 혼자 남몰래 많이 울어요. 언제 낫는다는 기약도 없이 고통스런 치료를 참아내는 아이를 보는 게 정말 힘이 들죠.”
하지만 그 치료를 받은 뒤부터 다시 상태가 호전돼 치료를 포기할 수도 없다고 한다.
“계속 치료를 받은 덕분에 몸이 조금씩 다시 좋아지고 있어요. 몇 달 전에는 굽어 있던 손가락이 펴져서 박수를 칠 수 있게 됐고, 요새는 필기도 해요(웃음). 아직 완전히 자유로운 건 아니지만, 숟가락도 못 쥐던 때와 비교하면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활짝 웃으며 얘기하는 성신군의 얼굴에선 마음의 상처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임씨는 “사춘기가 시작되면서 성신이가 밝고 명랑하던 성격을 잃고 가끔씩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는 등 심리상태가 불안정해져 걱정”이라며 “심리검사 결과 경미하지만 우울증 증세가 있다는 진단이 나와 요즘 심리치료도 병행하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겉모습이 좀 다르고 늘 아프니까 학교에서 친구들이 많이 놀렸나봐요. 자기도 속상했는지 한번은 손가락 모양이 이상하다며 놀리는 아이를 불러다가 싸움을 했더라고요. 물론 성신이가 흠씬 두들겨 맞았죠. 퉁퉁 부어서 들어오는 모습을 보고 얼마나 속상했는지 몰라요. 그래도 학교 생활만큼은 절대 포기하게 하고 싶지 않아서, 입원해 있을 때를 빼고는 무슨 일이 있어도 학교에 가게 하죠.”
이런 임씨의 노력 덕에 성신군은 중학교 3학년이 된 지금까지 보통 아이들과 똑같이 학교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한다. 가끔 짓궂은 친구들과의 갈등 때문에 힘들 때도 있지만 그 외엔 별다른 어려움 없이 잘 지낸다고. 요즘엔 오는 11월에 있을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을 준비하느라 한창 공부 중이다.
성신군의 장래 희망은 영화감독. 최근 영화 ‘디 워’로 화제를 모은 심형래 감독의 성공 스토리를 보며 “나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었다고 한다.
“또 다른 꿈은 요리사예요. 제가 음식을 만들면 다 맛있다고 칭찬해주는데, 그때 정말 기분이 좋거든요. 하지만 엄마가 아직 불과 칼을 다루는 건 위험하다고 하셔서 자주 못하고 있죠. 언젠가 류머티스가 완치되면 꼭 요리에 도전하고 싶어요(웃음).”
혼자 있을 때면 클래시컬 탱고 듀오 ‘오리엔탱고’의 ‘슬픈 열정’을 즐겨 듣는다는 성신군은 피아노와 바이올린 선율이 어우러지는 이 음악에 반해 다시 피아노를 치고 싶은 욕심도 생겼다고 말했다.
“어릴 때 피아노를 그만둔 뒤로 치지 못하고 있는데 병이 나으면 꼭 피아노도 다시 배울 거예요. 친구들과 함께 축구·농구를 하며 땀을 흠뻑 흘리고 싶은 마음도 있고요(웃음).”
이렇게 꿈과 욕심이 많은 아들이기에 임씨는 결코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임씨는 “소아류머티스관절염이 난치병이라고는 하지만, 본인의 의지만 있으면 얼마든지 이겨낼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지금처럼 계속 좋아져서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완치되기만을 꿈꾸고 있다”고 말했다.
임씨는 지난 7월 동아일보사와 인제대 백병원이 공동 주최한 투병문학상 공모에 두 사람이 함께 겪은 이 투병기록을 써내 최우수상을 받았다. “아픈 이야기라 쓰는 동안 힘들었지만 막상 다 털어놓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홀가분하다”는 임씨는 요즘 전문적인 글공부를 위해 전북대 평생교육원에 다니고 있다고 한다.
“언젠가 성신이가 완치되면 이 모든 이야기를 드라마로 쓰고 싶어요. 그때는 지금처럼 눈물짓지 않고 활짝 웃으며 얘기할 수 있겠죠. 그날이 올 때까지 희망을 버리지 않고 최선을 다해 병과 싸워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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