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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michelin_guide #theskyfarm

노희영과 나눈 별별 이야기

미쉐린 스타

editor 김명희 기자

입력 2017.02.07 15:45:50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의 꼭대기 층엔 ‘마녀’ 혹은 ‘미다스의 손’이라 불리는 여자, 노희영의 아지트가 있다. 미식가들의 바이블로 꼽히는 〈미쉐린 가이드〉도 인정한 맛의 별세계다.
노희영과 나눈 별별 이야기
노희영(54)은 외식업계의 ‘미다스의 손’이라 불린다. 더스카이팜을 운영하는 피와이앤파트너스의 총괄 디렉터이자, YG푸즈의 대표인 그녀는 만지는 것은 무엇이든 황금으로 변하게 하는 그리스 신화 속 인물 미다스처럼 문을 여는 레스토랑, 론칭하는 브랜드마다 큰 성공을 거뒀다. 그러니까 우리가 본격적으로 그 미다스의 손바닥에 놓이기 시작한 건 2003년 서울 도산공원 앞, 지금은 랄프로렌 플래그십 스토어 자리에 느리게 걷기가 들어서면서부터였던 것 같다. 높은 천장과 시원한 야외 테라스가 있는 그곳은 유행의 최첨단을 달리는 사람들이 한 박자 쉬어가는 안식처 같은 곳이었고, 그 후로 한동안 ‘거기(느리게 걷기) 가봤어?’라는 질문은 보통 사람들 사이에서 트렌드세터를 가려내는 암호처럼 통용됐다. 그에 앞서 론칭한 궁이 그랬고 호면당이 그랬으며, 오리온에서 만든 마켓오의 브라우니는 베이커리의 초콜릿 케이크만큼이나 촉촉한 식감으로 입맛을 사로잡았다. 주중엔 그녀가 CJ에서 론칭한 제일제면소에서 점심을 먹은 후 투썸플레이스에서 커피를 마시고, 주말엔 계절밥상에서 가족과 외식을 하고 마트에 들러 비비고 만두를 쇼핑하는 건 낯설지 않은 일상이다. 고백컨대 기자의 뱃살엔 노희영 디렉터의 지분도 적지 않으나 그녀가 지배하는 모든 공간에서의 기억이 즐거웠다 말할 수 있다.

모든 크리에이터들은 혁명가다. 대중의 일상으로 깊이 파고드는 동안 그녀는 자기 자신과 싸웠고, 기업에서 일할 땐 자신의 주장을 독하게 밀어붙인 탓에 ‘마녀’라고 불리기도 했다. 한 가지에 빠지면 자신이 지닌 모든 에너지를 열정적으로 쏟아붓는 스타일이기에, 2014년 CJ와 결별한 후 한동안 재충전의 시간을 가질 것으로 예상했으나 그건 오산이었다. CJ에서 나오자마자 YG엔터테인먼트 양현석 대표와 손잡고 YG리퍼블리크를 론칭한 데 이어, 서울 여의도에 더스카이팜이라는 식문화공간을 오픈했다. 이곳은 한식 퀴진을 선보이는 ‘곳간by이종국’, 한식 뷔페 ‘사대부집곳간’, 브런치 레스토랑 ‘세상의모든아침’ 그리고 맞춤 연회 공간인 ‘프로미나드’로 구성돼 있다. 이 중 곳간by이종국이 지난해 11월 세계적 권위를 지닌 레스토랑 평가서 〈미쉐린 가이드〉로부터 2스타에 선정됐다. 미다스의 손이 별을 거머쥔 것이다.



〈미쉐린 가이드〉 후일담

노희영과 나눈 별별 이야기

곳간by이종국에서 내는 디저트, 견과류찰떡.

여의도 전국경제인연합회관 50층과 51층에 자리 잡은 더스카이팜에 들어선 첫 느낌은 별을 달 만하다는 것. 하늘 높은 곳에 위치해서만은 아니다. 더스카이팜은 노희영 디렉터가 쌓아온 노하우와 철학이 집약된, 가장 그녀다운 공간이다. 천장을 비롯한 모든 면이 통유리로 이루어져 한겨울에도 따뜻한 느낌이다. 51층은 옥상 정원인데, 이곳 텃밭에서 키운 채소들은 고객의 식탁에도 올라간다. 좋은 식재료는 요리를 업으로 삼는 이들에겐 전장에 들고 나가는 무기와도 같다. 노희영은 식(食)과 농(農)을 연결시키겠다는 오랜 꿈을 이곳에서 비로소 이뤘다. 옥상 정원을 둘러보고 내려오자, 곳간by이종국의 가장 깊숙한 방에서 ‘마녀’라 불렸던 그녀가 동그란 얼굴에 소녀 같은 웃음을 머금고 기다리고 있었다.





▼ 웃는 모습이 귀여우세요. 사실 까칠한 완벽주의자를 상상했거든요.

저를 좀 아는 사람들은 허당인 줄도 알아요. 그래서 더 위악을 부렸는지도 몰라요. 너무 나이스하게 하면 누가 제 말을 듣겠어요. 그래도 직원들이 그러는데 여기 와선 많이 달라졌대요. 착해졌다고(웃음). 왜 그런가 생각해봤더니, 절대 권력이 없어져서 그런 것 같아요. 예전엔 오너의 컨펌을 받기 위해 여러 경우의 수를 준비해야 하니 같이 일하는 직원들도 힘들었을 거예요. 지금은 그때에 비해 너무 쉽게 컨펌이 나니까 직원들이 ‘이래도 되나’ 싶은가 봐요. 다른 사람 아래서 일할 때는 ‘이 정도면 됐다’는 게 있을 수 없었는데, 지금은 제가 절대 권력이니까 ‘이 정도면 됐다’ 그러죠.

▼ 〈미쉐린 가이드〉 2스타에 선정된 걸 축하드려요.

너무 행복해요. 미쉐린은 음식을 하는 사람들의 꿈이잖아요. 열여섯 살 때 미국에 유학을 가서 가장 놀랐던 게 맥도날드였어요. 메뉴를 주문하자 1~2분 만에 뚝딱 근사한 음식이 나오는데, 문화적 충격이었죠. 나중에 메뉴 개발 일을 하면서 제대로 된 한식으로 사람들에게 그런 신선한 충격을 주고 싶다는 열망이 커졌는데 ‘드디어 해냈구나!’ 싶은 생각이 들어요. 사실 여길 만들면서 반대도 많았어요. 공간이 워낙 넓으니(6백 평) 과연 여기서 수익을 낼 수 있을지 걱정됐던 거죠. 무엇보다 힘들었던 건 저와의 싸움이었어요. 오리온, CJ 등 대기업과 일하면서 제가 가진 자신감과 열정을 모두 쏟아부었음에도 그런 경험을 이용해서 제 매장을 낸다는 게 자존심도 상하고, 안 좋게 보는 시선도 있을 수 있고요. ‘나는 나야’라는 걸 보여주려고 공을 많이 들였는데, 그간의 노력을 인정받은 것 같아 더 기뻐요.

▼ 미쉐린 인스펙터들이 다녀간 사실은 알고 있었나요.

전혀 몰랐어요. 그동안 몇 번을 다녀갔는지는 모르겠는데 나중에 인스펙터가 자신의 신분을 밝히면서 “주방을 볼 수 있겠냐”고 요구해서 그때 알았죠. 저희가 거기서 점수를 많이 받은 것 같아요. 다른 건 몰라도 주방의 위생 상태나 정갈함에는 정말 자신이 있거든요.

▼ 이종국 셰프와는 어떻게 의기투합하게 됐나요.

이종국 선생을 안 건 CJ에 있을 때였어요. CJ가 가장 잘하는 게 콘텐츠와 사업을 연결시키는 거잖아요. 올리브TV 〈만두명가〉를 하면서 비비고 만두를, 〈제면명가〉를 하면서 제일제면소를 론칭하는 식으로요. 그때 하이엔드 퀴진을 하고 싶어서 〈계절의 식탁〉이란 프로그램을 제작했는데, 거기에 이종국 선생님이 출연했어요. 그런데 뭐가 잘 안 맞았는지 1, 2회만 출연하고 갑자기 사라져서 속으로 ‘참 이상한 분이다’ 생각했었죠. 그런데 더스카이팜을 준비할 때, 여기 공간 디자인을 한 최시영 건축가가 선생님을 만나보라고 하더라고요. 두 분이 성북동에서 이웃으로 친하게 지내거든요. 그렇게 인연이 돼서 다시 만났는데, 선생님이 차려주신 밥상을 받아보곤 너무 놀랐어요. 세상에 이런 밥상이 있나 싶은 게…, 그만 사랑에 빠지고 말았죠(웃음). 선생님도 제 눈이 맑다며 좋게 봐주신 것 같더라고요.

▼ 미쉐린도 미쉐린이지만, 옥상에서 농사를 짓고 농부들과 직접 연계해 식재료를 조달하는 점에서 믿을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훌륭한 셰프들에게 그들의 경쟁력을 물으면 거의 모두 ‘재료’라고 답해요. 식재료는 자연이 주는 최고의 선물이고, 그 혜택을 제대로 누리기 위해선 농민들에게 올바른 판로를 만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에르메스, 샤넬 같은 명품은 수입하면 되지만 먹는 건 남이 해결해줄 수 없잖아요. 우리 토양에서 나는 것들이 가장 맛있고요. 우리 회사에는 오리온 때부터 함께한 R&D 팀이 있는데, 메뉴 개발과 아울러 전국에서 가장 좋은 식재료를 찾아내 레스토랑에 공급하는 일을 하죠.

▼ 미쉐린 2스타도 대단하지만 이왕이면 3스타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은 없었나요.

이런 얘기하면 미쉐린에 혼날 수도 있는데 저는 3스타를 별로 안 좋아해요. 사실 3스타 정도면 아트에 가깝다고 볼 수 있어요. 장자가 “먹을 것을 너무 탐하면 혀끝이 상해서 먹지 못한다”고 했는데, 3스타가 그런 경지가 아닌가 싶어요. 음식에 대한 극한의 크리에이티브를 고민하는 거죠. 제가 추구하는 건 엄마가 해준 것보다 조금 더 맛있고 세련된 밥상이에요. 그래서 2스타로도 충분히 만족하고 감사합니다. 이종국 셰프께도 “선생님은 이종국이란 이름으로 3스타를 따세요. 선생님은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어요. 저는 2스타가 너무 행복합니다”라고 말씀드렸어요.


노희영과 나눈 별별 이야기

곳간by이종국은 반가로 내려오는 우리 음식 문화의 전통 위에 한식 연구가 이종국 선생의 철학을 담은 한식 퀴진이다.


▼ 최근 프로미나드에서 비·김태희 커플 피로연이 열려서 화제가 됐어요.

저도 결혼식 이틀 전에 연락을 받았어요. 두 사람 모두 굉장히 반듯하고 지난 5년 동안 예쁘게 사랑을 해서, 제가 (피로연을) 해주고 싶었어요. 비가 어머니도 안 계시고 하니까, 아들 같기도 해서 가족 같은 마음으로 준비했죠. 두 사람이 바라는 것도 거창한 것보단 소박한 피로연이었고요.

▼ CJ에서 나와 전경련회관에 레스토랑을 열어서 이러저런 말들이 있었죠.

제가 전경련에서 특혜를 받았다는 얘기도 있던데, 전혀 사실이 아니에요. 여기가 식당 로케이션으로 보면 최악이거든요. 전용 엘리베이터를 이용해야 하기 때문에 이 건물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여기로 오려면 1층으로 내려가서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와야 해요. 외식 사업을 하는 전경련 회원사들도 모두 안 들어온다고 해서 3년 동안 임대가 안 됐던 곳이죠. 제가 이 건물에 끌렸던 이유는, 옥상 정원 때문이었어요. 저는 브랜드를 구상할 때 비주얼을 먼저 생각하는데, 가든을 둘러보곤 팜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레스토랑 이름에 ‘사대부’와 ‘곳간’이란 단어를 넣은 건 어쨌거나 저를 선택해준 전경련에 대한 고마운 마음이 담겨 있어요.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말도 있잖아요.

▼ 미다스의 손이라고 불리는데, 실패한 경험은 없는지.  

왜 없겠어요? 있었지만 기억을 못 하는 거겠죠. 안 좋은 일은 빨리 잊는 편이거든요. 안타까운 건 있어요. CJ에 있을 때 뚜레쥬르를 꼭 업계 1등에 올려놓고 싶었는데 어렵더라고요. 이재현 회장님 앞에서 뚜레쥬르 리뉴얼에 관한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랜드마크인 서울 강남역 파리바게뜨 매장 옆에 똑같은 사이즈로 뚜레쥬르 매장을 하나 내서 맞짱을 뜨게 해달라고 부탁드렸더니, 회장님이 “당신을 어떻게 믿고 덜컥 매장을 내주느냐”며 안 된다고 하시더라고요. 이 회장님은 굉장히 꼼꼼하고 디테일하신 분이거든요. 그래서 다른 곳에서 이기면 강남역에 열어주시겠냐 했더니, 그건 “오케이” 하셨어요. 그래서 경기도 분당 AK플라자 앞에 파리바게뜨와 같은 사이즈의 매장을 리뉴얼해서 오픈했는데, 새로 문을 여는 날 오전 7시에 파리바게뜨 임원 20명이 나와 있더라고요. 업계 1등을 하는 기업이 그 정도 긴장감을 갖기가 쉽지 않은데, SPC(파리바게뜨 모기업)는 정말 대단하단 생각이 들더군요. 거기서 이겨서 나중에 강남역 파리바게뜨 옆에 뚜레쥬르 매장을 내긴 했는데, 끝까지 승부를 보지 못한 건 아쉬워요.

▼ 성공한 사업가로서 ‘노희영 스타일’은 뭘까요.

호기심이 아닐까 싶어요. 저는 어디에 뭐가 새로 생겼다는 얘기를 들으면 안 가보곤 못 배겨요. 새로운 걸 좋아해서 출장을 가서도 한곳에 머물지 않고 매일 호텔을 옮겨 다니고요. 그리고 궁금한 건 못 참아서 학교 다닐 때 별명이 ‘좀 더 자세히 말해봐’였어요. 누군가가 새로운 경험을 하고 오면 “그래서 어땠는데” 하면서 자꾸 물어서 생긴 별명이죠. 어딜 가든 무엇이 장점인지, 배울 점을 찾으려 노력하고요. 무엇보다 제가 하는 일을 좋아해요. 제 사업을 하는 지금은 물론이고 오리온, CJ에서 일할 때도 아침에 눈뜨는 게 너무 행복했어요. 함께 일한 오너들에 대해서도 오로지 존경심만 가졌고요. 눈에 하트가 가득했으니 그분들이 뭘 시킨들 못 했겠어요? 밤에 침대에서도 휴대전화를 가슴에 얹고 잤다니까요.

▼ 지금 양현석 대표와 일하는 건 어떠세요.

CJ를 그만두고 나왔을 때 양현석 사장이 전화를 걸어 “거기랑 할 만큼 했어. 이제 나랑해”라고 하는데 그게 정말 좋았어요. 내가 먼저 제안을 하기 전에 누군가가 다가와서 손을 내밀어준다는 게 참 고맙더라고요. 양현석 대표 역시 굉장히 꼼꼼하고, 자기 관리가 철저한 스타일이에요. 소속사 연예인들을 대하는 건 말할 것도 없고 인스타그램에 사진 한 장 올리는 것도 굉장히 신중하게 결정하더라고요.



크리에이터 노희영을 키운 영감의 원천

노희영 디렉터를 이해하는 첫 번째 키워드가 음식이라면 두 번째는 패션이다. 누군가는 그녀가 입는 옷을 보면 요즘 뜨는 브랜드를 알 수 있다고 했다. 무려 〈도깨비〉의 공유와 〈푸른 바다의 전설〉 전지현이 모두 입어 화제가 된 로에베의 그 코트를 노 디렉터의 인스타그램에서 발견했을 때 그 말이 사실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심지어 공유, 전지현보다 그녀가 먼저 그 코트를 입었다! 그의 옷장엔 베트멍, 언더커버 같은 젊고 핫한 디자이너 브랜드들을 위한 자리도 마련돼 있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미식가인 아버지 손에 이끌려 명동의 파인힐, 종로의 아서원 같은 이름난 맛집 투어를 다녔다. 식구들은 음식만큼이나 패션에도 관심이 많아 온 가족이 외식을 하기 위해 옷을 차려 입고 집을 나서는 데 3시간씩 걸리곤 했다고 한다. 맏딸을 의사로 키우고자 했던 교육열 높은 어머니의 성화에 미국으로 유학, 의대에 진학하긴 했으나 곧 그만두고 명문 패션 학교인 파슨스 디자인 스쿨에 입학, 패션으로 진로를 바꾼 것도 그런 DNA의 영향일 것이다. 노희영 디렉터가 레스토랑 사업과 브랜드 마케터로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단순히 음식을 파는 게 아니라, 지금까지 없던 새로운 스타일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유전자와 파슨스에서의 경험은 그녀의 큰 자산이다.

▼ 그간 론칭한 브랜드들이 많은데 각각을 어떻게 차별화하는지.

디자이너 출신이라는 게 이래서 좋은 것 같은데, 저는 모든 브랜드나 메뉴를 비주얼로 생각해요. 그리고 ‘해야 할 것(to Do)’과 ‘하지 말아야 할 것(Not to Do)’을 명확히 설정하고 거기에 맞춰서 가지치기를 하죠. 이 레스토랑이 만두를 잘하는데, 면 요리도 하나 끼워 넣자 그럼 안 되는 거죠. 일관성 있는 퀄리티를 유지해야 하고요. 그러려면 독해져야 해요. 옷 장사는 욕쟁이 할머니가 없는데, 밥장사만 욕쟁이가 있어요. 식당은 그렇게 해야 돌아가거든요.

▼ 도산공원 느리게 걷기는 당시 트렌드세터들의 아지트 같은 곳이었죠. 당시 패션 피플들을 만날 땐 꼭 그곳을 약속 장소로 잡곤 했어요.

저도 거기가 참 좋았어요. 오랫동안 청담동을 지켜보면서 속도전을 치르며 살고 있는 패피들에게 생각할 여유를 주고 싶었어요. 느리게 걷기란 이름도 피에르 상소의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에서 영감을 받아 제가 직접 지었고요. 느리게 걷기 인테리어를 전시형 씨와 마영범 씨가 했는데, 가게 이름을 느리게 걷기라 지었더니 전시형 씨는 “인사동 냄새가 나지 않냐” 했고, 마영범 씨는 “너 그렇게 안 봤는데 천재 같다”고 했던 기억이 나네요. 그렇게 시작했는데 순식간에 입소문이 나서 대한민국 카페 사상 최고 매출을 기록했었죠.

▼ 파슨스 디자인 스쿨에선 왜 의상 디자인을 안 하고 액세서리 디자인을 전공하셨어요.

의대가 도저히 저와 안 맞아서 파슨스로 진로를 바꿨는데, 거기 가보니 트로아조 선생님 아들(디자이너 한송), 진태옥 선생님 딸(디자이너 노승은), 이신우 선생님 딸(디자이너 박윤정) 등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패션 명문가의 자제들이 다 와 있더라고요. 정구호 씨도 있었고. 나는 돈을 벌려고 거기 갔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들과 경쟁해선 승산이 없겠더라고요. 그러던 차 커리큘럼을 찾아봤더니 액세서리 디자인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교수님을 찾아가 전공을 바꾸겠다 말씀드렸죠. 처음엔 “어떻게 들어온 학굔데, 전공을 그렇게 쉽게 바꾸느냐” 며 반대를 많이 하셨는데 나중엔 허락해주셨어요. 거기서 톱질하면서 고생도 많이 했지만 덕분에 프로덕트 디자인, 가구, 인테리어 등 다양한 공부를 하게 됐죠.

▼ 한때 청담동 일대에서 단추 디자이너로 유명하셨다고 들었어요.

제가 파슨스를 졸업하기 몇 달 전쯤 앤클라인 디자이너였던 도나 카란이 독립하면서 신문에 대문짝만 하게 광고를 냈는데, 거기에 ‘도나 카란의 모든 액세서리는 로버트 리 모리스가 디자인한다’는 문구가 눈에 띄었어요. ‘바로 이거’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이스터 브레이크(부활절 휴가) 때 한국에 들어와 하용수, 지춘희, 김영주 선생님께 전화를 드렸는데 선생님들이 만나주시겠다 하더라고요. 그래서 전 재산을 털어 장만한 도나 카란의 옷과 가방, 구두를 풀 착장하고 미팅 장소로 갔어요. 그리고 제 스케치를 보여드렸더니 흔쾌히 세 분 모두 클라이언트가 돼주셨어요. 제가 하나님께 감사한 게 그런 부분이에요. 액세서리 사업을 하고 싶다 했을 때 그렇게 됐고, 미쉐린 스타를 정말 따고 싶다 했는데 꿈을 이뤘잖아요. 그게 꼭 잘나고 능력이 있어서만은 아닌 것 같아요. 누군가가 기회를 줘야 하고, 기회가 왔을 때 받을 줄도 알아야 해요. 그래서 전 더욱더 감사하고, 누군가의 힘이 무엇인지에 대한 두려움도 갖고 있어요.

▼ 그 정도면, 패션 사업가로도 크게 성공했을 거 같은데.

돈 한 푼 안 갖고 시작했는데 스물여섯 살에 기사 딸린 슈퍼살롱 타고 다녔어요(웃음). 서울 시내 백화점에 있는 거의 모든 옷들이 내가 만든 단추를 달고 있었어요. ‘이제 모든 걸 이뤘으니 은퇴해야 하나’란 생각까지 했죠. 그런데 사업이 커지니 열심히 키운 직원을 빼가는 회사도 생기고, 제가 만든 액세서리를 가져다 금형을 떠서 카피하는 곳도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납품을 접고 서울 압구정동 갤러리아 백화점에 직접 매장을 오픈했는데 처음엔 장사가 너무 잘됐어요. 그래서 그 여세를 몰아 전국에 매장을 22개나 오픈했는데 그게 재앙의 시작이었죠. 그 디자인이 압구정동에서만 먹히는 걸 몰랐던 거죠. 그러면서 타격을 많이 입었고, 무엇보다 우울했던 건 제가 디자인한 게 안 팔리기 시작한 거였어요. 촌스럽고 이상하다 생각하는 건 너무 잘 팔리고. 그러니 재미가 없더라고요. 디자이너로는 더 이상 안 되겠다 싶어 레스토랑 사업을 시작한 거예요.

▼ ‘먹는 것이 곧 그 사람’이라는 말에 비춰봤을 때 노희영은 어떤 사람이라고 정의 내릴 수 있을까요.

뚱뚱한 사람이죠(웃음). 튀기고 볶고 살찌는 음식을 좋아해요. 그리고 호기심이 많아서 새로운 음식은 다 먹어봐야 하고. 만두를 론칭할 땐 전국의 만두를, 면 레스토랑을 오픈할 땐 전국의 이름난 면 요리는 거의 다 먹어봤어요. 쁘띠첼을 만들 땐 세계의 유명하단 푸딩은 다 먹어봤고요. 마른 셰프가 하는 음식은 맛이 있을 수 없어요. 자기가 좋아하고 자꾸 먹어봐야 음식도 맛있어지거든요.



노희영과 이야기를 나누며 ‘마녀’라는 별명은 ‘최선’의 또 다른 이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오늘도 열정이라는 빗자루에 올라탄 채 더 따뜻하고 스타일리시한 한 끼를 만들어내기 위해 여의도의 하늘을 누빈다.

노희영과 나눈 별별 이야기


여성동아 2017년 2월 63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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