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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star #interview

현빈의 얼굴

editor 김명희 기자

2017. 12. 14

잘생긴 줄만 알았던 현빈의 얼굴에서 천생 배우의 그것이라고 불러야 할 깊이를 알 수 없는 감정과 말할 때마다 달라지는 표정들을 발견했다.

현빈(35)을 만난 곳은 서울 소격동의 한 카페 지하였다. 

인터뷰 시간에 정확히 맞춰 그가 천장이 낮은 계단을 내려와 조심스럽게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평범한 검은색 터틀넥 톱도, 현재 촬영 중인 영화 ‘창궐’ 때문에 덥수룩하게 기른 머리와 수염도 그의 훈훈한 비주얼을 가리진 못했다. 그의 미덕을 논하는 데 있어 깊은 눈빛과 듣기 좋은 주파수의 낮은 목소리도 빼놓을 수 없다. 인정옥(‘아일랜드’), 노희경(‘그들이 사는 세상’), 김은숙(‘시크릿 가든’) 같은 여성 스타 작가들이 공통적으로 선택한 남자 주인공이 된 데는 이런 매력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드라마 ‘도깨비’에서 이름을 갖고 싶어 하는 저승사자(이동욱)에게 은탁(김고은)은 이렇게 말한다. 

“여자들이 좋아하는 이름으로는 대표적으로 이 세 사람이 있죠. 원빈, 현빈, 김우빈.” 

‘시크릿 가든’에서 반짝이 추리닝조차 이태리 장인이 한 땀 한 땀 공들여 만든 명품으로 소화해낸 현빈에 대한 김은숙 작가의 사심이 반영된 대사라 할지라도, 그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훈남 배우라는 사실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원빈과 김우빈이 이런저런 사정으로 작품 활동이 뜸한 것과 달리 현빈은 최근 몇 년간 영화 ‘역린’과 ‘공조’, 드라마 ‘하이드 지킬, 나’ 등을 통해 꾸준히 대중들과 접점을 만들어가고 있다. 이번에 그가 들고 온 작품은 영화‘꾼’이다. 현빈과 유지태, 박성웅, 배성우 등 대세 배우들이 희대의 사기꾼 조희팔 사건을 모티프로 서로 속고 속이다 결국은 약자가 부패한 권력층을 벌한다는, 충무로 흥행공식에 충실한 영화다. 현빈이 맡은 황지성은 장난기 가득한 청년부터 수백억 원대 규모의 사업을 이끄는 전도유망한 사업가까지 다채로운 모습으로 변신을 거듭하며 악당들을 응징하고, 관객들의 허를 찌른다.

영화 개봉을 앞둔 소감은.
관객들이 어떻게 봐주실지 몰라 궁금하기도 하고 기대가 돼요. 반전이 주는 재미가 있어서 이 작품을 선택한 건데, 시나리오를 보면서 제가 느꼈던 감정과 쾌감이 관객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지면 좋겠어요. 

극 중 거대한 사기판을 설계하는 인물로 등장하는데, 실제로 다른 사람을 속여본 적이 있는지.

다들 소소하게 속이고 살지 않나요? 부모님에게 거짓말도 하고, 직장에서도 상사에게 곧이곧대로 만 얘기하진 않잖아요. 살면서 크게 거짓말한 적은 없고 그럴 일도 없었지만, 어릴 때 수영장 가기 싫어서 엄마에게 거짓말했던 건 기억이 나요. 

신인 감독(장창원)과의 작업이었는데, 불안하지는 않았나요.
그런 것 없었고 새로움에 대한 기대감이 더 컸어요. 감독님이 직접 쓴 시나리오라 작품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계셨고, 배우들이 자유롭게 연기할 수 있도록 공간들을 많이 열어 주셨죠. 리허설 때 저희가 연기를 주고 받는 모습을 보고 새로운 시도를 하면서도 본인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명확하게 있어서 중심을 잘 잡으셨어요. 



케이퍼 무비(범죄 오락 영화)는 배우들 간의 케미스트리가 중요한데, 현장 분위기는 어땠나요?
단체로 찍는 장면이 많다 보니 꼭 영화에 관해서가 아니더라도 이런저런 얘기를 자주 하면서 자연스럽게 친해졌어요. 같이 몰려다니는 것도 좋았고, 서로에 대한 믿음이 있어서 부담 없이 편하게 촬영할 수 있었죠. 

박희수 검사 역의 유지태 씨는 악역에 최적화 된 배우란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선배가 촬영장에서는 엄청 자상하세요. 동료와 스태프들을 많이 배려해주시고, 영화와 연기에 대한 열정도 엄청 나시죠. 사적인 자리에서나 현장에서 대기할 때 그런 모습을 보다가 카메라가 돌아가면 눈빛부터 다른 사람으로 돌변하는데 놀랍기도 하고, 배우로서 존경스럽기도 해요. 

지능형 사기꾼이라는 점에서 ‘검사외전’의 강동원, ‘마스터’의 이병헌 씨와 비교 되기도 하는데.
소재는 비슷할 수 있겠지만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바다이야기를 풀어가는 구도는 다르다고 생각해요. ‘꾼’의지성이를 연기하면서 중요하게 생각했던 건, 거대한 반전의 중심에 있는 인물이지만 절대 튀어서는 안 된다는 거였어요. 지성이가 판을 짜서 던져놓으면 주변 인물들이 거기서 놀고, 지성이는 그에 맞춰서 또 다른 판을 던지고 던지고 하는 인물이기 때문에 중심을 잘 잡고 판만 계획적으로 짜놓으면 자신의 목적을 이룰 수 있는 캐릭터라고 생각했죠.

배우라면 누구나 돋보이고 싶은 욕심이 있을 것 같은데, 의외네요.
작품을 할 때 제가 맡은 캐릭터가 돋보여야겠다는 욕심을 가진적은 없어요. 동료 배우들과 에너지를 교류하면서 상황에 맞게 어우러지는 게 더 중요하죠. 

어떤 배우로 기억되길 바라나요.
우리 곁에 있었던 배우, 동시대를 살았던 배우? 얼마 전 중학생 관객을 만났는데 ‘시크릿 가든’을 초등학생 때 봤다고 하더라고요. 시간이 참 빠르죠? 사람들이 나중에 ‘아 그때 그작품에 현빈이란 배우가 나왔지!’라고 기억해주기만 해도 고맙겠어요. 

원래 다작을 하는 편은 아닌데, 최근 몇 년간은 부쩍 작품활동을 많이 한 것 같아요.
지금 차기작 ‘창궐’을 촬영하고 있어요. 바쁜 게 좋아요. ‘창궐’을 찍으면서 힘든 부분이 있는데 여기 와서 영화 홍보하고 사람들 만나면서 풀고, 또 여기서 힘든 건 현장에 가서 집중하다 보면 잊을 수 있으니까요. 

그렇게 바쁜데 데이트(현빈은 동료 배우 강소라와 교제 중이다)할 시간은 있나요?

노 코멘트입니다. 하하하. 

개인사에 대해서는 별로 얘기를 안 하는 것 같아요.
감정을 잘 드러내는 스타일은 아니에요. 대화를 할 때도 주로 듣는 쪽이고, 고민이 있어도 혼자 해결하는 편이죠. 힘들지만 그렇게 해서 해결책을 찾아가는 것이 제 방식이에요. 배우라는 직업상 사생활을 너무 많이 노출하면 관객들이 캐릭터에 몰입하는 데 방해가 될 거란 생각도 들고요. 

연기 외에 좋아하는 일이 있다면.
사진 찍는 걸 좋아해요. 카메라 앞에 서는 것이 저희 일인데 어느 순간 카메라를 너무 모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맥락에서 시작한 건데, 현장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될 뿐아니라 함께 일한 사람들에 대한 기록이 되더라고요. 음악을 들으면 예전에 그 노래를 들었을 때의 추억이 떠오르는 것처럼, 사진에도 그런 힘이 있잖아요. 

그간 영화와 드라마에서 슈트를 입은 모습을 보면 패션에도 관심이 많아 보여요.
하하. 옷에 관심이 많습니다. 기본적으론 편안한 스타일을 선호하지만 슈트도 좋아해요. 어떤 옷을 입느냐에 따라 걸음걸이부터 말투까지 달라지잖아요. 슈트를 입으면 아무래도 긴장하게 되는데 배우들에겐 가끔 그런 게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슈트 핏을 유지하기 위해선 철저한 자기 관리가 필요할 텐데.

제가 먹는 걸 좋아해서(웃음), 정말 가리는 음식 없이 다 잘먹어요. 대신 시간 나는 대로 운동 많이 하고, 얼굴에 뭐가 나면 피부과 가고, 메이크업 잘 지우려 노력하고. 그 외에 특별한 건없습니다. 

‘시크릿 가든’에서 입었던 파란색 반짝이 트레이닝복은 국민추리닝이 됐죠.
저도 4벌 갖고 있어요. 그때 스타일리스트가 직접 제작한 거라 반납할 곳이 없었거든요. 

그동안 재벌 2세부터 다중인격, 사기꾼까지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했는데, 다시 도전해보고 싶은 캐릭터가 있다면.
그간 연기했던 모든 캐릭터가 특별하지만 데뷔 초(2004년)에 출연했던 드라마 ‘아일랜드’의 강국이 여운이 많이 남아요. 이나영 선배의 경호원 역할이었는데, 나중에 기회가 되면 경호원 캐릭터를 다시 한 번 해보고 싶어요. 나이가 들고 경험이 쌓이면 20대 때와는 또 다른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을 것 같거든요. 

올해가 데뷔 15년째인데, 배우로 지나온 길을 돌아보면 어떤생각이 드나요.
‘잘 버텨왔구나’ 싶어요. 사실 20대 때 슬럼프라기보다는 힘들었던 적이 있었어요. 연기에 대해서는 지금도 힘들지만 당시는 배우라는 직업이 버겁게 느껴졌거든요. 내가 자꾸 없어지는 느낌이랄까, 공허함이 있었는데 그때마다 무리 없이잘 넘어온 것 같아요.

내려가는 것에 대해서도 생각하나요.
지금 내려가고 있잖아요(웃음). 나이가 들어가면 새로운 젊은 친구들에게 자리를 내주고 내려가는 건 당연한 순리죠. 요즘은 위로 올라가고 싶은 욕망보다 어떻게 하면 잘 내려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더 커요. 제게 맞는 것, 잘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 앞으로도 계속 좋은 배우로 남는 것이 제게 주어진 과제예요.

designer 김영화 사진제공 쇼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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