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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interview.

‘은퇴자들이 가장 살고 싶은 아름다운 지자체’ 만드는 한상기 태안군수

editor 두경아

입력 2017.05.25 19:13:35

공직 생활을 마감하고 사과 농사를 짓다가 지자체장 선거에 당선된 한상기 군수. 고향에 내려와 살면서 불편하게 느꼈던 것들을 부지런한 농부의 자세로 하나씩 해결하다 보니 어느새 태안은 은퇴자들이 청정 자연 속에서 편안하게 살기 좋은 곳이 돼 있었다.
‘은퇴자들이 가장 살고 싶은 아름다운 지자체’ 만드는 한상기 태안군수
사과 농장에 팝콘처럼 새하얀 사과 꽃이 만개했다. 은은한 사과 꽃 향이 코끝을 간질인다. 추억의 만화영화 속 주인공 앤이 ‘기쁨의 하얀 길’이라 이름 붙인 바로 그 길을 연상케 한다.

“사과 꽃은 흰색이지만 꽃봉오리는 빨간색이에요. 빨갛게 꽃봉오리가 맺히면 튼실한 봉오리만 남기고 나머지는 솎아주게 되는데, 꽃이 지고 나면 빨간 사과로 익어가지요. 이 과정이 정말 아름답습니다.”

한상기(71) 태안군수는 마치 시 한 편을 읊는 듯, 사과 농사의 과정을 설명했다. 그는 군수이자 사과 농부다. 처음부터 농사를 지었던 건 아니다. 1946년 충남 태안에서 태어난 그는 1975년 경기도에서 공직 생활을 시작, 내무부와 국무총리실을 거쳐 충남도 연기 부군수, 서산시 부시장, 충청남도의회 자치행정국장 등을 역임했다. 2006년 퇴직 후 고향 태안에 내려와 사과 농사를 지으며 농부로 살다가 2014년 6·4 지방선거를 통해 민선 6기 태안군수로 당선된 것이다. 사과 농사는 올해로 8년째, 농업인으로도 제법 베테랑이다.

“퇴직하면 고향에 내려와 사는 게 꿈이었어요. 인생 2막을 열 일도 있어야 했지요. 정서적인 안정감을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직업으로 농사를 택하게 됐죠. 모든 일에는 다 어려움이 있지만, 남의 돈 넘겨볼 필요도 없고 땀 흘려 일하고 노력한 만큼 거둬들인다는 점에서 농사는 참 정직한 직업이란 생각이 들어요.”

생각 없이 ‘농사나 짓겠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커다란 울림이 있는 얘기다.



아내는 삶의 최고 파트너
요즘 태안은 경북 영주, 충남 예산 등 전통적인 사과 본고장의 아성에 도전하는 명품 사과 산지로 거듭나고 있다. 태안 사과는 서해안의 해풍을 맞고 자라 미네랄이 풍부하고 육질이 단단하며 당도가 높은 것이 특징이다. 한 군수가 농사지을 품목으로 사과를 정한 건, 예산에 위치한 충청남도의회 자치행정국장으로 일하던 당시의 깊은 인상 덕분이다. 그곳에서 전문가의 자문을 받았고, 사과 농사를 성공적으로 짓고 있는 농가를 방문하면서 마음을 굳히게 됐다. 그는 “빨간 사과가 달린 사과 밭은 그 자체로도 장관이었다”고 회상한다.

농장의 또 다른 주인은 한 군수의 부인 김자례 씨다. 김씨는 서울에서 나고 자란 천생 ‘도시 여자’로, 남편을 따라 사과 농사를 지으면서 새 삶을 살고 있다.

“아내가 무난한 성격이라 적응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어요. ‘해외여행 다니며 여생을 편하게 삽시다’ 하는 약속의 의미로 이곳으로 내려왔는데, 그와는 정반대 상황이 됐죠. 여행은커녕 사과 농사뿐 아니라 군수 아내로 사회 활동까지 하고 있으니…. 아내에게 늘 미안한 마음이 있어요. 그래도 다행인 건 농촌 생활을 한 번도 안 해봤는데 아내가 농장 일을 재미있어하는 거예요. 전에 근무하던 정부종합청사가 있는 광화문에 최근 갔는데 매연에 복잡하고, 사람들 표정도 굳어 있고…. 우리 부부는 다시 서울에서 못 살겠더라고요.”

물론 농사가 처음부터 쉬웠던 것은 아니다. 초반에는 사다리에만 올라가도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였다. 그러나 8년 정도 농사를 짓다 보니 기술이 는 건  물론, 아내와의 호흡도 척척이다. 이들 부부는 슬하에 딸 셋, 아들 하나를 뒀다. 자녀에 대한 이야기에 이르자 그는 “미안한 마음이 크다”며 말문을 열었다.

“공직자로 살았던 40여 년 동안 가족 여행 한번 제대로 못 갔어요. 가정에서는 아빠로, 남편으로 모두 빵점이었을 거예요. 그래도 어떻게 보면 공직 생활을 성실히 하면서 가족 간에 문제없이 지내온 것이 저로서는 가정에 충실한 거였어요.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제 그런 모습을 보고 자랐으니까 ‘우리 아버지는 그런 분이다’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태안군에서도 ‘달고 맛있는 군수집 사과’로 유명하지만 태안군수로서도 그 이상의 좋은 성적을 내고 있다. 취임 때부터 ‘희망찬 태안, 행복한 군민’이란 슬로건으로, 군정의 당면 현안 해소를 최우선 과제로 삼고 태안기업도시 개발 사업, 안면도 관광지 개발 등 그동안 풀지 못했던 어려운 문제를 대부분 해결해나가면서 군민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어왔다. 그가 지역의 난제들을 풀어낼 수 있었던 동력은 바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에서 폭넓게 쌓아온 행정 경험과 추진력에서 나온다.

“지난겨울, 버스 정류장 의자에 열선을 깔았어요.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데, 저도 나이가 들어서 춥고 고령의 어르신들은 더 힘들어하시는 걸 봤으니까요. 그런데 어르신들이 그걸 그렇게 좋아하시더라고요. 군민들이 행복해하는 정책은 멀리 있지 않더군요. 중앙정부의 일과 달리 지방정부 일은 하나씩 개선하면 군민들이 바로바로 편해진다는 점에서 보람이 있습니다.


‘은퇴자들이 가장 살고 싶은 아름다운 지자체’ 만드는 한상기 태안군수

40여 년 공직자로 빵점 가장이었다는 한상기 군수는 삶의 최고 파트너로 부인 김자례 씨를 꼽았다. 카메라 앞에 앉은 군수 부부는 어색해했지만, 사진에서 믿음과 정이 느껴진다


군민들의 행복을 만드는 작은 변화들
태안은 현재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 한 군수는 이러한 군 특성을 반영해 건강 정책에 각별히 신경 쓰고 있다. 우선 증축과 개·보수, 현대화 사업 추진을 통해 ‘태안군보건의료원’이 새롭게 문을 열었고, 앞으로 65세 이상 노년 인구 증가에 대비한 치매 예방 프로그램 등 노년층의 종합적인 건강관리가 가능한 ‘어르신 건강센터’도 건립할 예정이다. 이 밖에도 획기적인 복지 확대, 평생교육 실행, 경제 활성화 등 한 군수가 내세운 정책들은 모두 군민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만들어낸 것이다.

“무엇보다도 군민들의 불편함을 덜어드리고 싶었어요. 민원인이 요구하기 전 미리 불편함을 파악해 해결해주는 ‘민원관찰제’, 민원이 들어오면 즉시 해결해주는 ‘행정 119’, 경력이 풍부한 6급 공무원이 상담가가 되어 복잡한 민원을 해결해주는 ‘민원상담관제’ 등이 있지요. 반응도 좋은 편입니다.”

이런 정책들은 바로 한 군수가 은퇴자 입장에서 전업 농부로 살아봤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더군다나 노령 인구는 더  늘어나고, 한 군수처럼 퇴직 이후 인생 이모작을 위해 태안을 찾는 도시민들이 많아지는 상황. 태안군은 천혜의 자연과 먹을거리, 볼거리 등이 다양해 은퇴자들이 노후의 삶을 보내기에도 좋은 곳이다. 군은 이를 위해 도시민 유치팀을 신설해 베이비부머 세대의 퇴직에 대비한 적극적인 귀촌 인구 유치에 나서고 있다.

“태안은 수도권과 거리가 가깝고,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풍부한 먹을 것들이 있습니다. 행정적으로만 잘 뒷받침한다면 편안한 노후의 삶을 즐기기 위한 군으로 거듭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30여 개 해수욕장이 몰려 있는 긴 해안선을 가진 태안은 1년에 1천만 관광객이 다녀갈 정도로 서해안 최고의 관광지로 꼽힌다. 꽃게, 주꾸미, 오징어 등 사시사철 풍부한 먹을거리가 일품이다.

국내 12번째 슬로시티 지정, 살기 좋은 도시 태안



‘은퇴자들이 가장 살고 싶은 아름다운 지자체’ 만드는 한상기 태안군수
한상기 군수에게 관광지를 추천해달라고 요청하니, 역시나 끝도 없이 이어졌다. 국내 최대 규모의 사구인 신두리 해변, 연꽃으로 유명한 청산수목원, 허브 농장인 팜카밀레, 천리포수목원, 안면송림, 안면도쥬라기박물관, 만리포해수욕장을 비롯해 40여 개의 항구와 포구, 170km에 달하는 해변길…. 특히 올여름 만리포해수욕장을 찾을 관광객들을 위해 설치된 ‘워터스크린’도 기대할 만하다. 워터스크린은 가로 10m, 높이 13m의 대형 조형물로, 떨어지는 물을 이용해 스크린을 만들고 여기에 LED 조명을 투사해 영화, 뮤직비디오, TV 프로그램 등 각종 영상을 상영하는 장치다.

한 군수는 “태안을 대표하면서도 세계적이고 미래 지향적인 관광 사업”도 구상 중이다. 그중 하나가 한중 해저유물박물관이다.

“태안 앞바다에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중국을 오가던 수많은 배들이 가라앉아 있습니다. 중국 배와 일본 배도 있지요. 그동안 그곳에서 고려청자, 이조백자 등 수많은 유물들을 건져냈습니다. 한중 해저유물박물관을 건립해 이곳에서 발굴될 유물과 배들을 관광 상품으로 개발하면 태안의 대표적인 지역 브랜드가 될 겁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태안군은 지난 5월 12일 ‘슬로시티(Slow City)’ 인증을 받아 국내에서 12번째로 슬로시티가 됐다.

“자연과 전통, 그리고 공동체를 통한 상생과 조화로 주민들을 행복에 이르게 하는 것이 슬로시티의 철학입니다. 우리 군은 앞으로 주민의 행복과 삶의 질 향상 추구, 자원 보존 및 전통문화 계승·발전, 생태 관광 메카로 발돋움, 지역 경제 육성과 주민 소득 향상, 질 높은 관광 인프라 구축 등 슬로시티의 목적에 부합하는 시책을 추진해나갈 예정입니다.”

무엇이든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일은 없다. 한상기 군수는 오늘도 농사짓는 마음으로 차근차근 정직하게 태안의 미래를 준비해나가고 있다. 그리고 이런 노력들은 군민들의 행복으로 돌아올 것이다. 

“30~50년 후에 태안이라는 공간이 어떻게 해야 세계적으로 살기 좋은 곳이 될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토론회를 하고 답사도 하면서 큰 그림을 그린 지 1년이 됐어요. ‘세계에서 은퇴자들이 가장 살고 싶은 도시’가 태안군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자연이 깨끗하고, 문화를 즐길 수 있고, 각박하지 않고, 편안해서 지친 사람들이 오고 싶어하는 곳이라는 뜻이니 군수에게는 최고의 명예가 아닐까 싶습니다.”

기획 여성동아 사진 김도균 디자인 김영화



여성동아 2017년 6월 64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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