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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안타까운 사연

생업 포기하고 전국 헤매는, 아이 잃은 가족 실태 보고

‘경제적 빈곤·가족간의 갈등… 후유증도 심해’

■ 기획·김유림 기자 ■ 글·강지남 ‘주간동아 기자’ ■ 사진·조영철 기자

2005. 01. 10

생업 포기하고 전국 헤매는, 아이 잃은 가족 실태 보고

부산의한 찜질방 폐쇄회로 TV에 찍힌 여자아이는 정말 정선이었다. 고개를 쳐들어 카운터에 턱을 걸치고 조잘대는 모습이나, 갈아입을 옷과 수건을 받아들고 잰걸음으로 뛰어가는 모습이 영락없는 정선이었다. “할머니와 놀러 온 여자아이가 자신의 이름이 정선이고 엄마 아빠는 없다고 했다”는 제보자의 확신에 찬 말에 정선이 아버지 우광현씨는 지난 9월19일 실종된 딸을 이제야 찾게 됐다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TV에서 실종 방송을 내보낸 직후 들어온 제보였습니다. 한달음에 부산까지 내려가서 경찰관들과 함께 그 여자아이를 찾아 부산 주택가를 밤낮으로 헤집고 다녔어요. 10일 만에 찾아내긴 했는데… 아니더군요. 다리에 힘이 탁 풀리는 게, 죽을 맛이었어요.”
제보만 오면 전국 어디라도 한달음에… 그러나 허탕 일쑤
지난 12월8일 경기 광주의 한 순댓국집에서 기자와 만난 우광현씨는 금세 눈시울이 붉어졌다. 큰형님이 운영하는 이 식당 앞 골목에서 놀던 정선이(당시 5세)가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진 지 벌써 석 달째. 그동안 우씨는 수십 건의 제보 내용을 일일이 확인하느라 정신 차릴 새도 없이 전국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그는 “사업 실패로 아내와 헤어진 뒤 큰형님 댁에 두 딸을 맡겨놓고 제대로 돌보지 않은 탓에 이런 일이 생긴 것이 아닌지 자책감에 가슴이 죄인다”고 털어놓았다.
2004년 한 해도 실종사건이 연이어 발생했다. 1월에는 경기 부천에서 두 명의 초등학생이, 2월에는 포천의 여중생이 실종된 뒤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된 데 이어 9월 우정선양, 10월 천안 여고생 박수진양(16)이 연달아 실종됐으나 수사 상황은 여전히 오리무중인 상태여서 가족들을 애태우고 있다. 실종사건은 정상인보다 정신지체 장애인이나 치매노인 등 ‘장애미아’ 발생 건수가 훨씬 많은데, 지난 11월 말 기준 4천7백25명의 장애미아가 발생했으며 이 중 1백33명이 발견되지 않고 있다. 11월11일 등굣길에 실종된 김기훈군(17) 또한 그러한 경우다.
정신지체 3급 장애를 가진 기훈이는 수중에 몇만원이 있을 때마다 PC방에도 가고 택시 타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느라 며칠씩 집에 들어오지 않곤 했다. 그리고 돈이 떨어지면 택시요금이나 식당 밥값을 내지 못해 파출소에 인계되어 집으로 연락이 오곤 했다. 그러나 기훈이가 사라진 11월11일 기훈이의 손에는 교통카드 한 장밖에 없었다. 하루하루를 가슴 졸이며 보내고 있는 기훈이 어머니 이창순씨는 “경찰이 단순가출로만 보고 있어 더욱 답답한 심경”이라며 울먹였다.
“기훈이 휴대전화 통화명세서라도 뽑아서 수사했으면 좋겠는데, 경찰에서는 기훈이 사건이 범죄와 연관됐다는 증거가 전혀 없기 때문에 불가능하다고만 해요. 정말 기훈이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만 같은데 속수무책인 채로 있을 수밖에 없다니 불안해서 잠도 잘 오지 않습니다.”
가정엔 웃음 사라지고 연말연시면 그리움 더해
실종자 가족들에겐 연말연시의 흥겨움이나 크리스마스 시즌의 설렘 따윈 없다. 잃어버린 가족에 대한 간절함과 그리움은 해가 바뀌는 연말에 더욱 커질 뿐이다.
“준원이(당시 6세)를 잃어버렸을 때 갓난아이였던 셋째가 이제 자라서 딱 준원이만한 나이가 됐어요. 그런데 이때까지 단 한번도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준 적이 없어요. 요즘처럼 해가 바뀌는 연초도 아무런 흥이 나지 않습니다. 다 싫습니다.”
최용진씨는 2000년 4월 친구집에 놀러 간다며 집을 나섰던 둘째 딸 준원이가 실종된 이후 전국을 돌며 딸 찾기에 나섰다. 지금까지 수십만 장의 전단을 돌렸고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의 인가·미인가 시설을 방문해왔다. 최씨는 2001년 실종가족모임을 발족시키고 회장을 역임하면서 미아찾기 지원법안 마련 등 사회적으로도 왕성한 활동을 벌여왔다.

생업 포기하고 전국 헤매는, 아이 잃은 가족 실태 보고

그러나 이 같은 노력을 기울이느라 직장이나 가정 생활은 엉망이 됐다. 제보 전화만 받으면 모든 일을 내팽개치고 달려나가는 바람에 한 직장에 오래 근무할 수도 없었다. 현재 최씨는 서울에 있는 가족들과 떨어져 충북 청원군의 한 공사현장에서 일하고 있는데, 이곳이 딸의 실종 이후 자리 잡은 네 번째 직장이다.
준원이가 없는 최씨의 가정에는 웃음이 사라졌다. 아내는 꿈에 자꾸 준원이가 나온다며 눈물 바람이고, 그의 어머니는 툭하면 역술인을 찾는다. 당시 혼자 숨어서 울곤 했던 초등학교 4학년이던 큰딸은 이제 중학교 2학년이 됐는데, 엄마와도 대화를 별로 나누지 않는 말수 적은 소녀로 자랐다. 가족들끼리의 외식이나 주말여행 등 평범한 가족 풍경은 최씨 집안에서 찾아볼 수 없는 일이다. 최씨는 준원이를 잃은 뒤 친척들 보기에도 껄끄러워서 명절 때조차 고향에 내려가지 않다가 지난 추석 때야 처음으로 혼자서 고향에 다녀왔다.
“아내와 남은 아이들 생각하면 즐겁게 살려고 노력해야 하는데, 그게 잘 안 되네요. 앞으로는 노력해야죠.”
90년대 초반부터 대구 개구리소년 가족들과 함께 전국을 다니며 미아찾기 운동을 벌여온 전국미아·실종가족찾기 시민의 모임(이하 실종가족모임) 나주봉 회장은 “실종은 가족을 잃어버리는 데서 끝나는 게 아니라, 남은 가족의 인생까지도 황폐화한다는 점에서 어떤 시련보다 가혹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실종가족모임을 찾은 실종가족의 30~40%가 사망, 가출, 이혼 등으로 가정 해체 상황을 맞았다고 한다. 처음 1~2년은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전국을 돌며 아이 찾기에 주력하다가 별다른 성과가 없어 지치면 부부가 서로의 잘못을 비난하는 갈등 상황에 놓이게 된다는 것. 술에 취한 채 부부싸움을 벌이는 일도 다반사다.
자녀의 실종은 남은 가족들을 극단적인 상황으로까지 내몰기도 한다. 99년 2월13일 야간자율학습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실종된 송혜희양(당시 18세)의 어머니는 2002년 음독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혜희는 실종되던 날 술에 취한 남자와 같이 버스에서 내린 것으로 확인됐으나, 경찰은 이 남자조차 찾아내지 못했다. 혜희 아버지 송길용씨는 “경찰이 단순가출로 보고 사건 발생 이틀이 지난 뒤에야 수사에 착수했다”며 “곧바로 수사를 했다면 중요한 단서라도 찾을 수 있지 않았겠느냐”며 서운한 감정을 내비쳤다.
“딸 찾아 나선 지 5년째, 별의별 상상 다 들어”
경찰 수사에서 별로 기대할 것이 없자 송씨 가족은 직접 딸 찾기에 나섰다. 개 사육업을 하던 송씨는 화물차에 전단을 붙이고 제주도를 포함한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1백20만장이나 되는 전단을 뿌렸다. 마을 주민들과 함께 딸의 흔적을 하나라도 찾을까 싶어 마지막으로 목격된 지역 주변을 샅샅이 뒤졌다. 교사를 꿈꾸던 혜희는 전교에서 1, 2등을 다툴 정도로 공부도 잘하고 명랑한 둘째딸이었다. 중학교 때부터 지역구 국회의원의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부모를 기쁘게 했다. 송씨는 “할 수 있는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해도 별다른 희망이 보이지 않자 아내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며 “나도 아내 뒤를 따라가고 싶은 심정이었다”며 말끝을 흐렸다.


조병세씨는 실종가족모임에서 ‘최고참’이자, 절망에 빠져 자녀 찾기를 포기하려는 가족들에게 힘을 북돋워주는 일을 하고 있다. 95년 6월24일 당시 다섯 살이던 조씨의 딸 하늘이는 엄마가 부엌에서 만들고 있던 새우볶음을 한 움큼 쥐고 집 밖으로 나가 이집 저집 들르며 친구들에게 나눠주었다는 동네 주민들의 목격을 마지막으로 10년째 소식이 없는 상태. 그러나 조씨 부부는 여전히 딸 찾기를 포기하지 않는다. 게다가 조씨는 딸을 잃은 고통을 달래기 위해 술에 의존하지 않으며, 그의 아내 또한 우울증을 극복한 상태여서 다른 실종가족들에게 모범 사례로 비치고 있다.
딸을 ‘하늘’이란 이름보다 ‘안나’라는 세례명으로 더 많이 불렀을 정도로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조씨는 딸을 잃은 뒤부터 성당에 나가지 않는다. 주말마다 전단을 가득 넣은 배낭 하나를 짊어지고 전국의 보호시설을 찾아다니느라 한가하게 성당에 앉아 있을 시간이 없기 때문. 아내는 딸을 잃고 심각한 우울증에 빠졌고, 조씨 또한 툭하면 술을 마셨다. 그러나 이들 부부는 최근 들어 엄청난 스트레스를 극복하기 시작했다. 그의 아내는 2년 전부터 장애인 가정의 아이들을 돌봐주는 봉사활동을 통해 딸을 잃은 상실감과 우울증을 달래고 있다. 조씨 또한 3년 전부터 술을 끊고 그만두었던 직장을 다시 나가기 시작했다.
“하루는 엄청 술에 취한 상태에서 집으로 돌아오다가 하늘이를 봤어요. 다른 아이를 하늘이로 착각한 거죠. ‘하늘아, 아빠랑 집에 가자’면서 자연스럽게 그 아이 손을 잡고 걸었어요. 그런 저를 아이 엄마가 보고 경찰에 신고하는 바람에 한바탕 곤욕을 치렀습니다. 그 일 이후로는 술을 마시지 않아요. 정 가슴이 답답할 때는 관악산에 올라 소리를 지르지요.”
실종자 가족들은 “머릿속이 둘로 갈라진 채 살고 있다”고 말했다. 잃어버린 아이 생각이 항상 머릿속을 떠나지 않으면서 일상생활을 꾸려나가야 하기 때문. 수사기관조차 찾아내길 포기한 상황에서 전단 뿌리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지만, 이들은 자녀 찾기를 포기하지 않는다. 지난 추석 연휴 때 집 밖에 나갔다 현재까지도 연락이 없는 정신지체아 태림군(당시 18세)의 아버지 신용원씨는 직장을 그만두고 부산 일대 지하철역을 돌며 승객들을 상대로 아들에 대해 수소문하고 있는 상태. 신씨는 “정신병원 같은 시설에 아들이 감금되어 있는 건 아닌지 불안하다”며 “경제 문제는 고려할 상황이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5년 넘게 딸을 찾고 있는 혜희 아버지 송길용씨는 “해외로 팔려나갔을까, 아니면 외딴 섬에 끌려가 있을까 하루에도 몇 번씩 온갖 상상을 한다”고 털어놓았다.
“요즘처럼 날이 추워질 때면 더 사무치게 그립습니다. 못난 아비가 되어서 어딘가에서 고생하고 있을 우리 딸을 찾아내주지 못한다는 점이 가장 미안합니다. 아내도 먼저 떠난 지금, 남은 바람이라고는 딸을 다시 만나는 것밖에 없어요. 꼭 찾아내야지요.”


한 해 미아 발생 건수 3천여 명.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주변에는 부모의 품을 떠나 생사조차 확인되지 않는 아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사진 속 아이들을 보신 분은 옆의 연락처로 제보해주시기 바랍니다.
제보 전화국번 없이 112/182(사)전국미아·실종가족찾기 시민의 모임 02-963-1256/011-780-1256어린이찾아주기종합센터 02-777-0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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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우정선(당시 5세, 여)실종일자 2004년 9월19일실종장소 경기 광주시 역동신체특징 앞니와 아랫니가 1개 빠졌고 평발임. 보조바퀴 달린 두발자전거 타고 있었음(노란 바구니 달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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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김도연(당시 15세, 남)실종일자 2001년 1월29일실종장소 경주 보문단지 한국콘도 앞신체특징 정신지체 1급. 이마 바로 위 머릿속에 10cm 수술 자국이 있고 치아가 불규칙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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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최진호(당시 5세, 남)실종일자 2000년 5월7일실종장소 경기 안산시 사동 1324번지 집 앞신체특징 얼굴에 비해 귀가 크고 얼굴 왼쪽에 손톱 자국이 있으며 충치로 이가 뾰족함. 청바지에 줄무늬 티셔츠를 입고 검정 구두를 신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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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박민주(당시 3세, 남)실종일자 2002년 5월5일실종장소 능동어린이대공원 동물원 앞신체특징 흰색 반소매 티셔츠, 청치마, 검정구두 착용. 머리 뒤 우측에 팥알만한 빨간 점 있고, 은색 미아방지용 목걸이 착용(하트무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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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모영광(당시 2세, 남)실종일자 2003년 10월10일실종장소 부산시 해운대구 우2동 성불사 내신체특징 짙은 일자형 눈썹에 피부가 검고 머리숱이 많은 편. 말을 잘 못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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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최준원(당시 6세, 여)실종일자 2000년 4월4일실종장소 서울 중랑구 망우1동 염광아파트 놀이터신체특징 왜소한 체격에 갸름한 얼굴, 생머리가 어깨까지 내려옴. 어금니 전부 은색 도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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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강송이(당시 8세, 여)실종일자 2002년 5월29일실종장소 충북 진천군 광혜면리신체특징 치아가 고르지 못하고 뾰족함. 까무잡잡한 피부, 오른쪽 팔에 털이 많이 난 부분 있음. 파란색 콩콩이 배낭을 메고 회색 마시마로 신발가방을 들고 있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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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조하늘(당시 5세, 여)실종일자 1995년 6월16일실종장소 서울 구로4동 집 앞 골목신체특징 머리의 가마 수가 2~3개 있고 쌍꺼풀이 없으며 턱에 조그만 점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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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김대현(당시 4세, 남)실종일자 2003년 9월5일실종장소 경기 용인시 기흥읍 신갈리신체특징 이마 눈썹 쪽에 찢어진 상처 있고 배에 검은 반점 있음. 오른쪽 귀에 링 귀고리 착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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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김은지(당시 5세, 여)실종일자 2002년 11월13일실종장소 서울 동작구 신대방1동 집 앞신체특징 아랫배와 오른쪽 다리에 화상 흉터가 있음. 회색에 자주색 테두리가 있는 티셔츠와 자주색 긴바지를 입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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