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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화제

우주왕복선 디스커버리호 ‘엄마 선장’ 아일린 콜린스

2주간의 우주탐사 임무 마치고 무사 귀환

기획·강지남 기자 / 글·권순택’동아일보 워싱턴 특파원‘ / 사진·로이터 제공

2005. 09. 12

지난 8월9일 2주일간의 우주탐사 임무를 마치고 무사히 지구로 귀환한 우주왕복선 디스커버리호의 선장은 마흔여덟 살의 여성 아일린 콜린스. 그는 3년간 아르바이트해 모은 돈으로 겨우 비행학원에 등록했을 정도로 가난한 집안환경에 굴하지 않고 열정과 끈기로 꿈을 이룬 인물이다.

우주왕복선 디스커버리호 ‘엄마 선장’ 아일린 콜린스

“우리는환상적인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안전하게 돌아와 정말 기쁩니다.”
지난 8월9일 새벽 5시12분(한국시간 밤 9시12분)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미국 캘리포니아의 모하비 사막 한가운데 있는 에드워즈 공군기지 활주로에 우주왕복선 디스커버리호가 굉음을 내며 멈춰 섰다. 지난 7월26일부터 2주일 동안 전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키며 가슴 졸이게 만들었던 우주왕복선 디스커버리호가 무사히 임무를 수행하고 안전하게 귀환하는 순간이었다. 잠시 후 디스커버리호에서 내린 7명의 승무원을 대표해 소감을 밝힌 사람은 놀랍게도 마흔여덟 살의 여성 아일린 콜린스 선장이었다.
“오늘은 우리에게 참 씁쓸하고도 달콤한 날입니다. 우리는 지금 컬럼비아호 승무원들과 그 가족들을 기억합니다. 우리의 임무는 컬럼비아호의 임무를 연장한 것이었습니다.”
국제우주정거장(ISS)에 보급품을 전달하고 고장난 장비들을 수리하는 계획된 임무 이외에도 우주탐사 역사상 최초로 시도된 ‘우주 유영을 통한 우주선 선체 수리작업’이란 기록을 세우고 돌아온 디스커버리호의 여선장은 그 영광을 먼저 비운의 우주왕복선 컬럼비아호에 돌림으로써 유가족들의 슬픔을 달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꼭 2년 반 전인 2003년 2월1일 지구로 귀환하던 컬럼비아호는 폭발사고로 승무원 전원이 숨져 비운의 우주왕복선이 되었다.
최초의 우주왕복선 여성 승무원이자 선장 기록을 갖고 있는 콜린스는 자상한 성격 덕분에 동료들 사이에서 ‘엄마(mom)’라 불린다. 자제심이 강하고 포기할 줄 모르는 강인한 여성이지만, 한편으로는 엄마처럼 따뜻하고 다정한 사람이라는 평을 듣고 있다. 기자회견에 나선 그의 동료 스티븐 로빈슨은 그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우주를 탐사하는 내 인생이 어떠한 소설보다 더 흥미로워요”
우주왕복선 디스커버리호 ‘엄마 선장’ 아일린 콜린스

디스커버리호 귀환 환영식에 가족들과 함께 참석한 콜린스 선장.


“콜린스 선장은 다정한 엄마처럼 동료들을 돌봐요. 만약 당신이 감기에 걸렸다면 그는 당신 집으로 전화를 걸 게 분명해요. 기분이 어떤지 묻고 절대 밖으로 나가지 말라고 당부하지요. 바로 이런 엄마 같은 사람이 내가 지금까지 만나본 어떤 우주비행사보다 더 뛰어난 기술을 가진 사람이에요. 그의 비행기술은 한마디로 정의하기 힘듭니다. 마치 음악가의 뛰어난 재능 같다고나 할까, 기계를 다루는 예술적인 감각을 가졌다고나 할까….”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인터넷 홈페이지에는 콜린스의 취미가 독서라고 돼 있다. 그러나 그는 가장 좋아하는 책을 소개해달라는 한 기자의 질문에 당황해하며 “사실을 고백하자면요, 지루해서 소설을 잘 읽지 못해요(웃음). 내 삶은 책에서 읽을 수 있는 것보다 더 위에 있기에 책에서는 흥미를 느낄 수가 없어요”라며 우주를 유영하는 흥미진진한 자신의 삶에 대해 강한 자부심을 내보였다. 어쩌다 여유가 생겨도 비행기술에 관한 매뉴얼이나 모의비행 훈련팀이 보내온 보고서를 탐독하기에 바빠 책 읽을 여유가 없다는 것. 그는 “99년 우주비행 때 CD플레이어를 가져갔지만 한번도 음악을 듣지 못했다”고도 털어놓았다.
콜린스는 소녀 시절부터 우주비행사를 꿈꿨다. 어릴 적부터 우주 탐험에 관한 책들을 탐독하며 우주에 관한 끝없는 상상에 빠져들었다. 비행기 조종사나 우주비행사들을 동경하며 ‘나도 그들처럼 되고 싶다’는 꿈을 키웠다. 특히 2차 세계대전 당시 활약한 여성 공군 조종사들과 미국 최초의 유인 우주선 머큐리호 승무원들에 크게 매료되었다.

우주왕복선 디스커버리호 ‘엄마 선장’ 아일린 콜린스

7월28일 국제우주정거장에 도착한 디스커버리호에서 콜린스 선장이 체조선수 같은 묘기를 부리고 있다.


그의 부모는 딸을 종종 집 근처 공항으로 데려가 비행기가 이착륙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격려했다. 하지만 부모의 이혼으로 경제사정이 어려워지면서 콜린스는 3년 동안 아르바이트로 1천 달러를 모아 열아홉 살 때 비로소 비행훈련 학원에 등록할 수 있었다. 콜린스는 가정형편 탓에 2년제 대학에 진학했고 졸업 후에는 시러큐스대학에 장학생으로 편입, 수학과 경제학을 전공했다.
1979년 마침내 콜린스는 학군단(ROTC)을 거쳐 공군비행사가 됐다. 이후 스탠퍼드대학과 웹스터대학에서 각각 과학과 우주시스템 관리 석사학위를 받았고 89년 공군시험비행학교에 들어감으로써 우주비행사의 꿈에 한발짝 더 다가가게 됐다. 91년 7월 콜린스는 마침내 NASA 소속 우주비행사가 됐고, 우주선 지원팀의 여러 요직을 거친 뒤 95년 2월 최초의 여성 우주왕복선 조종자로서 8일 동안의 첫 우주비행을 하게 됐다. 세 번째 우주비행이자 여성 최초로 선장을 맡았던 99년 7월 우주비행에서는 전기 결함으로 비상착륙까지 고려해야 했던 위기상황을 침착하게 극복해 찬사를 받기도 했다. 덕분에 그는 일찌감치 컬럼비아호 참사 이후의 첫 우주왕복선인 디스커버리호를 책임질 적임자로 꼽혔다. 이번 비행으로 콜린스는 모두 8백70시간의 우주비행 기록을 세우게 됐다.
“사람들은 지구를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목숨을 바쳐왔어요. 우주 비행은 위험하지만 위험을 감수할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죠.”
콜린스는 공군 근무 시절 만난 동료 비행사와 결혼해 딸(9)과 아들(4)을 두었다. 그는 짬이 날 때마다 아이들에게 엄마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준다고 한다. 특히 엄마의 안전을 걱정하는 딸에게는 비행에 관한 지식들을 상세하게 설명해주면서 안심시킨다고. 이번 비행을 앞두고 가족들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음은 당연지사. 그러나 콜린스는 “디스커버리호의 우주비행이 안전하지 않다고 판단됐다면 이 임무를 수행하고 싶지 않을 거야”라며 “무사히 돌아오겠다”고 아이들과 약속했다.
그는 약속대로 6명의 동료 승무원들과 함께 성공적으로 임무를 마치고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다. 평소 그는 롤러코스터 타는 것을 두려워할 정도로 위험한 일에는 뛰어들지 않는 성격이라고 한다.
“‘유일한 여성 선장’이란 타이틀이 오래 가지 않길 바라요. NASA에서 우주비행사의 최우선 임무는 안전과 성공일 뿐, 여자인지 남자인지는 상관없는 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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