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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똥, 무당, 그리고 프라다

editor 강은지 국제민주연대 팀장

입력 2016.11.25 09:21:48

구글에 ‘대한민국(South Korea)’을 치면 ‘스캔들’ ‘시위’가 연관 검색어로 올라온다. 북한의 핵실험을 제외하고 세계 언론이 이렇게 한반도에 집중했던 때가 또 있었던가. 그런데 그렇게 실시간으로 세계에 퍼져나가는 한국 소식이 ‘해외 토픽’에나 다뤄질 법한 구시대적인 스캔들이라는 것이 참으로 민망하다.
개똥,  무당, 그리고 프라다



                              A bucket of slop,                              
                     a Korean Rasputin,              
     and a Prada shoe.                       


정부에 아무런 공식 지위도 가지고 있지 않은 개인이 한 국가의 국정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이 도저히 현실성이 없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연일 쏟아져 나오는 최순실 게이트에도 침묵을 지키던 세계 주요 외신들이 태도를 바꾼 건 지난 10월 24일 종합편성채널 jtbc가 최순실 씨가 사용한 것으로 알려진 태블릿PC를 입수해 공개하면서부터였다. 일단 ‘증거’가 확보되고 검찰 수사가 진행되기 시작하자 외신들은 앞다투어 이 사건을 보도했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기묘한 사건에 대한 자국민의 이해를 돕기 위해 BBC와 CNN, 〈뉴욕타임스〉 〈포춘〉 〈워싱턴포스트〉 〈가디언〉 등 세계 언론은 ‘한국 스캔들 입문서’ ‘한국 대통령 스캔들을 이해하기 위해 꼭 알아야 할 몇 가지’ 등 상황을 친절하게 요약 정리해주기도 했다. 여기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바로 ‘최태민과 최순실은 누구인가’ ‘이들이 어떻게 박근혜 대통령에게 이렇게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나’이다.





한국의 라스푸틴·무속인·점쟁이

최태민최순실을 설명하면서 외신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표현은 한국의 라스푸틴, 무속인, 점쟁이, 사이비 종교 지도자 등이다. 많은 외신들이 1974년 박근혜 대통령의 어머니이자 당시 영부인이었던 육영수 여사 암살 이후 최태민 씨가 ‘육영수 여사가 꿈에 나타나 박근혜를 도와주라고 했다’는 편지를 보낸 것이 두 사람 관계의 시작이었다고 설명한다. 더 나아가 지난 2007년 대선 당시 주한 미국대사관과 미국 국무부 사이에 오고 간 전문인 ‘(최태민이) 박근혜의 몸과 정신을 완전히 지배했으며 그 결과 그의 자녀들이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는 내용을 소개하면서 ‘한국의 라스푸틴’ 사이비 종교 지도자 최태민 씨가 박근혜 대통령의 ‘정신적 멘토’가 되었고, 1994년 최태민 씨 사망 이후에는 딸인 최순실 씨가 이를 물려받았다고 분석하고 있다. 제정 러시아의 성직자 라스푸틴은 황제 니콜라이 2세와 그의 아내 알렉산드라의 총애를 등에 업고 국정을 농단, 제정 러시아를 파멸로 이끈 인물이다. 〈워싱턴포스트〉에서 지적했듯 ‘왕국의 운명 자체가 점쟁이나 점성술사의 예언에 좌우되기도 했던 전근대’의 모습을 연상시키는 이러한 미신적 요소를 외신에서 자꾸 부각시키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쩌면 그렇게 신비로운 주술적 요소라도 가져다 붙이지 않고서는 어떠한 정치적 전문성도 이력도 지위도 없는 최태민최순실 씨 부녀에게 박근혜 대통령이 왜 수십 년간 맹목적인 신뢰를 바쳤는지, 모든 결정을 왜 이 부녀의 조언에 의존해왔는지 그들의 비정상적인 관계에 대해 설명할 방법이 없어서는 아닐까.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포춘〉에서 보도했듯 ‘1. 점쟁이 이야기로 시작해서 2. 말 타는 이야기가 등장하고 3.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 씨 모두 사과를 통해 상황을 모면해보고자 시도했으나 4. 유권자들의 분노는 가라앉지 않고 퇴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으며 5. 특이점도 많지만 전형적인 스캔들의 모습을 띠고’ 있는 이 사건을 계기로 외신들은 한국 사회의 정치적, 경제적 현실을 진단하기도 한다. 대통령 직접선거와 같은 한국의 민주주의 역사가 상대적으로 짧기 때문에 ‘정치적 견제와 균형 기능이 취약하고, 그래서 한국 사회에서 부패 문제는 아주 전형적’이라는 것이다.

많은 외신들은 정치권의 부패가 ‘거의 모든 대통령이 이런 문제에 한 번쯤은 휘말렸을 정도로 한국에서 흔한 일’이라면서 그럼에도 이번 사건은 특별하다고 분석한다. ‘과거의 스캔들이 대통령 가족이나 측근의 문제였다면, 이번은 대통령 자신이 문제’(〈워싱턴포스트〉)이기 때문이며 ‘박근혜 대통령이 친·인척도 아닌 최순실을 국정 깊숙이 끌어들여서 무슨 혜택을 보고자 했던 것인지 이해할 수 없기 때문’(〈가디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 때문에 대통령이 두 차례나 대국민 사과를 하고, 내각 개편을 통해 해결책을 모색하는 모습을 보임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한국 국민들의 목소리는 계속 커지고 있다는 것이 대부분의 외신 시각이다.

CNN은 11월 12일 주최 측 추산 1백만 명의 대규모 촛불 시위 소식을 전하면서 한국인들이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것은 이번의 최순실 사건 때문만이 아니며 세월호 사건 등으로 박근혜 정부에 대한 불만이 쌓일 대로 쌓였다가 이번에 폭발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월스트리트저널〉도 1백만 명이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오게 된 연결 고리로 현재의 정치와 경제 상황에 대한 불만을 지적했다. 대기업 친화적이고 일반 서민들과는 거리가 먼 지도자, 언론 인터뷰도 거의 하지 않고 소수의 최측근에게만 의존해온 지도자를 둘러싼 이번 사건이 취업난에 고민하는 학생들, 쉬운 해고와 노동 유연화에 분노하는 노동자들, 쌀값 폭락에 신음하는 농민들을 하나로 모아줬다는 것이다. 로이터통신도 한국 경제를 수십 년 동안 지배해온 재벌과 정부와의 긴밀한 유착 관계가 재조명되고 있다고 보았으며 〈가디언〉도 정부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해온 재벌과 정권의 유착관계를 지적하면서 ‘이번 사건이 한국 재벌의 시험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사회가 처한 정치적, 경제적 문제의 종합 세트 격인 이번 사태에 한국 국민들이 분노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시각과 함께 다른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한국 국민들만의 독특한 대응방식도 외신의 관심사다.

이번 사건이 낳은 수많은 유행어들은 도저히 사실이라 믿기 어려울 정도로 ‘어이없는’ 지금의 상황을 한국인들이 희화와 농담으로 풀어내고 있는 것이라면서 이를 여러 외신에 소개했다. 검찰청 출두 과정에서 벗겨진 최순실 씨의 프라다 신발을 빗대어 나온 ‘순데렐라’와 ‘순실이는 프라다를 신는다’에서부터 박근혜 대통령의 대국민담화 발언에서 따온 ‘순수한 마음’ ‘내가 이러려고 대통령을 했나 이런 자괴감이 들 정도로 괴롭기만 합니다’ 등 다양한 패러디들이 외신에 보도되었다. AP통신의 11월 2일자 기사는 제목부터 ‘개똥과 한국의 라스푸틴과 프라다 구두(A bucket of slop, a Korean Rasputin, and a Prada shoe)’였을 정도였다.

11월 5일과 12일, 19일의 대규모 촛불시위도 여러 외신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최대 규모의 시위, 그러나 애완견을 데리고 나온 사람들, 유모차에 갓난아이를 태우고 나온 젊은 부모들, 곳곳에서 풍자극과 라이브공연이 벌어지는 축제와도 같은 독특한 모습을 외신들은 높이 평가했다.

민주적 정치제도의 역사가 짧고, 비정상적인 정경유착 문제가 잔존하고 있으며, 정치권의 부정부패 스캔들이 툭하면 벌어지는 정치권과 재계의 모습과는 극명하게 대비되는 평화로운 촛불시위 축제의 모습을 보면서 CNN은 ‘오늘의 번영을 가져다준 인물로 칭송받는 한편으로 인권을 유린하고 정치적 비판자들을 탄압한 독재자로 비난받는’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엇갈린 평가를 되새겼고, 〈워싱턴포스트〉는 ‘조국의 딸’이자 ‘조국의 고아’라는 자신의 이미지를 이용해서 연민에 호소하고자 한 박근혜 대통령의 ‘회개의 쇼(Show of Contrition)’는 대다수 국민들의 기대에 못 미친다고 말했다.

민주 선거로 선출된 대통령 중 역대 최저의 지지율, 한국 역사상 처음으로 검찰 조사를 받게 되는 현직 대통령. 4년 전 한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 박근혜를 이야기했던 외신들은 2016년 11월 다른 측면에서 ‘최초’와 ‘최대’를 연이어 보도하며 그가 ‘한국 역사상 5년 임기를 마치지 못한 최초의 대통령이 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기획 여성동아
사진 동아일보 사진DB파트






여성동아 2016년 12월 63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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