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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궁금한 비화

‘조폭과 연예인의 오랜 악연’

연예비리 수사로 이름 날린 검사 출신 함승희 변호사가 들려주는~

글·이남희 기자 / 사진·홍중식 기자

2006. 12. 23

최근 폭력조직과 연예인의 관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서울지검 특수부 검사로 연예계 비리를 수사했던 함승희 변호사로부터 조폭과 연예인의 오랜 악연에 대해 들었다.

‘조폭과 연예인의 오랜 악연’

검찰이 전 서방파 두목 김태촌씨(58)의 영화배우 권상우(30)에 대한 일본 팬사인회 출연 강요 미수 사건을 수사하면서 폭력조직과 연예인의 관계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처럼 연예인과 조폭이 얽힌 사건이 오랜 세월 불거져온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 90년 ‘연예계 비리’를 수사한 함승희 변호사(55·전 서울지검 특수부 검사, 16대 국회의원)는 “과거 연예인의 주수입원은 밤업소 출연이었고, 조폭이 관련 이권을 좌우하다보니 연예인과 조폭이 오랜 악연을 맺어왔다”고 설명했다. 2000년 이후 한류 열풍 등으로 엔터테인먼트 사업이 매력적인 비즈니스로 떠오르면서, 조폭들이 더욱 연예계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는 게 함 변호사의 생각이다.
올해는 특히 폭력조직과 연예계가 얽힌 사건들이 잇따라 발생했다. 지난 2월 부산의 한 횟집에서 인기가수 J씨를 둘러싸고 폭력조직 간 충돌이 있었다. 연예기획사 대표 A씨가 J씨에게 공연장에서 모 정치인을 소개해줄 것을 요청했으나, J씨가 이를 거절하면서 빚어진 일이다. A씨 일행은 공연 뒤풀이에서 J씨에게 사과를 요구했으나 이마저 거절당하자 난동을 부렸고, J씨 측도 조직 행동대원들을 풀어 A씨 일행과 맞닥뜨렸다.
폭력조직 ‘신촌이대식구파’는 급전을 필요로 하는 연예인을 대상으로 연 100% 고리대금업을 하다가 지난 5월 경찰에 적발됐다. 당시 개그맨 H씨와 L씨가 조직폭력배들과 연예인들을 연결해준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던졌다. 돈을 제때 갚지 못한 연예인들은 이들이 운영하는 강남 유흥업소 밤무대에 서야 했다고 한다.
최근에는 교도소에 수감 중인 거물급 조직폭력배가 평소 알고 지내던 경기 모 지역 시의원 출마자 C씨를 당선시키기 위해 모 연예기획사 소속 연예인 10여 명을 동원했다. 선거에 동원된 연예인들은 주로 인기 드라마에 출연 중인 중견 탤런트로 C씨의 거리유세를 지원했다고. 지난 11월 초 대전지검 특수부는 교도소 내에서 자신의 폭력조직원을 통해 연예인을 동원, 시의원 선거운동을 도운 혐의(공직선거법 위반 등)로 전모씨(46·대전교도소 수감)를 추가 기소했다.
함 변호사는 이에 대해 “2000년 이후 연예 매니지먼트 사업이 전문화되면서 조폭들의 활동은 줄어들었지만, 조폭과 연예인이 관련된 사건이 잇따라 터지는 현실은 아직도 연예계에 조폭이 끼어들 여지가 있음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80년대 유명 개그맨들 출연료 30% 상납, 아들과 함께 납치당하거나 칼에 찔리기도…
“90년대까지 연예인들은 조폭의 협박 때문에 밤무대에 억지 출연하거나 술자리에 불려다니는 일도 많았습니다. 이를 참다못한 1백50명의 연예인이 89년 말 서울 여의도에서 ‘연예인 폭력 추방 궐기대회’를 열 정도였어요.”
함 변호사는 지난 90년 서울지검 특수부 검사로서 대대적으로 연예계 비리를 수사하며, 소문으로만 나돌던 조폭의 연예인에 대한 납치폭행, 금품갈취, 밤업소 강제출연행위 등을 밝혔다. 당시 수십 명의 연예인에게 피해자 진술을 받았던 그는 “연예인들이 돈만 뜯긴 게 아니라 폭력배들에게 무수히 구타당했지만, 보복이 두려운데다 인기관리에 치명타를 입을까 두려워 피해 사실을 밝히길 꺼려했다”고 회상했다.

‘조폭과 연예인의 오랜 악연’

90년 당시 연예계 비리수사 내용이 보도된 신문 기사를 보는 함승희 변호사. 그는 “조폭에게 피해를 입은 연예인들이 보복을 당할까봐 피해 사실을 밝히길 꺼려했다”고 회상했다.


“코미디언 L씨의 경우, 3명의 폭력배가 찾아와 싸구려 동양화를 3백만원에 사라고 강요하면서 ‘너 커졌다고 까부느냐, 오늘 너를 마지막으로 볼 것이다’고 위협했습니다. 또 L씨는 연예인 폭력 추방 궐기대회를 주도한 직후, 조폭들로부터 ‘앉은뱅이로 만들겠다’는 등의 협박을 받았죠.
50대 한 트로트 가수는 89년 지방에서 폭력배 4명에게 뭇매를 맞은 뒤 함께 있던 아들과 함께 납치당했다가, 차창 밖으로 피묻은 손수건을 흔들어 지나가던 택시운전사들에게 구출되는 수난을 겪었어요. 당시 전남 순천에서 공연을 하던 이 가수에게 조폭들이 계약에도 없는 여수나이트클럽 출연을 강요하면서 이러한 폭력 사태가 벌어졌어요.”
조폭들에게 연예인들이 돈을 뜯긴 경우도 부지기수였다고 한다. 80년대 중반 인기 개그맨 S씨·L씨, 여가수 K씨 등은 야간 유흥업소에 출연하는 대가로 출연료 중 30%를 연예기획사 사장과 조폭에게 상납했다고. 또, 한 여가수의 매니저는 계약을 하지 않은 스탠드바에 출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폭력배에게 선전비 등 1천만원의 손해배상을 요구받고 2백50만원을 뜯겼다고 한다. 이들은 “돈을 주지 않으면 다른 야간업소에도 못 나가게 하겠다”고 여가수측을 협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인기 개그맨은 밤업소의 출연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폭력배들에 의해 미사리까지 끌려가 거꾸로 매달려 고문을 당했습니다. 조폭들에게 성폭행당한 여성 연예인도 상당수였지만, 신고는커녕 사실이 알려질까봐 전전긍긍해 수사를 하기 어려웠어요.”
한 중견가수는 자신을 협박한 폭력배를 신고한 데 대한 보복으로 서울 모 호텔 나이트클럽에서 5명의 폭력배에게 허벅지를 칼로 찔렸다. 또 다른 가수는 88년 여의도 한강둔치에서 정체불명의 괴청년 5~6명으로부터 뒷머리를 맞아 두개골이 골절되는 중상을 입었지만 보복이 두려워 경찰에 신고도 못한 채 주위 사람들에게 교통사고를 당했다고 알릴 정도였다고.
정치권과 조폭, 연예인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삼각관계를 형성하며, 스캔들을 일으키기도 했다. 함 변호사는 폭력조직의 연예인에 대한 폭력과 갈취 사례를 수사하던 당시, 몇몇 정치인들로부터 수사 상황을 묻는 전화를 받았다고 한다.
“과거 유흥업소를 개업하면 예외 없이 정치인들이 보낸 화환이 있었습니다. 실제 정치인들이 보낸 것도 있고, 조폭이 해당 정치인에게 양해를 구한 뒤 이름만 빌려 화환을 들여놓기도 했어요. 경찰들에게 ‘잘 봐달라’는 일종의 과시인 셈이죠. 그 대신 조폭들은 자신에게 도움을 준 정치인이 선거에 출마할 때 연예인들을 동원해 선거유세를 돕습니다. 그들은 유명 연예인을 얼마나 동원하느냐로, 자기 힘을 과시하곤 했어요. 일부 정치인은 자신과 친분이 있는 조폭을 관리하며 끈끈한 공생관계를 유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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