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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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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만에 소설집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펴낸 작가 은희경

글·구가인 기자 / 사진·조영철 기자

2007. 06. 22

은희경이 돌아왔다. 지난 2004년 미국 연수에서 돌아와 얼마 전 아홉 번째 책을 낸 작가는 이번 작품을 쓰며 조금 더 “허술해지고 어수룩해지려 했다”고 말한다. 은희경을 만나 그간 지내온 이야기 & 40대 후반을 보내면서 느끼는 감회에 대해 들었다.

5년 만에 소설집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펴낸 작가  은희경

“뭘 하든 펜을 쥐어야 안심이 돼요.” 은희경 작가는 늘 수첩과 펜을 가지고 다닌다.


은희경(48)은 한때 ‘위악’과 ‘냉소’의 작가로 불렸다. 우리가 기억하는 그의 작품 속 인물들은 늘 서너 발짝쯤 떨어져 대상을 날카롭게 응시했고, 단단한 껍질을 두른 채 결코 세상과 섞이지 않았다. 등장인물에는 작가의 모습이 담겨 있기 마련. 때문에 그 작가를 만나기 위해 일산에 위치한 그의 집 근처 카페를 찾아가는 길은 다소 부담스러웠다. 혹 그 특유의 날카로움에 찔리고, 단단함에 부딪혀 상처받진 않을까.
“아유, 설마 그러겠어요. 제가 늘 그렇게 오해를 받아요(웃음).”
마주 앉은 이에게 코를 찡긋거리며, 가볍게 미소를 보이는 모습에 안도했다. 그러다 슬그머니 “은희경 소설이 달라졌다”는 세간의 평이 떠올랐다. 그는, 정말 달라진 걸까. 아니면 사실 우리가 오해했던 걸까.
“작품 스타일이 달라졌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요. 그런데 저는 예전부터 늘 새로운 걸 찾으려고 애썼어요. 하지만 한동안 아무리 다르게 해도 ‘냉소적이다’ ‘90년대 정서다’ 식으로만 바라보더니 지난 장편 ‘비밀과 거짓말’ 때부터 독자들과 평자들도 다르게 봐주시는 것 같아요. 어쨌든 이번 소설집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는 저도 굉장히 마음에 들어요. 이게 바로 현재의 나니까요.”
그의 표현을 빌리면, 최근 펴낸 아홉 번째 책 ‘아름다움이…’에 실린 작품 속 인물들은 “어눌해” 보이고 소설 자체도 “허술해졌다”.
“저는 굉장히 고지식하고 아귀가 딱 맞지 않으면 받아들이지 못하는 성격이에요. 틈을 안 보이려는 태도를 가지고 있었고, 그래서 그동안엔 소설도 정말 딱딱 맞아떨어지게끔 정교하게 쓰려고 했어요. 정밀하게 짜고 계산해서, 상식적으로 누구나 다 받아들일 수 있는 상황을 만들었거든요. 그런데 이제는 좀 더 허술해지려고 했어요. 예를 들면 이번 작품 속에서는 갑자기 난장이가 나온다든지, 허공으로 붕 뜬다든지 하는 비현실적인 상황이 나오거든요. 아마 예전 같으면 이런 작품을 못 썼을 거예요. 그런데 요즘은 ‘참, 뭐 그럴 수도 있지 않나’ 이런 식으로 경계를 넘어간 거죠. 나도 이제 경계를 넘고 상상력이 활달한 소설을 쓸 수 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았어요.”
소설의 기법만 변한 게 아니다. “어디서부터 잘못돼서 이런 문제를 갖게 된 걸까”라는 ‘나’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모든 소설이 시작된다는 작가는 이번 소설을 쓰며 그 자신 역시 좀 더 느슨해지고 가벼워진 듯 보였다.

5년 만에 소설집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펴낸 작가  은희경

“저는 항상 타인을 겁내고 친한 친구들이라도 밑바닥까지는 보이지 못하는 성격이에요. 나에 대한 자신이 없기 때문에 늘 이미지 관리를 해야 했고, 타인에게 상처받지 않기 위해 전전긍긍하며 살았고요. 그런데 이번에 글을 쓰는 중에 만난 오랜 친구들이 저 때문에 상처받은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그때 깜짝 놀랐어요. 그 상처받은 내용이라는 게 늘 남들에게 내가 받은 상처와 같았거든요. 막 웃음이 나왔어요. 나도 남한테 상처를 줬구나, 이게 어쩐지 즐거운 거예요(웃음). 예전까지는 나만 고독하고 나만 상처받았다고 생각했어요. 또 남에게 상처주지 않으려고 전전긍긍하고 깔끔하게 살려고 애썼죠. 이젠 결국 그럴 순 없다는 거, 다 상처를 주고받을 수밖에 없다는 걸 인정하게 된 거 같아요. 나의 착각과 어리석음… 그래서 예전 제 소설 같으면 어떤 문제들을 날카롭게 해부해서 ‘이런 것 때문에 이런 거야’ 단정지어 말했을 텐데, 이제는 ‘나도 모르겠어. 그런데 아무튼, 그래 왔나봐…’ 이렇게 돼요.”
은희경은 올해로 작가생활 12년째에 접어들었다. 서른다섯 “막다른 길에 몰린 듯한 기분”에서 다니던 출판사에 한 달간 휴가를 내고 두문불출해 썼던 글이 9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당선이 됐고, 이어 전업 작가가 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장편소설을 완성했다. “타자 치듯” 세상에 할 말을 쏟아놓던 시절이었다.
“당시에는 정말 절박했어요. 그때까지 저는 스스로가 온순하고, 친사회적이며, 건전하게 살려고 애써왔는데 그런 것들이 완전히 헛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내가 누군지’ ‘세상이 뭔지’ 완전히 새로운 태도로 알아봐야 했죠. 그렇게 자기 부정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소설이 따뜻할 수가 없었고요. 지난 10여 년 동안 그런 태도로 보려고 애썼고, 그래서 도달한 지점이 바로 여기라고 보는데 앞으로 또 어떤 길이 기다리고 있을진 모르겠어요.”

“작품을 마친 후 끝이 주는 희열감이 그렇게 행복할 수 없어요”
2년간 미국 워싱턴대학에서 연구원 자격으로 머물렀던 작가는 2004년 귀국 후 한동안 작품이 써지지 않아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미국에서 2년 있다 왔는데, 인터넷 같은 걸로 계속 국내 소식을 접하고 있었지만 실제 돌아와 보니까, 너무 달라져버린 거예요. 오랫동안 한국에서 살아왔는데도 한동안 따라갈 수가 없고, 나만 무능력한 거 같았어요. 게다가 소설가들은 소설이 안 써지면 너무 불행하고 무력하거든요. 환경에 적응이 안 되는 상태에서 소설도 안 써지니까 몸도 안 좋고, 신경을 쓰니까 얼굴도 하루가 다르게 늙는 거 같고… 그러다가 ‘안 쓰니까 불행한 것’이라는 생각에 어떻게든 써야겠다고 결심했어요. 그런 점에서 책 마지막에 실린 소설 ‘유리 가가린의 푸른별’은 개인적으로 중요한 작품이에요. 말문을 열어준 글이거든요. 뭔가 체념한 듯한 분위기에서 시작했는데 주인공이 삶을 포기하지 않고 젊은 시절로 돌아가면서 끝냈어요. 그러면서 저도 뭔가 힘을 얻었고요.”
“온 정신이 한곳에 몰두해 있는 탓에 뭔가를 먹어도 맛을 못 느낄 정도”로 힘든 게 소설쓰기이지만, “다 쓰고 나서는 ‘끝이 주는 희열감’에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는 게, 작가라는 사람들의 운명 같다”고 말하는 은희경. 새로 작품을 쓸 때마다 낯선 공간으로 가서 작업을 한다는 그는 이번 소설집에 실린 여섯 편의 작품 중 절반을 강원도 원주 박경리 작가의 토지문학관에서 썼다고 한다.
“박경리 선생께서 당신이 작가니까 뭐가 필요한지 잘 아세요. 그래서 편하게 있을 수 있었죠. 소설 쓸 때 온 신경이 곤두서서 누가 말 거는 것도 싫어서 전화도 안 받고 그러는데, 한편으로는 그렇게 고립돼 있다 보니 너무 외로워요. 그런데 토지문학관에서는 밥 먹을 때만 주변 사람들을 좀 보고, 또 다시 틀어박힐 수 있으니까 딱 좋았던 것 같아요.”
이곳에 머무르며 ‘은 언니’라는 별명으로 불렸다는 그는 후배 작가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한다고 한다. 그는 지난 연말 송년회에서 ‘개그소녀’상을 받은 이야기도 들려줬다.

5년 만에 소설집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펴낸 작가  은희경

우리 나이로 마흔아홉, 자신의 나이에 대해 “잠시 진지한 생각에 빠져 있으면 얼굴이 안 좋아졌다며 걱정을 해주는 나이”라고 표현하는 은희경은 요즘 “일부러 큰 소리로 웃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지난 연말 토지문학관에서 송년회를 하면서 각자 상을 줬거든요. 그때 제가 받은 상 이름이 ‘개그 소녀상’이에요. 상 내용이 ‘위 사람은 평소 품행이 방정하나 이따금 엉뚱한 말과 행동으로 즐거움을 주었기에…’ 이런 식이에요(웃음). 자주는 아니지만, 후배들하고 잘 어울려요. 집에서 사람들이 모여서 술 마시고 노는 걸 좋아해서 저희 집 거실엔 소파 대신 9~10명이 모여서 술 마실 수 있는 긴 탁자가 있어요(웃음). 그런데 사실 예전에는 이렇지 않았어요. 절대 제가 먼저 전화하는 법도 없어서 남들이 저 사람은 어울리는 사람도 많고 늘 바쁜가보다 했대요. 그런데 저 별로 친구도 없고 바쁘지도 않았었거든요(웃음). 관계를 갖는 데 지나치게 깔끔 떨지 않는 것. 이런 게 작품과도 같이 가는 것 같아요. 예전에 비해 이번 소설에는 타인이 많이 들어와 있어요. 점차 남들과 섞여 들어가는 것 같아요.”
현재 그는 경기도 일산에서 남편과 단둘이 살고 있다. 시사주간지 기자 출신인 남편 김상익씨(52)는 그의 소설 속 ‘악역’의 단골 모델이자, 책 마지막 ‘작가의 말’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최초의 독자 K’이기도 하다.
“사실 문학적인 자질이라고 하면 김상익씨가 저 못지않을 거예요. 저와 결혼하고 나서 생활 전선으로 나가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지 모르죠. 그만큼 재능이 굉장히 많았는데 지금은 그 문학적 재능을 제 소설을 감수해주는 데 쓰고 있죠(웃음).”

엄마의 절친한 친구인 딸과 책보다 게임을 더 좋아하는 아들
그가 미국 연수를 떠날 당시 고등학생이던 딸과 아들은 현재 미국에 남아 대학을 다니고 있다고 한다. 엄마의 둘도 없는 친구이기도 한 딸 새남양(22)은 현재 워싱턴주립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하고 있고, 같은 대학에 다니고 있는 아들 이롭군(21)은 엔지니어 전공을 준비 중이다.
“아들은 책에 관심이 없어요(웃음). 걔는 제 소설을 몇 쪽만 넘기면 잠이 온대요. 그런 걸 보면 유전인자나 환경이 다 적용되는 게 아닌 것 같아요. 부모가 다 국문과 출신에 글과 관련된 일을 하고, 딸을 포함해 셋은 다 책을 보는데 한 아이(아들)는 전혀 안 봐요. 대신 걘 옆에서 게임을 해요(웃음). 그런 게 좀 재밌어요. 저는 딸과 아주 친하지만 아들도 참 좋아해요. 쟤 머릿속에는 뭐가 있을까, 종종 생각해요(웃음).”
그는 조만간 한 신문에 ‘힙합소년’이 주인공인 소설을 연재할 계획이라고 한다. 처음엔 못마땅하게 생각했던 ‘힙합’에 대한 오해를 풀게 된 것도 아들 덕이었다. 아들에게 보낼 한국 가수의 CD를 우연히 듣다가, 마치 당시 자신의 불만을 옮겨놓은 듯한 노래를 듣고 “또 한 명의 소년을 오해했다”는 걸 깨달았다고.
“올가을부터 신문연재를 시작해요. 단편에서 문학적인 욕심을 갖고 새로운 시도를 했다면, 장편은 재밌고 유쾌하게 쓰고 싶어요.”
계속해서 새로운 시도를 해오고 있는 그이지만 지금껏 소설만 써왔다. 문득 다른 장르에 도전해볼 생각은 없는지 궁금했다.
“글쎄요, 아직은 없어요. 다만 이런 생각은 해요. 나중에 손자를 키우면서 그 아이를 관찰하고 이해하기 위해서 동화를 써보고는 싶어요(웃음).”
우리 나이로 마흔아홉, 자신의 나이에 대해 “잠시 진지한 생각에 빠져 있으면 얼굴이 안 좋아졌다며 걱정을 해주는 나이”라고 표현하는 은희경은 요즘 “일부러 큰 소리로 웃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은희경이 완전히 낙천적으로 바뀐 것은 아니다. 다만 어느 정도의 “배짱이 생겼다”고.
“웃지 않으면 나이가 드러나요. 그래서 작은 것에도 막 웃으려고 노력해요. 지금까지는 무엇이든 긴장하면서 굉장히 교양 있게 하려고 했는데, 이젠 ‘나 이 정도밖에 안 돼’ 할 수 있는 배짱이 생긴 것 같아요. 그래서 사람들 대하는 게 편해졌고요. 하지만 이게 계속될 거라고 믿을 만큼 낙천적이지는 않아요. 책이 나온 뒤 기분 좋게 사람들과 어울리다가도 어느 순간 ‘가만있어봐, 내가 균형을 잡아야 해, 너무 치우치면 또 닥쳐오는 어떤 인생에 대비를 못해’ 이런 생각을 여전히 해요. 하지만 옛날처럼 많이 두렵진 않아요. 그땐 너무 행복하려고 해서 그랬던 거 같아요. 예전엔 ‘내가 불행해지면 어떻게 하나’ 이런 게 두려웠다면, 이제는 ‘이 정도면 됐어’ 이렇게 생각하니까 마음이 편해요. 하지만 이런 게 제가 약해졌다거나 세상과 타협한 거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지금 이 나이에는 치열함보다는 수긍 같은 게 필요한 거 같거든요. 각자 그 인생, 그 나이에 맞는 어떤 걸 꺼내 써야 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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