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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같은 길 걸어요~

아버지는 원사, 딸은 대위로 한 부대 근무하는 주성중·주혜련 부녀

기획·송화선 기자 / 글·안소희‘자유기고가’ / 사진·조세일‘프리랜서’

2007. 09. 22

아버지와 딸이 나란히 직업군인의 길을 걸으며 한 부대에 근무 중인 가족이 있어 화제다. 해군 군수사령부 주성중 원사와 주혜련 대위가 그 주인공. 집에서는 다정한 부녀지간이지만 군에서 만나면 ‘군기 확실한’ 전우지간으로 지낸다는 두 사람을 만났다.

아버지는 원사, 딸은 대위로 한 부대 근무하는 주성중·주혜련 부녀

대한민국 여자들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얘기는 군대 얘기, 축구 얘기, 군대에서 축구한 얘기라는 우스개가 있다. 그런데 매일 아버지와 군대 얘기를 나누는 딸이 있다. 해군 군수사령부 정비관리부 주혜련 대위(27). 그의 말 상대가 돼주는 아버지는 같은 부대에서 근무 중인 주성중 원사(51)다.
“원래는 저만 여기 있고 딸은 다른 부대에 있었어요. 그런데 최근 이쪽으로 전입해 함께 근무하게 됐죠. 사람들은 딸이 상급자로 와서 힘들지 않느냐고 묻는데 그런 건 전혀 없습니다. 군대는 계급사회 아닙니까. 위계질서가 무너지면 모든 게 무너지죠. 집에서는 딸이라도 군에선 엄연한 상관이기 때문에 철저하게 상명하복의 자세로 대합니다.”
부대 안에서 딸을 만나면 반드시 경례를 붙인다는 주 원사는 “군대에선 군기 확실한 전우로 지내고, 집에 돌아가면 다정한 부녀로 돌아가는 게 우리에겐 전혀 어색하지 않은 일”이라며 활짝 웃었다. 그도 그럴 것이 주 원사의 가족은 직업군인이 네 명이나 있는 ‘군인가족’이다. 주 원사의 아들이자 주 대위의 남동생인 주수형씨(20)는 해병대 2사단에서 하사로 근무 중이고, 주 대위의 남편은 공군 중위로 공군 교육사령부 정보통신학교에서 근무하고 있다고 한다. 이야기를 듣는 동안 문득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한 장면이 떠오르며 이들 가정에 군대처럼 엄격한 가풍이 있는 건 아닌지 궁금해졌다.
“전혀 아니에요. 오히려 보통 가정보다 훨씬 자유로울걸요. 전 어린 시절부터 ‘나중에 어른이 되면 꼭 친구 같은 아빠가 되리라’고 결심했거든요(웃음).”
주 원사는 자신이 어린 시절 경찰로 근무했던 선친에 대한 기억을 풀어놓았다. 굉장히 엄한 편이었던 그의 아버지는 순찰을 나갈 때면 꼭 주 원사를 불러 도저히 다 할 수 없을 만큼의 숙제를 내주고 ‘다녀올 때까지 다 해두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면 저는 아버지가 오실 때까지 손바닥에 땀이 나도록 숙제를 했어요. 하지만 거의 매번 다 마치지 못해 크게 혼이 났죠. 그때 어린 마음에도 속으로 ‘난 나중에 아빠가 되면 절대 아이들에게 엄하게 대하지 않을 거야’라고 결심하던 게 생각나요(웃음).”
이야기를 듣고 있던 주 대위도 옆에서 “아빠는 저녁 메뉴를 정할 때도 가족회의에 부쳐 다수결로 결정할 만큼 친구 같고 다정했기 때문에 어린 시절 우리집은 늘 시끌벅적한 잔칫집 같았다”고 말했다.

“아버지 앞에 부끄럽지 않은 딸 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늘 다짐해
아버지는 원사, 딸은 대위로 한 부대 근무하는 주성중·주혜련 부녀

부녀 해군으로 한 부대에 근무하는 주성중 원사와 주혜련 대위.아버지 주성중 원사와 딸 주혜련 대위의계급장(작은사진 위부터).


주 대위가 군인의 길을 선택한 것도 화목한 가정에서 싹트고 자라난 아버지에 대한 존경심 때문이었다고 한다.
“부모님은 제가 교사가 되길 바라셨어요. 하지만 그건 아무리 생각해도 제 적성이 아니더라고요. 대학에 입학할 때는 컴퓨터 프로그래머를 꿈꾸며 컴퓨터공학과에 진학했지만 졸업할 무렵이 되니 군인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특히 어린 시절부터 한결같이 제게 훌륭한 군인의 모습을 보여주신 아빠처럼 멋진 해군이 되고 싶었어요. 그래서 당시 남자친구였던 지금의 남편과 함께 학사장교 시험을 준비했고 운 좋게 둘 다 합격해 임관하게 됐죠.”
지난 2003년 동국대학교를 졸업한 주 대위는 당시 전국에서 단 10명만 뽑는 학사장교 시험에 합격해 해군 사관후보생 98기로 해군에 입대했다고 한다. 대학시절 전공을 살려 정보통신장교로 임관했고, 이후 두 아들을 낳고 대위로 진급한 뒤 지난 7월 초 해군 군수사령부 정비관리부에 전입해 전자규격 담당으로 근무하고 있다고.
“학사장교 시험은 경쟁률이 꽤 높아요. 특히 정보통신과는 전국에서 딱 한 명만 뽑는 자리라 경쟁이 정말 치열하죠. 그런데 딸이 합격했다는 소식을 들으니 정말 기쁘더군요. 해군은 남녀차별이 없고 근무환경이 좋아서 제 동료 가운데도 내심 딸이 해군이 되길 바라는 사람이 많습니다.”
주 원사는 “자식 자랑하는 것 같아 쑥스럽지만 어릴 때부터 자신의 일을 척척 알아서 해내던 딸이 멋진 장교가 된 게 아버지로서 참 대견하고 고맙다”고 말을 이었다.
주 대위 역시 군에 들어와 제3자로부터 아버지에 대해 “성실하고 일 잘하는 사람”이라는 평을 들을 때면 자랑스런 마음이 든다고 한다. 그런 말이 들려올 때마다 가슴이 찡해진다는 주 대위는 “늘 아빠 앞에 부끄럽지 않은 딸이 되기 위해 더 노력하겠다고 다짐한다”고 털어놓았다.
주 대위는 군수사령부로 전입한 뒤부터 친정에 살며 매일 아침저녁 아버지와 함께 출퇴근한다고 한다. 처음엔 일과를 마친 뒤 두 사람이 근무복 차림으로 같이 나가는 모습을 보며 의아해하던 사람들은 사정을 알고 난 뒤 하나같이 부러워한다고. 아이들은 어머니가 돌봐주고, 근무지가 멀리 떨어진 남편과는 주말 부부로 지낸다고 한다.
“집에 가면 아빠와 군 생활 얘기를 많이 해요. 근무하면서 즐거웠던 일, 힘들었던 일에 대해 얘기하다 보면 어느새 마음이 편안해지죠. 아빠로부터 오랜 군 생활에서 축적된 경험과 노하우를 배우는 것도 제겐 큰 도움이 되고요. 특히 아빠가 평생 부사관으로 일하셨기 때문에 장교로서 부사관의 입장을 한 번 더 생각하게 되는 게 장점이에요. 군이 잘 움직이려면 장교와 부사관의 조화가 정말 중요한데 저는 아빠 덕분에 그 부분을 좀 더 부드럽게 이끌어갈 수 있는 것 같아요.”
군인의 길을 택한 것에 대해 후회한 적은 없느냐는 질문에 “성차별 없이 당당하게 능력을 인정받으며 일할 수 있는 해군 장교가 된 건 내 인생의 행운”이라고 답한 주 대위는 “지금 두 아들이 각각 세 살, 두 살인데 둘 다 육군에 입대시켜 우리 가족이 육·해·공군에 고루 포진하도록 하는 게 장래 목표”라며 활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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