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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hae #korea_road

꽃수처럼, 효재의 남해바다 길

editor 최은초롱 기자

2016. 10. 26

옛날 시인들은 단풍 들면 길을 떠났다. 눈이 시린 하늘로 이어진 길이 있는데 떠나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 우리 땅을 걸어서 확인하기로 한 길, 이제 두 번째 도전이다. 이번엔 큰 맘 먹고 남쪽 끝까지 가보기로 한다. 은빛 백사장과 조개처럼 솟은 섬들 사이로 촘촘히 걷다 쉬고 유유자적 걸으니, 어느 길이나 내가 놓은 꽃수 같다.

동대만 진지리길_새로운 여정의 시작

새벽부터 일어나 머리를 감고 열흘 전부터 들뜬 마음으로 여행용 살림살이를 차곡차곡 쌓아넣은 바구니들을 챙겨 길을 떠났다.

여섯 시간여 만에 경상남도 남해에 도착한다. 이번에 내가 걷는 길의 시작은 경남 사천시와 남해군을 연결하는 창선·삼천포대교이고, 남해대교에 이르러 마침표를 찍는다. 서울에서는 갑자기 찾아온 쌀쌀한 가을 날씨가 무정하다 싶었는데,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마치 엄마 품처럼 포근하고 따뜻한 공기가 이곳이 남해임을 알려준다. 걸음을 옮기기 전, 혹여 감기라도 걸릴까 목까지 단단히 여미고 있던 단추를 느슨하게 풀었다.





고사리밭길_해풍 맞고 자란 역전의 고사리

장관이다. 너른 들판이 다 고사리밭이다. 울창한 고사리 사이로 한참 걷다 돌아봐도



아직도 주위 산등성이들이 온통 고사리밭이다. 밭의 초록색과 멀리 보이는 바다의 파란색이 천연스레 다르고, 묘하게 닮았다. 전국 고사리 생산량이 한 해 7백 톤 정도인데, 그중 삼분의 일이 이곳 남해 창선에서 난다고 한다.

나는 원래 꽃보다 이끼나 고사리를 더 좋아한다. 정원에 꽃 대신 고사리를 키우고 싶어서 심어보기도 했는데, 도시에서 고사리 키우기가 만만치 않았다. 잔디밭처럼 빽빽하게 심으면 시들해지고, 다시 심으면 또 풀이 죽었다. 평생 이렇게 많은 고사리를 한꺼번에 보다니 오늘은 정말 행복한 날이다. 보통 우리는 뭘 맞는다고 하면 벼락 맞았다, 매 맞았다, 풍 맞았다 이러는데, 이곳의 고사리들은 남해 바다의 해풍 맞고 자란 역전의 고사리 용사들이다.


화전별곡길_간절한 마음으로 물고기를 부르는 숲

삼동면 물건리 해안 언덕에 오르니 눈앞에 쪽빛 남해 바다와 아름드리나무들이 빽빽한 숲이 보인다. 몇 번씩 물어 ‘물건방조어부림’이란 이름을 알아들었다. 3백 년 이상 오래된 나무 2천여 그루가 몽돌 해안을 예쁜 반달 모양으로 감싸고 있는 모양이다.

알고 보니 ‘어부림’이 ‘고기를 부르는 숲’이라는 뜻이다. 거센 바람과 해일을 막고 나무 그늘로 물고기를 유인하기 위해 마을 사람들이 나무를 심어 숲을 만들었는데, 흉년이 들었을 때 나무를 벌채해 판 뒤 마을에 좋지 않은 일이 계속 일어났단다. 그 후로는 건드리지 않고 자연 그대로의 숲을 유지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있다고 전한다. 미신이라도 좋은 일이다.
“큰 나무들이 울창 빽빽하게 있어서 잔 나무들이 하나도 없어. 분위기가 묘하네.”
바닷가인데 마치 깊은 원시림 속에 서 있는 것 같다.

측백나무, 이팝나무, 팽나무, 느티나무… 그 옛날 사람들이 마음 가는 대로 심은 나무들이 세월이 흘러 울창한 숲이 되고 남해의 명물이 되었는데, 이렇게 다양한 나무들이 한꺼번에 제각각 멋대로 잘 자라고 있는 숲은 처음이다.


구운몽길_상주은모래비치에서 위스키 고수레!

해수욕장 많은 남해에서도 제일이라는 상주은모래비치를 찾았다. 울창한 해송 숲 사이로 보이는 해변 풍경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어느 화가가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을 그림으로 옮길 수 있겠냐는 말이 절로 나온다. “여기는 은모래밭이 아니고 언모래밭이에요.” 경상도 사투리를 따라 하는 내 말 한마디에 모두가 신나게 웃는다. 어린 시절부터 바다를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젖은 모래에 낙서도 하고 물장구도 치곤 했다. 햇빛을 받으면 보석처럼 은빛으로 반짝이는 상주은모래비치의 모래는 보들보들 결이 곱다. “어머, 나 황야의 카우보이 같지 않아? 와 신나네.” 든든하게 장화까지 신고 백사장을 뛰고 바닷물에 발을 담그기도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신나게 놀다가 햇살이 느껴져 한 번씩 고개를 돌리면 우직한 해송 숲이 든든하다. 이 또한 소중한 추억으로 남는다.



다랭이지겟길_바람과 돌이 역사가 된 다랭이마을

바다를 끼고 있지만 배 한 척 없는 마을이다. 마을이 해안 절벽을 끼고 있는 탓에 방파제는 고사하고 선착장 하나도 만들 수 없다. 바로 앞에 바다를 두고도 어로 작업을 할 수 없는 마을 주민들은 설흘산 줄기에 조금이라도 평평한 곳이 있으면 돌 옹벽을 지지대 삼아 논을 일궜다. 공들인 것은 사라지지 않는다고 했던가. 그렇게 일구어낸 다랑이논 층수가 1백80층이란다!

지금은 모내기 체험 행사도 열리고 외국인들도 많이 찾는 관광 명소가 됐지만, 가파른 산비탈에 물결처럼 켜켜이 층을 이룬 다랑이논을 보고 있으니, 험한 자연과 싸우고 적응하며 살아온 남해 사람들의 고된 삶이 돌 옹벽으로 쌓인 듯해 코끝이 찡하다.



앵강다숲길_홍현 해라우지마을에서 만만한 물고기 구경

홍현 해라우지 마을은 무지개마을이라고도 불린다. 마을의 형태가 무지개를 닮아서이기도 하고, 옛 설화 때문이기도 하다. 마을에 금슬 좋은 부부가 살았는데, 남편이 무지개를 따라간 뒤 돌아오지 않자 기다리다 못한 아내가 딸을 데리고 무지개 끝을 향해 걸어갔지만 결국 찾지 못한 채 돌아왔다는 슬픈 사연이 있다. 결국 무지개는 이 마을이었는데, 남편은 그걸 보지 못했나 보다. 아니면 나처럼 천상 길 떠나기를 좋아한 사람이었을까.

이 마을에서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것은 바다 가운데 반원 모양으로 둘러쳐진 돌무더기들이다. 물고기를 잡는 전통적인 방식인 석방렴으로, 돌로 쌓은 담은 밀물 때 잠겼다가 썰물 때 제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면 돌담에 막혀 먼 바다로 돌아가지 못한 물고기를 잡는 거다. ‘누워서 떡먹기’가 아니라 ‘석방렴에서 물고기 줍기’다.



이순신호국길_남해대교가 잘 보이는 왕지등대마을

왕지등대마을에 하얗고 작은 등대 하나가 달랑 있다. 크기가 작아서 다른 데서 보던 등대에 비하면 미니어처 같다 했더니 과연 육지에 있는 것 중 가장 작은 등대란다. 이렇게 작은데 제몫은 해낸다고 하니 대견스럽기까지 하다. 늘씬한 남해대교와 둥글둥글한 섬들, 푸른 바다를 병풍처럼 두르고 있는 등대라니, 세상 부러울 게 없는 풍경이다. 바다가 수십 개의 섬으로 겹겹이 둘러 싸여 있으니 포근하게 감싸 안겨 걷는 기분이다. 정말 특별한 남해다.



효재의 남해 밥상


여행가면 시장에서 생선이며 나물을 대책 없이 사고 본다. 내게 여행이란 돌아가 사람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먹이는 일이기도 하다. 힘 센 돌문어 녀석과 전복,조개, 파래에 무화과와 커피콩까지 사서 먼저 보내기도 하고 들고 다니느라 수선을 떨었다.

1 전복구이찜
일단 올리브오일을 두른 팬에 전복을 구운 다음 쪄냈다. 그래야 올리브오일이 비릿한 맛을 잡아준다. 살짝 데친 파래를 접시에 담고, 그 위에 얇게 썬 전복을 올린다. 쫄깃쫄깃한 전복은 그냥 먹어도 맛있고, 바닥에 있는 파래와 같이 먹어도 별미!

2 제철 무화과 디저트

보관이 어려워 한 철만 먹을 수 있기 때문에 더 허무하고 귀하게 느껴지는 무화과. 표면이 적갈색으로 변하고 심지 부분이 아기 입술처럼 살짝 벌어지기 시작하면 딱 먹기 좋은  때다. 신선한 무화과는 그대로도 먹고, 냉동실에 넣어두기도 한다. 귀한 손님이 오면 식사 시간에 맞춰 식탁에 얼린 무화과를 담아내는데, 식사가 끝날 즈음 먹기 좋게 녹아 훌륭한 디저트가 된다.

3 톳두부꽃밥

바다 향이 나는 톳밥은 전기밥솥 대신 옹기 냄비에 한다. 깨끗하게 씻은 톳을 잘라 얇게 깔고, 두부는 손으로 으깬 뒤 가운데 부분에 넣고 꽃 모양으로 장식한 톳밥은 냄비째 들고나가 손님 앞에서 개인 그릇에 담아낸다. 톳밥은 단품으로 기분 좋게 한 끼 해결할 수 있는 별미다. 간장, 고춧가루, 깨, 김을 찢어 넣어 뻑뻑한 양념장을 만들어 함께 내면 다른 반찬은 필요가 없다.

4 파래찹쌀죽

영양 만점 파래와 부드러운 찹쌀이 잘 어우러진 파래찹쌀죽은 우리집 보양식이다. 미리 불려 놓은 찹쌀로 죽을 끓이고, 죽이 다 되면 깨끗하게 씻어 데친 파래를 넣고 더 끓인다. 마지막에 곶감을 퐁당퐁당 잘라 넣고 건져먹는다.

5 세 가지 조개찜
여행지에서 사온 싱싱한 조개는 양념하지 않고 무조건 쪄 먹는다. 피부 좋은 여자가 화장 안 하는 거랑 똑같다. 올리브오일이나 와사비를 곁들여 먹기도 하지만, 짭조름하게 자연 간이 되어 있어 그냥 먹어도 쫄깃하고 맛있다.

6 돌문어숙회
신선한 돌문어는 삶아서 그 자리에서 썰어 먹는 것이 최고다. 식초 몇 방울과 다시마를 넣고 문어를 삶은 뒤, 숭덩숭덩 썰어서 소복이 담아낸다. 우리 집에서는 먹고 남은 문어를 식사 마지막에 라면에 넣고 끓여내는데 다들 ‘마약 라면’이라며 찬밥까지 말아 싹싹 먹는다.



동티모르 아이들 돕는 착한 커피
남해 해오름예술촌에서 구입한 동티모르 천연 야생커피 원두를 곱게 갈아 커피를 내렸다. 인간이 가장 아름다울 때가 다른 사람을 도와줄 때라고 생각하는데, 커피 한잔으로 동티모르 아이들을 도울 수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뭉클했다. 요즘에는 캡슐을 넣고 버튼을 누르면 커피가 나오는 뚝딱 머신이 흔하지만, 직접 손으로 내려 마시는 커피의 맛에 비할 수는 없다. 커피를 내릴 때 종이 필터를 사용하면 종이 냄새가 커피 향을 망치는 것 같아 최근에 구입한 노필터 핸드드리퍼를 사용했더니 그 맛이 또 남다르다.





남해에서 해봐야 할 것들

젊은이들이 남해를 많이 찾는 이유는 해양 레포츠와 체험 활동의 천국이기 때문이다. 그저 걷기만 해도 행복하지만 며칠씩 머물며 카약, 요트, 갯벌 체험 등 도시에서 하기 어려운 체험을 하니 금상첨화다.


1 넓은 갯벌에서는 가재, 낙지, 게, 특히 바지락과 새우 종인 쏙이 많이 잡힌다. 2 갯고랑에 그물을 쳐놓고 밀물 때 밀려든 물고기를 썰물 때 바다로 나가지 못하게 막아 잡는 고기잡이 체험. 3 바다의 일부를 돌담으로 막은 석방렴에서 멸치, 농어, 망상어, 숭어 등이 잡힌다. 4 선실과 엔진을 갖춘 크루저 요트에서 남해의 절경을 감상할 수 있다. 5 주민들이 직접 생산한 향긋한 꽃차가 준비되어 있고, 마을 어귀에서 피어난 동백꽃, 산수유꽃, 벚꽃, 유채꽃 등을 채집해 마시는 꽃차 체험도 할 수 있다. 6 남녀노소 모두 쉽게 즐기는 시카약은 타는 법을 10분만 배우면 손쉽게 노를 저으며 잔잔한 남해바다의 아름다움을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다.



새로 짜는 남해 여행 걷기 코스


남해 걷기 여행을 계획 중인가요? 효재가 먼저 걷고 애정과 취향을 담아 추천하는 여행 코스.




1박 2일 코스
창선삼천포대교 → 창선고사리밭 → 물건방조어부림 → 독일마을 → 편백자연휴양림 → 숙박 → 상주은모래비치 → 금산보리암 → 홍현해라우지마을 → 가천다랭이마을 → 남해대교(노량-왕지벚꽃길)

2박 3일 코스
창선삼천포대교 → 창선고사리밭 → 물건방조어부림 → 원예예술촌 → 독일마을 → 숙박 → 편백자연휴양림 → 상주은모래비치 → 금산보리암 → 두모마을 → 숙박 → 용문사 → 홍현해라우지마을 → 가천다랭이마을 → 남해대교(노량-왕지벚꽃길) → 왕지등대마을


남해에 대한 추가 정보는…
한국관광공사 공식 홈페이지_추천 테마 여행, 관광 명소, 교통, 축제 소식 등 지역 관광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제공한다. korean.visitkorea.or.kr
남해문화관광 공식 홈페이지_숙박, 음식, 특산물, 축제, 체험 등 다양한 정보를 소개한다. tour.namhae.go.kr


제작지원 한국관광공사
사진 홍태식 이상윤
사진제공 남해군청
디자인 최정미
취재협조 문화체육관광부 남해관광두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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