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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STYLE

세계의 도심 속 공원을 찾아서①|일본 우에노 공원

도쿄 우에노 공원의 벚꽃 놀이 풍경

일본문화의 중심지, 시민들의 생활공간으로 살아 숨쉬는

■ 글 & 사진·이영래 기자

2003. 05. 12

세계 대도시 시민들은 공원을 어떻게 가꾸고 활용할까? 그 첫 기획으로 일본 도쿄의 대표적인 공원인 우에노 공원과 해상공원도시 오다이바를 현지 취재해 보았다. ‘아시아 공원 선진국’ 일본의 공원 풍경.

도쿄 우에노 공원의 벚꽃 놀이 풍경

우에노 공원의 명소 중 하나인 시노바즈노이케(不忍池).


2003년은 도쿠가와 막부가 도쿄를 수도로 삼은 지 4백주년이 되는 해로 도쿄에선 ‘에도(도쿄의 옛 이름) 개부’를 기념하는 다양한 행사들이 열리고 있다. 그 중에서도 주목할 만한 것은 에도의 역사와 더불어 미래의 도쿄에 대한 다양한 논의들이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논의의 키워드는 단연 ‘물과 녹색’이다. 새로운 그린벨트의 형성, 공원과 녹지의 확충 등 환경에 대한 논의는 일본인의 핵심적인 관심사다.
서구 도시들을 모방해 ‘공원 왕국’으로 거듭난 일본
일본의 교토에서 온실가스 배출량에 대한 국제협약을 체결했을 만큼 사실 일본은 세계적으로 환경에 대한 관심이 가장 높은 나라 중의 하나다. 환경에 대한 관심이 높은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최근 몇년 동안 일본 열도를 괴롭히고 있는 열대섬 현상, 매년 조금씩 높아진다는 해수면, 잇달은 지진 피해 등 환경은 그들의 생존과 아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더욱이 일본은 원폭 피해를 겪은 유일한 국가다. 피폭 이후 기형아의 출산이 많아지는 등 그 후유증이 고질적으로 이어졌고, 이를 통해 일본은 자연스레 환경의 소중함에 눈을 떴던 것이다.
환경에 대한 관심이 높은 만큼 그들이 도심에 조성해놓은 녹지의 수준도 상당히다. 공원문화가 전무하다시피 한 우리의 입장에서 보면 도쿄는 가히 ‘공원 천국’이다. 우에노, 요요기, 히부야 공원 등 도심 중앙에 자리한 큰 공원들 외에도 마을 곳곳에 조그마한 공원들이 수없이 많다. 도쿄 전역을 조망할 수 있는 도쿄도청사 전망대에서 보면 이런 녹지대가 도시 전체를 감싸고 있는 모습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일본이 전통적으로 공원문화를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일본에 본격적으로 공원문화가 정착되기 시작한 때는 메이지 시대. 정부 주도의 근대화를 이루면서 그들은 서구 도시들을 모방, 공원을 설계하고 가꾸기 시작했다. 이런 점에서 우리에게 그들의 공원문화가 시사하는 바는 더욱 크다고 할 수 있다. 근대에 이르러 공원을 조성한 일본인들은 과연 공원을 어떻게 가꾸고 활용하고 있을까?
4월초 이런 의문점을 안고 도쿄에 도착했다. 이라크 전쟁과 사스의 아시아 전역 확대 등 안 좋은 소식들이 연일 뉴스 매체를 통해 전해지고 있었지만 벚꽃이 만개한 4월의 도쿄는 가히 축제 분위기였다. 이런 축제 분위기를 더하듯 4월초 일본 연예가엔 깜짝 놀랄 만한 소식이 있었다. 전설의 아이돌 스타 ‘핑크레이디’가 22년 만에 컴백을 선언한 것. ‘핑크레이디’는 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 초에 걸쳐 미니스커트와 늘씬한 몸매, 섹시한 춤 등으로 일본 열도를 들뜨게 했던 미모의 여성 2인조 그룹이다. 일본 TV에서는 과거 그들이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절의 영상들을 경쟁적으로 방송했다. 그러다 방송 리포터가 찾은 곳은 한 공원. 벚꽃이 만개한 나뭇가지 아래 일군의 시민들이 모여 앉아 연회를 즐기고 있었다. 그 사이로 들어간 리포터가 그들에게 ‘핑크 레이디’를 아냐고 묻자, 중년의 남녀들이 ‘핑크레이디’의 과거 히트송을 따라하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
앉아있는 사람들의 면면을 보건대 가족 모임의 멤버들은 아니다. 그렇다면 이들은 누굴까? 그리고 공원에서 무얼하고 있는 것일까? 이들은 바로 3월말부터 4월 둘째주까지 이어지는 ‘하나미(벚꽃놀이)’ 연회에 나선 일본 직장인들이다.

도쿄 우에노 공원의 벚꽃 놀이 풍경

‘하나미(벚꽃 놀이)’ 시즌의 우에노 공원은 밀려드는 인파로 홍역을 치른다. 꽃 그늘 아래 연회 자리를 맡기 위해 밤을 새워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다.


벚꽃놀이는 일본의 전통인데, 이 기간엔 각 회사의 연회가 공원에서 열리곤 한다. 벚꽃놀이 연회 장소로 도쿄에서 가장 대표적으로 꼽히는 곳이 바로 벚나무 1천여 그루가 있는 우에노 공원. 때문에 이 기간에 우에노 공원에선 좋은 자리를 맡기 위한 치열한 경쟁이 펼쳐지기도 하는데, 이런 임무를 맡은 사람은 보통 각 회사의 신입사원들이다. 얼마나 좋은 자리를 맡았는가로 신입사원을 테스트하는 건 이미 일본의 오랜 전통이 되어버렸다.
다음날 전철을 타고 우에노 공원을 찾았다. 우에노 역에서 공원 방면 출구로 나서면 바로 공원 입구로 이어진다. 역에서 바로 보이는 것이 도쿄문화회관. 공원 입구를 사이에 두고 국립서양미술관, 국립과학박물관 등이 자리하고 있다.
공원 안으로 들어서자 하얀 벚꽃 세상이 펼쳐졌다. 바람이 불자 하얀 낙화가 팔랑거리며 사람들 머리 위로 흩뿌려진다. 흩날리는 꽃잎만큼 많은 인파.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우에노 공원은 벚꽃놀이에 나선 시민들로 만원을 이루고 있었다. 우에노 공원 하면 첫번째로 떠오르는 게 벚꽃놀이고, 두번째가 노숙자, 세번째가 동물원이라고 하는데 이날 웬일인지 노숙자의 모습은 전혀 볼 수 없었다. 하긴 노숙자가 있을 만한 곳에는 모두 연회를 위한 돗자리가 깔렸으니 그들이 자리를 차지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우에노 동물원을 정면에 두고 왼쪽으로는 벚꽃길이 펼쳐지고 오른쪽은 분수대가 있는 광장이다. 광장 너머로 보이는 것이 바로 도쿄 국립박물관이다. 이 박물관 때문에 공원의 보행로가 혼잡해졌다고 불평하는 사람도 있지만, 우에노 공원은 바로 이 도쿄 국립박물관(패전 전에는 황실박물관이라 불렸다)을 중심으로 세워진 부속 공원이다.
여기서 간략하게 우에노 공원의 연혁을 살펴보면 대충 이렇다. 우에노 공원은 근대적 의미의 공원으로는 일본 최초 공원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의 메이지 정부는 근대화 정책의 일환으로 공원 조성을 계획, 1873년 아사쿠사 등 5개 지역을 공원으로 지정했는데, 우에노 공원 또한 이때 지정된 공원이다.
“일본에는 지진이 많아 공원이 많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는 역사적인 근거가 있는 말이다. 일본의 공원은 간토 대지진(1923년)을 통해 새로운 전기를 맞았기 때문이다. 간토 대지진은 도쿄 일대를 폐허로 만든 대재난이었다. 이후 일본은 재난시 시민들이 피난할 장소를 만들기 위해 대대적인 공원 조성에 나섰다. 공원 개발 계획은 전쟁이 발발하자 공습 피난처의 역할까지 더해져 방공 대녹지계획이란 이름으로 강력하게 추진되었다.
그러나 일본 패망 이후 이들 공원들은 급속히 훼손당했다. 전쟁중 사유지를 침범당했음에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던 사람들이 자신들의 소유권을 주장하며 공원 용지에 건물을 짓거나 농사를 짓기 시작했고, 이어 전후복구, 도쿄 올림픽을 위한 난개발이 이어지며 그린벨트와 공원 녹지는 점차 훼손돼갔다. 이후 일본은 체계적인 공원 관리에 나섰으나 이런 후유증은 아직까지 여러 공원에서 확인되고 있다.
도쿄 우에노 공원의 벚꽃 놀이 풍경

하라주쿠와 인접한 요요기 공원엔 가벼운 운동을 하거나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많다. 밤과 낮의 풍경이 많이 다른데 해가 지면 아베크족의 천국이 된다.


역사가 깊은 만큼 우에노 공원 또한 이런 대표적인 예가 되고 있다. ‘도쿄의 공원통지‘를 쓴 스에마츠 시로우씨는 우에노 공원에 대해 다음과 같이 불평하고 있다.
“건물도 많고 주변 시설로 이어지는 동선은 혼잡하게 꼬여있어 편안하게 휴양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고, 운동기능이라곤 약간 힘이 있는 사람이 때리면 볼이 가볍게 구장을 벗어나고 마는 크기의 야구장 하나가 있을 뿐이다. 게다가 레스토랑, 문화회관, 학교 등 이용자를 끄는 시설들이 공원 내외각에 도열해 있어 혼란을 면할 수 없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공원다운 공원이 되지 못했다’는 이런 불평 사항들은 역설적으로 우에노 공원을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공원이 되게 만든 요소가 됐다. 이 점이 흥미로운 부분인데, 우에노는 그 자체로 이런 혼란이 뒤섞여 문화의 중심지가 됐기 때문이다. 우리의 관광 가이드북 중엔 ‘도쿄의 동북부 문화 중심지에 자리한 우에노 공원’이란 표현이 곧잘 등장하는데, 이는 역설적으로 우에노 공원을 중심으로 문화거리가 형성됐다는 말로 이해해도 좋을 듯싶다.
벚꽃놀이 기간이 아닌 때 우에노 공원은 일종의 문화거리가 된다. 과거 기자는 일본에 한 1년간 체류한 적이 있었다. 한가로울 때면 기자 또한 우에노 공원을 찾았다. 적어도 이곳에 가면 심심하진 않았기 때문이다.
도쿄대학을 비롯한 대학, 미술관, 박물관, 문화회관 등이 주변에 모여있고, 초상화를 그리는 화가들, 각종 퍼포먼스를 펼치는 재주꾼들, 골동품을 파는 노점상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들어 흥겨운 도심 문화를 연출해내고 있다. 운동을 하기 적당한 도심공원은 요요기 등 시내에도 많이 있다. 사실 모든 공원이 다 한적한 공원이 돼야 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더욱이 이곳의 호수 시노바즈노이케(不忍池)에 가면 연인끼리 보트를 타며 한가로운 데이트까지 즐길 수 있다.

도쿄 우에노 공원의 벚꽃 놀이 풍경

오다이바는 신도시답게 모든 풍경이 현대적이다. 도쿄 시민들은 이곳에서 탁 트인 바다를 바라보며 다양한 레저 생활을 만끽한다.


공원이 그 지역 경제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또한 관심의 대상인데, 이런 점에서 도쿄 다마시의 사례는 시선을 끌 만하다. 일본 도쿄 서남쪽에 위치한 다마시는 60년대 중반 이른바 주거 타운으로 개발이 시작됐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일본의 주택난은 심각한 수준이었다. 그럼에도 다마시 분양은 실패하고 말았다. 무분별하게 녹지를 훼손하고 시멘트로 뒤덮어버린 무미건조한 이 신도시에서 살고 싶어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던 것.
이후 다마시는 무려 30여년에 걸친 노력 끝에 새롭게 태어났다. 인구 17만명의 다마시에 조성된 공원의 수는 무려 1백43개. 게다가 이 공원들은 모두 보행자 전용도로인 ‘녹도’와 연결돼 있어 쾌적한 보행 환경을 자랑하고 있다. 이런 주거환경의 변화로 다마시의 인기는 점점 높아졌고, ‘실패한 베드타운’을 넘어 이제는 ‘자족 도시’로 거듭나는 기적을 이루어냈다.
경제적인 현실이 공원문화를 어떻게 바꾸었는지는 도쿄의 해상 신도시 오다이바에서 극적으로 나타난다. 2000년, 일본에 1년간 있는 동안 기자는 사실 도쿄 시내 여기저기를 구경해볼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빌딩 숲을 구경하러 돌아다니는 게 왠지 소모적이란 생각에서였다. 그러다 귀국을 앞두고 기념 사진(?)을 남기기 위해 시내 유명 장소라는 곳을 며칠간 집중적으로 돌아다녔다. ‘신주쿠, 우에노, 아키하바라 봤으면 도쿄는 다본 거다’라는 생각은 어느 정도까지는 맞았다. 적어도 오다이바를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모노레일을 타고 오다이바로 진입할 때 느낀 최초의 감상은 경이로움이었다. 도심 한가운데에서 모노레일을 타자마자 드러나는 해변의 최신 건물들. 그것은 마치 천년여왕이 지하에 건설해놓은 신도시를 보는 느낌이었다.
오다이바는 우리나라에도 수입된 영화 ‘춤추는 대수사선‘의 배경이기도 하고, 최진실·조성민 커플이 일본에 있을 때 살던 곳이기도 해 여러모로 우리에겐 낯익은 곳이지만 그 전체적인 조망이나 구석구석의 짜임새는 실로 놀랍다.
사실 신도시 오다이바에 관한 구상은 새로운 업무기능 중심 도시를 건설하자는 취지에서 시작됐다. 그러나 해상도시라는 특성에 의해 이 도시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형태로 발전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즐거움’을 모토로 한 공원도시로의 변화다. 물론 여기에는 경제적인 원인이 있다. 바로 버블의 붕괴다. 80년대 후반 개발이 시작됐지만 장기 불황이 시작되자 개발 계획을 대대적으로 바꾸지 않을 수 없었다. 처음 11만명의 취업 인구를 가정해 설계했지만 현재 이곳의 취업인구는 3만4천명에 불과하다. 대신 이곳은 연간 4천만명이 다녀가는 새로운 관광명소, 휴양지로 떠올랐다.
이곳은 모노레일을 타고 일주하게 돼 있는데, 오다이바 공원으로 명명된 지역뿐만 아니라 모노레일 코스 전체에 공원 시설이 있다. 시민들은 이곳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산책을 하거나 자전거를 타기도 하고, 놀이시설이나 도요타 자동차 쇼룸 등을 둘러보며 시간을 보낸다. 배 과학관 같은 데선 아이들과 함께 선박에 올라 선박 내부를 여기저기 구경해볼 수도 있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것은 새로 조성된 이 도시의 잘 닦인 도로를 질주하는 오토바이 마니아들이다. 이들은 폭주족과는 다르다. 오토바이 레이서를 꿈꾸는 도쿄의 젊은이들인데, 해안도로의 매력에 취해 모여든 것. 오다이바의 하늘과 바다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절로 드라이브의 충동이 생길 것도 같다.
또 이곳의 장점 중 하나는 주변 상인들의 친절함과 고객 서비스 정신이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오다이바를 찾은 적이 있는데, 인파가 몰려 음식점들이 만원사례였다. 그때 한 라면 가게주인이 “면은 남았지만 육수 재료가 부족해 이대로는 제대로 된 라면 맛을 낼 수 없다. 오늘은 더 이상 팔지 않겠다”며 판매를 거부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값을 두세배 더 받는 것도 아니고, 제맛을 낼 수 없다고 장사를 포기하다니 우리 입장에서는 존경스럽기까지 한 풍경이었다. 과거의 감동을 되새기며 이번 취재길에 다시 그 라면집을 찾았다. 3년여 만에 그 집 라면을 먹고 난 소감은 이거다. 정말 미안하지만 어차피 이런 맛이라면 그냥 팔았어도 됐을 거란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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