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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가는 리더

‘타임’ 선정 ‘세계 100대 인물’에 뽑힌 삼성 이건희 회장의 ‘리더십 교육 & 숨은 재능 찾기’

“일류 리더는 남의 지혜를 사용할줄 알아야 합니다”

■ 글·최호열 기자 ■ 사진·동아일보 사진DB파트

2005. 05. 02

국내 기업인으로는 처음으로 ‘타임’지 선정 ‘세계 100대 인물’에 뽑힌 삼성 이건희 회장. 삼성을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시킨 그의 리더십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미국 일본 등에서도 연구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의 리더십을 엿보게 하는 일화와 경영 일선에 나선 2세들에 대한 리더십 교육을 취재했다.

‘타임’ 선정 ‘세계 100대 인물’에 뽑힌 삼성 이건희 회장의 ‘리더십 교육 & 숨은 재능 찾기’

삼성 이건희 회장(63)이 최근 국내 기업인으로는 처음으로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 선정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올해의 인물 100인’에 뽑혔다. 기업인(Builders and Titans) 부문에 루퍼트 머독, 빌 게이츠 등과 함께 이름이 오른 것. ‘타임’지는 이 회장을 ‘무명의 삼성을 세계 최고의 가전업체로 만들어 소니를 위협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타임’뿐 아니라 영국의 경제일간지 ‘파이낸셜타임스’에서 선정한 ‘존경받는 세계 재계 리더’에서도 한국인으로는 유일하게 순위에 오르는 등 이 회장은 세계적인 경영인으로 주목받고 있다. 하버드경영대학원(HBS)에서는 삼성전자의 글로벌마케팅이 커리큘럼에 들어 있을 정도.
삼성전자의 성장은 세계가 놀랄 정도다. 저가 가전업체이던 기업이 반도체, 디지털 TV, 휴대전화 등 고부가가치 제품을 통해 순이익 1백억 달러(약 12조원), 브랜드 가치 1백26억 달러(약 14조7천억원)의 글로벌 업체로 탈바꿈했기 때문이다. 올해는 1백27억 달러의 브랜드 가치에 그친 소니를 추월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3월10일자 기사에서 삼성전자와 소니의 위상이 뒤바뀌었다고 보도했다.
이 같은 삼성의 비약적인 발전 이유에 대해 일본 경제주간지 ‘도요게이자이’는 최근 특집기사에서 이 회장의 강력한 리더십과 인재에 대한 끊임없는 투자, 속도감 있는 경영 등을 꼽았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이건희 회장과 같은 강력한 리더십을 가진 경영자가 없는 것이 일본 기업의 최대 약점’이라고까지 표현했다. 이 회장의 강력한 리더십이 오늘날 삼성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리더십의 사전적 의미는 지도자로서의 능력이나 자질, 통솔력, 지도력을 일컫는다. 미국의 역대 대통령 중에서도 리더십이 손꼽히는 아이젠하워는 “리더십이란 자신이 성취하고 싶은 일을 다른 사람이 자발적으로 하도록 만드는 기술”이라고 말했다. 의욕과 권한만 갖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삼성 창업주인 고 이병철 회장은 78년 사업 감각이 뛰어나고 장사에 관심이 많은 둘째 아들 대신 상상력이 풍부하고 좀더 멀리 내다보는 셋째 아들 이건희 회장을 후계자로 선정했다. 그리고 10여 년 동안 그림자처럼 데리고 다니며 경영자로서의 리더십을 가르쳤다.
87년 그룹 회장에 취임한 이 회장은 ‘양의 경쟁에서 질의 경쟁으로’ 패러다임을 바꾸는 신경영을 외치는 등 끊임없이 변화와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며 오늘의 삼성을 이룩했다.
드라마 즐겨 보며 시뮬레이션 통해 상상력과 직관력 키워
미래에 대한 비전 제시는 절로 나오는 게 아니다. 미래 변화에 대한 통찰력과 직관으로 기회를 선점하는 전략을 세우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관련 분야에 대해 전문적인 지식을 갖춰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는 이공계 출신 CEO에게는 문학과 철학을, 상경계 출신에게는 전공자 못지않은 기술을 터득할 것을 요구한다. 이회장 또한 경제학을 전공했지만 웬만한 첨단 전자제품은 직접 분해하고 조립할 수 있다. 삼성 관계자에 따르면 지금도 외국 경쟁사에서 새로운 제품이 출시되면 곧바로 구입해 한남동 자택에서 직접 분해하고 재조립하며 기능을 파악해 삼성 기술자들이 혀를 내두른다고.
90년대 초 당시 신라호텔 책임자와의 대화는 그가 경영자에게 요구하는 지식이 어느 정도인지를 알 수 있게 하는 일화로 사원들 사이에 전해지고 있다. “도미는 어디 산이 좋죠?” “남해가 플랑크톤이 많아 최고입니다.” “몇 kg짜리가 가장 맛있죠?” “1.5kg입니다.” “수율은 얼마나?” “30~35% 수준입니다.” “열량은요?” “….”

‘타임’ 선정 ‘세계 100대 인물’에 뽑힌 삼성 이건희 회장의 ‘리더십 교육 & 숨은 재능 찾기’

‘새로운 신화창조’라는 슬로건을 쓰는 이건희 회장(왼쪽). 그는 항상 다른 선진국 제품과 비교하며 1등 제품을 생산할 것을 주문해왔다.


책임자가 답변을 못하자 이 회장이 “좋은 서비스는 고객의 건강 상태까지 서비스해줘야 한다”며 그 자리에서 구체적인 열량 수치까지 알려주었다고 한다.
이 회장은 “CEO가 되려면 최종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는 결단력과 책임감, 사명감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결단을 하기 전까지 많이 생각하는데, 이에 대해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이 회장의 특징은 급한 일이 있을 때도 뒤로 한걸음 물러서서 바라보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 회장은 특히 듣기에 강하다는 게 삼성 관계자들의 이야기. 어릴 때부터 주로 남의 말을 듣는 성격이었던 그는 부회장이 되면서 아버지로부터 붓글씨로 쓴 ‘경청(傾聽)’이란 글귀를 받았는데, 이것은 그의 ‘듣기’ 성향을 더욱 굳게 만들었다고 한다.
비디오와 드라마를 즐겨 보는 이 회장은 해외출장 때문에 드라마 시청이 불가능하면 국내에서 비디오테이프나 DVD를 공수해 보기도 한다. 그런데 그냥 보는 것이 아니라 드라마 속의 조연이나 감독 입장이 되어 즐긴다고. 어느 계열사 사장은 함께 외국 출장을 갔다가 “나도 안 본 테이프인데, 함께 보면서 앞으로 진행될 내용을 맞추자”는 이 회장의 제안을 받기도 했다고 전했다. 이처럼 드라마를 보면서도 시뮬레이션을 통해 상상력과 직관력을 키우고 이를 통해 인생과 사업을 파악한다고.
무엇이든 삼성그룹에서 내려지는 중요 결단은 그의 몫이다. 하지만 결단이 내려진 후 구체적인 시행에 따른 권한은 책임자들에게 위임한다. 이 회장이 임원들에게 권하는 필독서 중 하나가 ‘한비자’다. 거기엔 “삼류 리더는 자기 능력을 사용하고 이류 리더는 남의 힘을 이용하고 일류 리더는 남의 지혜를 사용한다”는 말이 나온다. 선친인 이병철 회장은 ‘의인불용 용인물의(擬人不用 用人勿擬, 믿지 못하면 맡기지 말고 맡겼으면 믿어라)’라는 말을 했는데, 이 회장 또한 이 말을 적극 수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IMF 후 빅딜이 한창 이루어지던 무렵 삼성과 협상을 벌이던 한 그룹의 총수는 나중에 가슴을 쳤다. 자기 회사의 협상팀이 사소한 결정 사항조차 일일이 총수의 의견을 묻느라 우왕좌왕하는 사이 삼성의 협상팀이 전권을 갖고 상대방 제안에 대해 그 자리에서 수용 여부를 최종 결정한 것.
이 회장은 또한 중국의 검각이라는 험한 골짜기 앞에서 부하들이 망설이자 “내가 먼저 가겠다”며 담요 한 장을 두르고 절벽 아래로 굴렀다는 위나라 장군 등애를 예로 들며 솔선수범하는 리더십을 강조해왔다고 한다. 스스로 행동하기보다 주위의 평가를 의식하고 주위에서 원하는 대로 움직여서는 훌륭한 리더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상대방을 진심으로 아끼는 인간미는 리더십의 가장 중요한 요소
이 회장의 리더십 핵심은 ‘인재경영’이라 할 수 있다. 삼성에서 인재에 대한 애착은 역사가 깊다. 이병철 회장 때부터 최고 경영철학이 ‘인재 제일주의’였다. 이 회장은 이를 ‘핵심 인재’라는 키워드로 격상시켰다.
그는 핵심 인재를 발굴, 육성하는 것을 경영자의 최고 리더십으로 친다. 계열사 사장 평가 기준의 40%를 인재 발굴에 둘 정도. 최고급 인재라면 그가 직접 나서 설득을 통해 삼성맨으로 만들 정도다.
이회장은 “앞으로는 천재 한 사람이 10만 명, 20만 명을 먹여 살리는 시대가 온다” “마차를 잘 만드는 인재도 중요하지만, 마차에서 자동차를 꿈꿀 수 있는 인재가 우선이다”는 말을 즐겨 해왔다. 그가 강조하는 ‘핵심 인재’ ‘천재론’의 핵심이다. 그의 이런 생각은 고스란히 아들 이재용 상무에게도 이어져 그의 집무실엔 ‘삼고초려’라고 쓰인 액자가 걸려 있다고 한다.

‘타임’ 선정 ‘세계 100대 인물’에 뽑힌 삼성 이건희 회장의 ‘리더십 교육 & 숨은 재능 찾기’

이 회장을 뒤에서 수행하는 이재용 상무(맨 왼쪽). 이 회장은 간섭보다는 일을 맡기고 중간중간 맥을 짚어주며 경영수업을 시키고 있다.


이 회장은 진정한 ‘용인술’에 대해 영화 ‘벤허’의 전차 장면을 예로 들곤 한다고. 멧살라는 채찍으로 말을 강하게 후려치는데 벤허는 채찍 없이 경주에서 이긴다. 이 회장은 벤허가 경기 전날 밤 네 마리의 말을 어루만지면서 용기를 북돋워주는 것에 용인술의 의미를 부여한다고. ‘인간미’를 가장 중요한 리더십 요소로 여기는 것이다.
“인간미의 본질은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상대방을 진심으로 아끼고 보살피는 마음입니다. 무조건 부드럽고 싫은 소리를 안 하는 것이 인간미라고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상사가 부하의 잘못을 지적하고 지도하기 위해 꾸짖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인간미의 발로죠. 단 질책은 정말 그 사람을 키우기 위해 자극이 필요하다고 판단될 때만 해야 합니다.”
회사에 수백억원의 손해를 끼쳤더라도 실패한 경험에서 교훈을 처절하게 체득했다면 회사에 기여할 수 있는 인재라는 게 이 회장 지론이다. 수년 전, 이 회장은 사장들을 모아놓고 종합비타민제를 나눠주며 “여러분 중 회사에 수백억 손해 끼친 분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분들이 몸이 아프면 제가 손해입니다. 실패한 경험에서 많이 배웠을 테니 이제 약 잘 먹고 건강관리 잘 해서 실패를 만회해주세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실제 그는 실패를 경험한 사람이 좌절을 딛고 성공했을 때 전격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아무리 능력 있는 최고경영자라 해도 모든 사업에서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기 때문에 실패했다고 무조건 버리면 인재를 잃는 것이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한편 그는 리더로 성공하려는 젊은 인재들에게 “윗사람만 신경 쓰는 ‘I자형 인재’가 아니라 자기 일과 관련된 여러 분야에 대해 입체적으로 사고하며 옆, 아랫 사람들로부터 리더십을 인정받을 수 있는 ‘T자형 인재’가 되라고 충고한다. 그리고 리더의 조건으로 전문성과 도덕성, 비전 제시 능력, 일에 대한 열정, 변화와 혁신을 수용할 수 있는 유연성 등 다양한 자질과 능력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한다. 여기에 ‘지행용훈평(知行用訓評)’을 갖춰야 한다고 말한다. 많이 알고, 실천력이 있으며, 사람을 제대로 다루고, 지도하고, 평가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
2세들에게도 인간 이해 폭 넓히는 교양 강조하고 ‘사람 다스리는 법’ 전수
이 회장의 리더십은 현재 이재용 삼성전자 상무, 이부진 신라호텔 상무, 이서현 제일모직 상무보 등 2세들에게 전수되고 있다.
이재용 상무가 서울대 동양사학과에 진학한 것부터 그의 리더십 수련과 관련이 있다. 대학 전공을 놓고 고민할 때 할아버지 이병철 회장이 “경영자가 되기 위해서는 경영이론을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인간을 이해하는 폭을 넓히는 것도 중요하다. 교양을 쌓는 학부 과정에서는 사학이나 문학과 같은 인문과학을 전공하고, 경영학은 외국에 유학가서 배우면 좋겠다”고 조언했던 것.
이재용 상무는 23세에 삼성에 입사해 33세에 임원이 되었다. 후계자들은 보통 ‘아버지의 밥상머리’에서부터 후계자 수업을 받기 시작한다. 선대부터 내려온 경영철학과 리더십을 곁에서 자연스럽게 배우고 익히는 것이다. 삼성의 한 임원은 “이 회장은 자식들에게 사람을 다스리는 법의 중요성을 강조해왔다”며 “이 상무가 임원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저렇게까지 철저하게 교육되는구나 하는 생각에 무서울 정도”라고 말한다.
이 상무는 이 회장의 지시로 국내외 경영현장에 자주 출장을 가는데 이때 현지 직원들과 함께 점심식사하는 것을 빼놓지 않는다고 한다. 스킨십을 통한 리더십을 키우는 것이다. 또한 전문성을 쌓기 위해 삼성경제연구소 전문가들과 정기적인 모임을 갖고 있는데, 요즘은 생명공학 분야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한다고 한다. 삼성 주요 계열사 사장들이나 핵심 임원들도 그의 ‘가정교사’ 역할을 하고 있다고.

‘타임’ 선정 ‘세계 100대 인물’에 뽑힌 삼성 이건희 회장의 ‘리더십 교육 & 숨은 재능 찾기’

이 회장의 리더십을 배우고 있는 이재용 삼성전자 상무와 이부진 신라호텔 상무.


글로벌 경영감각을 익히는 과정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2002년 미국 GE그룹의 최고경영자 양성과정(EDC)에 참가해 글로벌 비즈니스 리더가 되는 법을 배우기도 했다. 그는 국제경제, 정치 분야의 리더들과 교분을 쌓는 일에도 주력하고 있는데 이 교육과정도 인적 네트워크 형성을 위한 목적을 가졌다고 한다.
신라호텔 상무인 장녀 부진씨도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아버지의 리더십을 그대로 이어받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02년 이 회장이 “10년 후 우리는 무엇을 먹고 살 것인가”라는 화두를 던졌던 것처럼 딸 부진씨도 지난해 “앞으로 10년 후 호텔신라가 과연 어떤 호텔로 고객들에게 다가설 수 있을지, 중장기적인 계획과 구체적 전략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실제 그는 회사 중장기 발전계획 설립에 깊이 관여하고, 신라호텔 면세점과 공간 재단장을 진두지휘해 역량을 인정받았다.
그는 용인술에서도 남다른 노력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식당 주방장이 다리가 아프다는 얘기에 병원을 직접 소개시켜주는가 하면 연말엔 주부사원들로 구성된 룸 청소부들과 벨보이 등 말단 직원들에게 일일이 내복을 선물할 정도로 세세히 직원들을 살피는 ‘덕장’으로서의 리더십을 보이기도 한다.
이부진 상무 역시 호텔 관련 분야의 전문성을 기르는 데 주력하고 있다. 신라호텔 부장이었을 때도 자신의 업무 영역이었던 식음료는 물론 영업, 일반 관리, 브랜드 이미지 관리 등 전 분야에 대한 지식을 쌓았는데, 호텔 관계자에 따르면 회의실에 수백 권의 국내외 호텔 전문서적을 비치하고 이를 탐독하며 선진 기술을 익히는 데 주력했다고 한다.
이서현 상무보 역시 제일모직 디자인팀을 이끌고 있는데, 일선 디자이너들과 구내식당에서 점심간담회를 자주 할 정도로 소탈하면서도 전략적인 사고를 하는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삼성을 이끈 이 회장의 리더십은 끊임없는 자기 개발과 사람에 대한 믿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노하우는 2세들에게 고스란히 전수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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