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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김동희 기자의 비디오 줌~업

노트북

첫사랑을 지켜 평생을 함께한 노부부의 이야기

사진제공·디자인예술

2006. 08. 21

따뜻하고 순수한 사랑 이야기가 그리운 요즘 시대에 첫사랑을 지켜 평생을 함께한 노부부의 실화는 감동을 주기에 충분하다. 영화는 잔잔한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가슴 깊은 곳에 울림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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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 시절 한번쯤 이런 사랑을 꿈꿔봤을지도 모른다. 첫사랑이 생의 유일한 사랑이 되는 삶. 첫사랑과 결혼해 가정을 꾸리고, 아이들을 기르고, 함께 늙어가다 나란히 이 세상을 떠나는…. 지금껏 그런 사랑을 꿈꾼다면 철없다는 소리를 듣겠지만 사랑이 헐값이 되고, 만나고 헤어지는 일이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는 것처럼 흔해진 지금에도 사람들은 마음 한구석에 순수한 사랑, 영원한 사랑을 향한 동경을 품고 있는 것 같다. 그렇지 않다면 니컬러스 스파크스란 미국 남부의 무명작가가 자기 아내의 외조부모의 실화를 바탕으로 쓴 소설이 밀리언셀러가 되고 다시 그 작품이 영화화돼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잔잔한 감동으로 적시는 일은 없었을 테니 말이다.
영화 ‘노트북’은 미국 남부의 아름다운 강변에 세워진 요양원 건물에서 시작된다. 붉은 노을에 흠뻑 물든 강 수면 위로 우아하게 날아오르는 새들을 바라보는 곱게 나이든 은발의 노부인을 보여주는가 싶더니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화자인 중후한 목소리의 노신사가 등장한다.
“난 대단한 사람이 아닙니다. 평범한 생각을 가진 평범한 사람으로 평범한 삶을 살아왔어요. 내가 죽었다고 기념비가 세워질 일이 없으니 내 이름은 곧 잊혀지고 말겠죠. 하지만 단 한 가지 점에서만큼은 어느 누구 못지않게 성공적인 삶을 살았다고 말할 수 있어요. 나는 어떤 사람을 온 마음과 영혼을 다해 사랑해왔어요. 그리고 그거면 충분한 거죠.”
듀크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활달한 노신사는 치매로 인해 기억이 오래 지속되지 않고 약간의 대인기피 증상까지 있는 노부인에게 찾아와 말벗이 돼준다. 노부인은 매번 그를 알아보지 못하지만 노신사는 실망한 기색 없이 공책(영화의 제목이 된 ‘노트북’)을 꺼내들고 그곳에 쓰인 젊은 남녀의 사랑이야기를 찬찬히 읽어준다.


열일곱 풋사랑에서 시작된 운명적인 사랑이야기
이야기의 주인공인 젊은 남녀 노아와 앨리는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직전 미국 남부 어느 카니발에서 처음 만난다. 가난한 청년 노아는 대학 입학을 앞두고 놀러온 부유한 집안의 앨리에게 첫눈에 반하고, 용기있게 접근해 그녀의 마음을 얻는 데 성공한다. 노아는 지금은 폐가가 된 2백여 년 된 저택으로 앨리를 데려가 언젠가 그곳을 사들이고 새단장해 예전의 화려한 모습으로 돌려놓을 거라는 오랜 꿈을 들려준다. 그곳에서 밀회를 즐기던 두 사람의 행복은 딸의 장래를 걱정한 앨리의 부모에 의해 깨지고 정해진 순서처럼 젊은 연인들은 이별을 맞는다.
2차대전이 일어나고 노아는 군에 입대하고, 군 간호조무사를 자원해 부상병들을 돌보던 앨리는 그곳에서 잘생기고 부유한 젊은이를 만난다. 노아는 전역 후 아버지의 도움을 얻어 옛 저택을 사들여 수리하는 데 온 힘을 쏟는다. 한편 신문에서 자신의 결혼식 예고 기사를 확인하려던 앨리의 눈에 유서 깊은 저택을 혼자 힘으로 새 건물처럼 되돌려놓은 한 젊은이의 사진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7년 만의 재회.
노아 역의 라이언 고슬링은 강렬하면서도 섬세함을 잃지 않는 연기로 자칫 평면적일 수도 있는 순정남 캐릭터에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선댄스영화제 수상작 ‘빌리버’에서 유대인 혈통을 숨기고 나치 신봉자가 된 청년을 인상적으로 그려내 젊은 연기파 배우로 주목받기 시작한 그는 사랑에 빠진 열일곱 앳된 모습과 7년 뒤 삶의 버팀목이라고는 오랜 꿈이던 저택 개조밖에 남지 않은 퇴역 군인의 변화된 모습을 실감나게 전달하기 위해 짧은 기간 10kg이 넘게 체중을 불리기도 했다.
활달하고 정열적인 앨리를 사랑스럽게 그려낸 레이첼 맥아담스는 ‘핫칙’에서 중년 남자의 영혼이 들어간 여고생을 맡아 거침없이 망가지는 연기를 천연덕스럽게 선보였고, ‘퀸카로 살아남는 법’에서는 자기중심적인 고등학생 퀸카를 실감나게 연기했던 젊은 배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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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은 바뀌고 요양원의 두 노인의 모습이 다시 카메라 렌즈에 잡힌다. 관객은 이제 이야기 속 주인공들과 두 노인이 어떤 관련이 있는지 알게 된다. 노부인의 이름은 앨리 캘훈, 공책에 적힌 사랑이야기를 읽어주던 노신사의 이름은 노아 캘훈. 그녀가 과거를 기억해내주길 바라며 자신들의 이야기를 거듭 읽어주고 있는 것이다. 노아를 찾아온 자녀들은 치매에 걸려 과거를 잊어버린 어머니야 어쩔 수 없지만 아버지만이라도 자신들과 함께 살자고 권유하지만 그는 “그녀가 있는 곳이 내 집이고, 내가 있을 곳”이라며 거절한다.
혼돈스럽고 멍한 표정에서부터 흥분하고 불안정한 모습까지 치매환자 역을 자연스럽게 소화해낸 제나 롤랜즈는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영화 ‘글로리아’에서 마피아 조직원의 정부였다가 한 소년을 지키기 위해 마피아 조직에 맞서는 여주인공 역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배우. ‘글로리아’는 섹시 스타 샤론 스톤 주연으로 리메이크되기도 했으나 제나 롤랜즈의 카리스마에 미치지 못한다는 평을 들었다.
사랑하는 아내가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슬픔을 묵묵히 참아내는 노년기 노아 역의 제임스 가너는 50~60년대 미국의 인기 서부 드라마 시리즈 ‘매버릭’에서 타이틀 롤을 맡으며 인기를 모았고, 영화계로 진출해서는 ‘대탈주’ 같은 선 굵은 영화에서부터 달콤한 로맨스 영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에서 연기했다. 멜 깁슨 주연으로 영화화된 ‘매버릭’에선 매버릭을 쫓는 보안관 역할을 맡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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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C type=bold DC-->1<!--DC type=/bold DC--> 노아가 앨리를 생각하며 새로 꾸민 저택에서 그림을 그리는 앨리.<br><!--DC type=bold DC-->2<!--DC type=/bold DC--> 노동자 계층의 청년 노아는 카니발에서 부유한 집안의 소녀 앨리를 보고 첫눈에 반한다.


젊은 연기파 배우들과 관록 있는 배우들이 만들어내는 잔잔한 감동
조연들의 탄탄한 연기도 잔잔한 흐름의 영화에 힘을 실어준다. 앨리 엄마 역의 조안 앨런은 ‘페이스 오프’에서 존 트라볼타가 맡은 형사의 아내 역으로 국내 관객들에게 얼굴을 알린 배우. 결혼을 약속한 남자와 강렬한 사랑을 느끼는 노아 사이에서 갈등하는 딸에게 자신이 과거에 사랑했던 하층민 남자의 모습을 보여주며 설득하려다 도리어 자신의 결정에 의구심을 느끼고 필사적으로 그 사실을 부인하려 애쓰는 장면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준다.
직접 쓴 희곡으로 퓰리처상을 수상하기도 한 지성파 배우 샘 셰퍼드는 가난하지만 시를 음미할 줄 알며, 유일한 재산인 집을 판 돈으로 낡은 저택을 사들여 아들에게 새로 시작할 희망을 주는 노아의 아버지 역을 부드럽고 품격 있게 그려냈다.
영화 속 아름다운 풍광과 어우러지는 재즈의 선율도 가슴을 파고든다. 노아와 앨리의 첫 데이트 때 차가 다니지 않는 밤거리에서 춤을 추는 두 남녀의 모습 위에 흐르는 빌리 할러데이의 ‘I’ll be seeing you’는 영화를 더욱 로맨틱하게 만들어준다. 그 밖에도 듀크 엘링턴 등 재즈 대가들의 음악이 40~50년대 미국 남부의 낭만을 전해주고, 영원한 사랑을 만들어가는 연인들을 응원해준다.
‘노트북’에는 예측을 벗어나는 파격적인 전개는 없다. 꿈같은 사랑의 주인공들도 유치하고 닭살스러운 대화를 나누고, 싸우고, 갈등하는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었음을 보여줄 뿐이다. 하지만 지나친 자극에 지친 마음을 정화시켜주는, 잊고 지내온 추억을 다시금 꺼내 돌아보게 만드는 힘이 있다. 영화관의 대형 화면에서 사람들과 어울려 보는 것보다 아이들을 재워놓고 조명을 낮춘 거실에서 혼자 보는 게 좋은, 그런 영화다.
닉 카사베츠 감독(47)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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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독립영화계의 대표적 감독인 존 카사베츠 감독(89년 사망)과 배우 제나 롤랜즈(76)의 아들. 덴젤 워싱턴이 아들의 심장수술을 위해 병원을 상대로 인질극을 벌이는 아버지로 나온 영화 ‘존 큐’ 등을 연출했다. 대부분의 영화에 아내를 출연시킨 아버지의 뒤를 이어 어머니를 자신의 영화에 자주 출연시키며 돈독한 가족애를 과시하고 있다. 그가 아버지 존 카사베츠의 극본으로 연출하고, 어머니 제나가 조역으로 나오는 등 가족이 총출동한 영화 ‘더 홀’은 97년 칸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숀 펜)과 기술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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