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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당찬 여자

날마다 시체 만지는 여자, 국립과학수사연구소 홍일점 부검의 박혜진

“남들은 끔찍한 일이라지만 저에겐 그 어떤 것보다 매력적인 직업이에요”

■ 글·최미선 기자(tiger@donga.com) ■ 사진·정경택 기자

2003. 04. 15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유일한 여성 부검의로 활동하고 있는 박혜진씨. 곱상한 외모를 볼 땐 ‘어떻게 이런 일을 할 수 있을까’ 싶지만 눈도 깜짝 안하고 시체를 다루는 그의 모습을 보면 웬만한 남자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 날마다 시체를 만지며 말 못하는 사체 속에 숨겨진 사연을 밝혀내는 그의 생활을 취재했다.

날마다 시체 만지는 여자, 국립과학수사연구소 홍일점 부검의 박혜진

병원에서 늘 비슷한 환자를 대하는 것보다 상황마다 다른 시신을 부검하면서 다양한 경험을 쌓는 것이 좋다는 박씨.


날마다 시체를 만지는 여자.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이하 국과수)의 부검의(법의관)인 박혜진씨(35)를 두고 하는 말이다. 현재 전국 국과수에서 부검을 맡고 있는 법의관은 모두 19명. 그 가운데 박씨는 홍일점 법의관이다.
사인이 밝혀지지 않은 죽음은 모두 국과수의 ‘수사’ 대상이 되는데, 박씨는 하루도 빠짐없이 말 없는 사체 속에 숨겨진 사연을 캐내고 있다. 부검팀은 보통 부검 집도의 1명과 보조 연구사 2명, 부검 순간순간 사체를 촬영하는 사진사 등 네명이 한조로 구성되어 있다. 팀을 이끌어가는 박씨는 보통 하루에 4~5건의 부검을 집도한다.
한 사람 정도 간신히 내려갈 수 있을 만큼의 좁은 나선형 철계단을 통해 내려간 지하실. 바로 그곳에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부검실이 있다. 부검실 바로 앞에는 각종 인체의 장기를 비롯, 임신 3개월부터 출산 직전까지의 태아가 투명한 용기에 고스란히 보관되어 있다. 언뜻 보기엔 모형인 것 같으나 진짜 태아라고. 포르말린에 담가놓으면 인체 본래의 색깔이 없어지기 때문에 모형처럼 보인다는 것. 어찌됐던 그 모습을 보니 기분이 개운치는 않았다.

“저녁 땐 저도 무서워서 부검실 근처에도 안 가요”
부검실 안으로 들어가니 포르말린과 소독약 냄새가 코를 찔렀다. 세개의 테이블이 나란히 놓인 가운데 테이블마다 옆에 부검에 필요한 도구가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다. 부검된 시신을 보는 순간 기자는 목에서 뭔가가 치밀어오르는 듯하여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그런 기자를 보고 “수사연구소에 있는 경찰들이 이곳으로 견학을 오는데 부검하는 것을 보다가 늘 한두명씩은 픽픽 쓰러진다”며 대수롭지 않은 반응을 보이는 박씨. 비록 사체라 할지라도 사람의 몸에 칼을 대고 이리저리 파헤쳐 본다는 게 보통 사람이 생각하기엔 끔찍한 일일 터. 그러나 눈도 깜짝 안하고 능숙하게 처리하는 그의 모습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그런 그가 의외의 말을 한다.
“우리 과장님 말로는 여기는 음기가 너무 많이 넘쳐흐르기 때문에 기온도 다른 곳보다 낮대요. 부검할 때는 모르겠는데 저녁 때는 저도 무서워서 업무가 끝난 다음에는 이 근처에 얼씬도 안해요.”
정말 그래서인가? 물론 농담삼아 한 얘기겠지만 기자 또한 부검실이 다른 곳에 비해 유독 썰렁한 것 같아 방의 특수성상 에어컨을 가동시켰으려니 했던 것도 사실이다.
이화여대에서 해부병리학 전공의 자격을 딴 뒤 줄곧 이대 목동병원에서 근무하던 그가 국과수로 온 건 2001년 2월경.
“해부병리과 전공의는 성인 부검 10건을 해야 전문의 시험에 응시할 자격을 얻게 돼요. 그래서 레지던트 3년차 때 이곳에 와서 현장을 지켜보면서 사명감을 갖고 일하는 법의관들에게 깊은 인상을 받으면서 이 일에 흥미를 갖게 됐어요. 물론 남들이 볼 때는 죽은 사람을 해부한다는 것이 끔찍할 수는 있지만 전 오히려 매력을 느껴요.”
흔히 국과수는 범인을 잡기 위한 단서를 찾기 위해 사인을 밝혀주는 곳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박씨.
“만일 암보험에 들은 누군가가 암이 아닌 다른 이유로 죽었을 때 부검을 통해 암이 있었다는 반응이 나오면 보험혜택을 받을 수가 있어요. 또 수술을 잘 받고 회복하던 중 사망한 경우 의료사고로 주장하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가 봤을 때 수술과 관련해서는 잘못이 없고 마취로 인한 사고 같은 경우 그 말을 하기가 쉽지 않아요. 같은 의사라서가 아니라 마취로 인한 사고는 해부 수준으로는 밝힐 수가 없는 사안이기 때문에 심증은 가나 물증을 제시할 수 없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럴 경우라도 우리가 언급해주는 것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는 유족의 입장에선 천지차이거든요. 그런 식으로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은 아픈 사람을 완쾌시켜주는 것만큼 보람 있는 일이에요. 선진국의 경우는 국과수 같은 기관의 업무가 일반 사람들에게 정확히 알려져 있어 친숙하게 다가서는데 우리는 많이 격리되어 있는 편이죠. 국과수는 정말 재수없는 케이스에 걸렸을 때 가는 곳으로 알고 평생 거기는 가지 말아야지 하는 식으로 인식하고 있잖아요.”
아울러 그는 늘 비슷한 환자를 보는 것보다 상황마다 다른 시신을 대할 때마다 다른 사고방식으로 접근해보고, 또 다양한 경험을 통해 끊임없이 성장한다는 느낌을 받아서 좋다고 한다. 무엇보다 매너리즘에 빠질 틈이 없다는 것.
이렇듯 나름대로 포부를 안고 박씨가 국과수로 온다고 했을 때 친정어머니는 “의대 가서 곱게 의사나 하라고 했더니 이게 뭐냐?”며 탐탁지 않게 여겼지만 남편은 적극 환영했다고 한다.
현재 검사인 남편과는 업무상 서로 도움을 주고받기도 한다. 검시 의뢰를 받은 박씨는 시신을 부검한 후 형법상의 판정을 돕기 위해 어떤 부분을 언급해주는 것이 좋은지 남편에게 언질을 받는 반면 그의 남편은 사안에 따라 박씨의 의견을 통해 검시를 하는 것이 좋은지 아닌지 도움을 받는다는 것.

날마다 시체 만지는 여자, 국립과학수사연구소 홍일점 부검의 박혜진

국과수에서는 보통 네명이 한조를 이뤄 시신을 부검한다.


남들은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겠지만 그는 “생명이 없는 시신은 그저 마네킹 같은 느낌이 든다”고 한다. 피도 안 나올 뿐더러 탄력도 없어 사람을 절개했다는 느낌이 별로 안 든다는 것.
“의과대학에 가서 처음 정형외과에 가서 수술하는 것을 봤는데 메스를 대는 순간 피가 샘솟듯이 나오는 걸 보면서 기분이 이상하고 무섭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 사망한 상태에서 절개하면 피가 안 흘러요. 그러니까 별다른 감정이 안 생겨요. 사람이 죽으면 피부 모세혈관의 피가 금세 말라요. 그런 걸 보면 생전 손상인지 사후 손상인지 알 수 있는 키 포인트가 돼요.”
지금껏 그가 처리한 부검은 대략 3백건. 부검하는 데 내인사, 즉 본인이 가진 질병으로 사망한 경우 손상 부위가 거의 없기 때문에 20분 정도면 끝나지만 추락사나 칼에 여러 곳을 찔린 경우, 교통사고의 경우는 대개 2시간 정도 걸린다고.
지금은 그 어떤 상황의 시신을 처리하더라도 뒤돌아서면 잊어버려 부검 직후 식사를 하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지만 처음 몇 개월간은 밥을 잘 못 먹어 살이 많이 빠졌었다는 박씨.
“제가 사실 비위가 강한 편은 아니거든요. 처음엔 집에 와서도 자꾸 생각나 정말 힘들었어요. 위 내용물을 채취할 땐 죽는 줄 알았죠. 특히 여름엔 그 냄새가 말도 못해요. 의사니까 피에는 익숙해져 있어도 사체 냄새는 정말 고역이었어요. 냄새를 안 맡기 위해 독한 향수를 듬뿍 뿌려도 소용없고 마스크도 겹겹으로 해봤는데 소용없어요. 남자들은 샤워라도 하지만 국과수에는 여성용 샤워실이 따로 없어 저는 그냥 옷만 갈아입었어요. 처음 얼마간은 출근할 때 옷도 여러 벌 갖고 다녔어요. 또 지금도 순대 먹을 때 간은 안 먹어요. 해부하면서 워낙 잘라진 단면을 많이 보다보니 순대에 딸려 나오는 간을 보면 이 간은 뭐가 늘어났네, 뭐가 어떻게 됐네 하는 것들이 리얼하게 보여서 못 먹겠더라고요.”
부검을 하다보면 대동소이한 게 많지만 네살, 다섯살배기 딸을 둔 엄마의 입장에서 아이들 시신을 처리할 때 가장 가슴이 아프다는 그. 그러나 억울한 사람을 구해주고 미궁에 빠질 뻔한 사건을 명쾌하게 풀어냈을 때 법의관으로서 느끼는 뿌듯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는 얼마전 형부 살해혐의를 뒤집어쓸 뻔한 30대 여성의 결백을 밝혀내기도 했다.
“이 여성이 형부에게 돈을 빌리러 갔는데 갑자기 성폭행을 하려 해서 형부를 밀어 넘어뜨렸는데 그만 사망한 거예요. 여러가지 정황상 유력한 용의자로 의심받은 거죠. 사건 개요로 보면 처제가 얼마나 억울하고 불쌍해요. 하지만 부검 결과 형부의 사인은 외적 충격이 아니라 지병인 뇌동맥류에 의한 뇌출혈이라는 걸 밝혀낼 수 있었어요.”
또한 그는 억울한 죽음을 밝혀내기도 했다. 부부싸움 끝에 남편의 손에 죽은 아내의 사인을 명확하게 제시한 것.
“우리나라는 부부싸움을 한 후 한쪽이 사망하면 남은 배우자의 말을 절대 안 믿어요. 수사를 해보면 ‘싸우긴 했지만 화해하고 잘 잤는데 아침에 일어나보니 죽어 있더라’는 게 대부분이거든요. 이 경우에도 부부싸움한 다음날 아내가 죽어서 부검 의뢰가 들어온 건데 부검을 해보니 목 부분에 있는 혈관이 끊어져 있는 거예요. 그건 순간적으로 머리가 획 돌아갔다는 것을 의미하는 거죠. 말하자면 남편이 뺨을 심하게 쳤거나 주먹으로 머리 부분을 가격한 거라고 볼 수 있죠. 부검을 하지 않았다면 그런 것을 밝혀낼 수가 없는 겁니다.”
얼마전 어이없이 벌어진 대구지하철 참사로 인해 그 어느 때보다 바쁜 나날을 보냈다는 박씨. 이번 사건처럼 대형 참사가 일어난 경우에는 국과수의 업무 중의 하나인 DNA 검사가 표면으로 떠오른다. 그러나 DNA 검사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고 한다.

날마다 시체 만지는 여자, 국립과학수사연구소 홍일점 부검의 박혜진

박씨는 부검을 통해 미궁에 빠질 뻔한 사건을 해결하고 억울한 죽음을 밝혀냈을 때 보람을 느낀다고.


“유족들은 DNA 검사하면 바로 나올 텐데 뭐가 어렵냐고들 하는데 DNA는 바코드가 아니에요. 말하자면 검사를 했다고 해서 누구라는 게 바로 밝혀지는 게 아니라는 거죠. 더구나 이번 경우처럼 심하게 훼손된 시신에서는 DNA 추출이 안되는 게 대부분이에요. DNA를 추출했다 해도 유족들과 맞추어보는 것도 퍼즐과 같아요. 또 이번처럼 불특정 다수인 경우 유족들과의 조합이 더 어려운 거예요. 근데 유족들이 생각할 때는 DNA가 나왔으면 사람이 나와야 할 것 아니냐고 하는데 이건 아무리 설명해도 안 먹혀요.”
또 예전에 비하면 조금 나아졌지만 여전히 현장보존에 대한 인식이 별로 없다는 것도 일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라고 한다.
“한팀은 지하철을 통째로 옮겨 조사에 들어갔고 다른 한팀은 철로 현장에 남아 감식하고 있는 중에 현장에 있는 쓰레기를 치우고 물청소까지 했잖아요. 그래서 몇 사람을 차출해 쓰레기 버려진 곳에 가서 뒤졌으니 얼마나 인력과 시간의 낭비입니까. 또 사고가 나면 포토라인을 확실하게 쳐서 기자들도 들어오지 못하게 해야 마땅해요. 이번에도 기자들이 사진 찍고 취재하느라 현장에 많이 들어왔는데 비전문가가 보면 그런 상황에서 인체의 일부인지 뭔지 잘 모르거든요. 사실 이번에 기자들이 자신들은 모르겠지만 (시신을) 많이 밟고 다녔어요.”
그는 지휘체계도 문제라고 했다. 어떤 형태로든 하나의 라인을 통해 일사분란하게 움직여야 하는데 우리는 지휘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것.
“어디서 어떤 사고가 터지든간에 같은 팀이 파견나가는 식으로 해야 매번 나갈 때마다 노하우가 축적되는데 우리는 대구에서 사건이 터지면 대구에 있는 의사들이 나가고 제주도에서 터지면 제주도에 있는 의사들이 나가는 형식이었어요. 그러니 사건이 터질 때마다 매번 처음 경험하는 사람들이 감식을 하니 제대로 될 리가 없죠. 그래도 이번에는 지난번 중국 민항기 추락 때 투입됐던 팀이라서 비교적 일사분란하게 움직일 수 있었어요.”
이미 경험한 노하우가 있어 이번 경우 우선적으로 DNA 검출보다는 현장을 샅샅이 뒤지며 골편(뼈조각)을 찾아내면서 주변 상황이 어땠는지, 주변에 어떤 물건이 있었는지 일일이 기록하며 목걸이나 금니(금니는 고열에서도 타지 않고 남아있다고 함) 등을 찾아냈고 그로 인해 적지 않은 시신의 신원을 밝혀낼 수 있었다고 한다.
이런 일들을 겪을 때마다 박씨는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모두 역사의 한 부분임을 느끼며 앞으로 더한 사명감을 가지고 일에 임할 것이라는 다부진 각오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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