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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singer #star

달라졌어 나쁘지 않았지 손호영

2016. 10. 05

에디터 입장에서 봤을 때, 그는 참 고마운 인터뷰이다. 여름의 기운이 채 가시지 않은 날씨에도 10월호에 맞는 두꺼운 옷을 군말 없이 입어줬으며, 거기다 길거리에서 촬영을 하자는 제안도 쿨하게 받아들였다. 준비한 의상을 여러 차례 갈아입어야 하는 상황에서 “남자인데 뭐 어때요” 하며 인적 드문 골목에서 훌렁훌렁 옷을 벗을 때에는 오히려 에디터가 더 당황스러웠다. 그는 ‘1세대 아이돌’로 군림한 그룹 god의 멤버 손호영(36)이 아니던가.

촬영을 위해 오래된 백반집이 즐비한 충정로의 좁은 골목을 그와 함께 걸었다. 어느새 그를 알아본 식당 이모님들이 다가와 그의 손을 꼭 잡고는 “TV로 보던 것보다 너무 야위었다”며 집 나간 아들을 만난 것처럼 반가워했다. 말리지 않았더라면 이내 그 손에 이끌려 그와 함께 모든 스태프들이 밥 한 끼 얻어먹을 것 같은 상황이었다. 인터뷰 땐 또 어떤가. 먼저 자신의 과거 스캔들 이야기를 꺼내기도 하고 다소 민감할 수 있는 사생활까지도 술술 풀어나갔다. 그날 마주한 건, 가수 손호영이 아닌 인간 손호영의 모습이었다. 그를 만난  건 그가 솔로로 데뷔한 지 꼭 10년째 되는 날. 며칠 전까지만 해도 그리 실감나지 않았다던 그는 어젯밤 늦게까지 잠을 설쳤다고 했다.

“딱 오늘이네요. god로 데뷔한 지는 20년이 다 되어가서인지 솔로 데뷔 10주년이라는 게 별 느낌이 들지 않더라고요. 제가 원래 생일이나 기념일 챙기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거든요. 그런데 어제 제 뮤지컬 공연이 끝나고서야 느낌이 확 들었어요. 팬들이 직접 공연장을 찾아와서 축하해주시니 그제야 실감이 나더라고요. 오늘 밤에도 팬들과 함께 하기로 했어요.”  


고백하자면, 손호영이 god의 멤버로 활약하던 시절 에디터는 이제 막 사춘기를 지날 무렵이었다. 가요 프로그램 공개 방송은 물론이고 숙소까지 따라다니며 하늘색 풍선을 흔들던 ‘오빠 부대’의 활약을 너무나도 잘 아는 세대다. 그 시절 그의 인기를 굳이 설명하기란 참 새삼스러운 일이다.

2005년 그룹 god의 해체 아닌 해체는 그래서 더 아쉬움이 컸다. 지금에야 하루가 다르게 생겨났다 없어지는 아이돌 그룹들이 허다하지만, ‘아이돌 그룹 1세대’로 불리며 독보적인 인기를 구가하던 god의 기약 없는 휴식 선언은 연예계의 큰 이슈거리였다. 그리고 이듬해 9월, 손호영은 첫 솔로 앨범 를 내고 홀로서기를 시작했다. 10대 때 활동을 시작해 가수라는 직업이 인생의 전부였던 그가 또다시 가수로 돌아온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룹으로 활동할 때는 회사에서 정해준 방침에 따르기만 하면 됐고, 지금 생각하면 뭣도 모르던 시절이었죠. 그런데 솔로 활동을 시작하면서 스스로 해야 할 것들이 밀물처럼 밀려왔어요. 중요한 선택은 모두 제가 해야 했고, 그에 대한 책임도 저 혼자 져야 했죠. 저를 위해 일해주는 스태프들을 챙기는 것도 온전히 제 몫이었고요. 한마디로 가장이 된 거죠. 더 많은 책임과 부담이 생긴 거예요. 돌이켜보면 솔로로 활동한 지난 10년은 제게 주어진 무게들을 실감하는 기간이었던 것 같아요.”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10년의 세월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꼽아달라고 하자 그는 “아무래도 사건 사고 아니겠나”라며 웃었다. 무심한 듯 그가 먼저 ‘툭’ 하고 그날의 이야기를 던졌지만 이내 “아픈 기억이지 좋은 기억은 아니다”라며 시선을 떨궜다.



3년 전 그의 갑작스런 자살 시도 소식은 크나큰 충격이었다.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지만 그를 오래도록 믿고 기다렸던 팬들은 크게 상심했다. 그는 이후 한 방송을 통해 “주변에 아무도 없다는 생각에 너무 힘들었다”며 속내를 밝혔다.  

“사람의 소중함. 지난 10년간 절실히 깨달은 건 그거예요. 솔로 데뷔 후 처음으로 가졌던 콘서트 때 이틀간 올림픽홀 3천여석이 가득 찼을 정도로 많은 분들이 와주셨어요. 그땐 감사한 줄도 모르고 사랑을 받기만 했죠. 지금 가장 후회되는 것도 그런 점이에요. 지금 알게된 걸 그때 알았더라면 좀 더 그 사랑을 소중히 여기며 하루하루를 더 열심히 살았을 것 같아요.”

처음 홀로서기를 시작했을 때 이십대 중반이었던 손호영은 어느새 삼십대라는 터널을 지나는 중이다. 그가 자란 만큼 그를 따르던 팬들도 함께 어른이 됐다. 그는 “요즘은 ‘건강이 제일’이라며 홍삼이나 배즙, 도라지같이 몸에 좋다는 음식 선물도 종종 보내주신다”며 웃었다.

“평소엔 나이 든 걸 못 느끼고 사는데 가끔 까마득한 후배들을 만나면 깜짝 놀라요. 얼마 전엔 뮤지컬 동료 배우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저를 제외한 나머지 세 명의 배우가 저와 띠동갑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한숨을 쉬었죠(웃음). 어디 그뿐인가요. 공연 준비를 시작하면 온몸이 쑤시고 아파요.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몸이 따라주지 않을 때. ‘아, 내가 나이가 들었구나’ 싶죠.”

그는 요즘 창작 뮤지컬 의 주연 배우로 활약 중이다. 뮤지컬 는 20세기 실존주의 문학의 대표 작가 알베르 카뮈(Albert Camus)의 소설을 각색해 서태지의 음악으로 재탄생시킨 창작극이다. 홀로서기를 한 후 본격적으로 뮤지컬 무대에 오르기 시작한 그는 요즘 가장 행복을 느끼는 것도 이 무대에서라고 했다.

“공연을 할 때만큼은 현실의 고민에서 벗어날 수 있어요. 물론 오늘 목소리가 잘 나와야 하는데, 연기를 매끄럽게 잘해야 할 텐데 하는 고민은 있죠. 하지만 그건 무대에 서는 어떤 배우나 마찬가지잖아요. 무대에 서는 시간에는 세상의 고민을 하지 않아도 돼요. 오로지 제게 주어진 역할에만 집중하면 되니까요. 무언가에 몰입하는 때가 가장 행복한 때라고들 하잖아요. 이것도 예전엔 몰랐는데 지금은 알게 된 것 중 하나죠.”

이번에 그가 연기하는 인물은 세상의 짐을 홀로 짊어진 것처럼 진중하고,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돌진하는 의사 ‘리유’다. 그는 올 추석도 내내 공연을 하며 지낼 계획이라고 했다. 아이처럼 반짝이는 그의 두 눈에서, 어느새 한 톤 높아진 그의 음색에서 그가 얼마나 이 무대를 소중하게 생각하는지가 느껴졌다.



“뮤지컬 공연이 꼭 제 인생처럼 느껴져요. 인물이 등장하고 극이 전개되다가 큰 위기가 찾아오잖아요. 주인공은 포기할까 망설이기도 하지만 꺾이지 않고 묵묵히 버텨내죠. 그리고 마지막엔 우연인지 운명인지 모를 기회를 얻어 결국 목표한 바를 이루고 말아요. 여기서 포인트는 주인공의 심지가 다른 이들보다 강하다는 거예요. 저 역시 꺾일 때가 많았죠. 하지만 하늘의 도움으로 여기까지 왔어요. 뮤지컬 무대에 올라 주인공들을 만나면서 저도 새로운 에너지를 얻는 것 같아요.”  

그의 말처럼 인생의 오르막과 내리막을 모두 경험한 그는 한층 단단해져 있었다. “그때로 돌아간다면 다른 선택을 했을 것 같아요”라고 말하면서도 “가지 못한 길에 대한 후회는 언제나 남는 법이니까”라고 덧붙였다. 연애와 결혼에 관한 뻔한 질문에도 “좋은 사람은 너무 많지만 준비가 되지 않은 건 오히려 저였다”라고 말하는 여유도 생겼다. 그는 오늘의 자신을 있게 만든 지난 10년을 기념하는 콘서트를 조만간 열 계획이다. 오는 10월 29~30일 서울 용산구 블루스퀘어 삼성카드홀에서 열리는 손호영의 10주년 기념 단독 콘서트다. 요즘은 콘서트 콘티를 짜느라 과거 자료 영상들을 찾아보며 추억을 되새기는 중이다. 그를 응원하는 어떤 팬은 17년 전 노란색 레몬 머리가 보고 싶다며 가발까지 선물로 보냈단다.

콘서트 생각만으로도 밤잠을 설치는 요즘 그에게는 고민거리가 또 하나 생겼다. 콘서트 일주일 전에 프로 볼링 선수가 되기 위한 시합에 출전하기로 한 것이다. 뮤지컬 공연으로 바빠 연습을 게을리했더니 점수가 뚝 떨어졌다며 그는 애처로운 표정을 지으며 웃었다.  

자신의 인생에 몇 점을 주고 싶은지 묻자, 그는 “49점과 51점 사이를 왔다갔다하는 50점”이라고 답했다. 홀로 선 지 10년 된 손호영은 그렇게 후회도 많고 걱정도 많은 30대 남자다. 하지만 하루하루를 소중히 여기며 바쁘게 사는 그의 미래만큼은 100점이 아닐까. 긴 터널을 지난 손호영은 이제 눈부신 햇살을 만끽할 일만 남았다.

사진 조영철 기자
디자인 최정미
스타일리스트 장유진
헤어 난영(에이바이봄)
메이크업 유정(에이바이봄)
의상협찬 3501 닐바렛(02-515-3501) BON(02-2107-6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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