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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멋진 그녀

서울시 첫 여성구청장으로 주목받는 김영순 송파구청장

글·이남희 기자 / 사진·홍중식 기자, 송파구청 공보과 제공

2007. 01. 24

지난해 5·31 지방선거에서 서울 최초 여성구청장 타이틀을 단 김영순 송파구청장. “여성이 행복해야 사회도 행복하다”는 그가 구청장으로서의 포부와 가정생활, 자녀교육법까지 속속들이 털어놓았다.

서울시 첫 여성구청장으로 주목받는 김영순 송파구청장

‘최초’라는 타이틀은 영광스럽고도 무거운 훈장이다. 사람들의 주목을 받지만, 그만큼 좋은 선례를 남겨야 한다는 부담도 함께 안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5·31 지방선거에서 ‘서울시 첫 여성구청장’ 타이틀을 거머쥔 김영순 송파구청장(58)은 “더 많은 여성구청장이 탄생할 수 있도록 모범이 되고 싶다”고 말한다. 여성 특유의 섬세함이 일상에서 꼭 필요한 정책을 마련하는 데 유리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구청은 현장 행정인 만큼 사소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들을 놓치지 않는 게 중요해요. 그런 의미에서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키운 여성으로서의 경험이 정책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됐죠. 국내 최초로 아토피 질환 및 장애아동을 위한 통합보육시설을 만들겠다는 계획을 세운 것은 같은 여성으로서 엄마들의 고충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1동 1공공보육시설’을 추진하는 배경도 여성의 자아실현과 자녀교육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켜주기 위해서예요. 여성의 눈으로 보면, 시대가 변화하며 생기는 사람들의 요구를 더욱 잘 파악할 수 있습니다.”
지난 12월 중순 서울 송파구청에서 만난 김 구청장은 바쁜 일정 속에서도 활기찬 모습이었다. “송파구청장으로 일하는 하루하루가 즐겁다”는 게 취임 5개월을 넘은 그의 소감이다. 그가 취임하면서 경직돼 있던 구청의 조직문화도 한결 부드러워졌다고 한다. 그는 구청에서 마주치는 직원이나 민원인들에게 먼저 고개 숙여 인사를 건넨다. 처음엔 그의 목례를 받은 직원이나 민원인들이 당황하기 일쑤였지만, 이제는 반갑게 인사하는 문화가 구청에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다고 한다.
그의 따뜻한 배려를 느낄 수 있는 또 다른 일화는 지난해 11월 수능시험 전날 직접 구내방송 마이크를 잡은 일이다. 그는 일일 DJ가 돼 수험생 자녀를 둔 구청 직원들을 격려했다.
“1백 명이 넘는 직원들의 자녀가 수능시험을 치르는데, 구청장으로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잖아요. 그렇다고 찹쌀떡을 돌리면 선거법에 위반된다고 하고….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택한 일이 학부모 격려 방송을 하는 것이었어요. 이 사실을 비밀에 부친 채 구내방송에 깜짝 등장했는데, 직원들의 반응이 좋았어요(웃음).”

서울시 첫 여성구청장으로 주목받는 김영순 송파구청장

지난 7월 송파구청장 취임식에 함께 참석한 김영순 구청장과 남편 정태조씨.(왼쪽) 지난 10월 송파구 유아마라톤대회에 참가한 김영순 구청장.(오른쪽)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한양대 대학원에서 정치학 석·박사 학위를 받은 김 구청장은 정무 제2차관과 한나라당 부대변인을 역임하는 등 활발한 정치활동을 펼쳤다. 특히 정당에서 여성 및 문화 관련 조직을 관장하면서 그는 각종 이해를 조율하고 통합하는 훈련을 받았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국내 여러 비정부기구(NGO) 단체를 이끌고, 대전대 경영행정대학원 객원교수로 일하며 폭넓은 경험을 쌓았다. 다양한 체험이 구청장으로서 리더십을 발휘하는 데 밑거름이 된 셈이다.

선거출마한 아내 위해 건설업체 고문직 사임한 남편의 든든한 외조
충북 음성에서 태어난 김 구청장은 경기도 양평에서 줄곧 어린 시절을 보냈다. 학창시절 늘 상위권을 놓치지 않았다는 그는 시와 소설을 즐겨 읽는 문학소녀였다. 고교 시절에는 웅변반과 문예반 활동을 하며 커뮤니케이션 기술과 문학적 소양을 키웠다고 한다. 김 구청장에게 “왜 국문과가 아닌 정치외교학과에 진학했느냐”고 묻자 그는 문학과 정치의 공통점을 들려줬다.
“문학은 작가가 내재된 열정과 감흥을 표출해서 누군가를 감동시키잖아요. 정치도 좋은 정책을 통해 국민을 감동시켜야 한다는 점에서 문학과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학창 시절, 여러 문학작품을 읽으며 ‘모든 사람이 행복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꿈을 갖게 됐습니다. 그 꿈을 실현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 바로 정치라고 생각했어요.”
그가 똑소리나게 사회생활과 가정생활을 병행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삶의 역할 모델인 어머니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사람은 바로 어머니”라며 모친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했다.
“어머니는 여성의 사회진출이 금기시되던 당시 여경 시험에 합격하고도 자식들을 위해 뜻을 접으셔야만 했어요. 자신과 자식의 이해가 충돌하면, 어머니는 항상 자식들을 위해 당신이 원하는 바를 포기하셨죠. 어머니는 ‘여성도 자신의 능력을 맘껏 펼쳐야 한다’며 다른 남자형제들과 차별하지 않고 저를 키우셨어요. 평소 말씀이 없지만 문제가 생기면 빛나는 해결책을 내놓곤 하셨는데, 그런 어머니의 현명함을 늘 닮고 싶었습니다.”
김 구청장이 여성리더로 능력을 발휘하기까지 남편 정태조씨(64)의 외조도 빼놓을 수 없다. 공무원 출신인 정씨는 대기업에서 정년퇴임한 뒤 지방선거 직전까지 건설업체 고문을 맡고 있었으나 ‘구청장에 출마한 아내에게 부담이 될 수 있다’며 고문직을 사임했다. 또 선거운동 때는 김 구청장보다 먼저 일어나 새벽같이 주민들을 만나고, 그가 집에 오면 직접 발마사지를 해줄 만큼 헌신적인 외조를 펼쳤다.
“남편이 운전을 가르쳐주면 안 싸우는 부부가 없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남편은 제게 운전을 가르쳐주면서 전혀 화를 내거나 부정적인 말을 한 적이 없어요. 제가 운전하다 실수를 해도 남편은 ‘당신, 여자치고 이 정도면 정말 잘하는 거야’ 하고 격려를 해줘요. 남편은 아이들을 키울 때 기저귀 삶는 것을 담당할 정도로, 가사분담에도 적극적이었습니다. 상대방을 배려하는 습관이 오래 전부터 몸에 밴 사람이기 때문이죠. 그래서인지 저희 부부는 지금껏 한 번도 싸워본 적이 없는데, 그런 이야기를 하면 다들 깜짝 놀라세요(웃음).”

서울시 첫 여성구청장으로 주목받는 김영순 송파구청장

문화정책에 남다른 애착을 가진 김영순 구청장은 “임기 내 송파구에 문화예술센터 건립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 구청장에게 남편과의 러브스토리를 묻자 그의 얼굴이 소녀처럼 상기됐다. 그는 72년 친한 친구와 식사를 하던 자리에서 우연히 남편을 만나게 됐다고. 사회과학을 공부한 김 구청장은 이공계통을 공부한 남편의 순박하고 과묵한 첫인상에 마음이 끌렸다고 한다. 두 사람은 1년 남짓한 연애 끝에 결혼식을 올렸다.
“하루는 남편이 제게 ‘공원에 가자’고 했어요. 군밤을 사서 주머니에 넣고 손을 잡은 채 걸어가는데 남편이 ‘결혼하자’고 청혼하는 거예요. 고전적인 방법으로 프러포즈를 받았죠. 남편이 저를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준 배경에는 제 은사님의 당부도 작용했던 것 같아요. 은사님께서 결혼 전 저희 부부를 따로 부른 뒤, 제게는 ‘남편을 하늘같이 모시라’고, 남편에게는 ‘아내가 사회활동을 할 수 있도록 잘 도와주라’고 말씀하셨거든요.”
김 구청장은 슬하에 삼남매를 두었다. 장녀 정명원씨(33)는 기자생활을 하다 출산 후 전문번역가로 활동하고 있고 차녀 혜원씨(30)는 음대 성악과를 졸업한 후 대학원에서 문화정책학을 공부하고 있다고. 3남 형근씨(27)는 지난해 가을 미국 미네소타대 로스쿨에 진학했다. 그는 세 아이에게 늘 “네가 사회에 무엇을 기여할 수 있는지 고민하라”고 강조해왔다.
“저는 아이들이 남에게 사랑을 베푸는 넉넉한 사람이 되길 바랐습니다. 사회공헌을 강조하는 제 가치관이 아이들의 진로에도 영향을 미치더군요. 둘째 딸은 처음 대학원에서 문화예술경영학을 공부했는데, ‘예술작품의 수익 창출을 최우선으로 삼는 학문의 성격이 자신과 안 맞다’며 전공을 문화정책학으로 바꿨어요. 문화정책학은 많은 사람들이 문화를 함께 즐기는 방법을 연구하는 학문이잖아요.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막내아들도 ‘돈을 버는 것보다는 사회에 기여하는 방법을 찾겠다’며 법조인의 길을 택했어요. 이런 아이들의 선택을 보면서 자녀교육의 힘이 얼마나 큰지 느꼈습니다.”

‘워킹맘’이 느끼는 스트레스와 슬픔 잘 알아 육아복지에 특히 신경 써
김 구청장은 누구보다 ‘워킹맘’이 느끼는 스트레스와 슬픔을 잘 알고 있다. 그 역시 사회활동을 하다보니 자녀와 함께할 시간이 적었고, 운동회 때는 도시락조차 제대로 싸주지 못했다는 것.
“저는 비 오는 날 우산을 아이들의 학교에 한 번도 가져다준 적이 없어요. 아이들이 사춘기 때 일하는 아주머니 편으로 우산을 보내면, 아이들은 그게 못내 섭섭해 우산을 다른 친구에게 줘버렸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그렇게 서운해하다가도 아이들이 막상 집에서 저를 만나면 표정이 환해졌어요. 하루는 첫째가 동생들에게 ‘너희들, 엄마가 집에 있으면 사소한 걸로 얼마나 잔소리하는 줄 아니? 우리는 엄마가 집에 안 계셔서 편한 거야’ 하고 말해주더군요. ‘엄마가 없다’고 투정 부리는 대신, 아이들이 스스로 살아가는 법을 터득한 셈이죠.”
김 구청장은 “여성과 가정이 행복해야 사회도 긍정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렇기에 더욱 특화된 여성정책과 육아복지시스템을 만드는 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문화도시, 송파’는 김 구청장이 제시하는 또 다른 청사진이다. 송파구는 청소년리듬발레단, 청소년교향악단, 민속예술단, 실버합창단 등 서울시와 맞먹는 8개의 문화예술단체를 보유할 만큼 탄탄한 문화적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 이에 대해 김 구청장은 “아쉬운 대목은 인적 인프라에 비해 공연시설이나 전용시설이 미약한 것”이라며 “임기 내 송파구에 문화예술센터 건립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어린이, 청소년부터 주부, 노인 등 문화와 공연을 사랑하는 사람 누구나 설 수 있는 무대를 만드는 것이 김 구청장의 꿈이다.
“2000년 고도(古都)인 송파는 껍질을 벗겨도 끝이 없는 양파처럼 수많은 매력을 간직한 곳이에요. 이런 송파에서 가난한 사람, 장애인, 여성과 같은 소외 계층도 모두 행복을 누리며 살게 만들고 싶습니다. ‘모두가 희망을 갖는 사회’야말로 제가 그리는 이상적인 송파의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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