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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 화제

‘스킨십’ 경영으로 화제, 오는 3월 주총에서 재신임 묻는 SK 총수 최태원·노소영 부부

‘부부 함께 기체조·명상으로 심신 단련, ‘행복 전도사’ 자처하기도’

■ 글·구미화 기자 ■ 사진·연합뉴스, SK 제공

2005. 03. 02

지난해 기업 순이익 1조6천억원을 돌파하고 권위를 벗어던진 ‘스킨십’ 경영으로 호평을 받는 SK 그룹 총수 최태원 회장. 외국자본이 경영권을 위협하는 가운데 오는 3월 주총에서 재신임을 물어야 하는 상황에 처한 그는 요즘 상당한 중압감을 느끼고 있지만 부인 노소영씨와 함께 기체조, 명상 수련을 하며 SK를 ‘강한 기업’으로 키우는 데 힘을 쏟고 있다. 최근 기업 총수로 ‘행복 전도사’ 역할을 강조하기도 한 그의 경영 스타일과 가정생활을 취재했다.

‘스킨십’ 경영으로 화제, 오는 3월 주총에서 재신임 묻는 SK 총수 최태원·노소영 부부

SK(주)(이하 SK)의 주주총회가 3월 중순으로 다가옴에 따라 최태원 회장(45)의 거취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올해로 최 회장의 3년 이사 임기가 만료되는 터라 이번 주총에서 주주들에게 재신임 여부를 묻게 되는 것. 최 회장은 참석 주주의 과반수 찬성과 전체 의결권의 4분 1 이상 찬성을 동시에 얻어야 이사로 재신임될 수 있다.
현재로선 최 회장이 큰 어려움 없이 재신임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그러나 SK 관계자는 “주총 때까지는 어떤 결과도 섣불리 단정지을 수 없다”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그는 “자신의 재신임 여부에 따라 회사의 운명이 달라진다는 생각에 최 회장이 상당한 중압감을 느끼고 있다”고 조심스럽게 전했다.
SK 측이 마음을 놓지 못하는 건 지난 2003년 SK 글로벌 사태 이후 최 회장이 줄곧 소버린으로부터 경영권을 위협받아 왔기 때문이다. 소버린은 지난해부터 ‘금고 이상의 형을 받을 수 있는 혐의로 기소된 이사는 형 선고가 확정될 때까지 직무수행을 정지하고, 형 선고가 확정되면 이사직을 상실한다’는 내용을 정관에 넣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소버린이 요구하는 정관개정안에 따르면 2003년 SK 글로벌 사태 당시 분식회계 등으로 1심에서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받고 항소심을 진행 중인 최 회장은 당장 이사직에서 물러나야 하는 상황. 그러나 이 같은 안건이 지난해 주총에서 부결되자 소버린은 올 주총에서 이사후보 추천을 하지 않는 대신 SK 이사회가 자발적으로 정관개정안을 다시 상정해줄 것을 요청했다. 증권거래법은 ‘동일한 안건을 3년 내에 재상정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소버린 측은 “지난해 상정한 정관개정안이 투명경영에 필요한 안건인 만큼 SK 이사회가 다시 상정해 주길 기대한다”면서 “임기가 끝나는 최태원 회장의 재신임에 대해서는 반대의사를 표시하겠다”고 밝혔다.
소버린이 경영진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문제 삼으며 ‘최 회장 흔들기’를 계속하고 있으나 최 회장은 2003년 6월 그룹 구조조정본부 해체와 계열사들의 독립·투명 경영을 뼈대로 한 ‘기업구조 개혁방안’을 내놓은 뒤 ‘SK 개혁’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중 가장 높이 평가받는 것이 SK의 적극적인 이사회 활동이다. SK는 지난해 3월 경제 전문가와 에너지 전문가들로 이뤄진 사외이사가 전체 70%를 차지하는 새로운 이사회를 구성했다. 그동안 대기업 이사회는 오너의 의사 결정에 ‘거수기’ 역할만 한다고 비판받아 왔으나 SK는 사안에 따라 이사회가 경영진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놓은 것. 실제 SK 이사회는 지난해 경영진이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일부 공장설비를 매각하려던 계획을 무산시킨 바 있다. 사외이사로 등재되어 있는 한 인사는 “이사회에서 의장인 최 회장은 거의 발언하지 않고 사외이사들의 얘기를 경청하는 편”이라며 “회사에서 올린 안건을 부결시키면서 이유를 설명했더니 이의 제기를 하기는커녕 ‘우리가 놓친 것까지 챙겨줘서 고맙다’고 말해 내심 놀랐다”고 말했다.
이런 변화는 곧 경영실적으로 이어져 SK는 지난해 순이익 1조원을 돌파하는 등 사상 최대 실적을 올렸다. 순이익 1조 돌파는 SK 창사 이래 처음인 것은 물론 국내 정유·화학기업 가운데서도 최초의 일이다. SK 관계자는 “최태원 회장의 경영전략에 따라 중국을 중심으로 해외에 진출하고 석유개발, 윤활유 사업에 투자한 것이 중국경제 발전과 국제 석유·화학시장 호조 등과 맞물려 최대 실적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스킨십’ 경영으로 화제, 오는 3월 주총에서 재신임 묻는 SK 총수 최태원·노소영 부부

최 회장이 주목받고있는 또 한 가지 이유는 권위를 벗어던진 ‘스킨십 경영’으로 대기업 총수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뜨리고 있다는 점이다. SK 글로벌 사태가 벌어졌던 2003년 말 전 직원과 그 가족들에게 일일이 안부 편지를 보내 불안한 마음을 달래 주었던 그는 임직원들과 밀착된 경영을 시도했다. SK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해 최 회장이 직원 단체 교육 및 연수에 참석한 횟수만 해도 22차례에 이른다고 한다.
직원들에게 ‘도토리’ 나눠주고, 사적인 질문 주고받으며 밀착경영 시도
직원들과 만나는 자리에서 그는 일방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기보다는 스스럼없이 생각을 주고받을 수 있도록 분위기를 유도한다고 한다. 지난해 신입사원들과의 간담회에서는 “책을 한 권 추천해 달라”는 신입사원의 요청에 “지금 읽고 있는 책이 하나 있는데 경영에 관해 많은 것을 생각나게 한다”면서 일본 만화 ‘미스터 초밥왕’을 추천하기도 했다. ‘미스터 초밥왕’은 신참 요리사인 쇼타가 가업인 초밥집을 이어받아 당대 최고의 요리사가 되는 과정을 그린 것. 고객의 입맛에 맞추려는 장인정신과 직업윤리 등 기업경영에 교훈이 되는 내용이 많다고 최 회장은 부연 설명했다. SK 관계자는 “이외에도 ‘한달에 용돈을 얼마나 쓰나’ ‘교회에 왜 나가게 됐나’ 하는 사적인 질문에도 솔직하게 답해줬다”고 말했다. 격의 없는 대화가 끝나고 난 뒤에는 보통 식사를 함께 하며 술잔을 부딪치고, 최 회장이 직접 술병을 들고 다니며 술을 건네기도 한다고.
‘스킨십’ 경영으로 화제, 오는 3월 주총에서 재신임 묻는 SK 총수 최태원·노소영 부부

부인 노소영씨와 삼남매를 소개한 최태원 회장의 홈페이지. 최회장은 가족 여행을 좋아하지만 시간을 내기 힘들 때는 가족들과 영화관을 찾는다고 밝히며 영화 ‘철도원’에 대한 감상을 적어놓기도 했다.


지난해 설 연휴에 떡을 들고 SK 울산공장을 방문해 ‘현장 경영’을 약속했던 그는 지난 연말과 올초에도 서울과 지방 사업장을 돌아보느라 바쁘게 보냈다. 지난해 12월30일 저녁 서울에서 열린 SK 경영지원부 직원들의 송년 모임에 불쑥 나타난 최 회장은 직원들에게 “싸이질하는 사람 있나”하고 물은 뒤 1만원 상당의 ‘도토리 상품권’을 나눠줘 화제가 됐다. ‘싸이질’은 요즘 젊은 층에서 인기를 모으고 있는 ‘싸이월드 미니홈피’를 꾸미고 활용하는 행위를 가리키는 유행어이고, 도토리 상품권은 미니홈페이지를 꾸밀 때 필요한 아이템을 구입할 수 있는 온라인 상품권.

지난해 인천 물류센터에서 열린 SK 창립기념식에선 평직원들 틈에 끼어 ‘올챙이춤’을 췄고, “기념사진을 찍자”는 직원들의 요청에 응해 어울려 기념촬영을 하기도 했다. 지난 2월9일 설엔 부인 노소영씨(44)와 세 남매를 데리고 직원 가족들과 함께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쿠웨이트와의 월드컵 예선전을 관람했다.
최 회장의 측근은 최회장이 바쁜 일정을 소화해내는 데 필요한 체력을 키우기 위해 부인 노소영씨와 함께 매일 아침 ‘심기신수련’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심기신수련은 최태원 회장의 아버지 고 최종현 회장이 단전호흡을 바쁜 현대인에게 맞게 응용해 만든 것으로 호흡, 체조, 명상으로 이어지는 건강관리법이다. 최 회장은 얼마 전 지인으로부터 요가 비디오를 선물받고 시도해 봤으나 여의치 않자 심기신수련으로 체력을 단련하고 있다고.

‘스킨십’ 경영으로 화제, 오는 3월 주총에서 재신임 묻는 SK 총수 최태원·노소영 부부

지난해 12월 용산 KTX 역사에서 열린 결식아동돕기 바자회에 일일 판매사원으로 나선 최 회장.


윤정(16), 민정(14), 인근(10) 1남2녀를 둔 최 회장은 가족 여행을 좋아하지만 시간을 내기 힘들 때는 가족들과 영화관을 찾아 망중한을 즐기곤 한다. 그는 98년 회장 취임 후 만든 홈페이지에 “여러 장르 중 특히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혀 주는 드라마를 좋아한다”고 밝히며 가장 인상 깊었던 영화로 ‘철도원’을 소개하고 그에 대한 감상도 적어 놓았다. 하지만 바쁜 일정 때문에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이 줄어들자 SK그룹 행사나 직원들과 함께 하는 자리에 종종 부인과 자녀를 동반해 참석하고 있다. 최 회장을 곁에서 지켜본 한 측근은 “올해 고등학생이 되는 큰딸과 중학교에 다니는 둘째 딸이 최 회장에게 더없이 살갑게 군다”며 “평소 아버지로서의 최 회장이 아이들과 얼마나 가깝게 지내는지 짐작이 된다”고 말했다.
최 회장은 빡빡한 일정 속에서도 지난 크리스마스 때만은 온 가족이 함께 모여 뜻 깊은 시간을 보냈다. 부인 노소영씨와 두 딸, 그리고 막내아들이 총동원돼 중증장애아동 보육시설인 ‘가브리엘의 집’ 아이들과 공연을 관람하고, 서울 시내를 돌아보며 온종일 함께 지낸 것. 최 회장의 친구가 목사로 있는 교회를 통해 알게 돼 2003년 크리스마스 때 처음 ‘가브리엘의 집’을 찾았던 최 회장의 자녀들이 “이번 크리스마스도 가브리엘의 집 아이들과 함께 보내자”고 일찌감치 최 회장과 약속을 해놓았다고.
최 회장은 지난해 노무현 대통령과 재계 총수들의 만찬 자리에서 “소외 계층이 자립할 수 있도록 기업활동을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이를 실천하듯 SK그룹 계열사들은 신입사원 교육에 봉사활동을 필수과목으로 넣고, 사회공헌팀을 운영해 봉사활동을 상시화하고 있다. 지난 연말에는 SK그룹 차원에서 결식아동돕기 ‘사랑의 바자회’를 열었는데 최 회장은 테니스 라켓·커프스 세트·넥타이 핀을 기증하고, 직접 판매원으로 나서기도 했다. 이날 부인 노소영씨도 최 회장을 통해 브로치, 스카프, 아기 식기 세트 등 10여 점을 기증했다.
지난 연말 ‘SK 임원 송년의 밤’에 부인과 함께 참석해 “이익만을 기업의 절체절명의 과제로 알던 단계를 넘어서도록 SK 전체가 노력해야 할 것이며 나 자신도 ‘행복 전도사’ 역할을 마다하지 않겠다”고 말했던 최 회장은 지난 1월 그룹 신년회에서도 ‘강한 기업’ ‘신뢰받는 SK’와 함께 ‘행복한 사회 추구’를 올해 3대 경영방침으로 제시했다. 기업의 존재 가치가 이윤 추구뿐 아니라 사회 구성원들을 얼마나 행복하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 최 회장의 한 측근에 따르면 최 회장은 늘 ‘왜 기업을 하는가’에 대해 고민한다고 한다. “단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았기 때문에 이끌어 가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 어떤 변화를 일으키는 동인이 되어야 한다”고 말해 왔다고. 최 회장의 이러한 의지가 3월 주총에서 꺾이지 않고 계속해서 힘을 발휘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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