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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modeltainer

이현이 - 잘나가는 모델로 살아간다는 것

editor 정희순

2017. 06. 01

요즘 방송가를 주름잡는 ‘모델테이너’를 이야기할 때 빠짐없이 오르내리는 인물이 있다. 대한민국 톱 모델들이 대거 소속된 에스팀 엔터테인먼트 소속의 모델 이현이다.

커리어만을 놓고 보자면 모델 이현이(34)의 경력은 독특한 편이다. 이화여대 경제학과에서 ‘올 A’를 받을 정도로 우등생이던 그녀는 재학 중 ‘덜컥’ 모델이 됐고, 이후 해외 유명 컬렉션을 누비느라 학교를 10년 만에 졸업했다. 어디 그뿐일까. 모델로선 이례적으로 서른이 채 안 된 나이에 ‘홀연히’ 결혼하더니 그로부터 3년 뒤엔 한 아이의 엄마가 됐다.

당시엔 모두들 이현이가 조만간 활동을 접을 것이라고 호언장담했지만, 그녀는 ‘보란 듯이’ 모델테이너로 승승장구 중이다. 예전엔 ‘엣지’ 있는 패션 모델의 이미지였다면, 지금은 ‘자연스러움’을 더한 느낌이랄까. 그녀는 이제 스타일 관련 정보 프로그램은 물론이고 예능, 심지어는 우리 문화재와 역사를 직접 소개하는 교양 프로그램까지 섭렵했다. 그 어떤 모델도 가본 적 없는 길을 이현이가 개척하고 있는 셈이다.  

이현이 씨를 교양 프로그램에서 만나게 될 줄은 몰랐어요.
그러게요(웃음). 시댁 어른들이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사실 어르신들은 패션모델이 어떤 일을 하는 직업인지 잘 모르시잖아요. 한때 제 이름을 검색하면 배우 조인성 씨와 해변에서 찍은 비키니 화보가 먼저 나왔던 적이 있었는데 그땐 제 직업을 그다지 달가워하시지 않았던 것 같아요. 요즘은 며느리가 교양 프로그램에 출연한다니 무척 자랑스러우신가 봐요(웃음). 

모델 일을 시작하던 때와 비교했을 때, 가장 달라진 점은 뭔가요.
예전엔 대중에게 패션계가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했잖아요. 패션쇼 무대에 오르거나 촬영장에 가면 스태프들이 예쁘게 꾸며주니까 평상시엔 외모도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어요. 무릎 나온 트레이닝복에 추울 땐 패딩 점퍼를 입고 다녔을 정도니까요(웃음). 물론 그것 때문에 회사 대표님께 많이 혼나기도 했어요. 모델은 언제 어디서든 모든 사람이 자신을 주목한다고 생각해야 한다고 하셨거든요.

요즘은 모델의 영향력이 굉장히 확대된 것 같아요.
2000년대 중반 패션 전문 채널인 동아TV가 생겨나고 이후 스타일 전문 채널 OnStyle이 개국하면서부터 어느 정도 변화가 감지됐던 것 같아요. 저와 데뷔 시절부터 함께한 대표님께서 “조만간 패션 산업이 크게 달라질 거다. 화보나 패션쇼뿐 아니라 모델이 설 자리가 다양해질 거야”라는 말씀을 늘 하셨어요. 그러면서 변화에 맞는 역량을 갖출 수 있도록 늘 준비하라고 조언해주셨죠. 사실 예전엔 모델이 속해 있는 회사들이 매니지먼트라기보단 에이전시의 역할을 주로 했어요. “어디에서 몇 시에 스케줄이 있으니 다녀와” 하고 일정을 정리해주는 정도랄까. 그러다가 점점 모델 개인의 개성을 살리고, 그것을 발전시킬 수 있는 방법을 함께 고민하는 방향으로 진화해왔죠.



요즘은 ‘모델테이너’라는 말도 나와요. 프로그램 출연 등 모델들이 등장하지 않는 곳이 없으니까요.
모델이 하는 일이 확 많아진 것이 아니라 더 눈에 잘 띄는 것뿐이에요. 예전엔 잡지 화보 촬영과 패션쇼 무대만 서기에도 일정을 다 소화해내기 힘들 정도였어요. 한 달에 꼬박 27일 이상을 일했을 정도니까요. 그런데 지금은 패션 산업이 침체기에 접어들면서 모델이 모델로서 설 수 있는 자리나 규모가 현저히 줄어들었어요. 모델 입장에서는 참 슬픈 일이죠. 

현이 씨는 왜 모델이 됐나요.  
대학에 들어갔을 때만 해도 모델이 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어요. 그땐 졸업 후 다른 친구들처럼 은행원이 되거나 일반적인 기업에 취직을 할 거라고 생각했죠. 부모님의 권유로 학교에 들어갔고, 저는 기왕 대학에 왔으니 하고 싶은 건 다 해보자는 마음이었어요. 무대에 서고 싶어 연극 동아리에서 활동했는데, 키가 크다는 이유로 남자 역할만 시키더라고요. 키가 커도 무대에 설 수 있는 방법을 찾다가 〈 슈퍼모델 선발대회 〉에 도전해봐야겠다는 생각까지 하게 된 거예요. 

뒤늦게 진로를 바꿔 부모님의 반대는 없었나요.
처음엔 〈 슈퍼모델 선발대회 〉에 원서를 내고도 부모님께는 알리지 않았어요. 하라는 공부는 안 한다고 타박만 받을 것 같았거든요. 운 좋게 본선 진출의 기회를 얻고 그제야 부모님께 말씀드렸어요. 그땐 SBS에서 생중계를 했기 때문에 더 이상 숨길 수도 없었거든요. 그런데 부모님이 잘해보라며 응원해주시더라고요. 모델 아카데미에 등록해서 수업을 듣겠다고 했으면 반대하셨을 텐데 지상파 방송에 나온다고 하니 좋은 경험이 될 거라고 생각하셨나 봐요. 이후 학업을 중단하고 모델 일을 하게 됐는데 그때도 나무라진 않으셨어요. 졸업하고 은행원이 된 친구들보다 제가 더 수입이 많았거든요(웃음). 

부모님은 모델인 딸을 자랑스러워 하시나요.
그럼요. 그저께도 친정에 갔는데 얼마 전에 제가 나온 잡지 지면을 스크랩해서 코팅해두셨더라고요. 엄마는 제가 모델로 데뷔한 이후 지금껏 그 작업을 한 번도 거르지 않으셨어요.

모델에게 결혼과 출산은 곧 은퇴라는 말이 있잖아요.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두려움은 없었나요.
결혼하겠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다들 제 모델 커리어에 지장을 줄 거라고 했어요. 임신 이야기를 했을 땐 더했죠. 선배 모델들을 봐도 결혼 후 은퇴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전 남편을 놓치면 이렇게 좋은 사람을 다시 만날 수 없을 것만 같았어요. ‘여기서 내 커리어가 끝이라고 해도 그동안 이루어온 것들에 감사하며 살겠다’는 생각이었죠.

그런데 모두의 예상을 깨고 일이 더 잘 풀리고 있는 거군요(웃음). 요즘 커리어에 대한 고민은 뭔가요.  
과거엔 모델의 역할이 표정이나 몸짓, 포즈, 분위기 등 비언어적인 요소들로 자기를 표현하는 것이었다면, 지금은 직접 말을 하고 글을 쓰는 등 언어적인 방식으로 자기를 표현하는 것이 중요해졌어요. 그래서 어떻게 하면 좀 더 세련된 방식으로 저를 표현할 수 있을지 고민 중이에요.

모델이 된 걸 후회해본 적 있나요.
전혀요. 모델 일을 하면서 가장 좋은 건 세계를 누비면서 정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이에요. 그 과정에서 남들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내면이 성장하는 걸 느끼게 되죠. 모델 일을 하기 전 제 시야가 30도에 불과했다면, 지금은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10배쯤은 늘어난 것 같아요. 제가 만약에 딸을 낳게 된다면 꼭 모델에 도전해보라고 권하고 싶어요.

사진 조영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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