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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시련 뒤 웃음

성형수술 파문 딛고 아시안게임 2관왕 된 펜싱선수 남현희

글·구가인 기자 / 사진·동아일보 사진DB파트

2007. 01. 24

2006 도하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펜싱선수 남현희. 지난 2005년 말 성형수술 파문을 겪으며 맘고생을 많이 한 그에게 이번 금메달은 그간의 어려움을 씻을 만한 값진 결실이었다. 그가 힘든 시간을 이기고 최고의 자리에 오른 소감을 들려줬다.

성형수술 파문 딛고 아시안게임 2관왕 된 펜싱선수 남현희

인터뷰 약속을 잡기 위해 남현희 선수(26)에게 연락을 취했다. 얼마 있지않아 그로부터 직접 걸려온 전화. 레터링 서비스를 신청했는지 휴대전화 벨과 함께 화면에는 다음과 같은 메시지가 뜬다.
“☆씨이익~^______^ 이만~~큼 웃어요☆-남현희”
남현희가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는 지난 12월 중순 폐막된 2006 도하 아시안게임 여자 펜싱 플뢰레 경기 개인전과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따내 펜싱 대표팀 가운데 유일한 2관왕이 됐다.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딴 그는 이번 도하에서의 금메달로 아시안게임 2연패를 달성했다.
하지만 앞서 남현희는 성형수술 파문으로 이름을 알린 바 있다. 속눈썹이 눈을 찌르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눈꺼풀 수술을 받고, 평소 콤플렉스였던 볼에 지방 이식수술도 함께 받았던 그는 2006년 1월 펜싱협회로부터 ‘성형수술을 하며 선수생활을 소홀히 했다’는 이유로 2년간 국가대표선수 자격정지 징계를 받았다. ‘자격정지 2년’은 보통 상습적인 약물복용 선수에게 주어지는 중징계다. 2005년 세계선수권대회 우승을 하고 돌아온 직후였던 당시, 꾸준한 노력으로 최상의 기량을 보인 선수에게 성형수술로 인한 연습 소홀로 이같은 징계를 내리는 것은 지나치다는 여론이 일었다. 더불어 그가 처음에 알려진 것과 달리 수술 전 이미 코칭스태프에게 허락을 받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결국 자격정지 기간을 6개월로 줄이는 선에서 사건은 일단락됐다. 그는 ‘그 사건’에 대해 “선수생활을 그만둘까 고민할 정도였다”고 당시 힘들었던 심경을 밝히면서도 더 이상 언급하는 것은 조심스러워했다.
“실은 당시에 좀 억울했어요. 좋은 경기를 보여서 비인기 종목인 펜싱을 대중적으로 좀 더 잘 알리고 싶었는데, 되레 좋지 않은 일로 유명세를 탔으니까요. 신문이나 인터넷 같은 데서 저를 비난하는 글을 보면 ‘사실은 이렇다’며 제가 일일이 쫓아가서 해명할 수도 없는 거니까 속상했고요. 처음에 중징계를 받고 강한 척하고 있었지만 엄마가 제 앞에서 눈물을 보이시는데 정말 가슴 아팠어요. 지금은 웃으면서 얘기하지만 그땐 죽고 싶었죠(웃음).”
하지만 그는 강했다. 6개월의 자격정지 기간 중에 국가대표가 아닌 서울시청 소속으로 SK 그랑프리와 국제펜싱월드컵 대회 등에 출전해 우수한 성적을 올렸고, 이번 아시안게임에서는 2관왕이 됐다. 그리고 이제는 성형수술에 대해 묻는 질문에도 “얼굴이 통통해 보여서 한동안 좋았는데 관리를 잘 못해서 그런지 볼살이 다시 빠져서 걱정”이라고 웃으며 답할 정도로 담담해졌다.
“(성형수술 파문 뒤) 확실히 성숙해진 것 같아요. 안 좋은 일이 있으면 계속 생각하는 사람이 있고, 그냥 넘기는 사람이 있잖아요. 지난 일 다시 돌이켜봤자 소용없으니까 사회생활에 대해 배웠다고 생각하고, 긍정적인 생각만 하려고 노력했어요. 또 그렇게 노력하면 실제로 그렇게 되는 듯해요. 거기에 주변 분들이 다독여주시고, 풀어주셔서 빨리 회복될 수 있었는데 특히 저희팀 감독님께 감사해요. 믿고 많이 지원해주셨거든요. 거기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좋은 성적 내려고 노력했는데, 다행히 좋은 결과를 가져왔고요.”
남현희는 일단 결승전에 오르면 한 번도 패한 적이 없을 정도로 승부욕이 강하고, 담력도 큰 편이다. 이번 도하 아시안게임에서는 음식이 안 맞는 탓에 살이 3~4kg 가량 빠지고 링거를 맞고 경기에 임해야 하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주변에는 ‘최상의 컨디션’이라고 말했을 정도로 배짱과 자신감을 가지고 시합에 임했다.

성형수술 파문 딛고 아시안게임 2관왕 된 펜싱선수 남현희

2005 세계선수권대회 우승, 2006 도하 아시안게임 우승에 빛나는 남현희 선수는 2008년 올림픽에서도 금메딸을 따 그랜드슬램 달성할 것을 꿈꾼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경기 전에 저희 엄마가 꿈을 꿨대요. 꿈에서 저희 집 가지나무에 황금가지 두 개가 열렸는데 엄마가 그걸 땄다고 하시더라고요. 그 꿈이 맞았나봐요(웃음). 저는 이상하게 2등을 해본 적이 없어요. 1등 아니면 3등이나 그 아래 성적을 거둬요. 운동선수한테는 1등만 존재한다고 생각하다보니 결승에 가면 꼭 이겨야겠다는 마음이 강하게 들어요. 게다가 제 키가 작은데 수상식에서 낮은 단상에 서면 (작은 키가 부각되니까) 좀 창피하잖아요(웃음).”
150cm에 45kg의 작은 몸. 딸만 셋인 집의 장녀인 남현희는 성남여중 1학년 때 처음 펜싱을 시작했다. 중학교 2학년 첫 대회 출전부터 금메달을 딸 정도로 뛰어난 기량을 발휘했지만 작은 키는 핸디캡으로 여겨졌다.
“중학교 때는 다들 고만고만하니까 키에 대해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고등학교 이후부터는 키 때문에 ‘쟤는 국제용은 아니다’ 이런 얘기를 들었어요. 더 오기가 생겨서 잘하려고 연습하게 되더라고요. 저처럼 키 작은 사람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죠.”

“2008년 올림픽에서 8년 사귄 남자친구와 함께 금메달 따는 게 목표에요”
남현희에겐 사귄 지 8년 된 남자친구가 있다. 그는 같은 펜싱 국가대표인 원우영 선수(25)와 고등학교 때인 97년에 처음 만나 99년부터 사귀기 시작했다. 1월17일이 만난 지 8년째 되는 날이라는 이 커플은 서로에게 “힘들 때 가장 가까이에서 마음을 열어 도움을 주는 연인”이자 “잘못한 일이 있으면 독하게 조언과 충고를 던지는 동료”라고 한다. 쾌활하고 적극적인 남현희에 비해 남자친구는 조용하고 과묵한 타입인데, 이번 아시안게임에서는 시합 전 긴장해 있는 그 옆에서 “넌 1등할 거 같다” “적수가 없다”면서 응원을 불어넣어줘 힘이 됐다고 한다.
“성형수술 파문 이후 더 친해졌어요. 당시 제 감정 기복이 심했는데 그 기분에 맞춰서 제가 막 얘기하면 들어주고, 조용히 있고 싶다고 하면 또 옆에서 조용히 있어줬죠. 이번에 남자친구는 단체전밖에 출전하지 못했지만 앞으로 저보다 더 좋은 성적을 거두길 바라요.”
시합 전 “싸빠랄라~”라고 뜻모를 의성어를 외쳐 선수촌 내 별명이 ‘싸빠’인 남자친구 때문에 자신의 별명도 ‘싸빠땅콩’이라며 웃는 남현희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남자친구와 결혼을 할 생각은 없는지?
“아직은 친구라고 생각하지만 아예 (결혼) 생각이 없는 건 아니에요(웃음). 다만 서로의 목표를 이룬 뒤에 깊이 생각해보려고요. 목표요? 2008년 올림픽 금메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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