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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x-file 김진 기자의 먹거리 취재 파일

태반 완판, 그 어려운 일을 해낸 대통령

editor 김진 채널A 〈 먹거리 X파일〉 진행자

2017. 01. 17

태반 주사가 때아닌 특수를 누리고 있다. 태반에 집착하는 이들은 약으로 직접 섭취하기도 한다.

얼마 전 서울 광화문 인근의 한 내과 병원에 ‘길라임 주사 단돈 9만9천원’이라는 큼지막한 플래카드가 내걸렸다. 길라임 주사란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 씨가 즐겨 맞았다던 태반 주사와 마늘 주사, 백옥 주사 3종 세트를 의미하는데 각 주사당 5만~10만원 정도 하는 걸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 병원은 세 가지를 다 합쳐서 10만원도 안 되는 파격가에 제공한다는 것이다. 병원 카운터에선 길라임 패키지에 대해 문의하는 중년 여성 몇 명을 만날 수 있었다. 특히 태반 주사는 강남 피부과에선 찾는 사람이 많아 품귀 현상이 생길 정도로 인기라고 한다. 참으로 웃픈 현실이다. 웃긴데 마냥 웃을 수 없어 슬프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국회에 제출한 청와대 의약품 구입 현황을 보면 2014년 1월부터 최근까지 태반 주사 2백 개, 감초 주사 1백 개, 마늘 주사 50개, 백옥 주사 60개가 포함돼 있다. 그리고 이선우 청와대 의무실장은 지난 12월 5일 국정조사에서 이 주사제들 중 태반 주사는 “대통령만 맞았다”고 털어놨다. 최씨와 그의 언니 최순득 씨, 그리고 조카 장시호 씨가 태반 주사 등에 집착적인 의존 증세를 보였다는 보도도 나왔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태반 주사를 적극적으로 권한 장본인도 최순실 씨였다. 33개월 동안 청와대에서 구입한 태반 주사가 2백 개이고 대통령 혼자 그 주사를 맞았다면, 박근혜 대통령은 닷새에 한 번꼴로 태반 주사를 맞았다는 이야기가 된다.

태반은 태아와 모체 사이에서 태아의 생존과 성장에 필요한 물질 교환을 매개하는 조직이다. 모체는 태반에 연결된 탯줄을 통해 태아에게 영양분을 공급한다. 태반에서 주요 성분만을 추출해 주입하는 것이 바로 태반 주사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등록된 효능은 갱년기 증상 개선 등이지만 실제 피부과 등에서는 피부 미용은 물론 기력 보충, 산모의 산후 조리, 갱년기 장애 개선, 만성 피로 해소, 노화 방지, 성기능 개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효과가 있다고 홍보하고 있다. 이것이 사실이라며 태반 주사는 거의 만병통치약인 셈이다.

태반에 극단적으로 집착하는 사람들은 이를 탕이나 환으로 만들어 먹거나 생으로 말려서 섭취하기도 한다. 그런데 문제는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섭취시 세균이나 바이러스 감염 가능성 높아

식약처에서는 태반을 의료폐기물로 지정해 유통을 까다롭게 규제하고 있는데, 일부에선 법망을 피해 은밀하게 거래되는 사례도 있었다. 전국에 있는 약재상과 건강원을 직접 취재해본 결과 일부 지역에서 사람의 태반을 개당 8만원 정도에 살 수 있었다. 이렇게 유통되는 태반의 모양은 매우 독특하게 생겼다. 노란 원반 형태의 납작한 모양으로 마치 길거리에서 파는 뻥튀기의 모습과 매우 흡사하다. 태반의 실제 모습을 보면 도저히 먹을 수 없기 때문에, 동그랗게 건조해서 뻥튀기처럼 만들어 팔고 있는 것이다. 서울의 한 약재상에서는 검붉은색의 덩어리 같은 것을 내왔다. 앞선 태반이 피를 빼고 건조한 후 납작하게 누르는 가공을 거친 것이라면, 이번 검붉은 덩어리는 미처 피를 뺄 새도 없이 뭉쳐서 반건조시킨 형태였다. 업계에선 속어로 ‘반죽’이라고 불렀는데 피를 빼지 않았기 때문일까, 비릿한 냄새가 났다. 한 건강원에선 또 다른 형태의 태반을 냉동고에서 꺼내 보여줬다. 탯줄이 그대로 달려 있는 생태반을 얼린 것이었다. 탯줄의 모양과 형태까지 적나라하게 보였다. 몸에 좋다면 못 먹을 게 없는 세상이라곤 하지만,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싶을 정도였다. 건강원 주인은 “없어서 못 파는 건데 특별히 내준다”며 20만원을 요구했다. 건강원에 이 태반 주인은 어떤 여성인지 물었더니 충격적인 답변이 돌아왔다. “미국 여자면 어떻고 한국 여자면 어때요. 태반이 다 똑같지 뭐.”

취재 과정에서 구입한 태반과 태반으로 만들었다는 약들의 정체가 궁금했다. 이것들을 모두 전문 기관에 보내 총 10개의 DNA를 분석해봤는데 그 결과는 놀라웠다. 10개의 시료 중 대부분이 인간의 DNA와 일치했다. 즉, 이를 섭취한 이들은 사람의 DNA가 담긴 조직을 먹었던 셈이다. 더 충격적인 사실은 태반으로 만든 환약 한 알에서 두 사람 이상의 DNA가 검출됐다. 국적도 신원도 알 수 없는 여러 사람의 태반을 한데 뒤섞어 만든 약이었다. 심지어 취재 중 만난 한 약재상 관계자는 “병으로 죽은 사람의 태반일 수도 있다”며 “절대 먹지 말라”고 조언했다.

고려대 감염내과 최원석 교수는 태반으로 인한 질병 감염의 위험성에 대해 이렇게 경고했다.

“당연히 감염될 우려가 있습니다. 태반이 B형 간염이나 C형 간염, HIV(에이즈), 매독 같은 병에 감염이 됐다면 그것을 먹은 사람도 같은 병에 걸릴 수 있어요. 냉동 보관을 했더라도 해동되는 순간 다시 바이러스가 살아날 수 있습니다.”

다시 태반 주사로 돌아가보자. 국내 제약사가 제조하는 태반 주사는 내국인 산모의 태반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산부인과에서 출산 후 산모로부터 분리된 태반을 처리하기 위해서는 전문 업체에게 비용을 주고 소각 처리해야 하는데, 제약 회사에서는 이 비용을 대신 지불하고 태반을 수거해 가는 것. 이때 산모의 동의를 받는 것은 물론이다. 이렇게 태반을 수거한 제약사는 매독, 에이즈 등의 각종 바이러스 감염 여부를 철저하게 검사하기 때문에 이에 따른 위험은 거의 없다. 하지만 문제는 태반 주사의 효능이다. 태반 추출물로 만든 앰풀을 제조하는 회사 측에 정확히 어떤 효능이 있는지 문의했지만, 제약사는 끝내 어떠한 답변도 내놓지 않았다. 의료계에서도 태반 주사의 효과가 불분명하다는 주장이 오래전부터 존재했다. 대통령의 전임 주치의였던 이병석 세브란스 병원장은 태반 주사의 청와대 반입 자체를 반대했다. 의학적으로 효과가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최소한 이 전 주치의는 태반 주사로부터 대통령이 멀어지게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진짜 의사의 말을 듣겠는가, 아니면 돈벌이에 눈 먼 사람들의 상술에 속아 넘어가겠는가. 선택은 독자의 몫이다.



      
김진

동아일보 기자로 채널A 〈먹거리 X파일〉을 진행하며 많은 여성 팬을 확보하고 있다. 유해 식품, 음식에 관한 편법이나 불법은 그냥 지나치지 못해 직접 실험에 참여하거나 형사처럼 잠복근무하는 일을 마다하지 않는다.

기획 여성동아
사진제공 채널A
디자인 박경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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