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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Art & Culture

화제의 영화 ‘괴물’ 만든 감독 봉준호

글·김명희 기자 / 사진·조영철 기자, 동아일보 사진DB파트

2006. 08. 18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 탁월한 이야기꾼의 면모를 보여준 봉준호 감독이 18년 동안 구상한 끝에 만든 영화 ‘괴물’이 장안의 화제가 되고 있다. 고교시절 한강에서 실제로 괴물을 본 후 영화를 구상하게 됐다는 봉 감독이 들려준 제작 뒷얘기.

화제의 영화 ‘괴물’ 만든 감독 봉준호

”새로운 장르에 도전하며 부담감이 커 배우들은 눈빛만 봐도 서로 마음을 알 수 있는 이들을 캐스팅했어요.”

“괴물이 나오는 영화를 만들겠다고 하니까 주변 반응이 썰렁했어요. ‘왜 갑자기 이무기 영화를 만들려고 하느냐?’ ‘왜 영화 인생에 오점을 남기려고 하느냐?’며 다들 만류했죠(웃음). 그런 반응들이 오히려 승부 근성을 자극했어요.”
‘살인의 추억’으로 5백만 관객을 모은 봉준호 감독(37)이 괴물 영화를 만든다고 했을 때 주변 반응은 싸늘하기 그지없었다고 한다. 자칫하면 어설픈 괴물이 등장하는 삼류 SF영화가 될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 더군다나 봉 감독이 18년 전 실제로 한강에서 괴물을 본 적이 있으며 그 기억이 이번 영화의 모티프가 됐다고 말했을 때 많은 사람들은‘요즘 봉 감독이 제정신이 아닌가보다’라는 진심어린 걱정을 하기도 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잠실대교가 보이는 아파트 13층에 살았는데 어느 날 창문 밖을 내다보다가 잠실대교 교각에 뭔가 매달렸다가 떨어지는 광경을 보게 됐어요. ‘괴물을 봤다’고 하면 학창시절 혹시 본드를 흡입한 게 아니냐고 의심하는 분들도 있는데 전 정말 성실한 학생이었습니다(웃음). 다만 뒤늦게 사춘기를 겪으며 멍하게 있는 시간이 많았을 뿐이죠. 입시 때문에 너무 힘들어 헛것을 봤을 수도 있고요.”
지난 7월27일 베일을 벗은 ‘괴물’은 그런 주변의 우려를 말끔히 씻어내기에 충분했다. 영화는 한강 오염으로 인해 돌연변이로 생긴 괴물에게 딸을 잃은 가족이 주변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고립된 채 괴물과 사투를 벌인다는 내용. 한강에 괴물이 산다는 다소 황당한 설정은 탄탄한 시나리오와 변희봉 송강호 박해일 배두나 등 연기파 배우들의 완벽에 가까운 호흡, 치밀한 컴퓨터그래픽 작업 등으로 인해 관객들에게 거부감 없이 다가온다. 미완성 상태로 지난 5월 칸영화제에서 상영돼 극찬을 받은 데 이어 7월 초 열린 기자시사회에선 이례적으로 기립박수를 받았다.
봉 감독은 18년 전 자신의 눈으로 직접 봤지만 아무도 믿어주지 않던 이야기를 완성도 높은 영화로 만들어낼 수 있었던 데는 무엇보다 자신을 믿어준 스태프들의 힘이 컸다고 한다. ‘괴물’에는 ‘살인의 추억’ ‘플란다스의 개’ 등 전작을 함께 만들었던 스태프들이 그대로 합류했다.
“영화를 시작하며 ‘반지의 제왕’에서 절대 반지를 파괴하러 가는 프로도의 심정이었어요. 프로도의 곁에는 늘 샘이 있잖아요. 그래서 그동안 같이 일했던 스태프들에게 ‘여러분 중 단 한 명이라도 샘이 돼주면 좋겠다’고 했더니 그중 두 명이 바로 ‘감독님의 샘이 되겠다’고 문자메시지를 보냈더군요(웃음). 영화의 첫 번째 관객이기도 한 스태프들이 저를 믿고 따라준 게 큰 힘이 됐어요.”
봉 감독은 배우 역시 자신과 익숙한 사람들을 택했다. 송강호 박해일은 ‘살인의 추억’에서, 배두나는 ‘플란다스의 개’에서 인연을 맺었고 변희봉은 두 영화에 모두 출연했다.
“컴퓨터그래픽을 해야 하는 것만으로도 10톤 트럭 1백 대 분량의 부담감을 안고 있는데, 배우들마저 손발이 맞지 않는 사람들과 작업했다가는 감당을 못할 것 같았어요. 그래서 처음부터 눈빛만 봐도 서로 마음을 알 수 있는 배우들을 캐스팅해놓고 시나리오 작업을 했죠.”

화제의 영화 ‘괴물’ 만든 감독 봉준호

봉준호 감독은‘소설가 구보씨의 일일’로 유명한 월북 작가 박태원씨의 외손자다. 이야기꾼으로서 그의 면모는 외조부의 피를 타고난 덕분인 듯하다.


변희봉 송강호 박해일 배두나 등 배우들은 파상풍 주사까지 맞아가며 한강 하수구를 샅샅이 훑는 험한 연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변희봉 선생님과 송강호씨는 한강에서 매점을 하며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적인 모습을 가장 잘 그려낼 수 있는 배우들인 동시에 극한 상황을 맞았을 때 폭발적인 에너지를 발산하는 배우들이죠. 박해일씨 역은 제 대학 동기 중 실제 모델이 있었어요. 얼굴은 잘생겼는데 유난히 투덜대고 화염병을 잘 던지던 친구였죠. 가장 특이한 게 고모 역을 맡은 배두나인데 평소에는 약간 겉돌지만 마지막에 항상 결정타를 날린다는 점에서 배두나씨의 이미지와 잘 맞는다고 생각했어요.”

화제의 영화 ‘괴물’ 만든 감독 봉준호

동물도감 뒤져가며 ‘한국형 괴물’ 디자인 완성
‘괴물’의 또 다른 주인공이자 가장 큰 관심은 바로 괴물 캐릭터다. 1천5백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선택됐다는 괴물은 버스만한 크기에 다리 한 쌍과 기형다리 한 개, 어류·양서류·파충류의 특징을 지닌 돌연변이의 모습을 가졌다. 고질라처럼 크지도 않고 에일리언처럼 징그럽지 않은 그야말로 ‘한국형 괴물’이다. 봉 감독은 크리처(creature) 디자이너 장희철씨와 동물도감을 뒤져가며 괴물을 디자인했고 ‘스타워즈 에피소드 1’ ‘쥬라기 공원’ 등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케빈 레퍼티가 특수시각효과를 총괄, 괴물의 완성도를 높였다.
“한강이라는 일상적인 공간에서 나오는 괴물은 현실성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송강호씨와 어울릴 정도의 아담한 크기를 선택했어요. 또 에일리언의 긴 머리처럼 포인트가 있어야 할 것 같아 입 모양에 집중했어요. 사람을 삼켰다 뱉었다 해야 하니 입의 디테일에 신경을 많이 쓴 거죠.”
봉 감독은 ‘괴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기에 앞서 지난 6월 중순 남북이산가족 상봉 당시 언론에 이름이 오르내리기도 했다. 그의 어머니가 북한에 사는 큰언니와 상봉한 것. ‘천변풍경’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一日)’로 유명한 월북 작가 고 박태원씨가 봉 감독의 외조부다. ‘살인의 추억’ ‘괴물’ 등의 시나리오에서 보여준 봉 감독의 이야기꾼으로서의 면모는 외조부의 피를 물려받았기 때문인 듯도 하다. 그래서인지 봉 감독은 다음에는 분단과 통일을 소재로 한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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