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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프로의 또다른 시도

어린이 눈높이 맞춘 한국역사만화 시리즈 완간한 만화가 이현세

기획·최호열 기자 / 글·백경선‘자유기고가’ / 사진ㆍ조영철 기자

2006. 01. 10

한국 만화계의 거장 이현세씨가 최근 어린이 역사만화 시리즈 ‘만화 한국사 바로보기’를 완간했다. 청소년과 성인 대상의 만화를 주로 그린 그가 어린이 역사만화를 그리게 된 이유와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들어보았다.

어린이 눈높이 맞춘 한국역사만화 시리즈 완간한 만화가 이현세

“만화가로 쌓아온 그간의 노하우와 ‘이현세 브랜드’를 동원해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우리 역사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공포의 외인구단’ ‘천국의 신화’로 잘 알려진 인기 만화가 이현세씨(50)가 선사시대에서 1945년 광복될 때까지의 우리 역사를 만화로 엮은 어린이 학습만화 시리즈 ‘만화 한국사 바로보기’(전 10권)를 완간했다. 그의 만화 주인공이었던 까치, 엄지, 동탁, 두산이 함께 과거 여행을 떠나 역사적인 사건을 직접 체험한다는 내용으로 3년 전부터 준비해 2004년 11월 1권을 출간한 후 일년여 동안 매달려온 끝에 지난 12월 초 끝을 맺은 것.
완간 소식을 듣고 작업실을 찾았을 때 그는 무척 밝은 표정이었다. “지난해 3월 만났을 때보다 더 잘 웃는 것 같다”고 하자 “요즘 그런 소리 많이 듣는다”며 또 웃는다.
“어린이 만화를 그려서 그런지 요즘 많은 사람들이 저더러 이미지가 한결 부드러워졌대요. 예전엔 저 자체가 꽃이고 아이였기 때문에 그것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는데(웃음), 몇 년 전부터 꽃이 좋아지고 아이들을 보면 예쁘고 곱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더라고요. 나이를 먹으니까 사람이 변하나봐요.”
그가 정말 변한 것일까. 만화가의 길을 걸어온 지 28년 만에 처음으로 학습만화를 내놓아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만날 야한 만화, 폭력적인 만화나 그리던 작가가 웬 어린이 학습만화냐고 묻는 사람들도 있어요(웃음). 중국의 진시황이나 삼국지는 역사라고 믿으면서 우리의 단군이나 고조선에 대해서는 전설쯤으로 알고 있는 아이들을 보고 화가 났어요. 우리 역사에 대한 동경이 없으니까 믿질 않는 거죠.”
그는 아이들에게 우리 역사에 대한 ‘동경심’과 ‘자긍심’을 심어주고 싶었다고 한다. 그리고 암기 위주의 단편적이고 파편적인 학교 역사교육의 문제점을 극복할 수 있도록 우리 역사의 전체 흐름을 볼 수 있는 개요를 알려주고 싶었다고. 만화로 된 역사물은 아이들도 단시간에 끝까지 읽을 수 있어 역사 전체를 한눈에 파악하기에 적당하기 때문이다.
그가 역사에 관심을 가진 건 어제오늘의 이야기는 아니다. 천년의 고도 경주에서 자라 어려서부터 역사에 관심이 많았다는 그는 만화 ‘천국의 신화’로 ‘표현의 자유’를 놓고 몇 년 전부터 지루하게 법정 싸움을 벌이는 동안 우리 역사에 대해 보다 구체적으로 고민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어린이 눈높이 맞춘 한국역사만화 시리즈 완간한 만화가 이현세

“발해나 삼국의 역사는 알면 알수록 자랑스러운 역사예요. 이런 우리 역사에 대한 자긍심을 어린아이들에게 심어 줄 필요가 있다는 걸 느꼈어요. 그래서 용기를 냈던 거예요.”
그는 역사를 소재로 한 학습용 만화를 그리면서 무엇보다도 ‘작가적 상상력’을 참는 것이 힘들었다고 한다.
“교양물이 아닌 학습용이라 책임감이 컸어요. 들판을 그려도 좀 더 멋지게 그리고 싶은데, 고증에 신경 쓰다 보니 그러질 못했어요. 옥수수가 무르익는 들판의 모습을 그리고 싶어도 먼저 옥수수가 언제 우리나라에 들어왔는지를 따져봐야 했으니까요. 역사적 사실에 충실하기 위해 한국역사연구회에서 감수를 받았어요.”
그는 “아이들 눈높이를 맞추는 것도 힘들었다”고 한다. 출판사 쪽에서 ‘잔인하다’ ‘섬뜩하다’면서 자체 심의를 통해 삭제되고 바뀐 것이 꽤 많다고. 그래도 그가 끝까지 고집한 것이 있는데 바로 독수리다.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이 일어나는 장면마다 독수리가 나오는데, 독수리의 모습이 날카롭고 섬뜩하니 다른 것으로 바꾸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그것만은 절대 양보할 수 없었다고 한다. “한국사에서 독수리는 민족의 기상이며 희망을 상징하기 때문”이라고.

“아이들을 위한 것이라고는 하지만 부모들이 함께 읽고 역사에 대해 이야기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어요. 솔직히 어른들이 읽어도 재미있어요(웃음). 10년 뒤쯤 제 손자 손녀들이 봐도 결코 부끄럽지 않을 자신이 있어요.”

“아이들에게 우리 역사에 대한 동경과 자긍심을 심어주고 싶었어요”
어린이 눈높이 맞춘 한국역사만화 시리즈 완간한 만화가 이현세

이현세씨는 앞으로 세계사를 만화로 다루고 싶다고 귀뜀했다.


지난해 1월부터 한국만화가협회 회장직을 맡고 있는 그는, “평생 아쉬운 소리 할 일이 없었는데 요즘엔 정부 지원 받으려고 국회의원 만나서 사정도 한다”고 말했다. 그가 성격에도 맞지 않는 아쉬운 소리를 하면서 추진하는 일은 다름 아닌 ‘누구나 만화를 그릴 수 있고, 볼 수 있는’ 웹진을 만드는 것.
“만화가들이 자유롭게 작품을 발표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주고 싶었는데, 다행히 일이 잘 풀려 오는 6월쯤에는 모든 시스템이 구축될 것 같아요.”
2007년까지 협회장으로서 최선을 다할 것이라는 그는 정작 자신의 작품활동은 현재 스포츠신문에 연재 중인 ‘천국의 신화’를 오는 3월 마무리하는 대로 잠시 중단할 계획이라고 한다.
“만화를 그리기 시작해 한 달도 쉬어본 적이 없어요. 먹고 자고, TV 보고, 비디오 보고, 술 마시고 다음 날 하루 종일 잠만 자고….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한번 지내보고 싶어요. 그러면서 이제까지 뭘 하며 살았는지 돌아보고, 혼자서 자유롭게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도 생각해보고 싶고요. 다들 ‘잘 생각했다’고 하는데, 집사람은 ‘둘째딸 미국 유학 보내놓고 무슨 소리 하냐’며 한숨을 쉬더라고요. 그래서 평생 먹여 살렸으니 1년만 나를 좀 먹여 살려달라고 부탁을 했어요(웃음).”
인터뷰가 끝날 즈음, 그는 갑자기 책 한 권을 보여주었다. 일본에서 베스트셀러가 됐던 만화로 한국을 비하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 지난해 큰 파문을 일으킨 ‘혐한류’였다. “이 책에 어떻게 대응을 해야 할지 곰곰이 생각 중”이라는 그의 눈빛에서 강한 의지가 보였다. 그리고 그는 “세계사 속에서 우리 한국은 항상 잠만 자고 있다”면서 “앞으로 세계사를 만화로 다루면서 그 속에 한국사를 녹여넣는 작업을 해보고 싶다”고 살짝 귀띔해주었다. 역시 그는 만화 독자들 곁을 오랫동안 떠나 쉬지는 않을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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