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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스스로 암흑에서 세상을 구하는 길을 찾아야 해요”

EXCLUSIVE 노소영 관장, ‘사람’을 이야기하다

글 · 김지영 기자 | 사진 · 이상윤 | 디자인 · 최정미

입력 2016.05.26 17:07:22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을 만났다. 그녀는 자선 바자회의 기획자, 환경문제 토론자, 무엇보다 대형 미술 프로젝트의 큐레이터로 매일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었다. 서울 장충동 복합 창작공간 타작마당에서 열린 오픈 스튜디오 행사에서 노 관장은 기자를 포함해 누구에게나 반갑게 손을 내밀어 인사했다. 그녀의 모습에서는 세간의 소문과 시선 뒤로 숨으려는 경계심 같은 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BLACKOUT-도시 대정전’이라는 이날의 전시 콘셉트에서도 세상과 사람들에 대한 노 관장의 긍정적 시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우리 스스로 암흑에서 세상을 구하는 길을 찾아야 해요”
지난해 말 세상을 놀라게 한 최태원 SK 회장의 ‘고백’ 이후 한동안 공적 행사 참석이 드물었던 노소영(55) 아트센터 나비 관장을 만나기 위해 4월 27일 저녁, 서울 중구 장충동의 복합 창작공간 타작마당을 찾았다. 이곳에서는 아트센터 나비가 주관한 특별한 행사가 뜨거운 관심 속에서 진행되고 있었다. 지구의 환경 파괴가 극에 달하자 슈퍼 인공지능이 모든 전력공급을 강제 차단한다는 가상의 시나리오를 전제로 대규모 정전 사태에 대비하거나 재난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 ‘시빅 해커(IT로 공공의 문제를 자발적으로 해결하는 시민들)’들이 생존의 돌파구를 모색한 다양한 결과물을 보여주고  발표하는 행사였다. 노 관장은 연일 이어진 자선과 학술 행사에 참석하며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었다.

이날 타작마당 1층과 지하, 앞마당에는 소변을 햇볕에 내놓으면 식수로 바뀌고 엎어놓으면 조명이 되기도 하는 오줌 증류기 ‘요RIVER’, 햇빛으로만 운영되는 ‘햇빛영화관’, 태양광 에너지를 저장할 수 있는 ‘에너지 저금통’, 도시의 소음을 에너지로 활용할 수 있는 ‘저음역 반응 전력 생산 벽체 삽입 시스템’, 재난 상황에서 개개인의 심리적물리적 고립을 해결하기 위해 가느다란 실(연결 고리)을 제공하는 ‘프로젝트 SYL(Share Your Light)’ 등 독특하고 기발한 작품들이 전시됐다. 테크놀러지를 기반으로 한 예술 작업을 통해 대도시의 재난 속에서 스스로를 구원하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아트센터 나비는 기술, 예술, 사회 등 다양한 분야와의 협업으로 도시가 가진 문제점을 함께 고민하고 이에 대한 해결 방법을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시빅 해킹(Civic Hacking)’ 정신을 살려 2013년부터 ‘해카톤’을 진행해왔다. 해카톤은 ‘해킹하다(Hack)’와 ‘마라톤(Marathon)’의 합성어로, 한정된 시간 동안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새로운 아이디어를 개발하고 실행에 옮기는 활동을 말한다. 미국, 영국, 네덜란드 등 해외에서는 이미 활발히 진행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최근 각 분야별 융합의 중요성이 커짐에 따라 주목받기 시작했다.



여성스런 원피스로 시선 끈 노 관장

“우리 스스로 암흑에서 세상을 구하는 길을 찾아야 해요”

음성을 인식해 말하는 로봇 ‘동행이’를 안고 있는 노소영 관장.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은 주로 어두운 색의 바지 정장 차림으로 언론에 등장했다. 키가 커서 바지 정장이 잘 어울리긴 했지만 평소 ‘옷이나 패션에 관심이 없다’고 밝혀왔기 때문에 여성스런 곡선을 강조한 이날의 원피스는 특별히 눈길을 끌었다. 전시 작품들을 설명하는 ‘도슨트’ 역할을 자청한 노 관장은 참석자들을 타작마당 지하의 프로덕션 작업실 ‘E.I.(Emotion Intelligence)랩’과 2층 사무 공간, 2.5층의 전통 한국식 다락방 ‘한실’로 직접 안내해 내부를 구경시켜주기도 했다.



이날 행사에는 이번 해커톤에 참여한 6개 작가 팀과 심사위원을 맡은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 이중식 교수, 울산과학기술대학원 조재원 교수, 한국과학기술연구원 강종윤 교수 등과 에너지, 도시 디자인 등 관련 전문가들이 참석했다. 행사 시작 전까지 노 관장은 개별적인 인터뷰에 난색을 표했지만 막상 기자와 마주하자 흔쾌히 질문을 받았다.

▼ 지속적으로 열고 있는 이 프로젝트 '해카톤‘의 목적은 무엇인가요.

창의적인 인재를 양성하는 겁니다.

▼ 우리 사회에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는 것으로 보여요.


‘시빅 해킹’이라는 게 시민이 참여하고 기술을 통해 공동체의 문제를 같이 풀어보는 거거든요. 지금은 정보통신기술을 많이 사용하는 시대이니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가 좀 더 활발해졌으면 좋겠어요. 도시 공동체의 문제를 관할 지방자치단체의 소관 부서인 ‘도시계획과’에만 맡기기에는 제한이 많잖아요. 그래서 좀 더 많은 사람들이 도시 공동체의 문제를 풀어가는 일에 스스로 참여하기를 바라며 2013년부터 해카톤을 계속하고 있는 거예요. 오늘 이 자리는 창작 플랫폼인 ‘나비 해카톤’과 ‘시빅 해킹’의 만남으로 진행되는 여덟 번째 해카톤이에요. 올해 한두 번 더 진행할 예정입니다. 관련 분야에 종사하는 젊은이들이 해카톤에 관심이 많아요.

▼ 젊은이들의 일자리 창출에도 관심이 많은가요.


해카톤을 진행하면서 결국은 관심이 많아졌죠(웃음).

▼ 만약 대규모 정전 사태가 정말 일어난다면 어떻게 대처하실 겁니까.


전기가 안 들어오는 시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적이 있어요. 전 아마도 아이들을 모아 저녁마다 이야기 대회를 하면서 보낼 거예요. 마치 처럼요. 그러다 보면 언젠가 불이 들어올 것이고 아이들의 세계는 더 풍요로워져 있지 않을까요(웃음).

▼ 아트센터 나비 관장으로서 바람이 있나요.

완제품을 사다 쓰기만 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원하는 물건을 만들고 조립해 쓰는 메이크업 문화가 앞으로 좀 더 확산됐으면 좋겠어요. 이것도 해카톤을 계속하는 이유 중 하나죠. 외국에는 그런 문화가 활성화돼 있거든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소스를 구하기가 쉬워져서 조금만 배우면 누구나 필요한 것들을 만들어 쓸 수 있어요.


“우리 스스로 암흑에서 세상을 구하는 길을 찾아야 해요”

도시의 소음을 에너지로 만드는 ‘저음역 반응 전력 생산 벽체 삽입 시스템’. 2 햇빛으로만 운영되는 ‘햇빛영화관’.

“우리 스스로 암흑에서 세상을 구하는 길을 찾아야 해요”

3 태양광 에너지를 저장할 수 있는 ‘에너지 저금통’.

▼ 어제(4월 26일)는 환경재단에서 주최하는 ‘2030 에코포럼’에 토론자로 참석했는데, 평소 환경 문제에도 많은 관심을 갖고 계셨나요.

(웃으며) 환경대학원에 잠깐 다녔어요. 그때 환경재단의 최열 대표를 알게 돼 그 인연으로 토론에 참석했어요.

▼ 친환경 생활을 실천하고 계신가요. 예를 들면 ‘종이컵 대신 머그잔 사용하기’ 같은 거요.

별로 없는 것 같아요. 아, 남들이 켜놓은 전깃불을 저는 열심히 끄고 다녀요. 그건 열심히 하네요. 하하하. 그리고 옷을 잘 안 빨아 입고, 샤워를 오랫동안 안 하고. 하하하.

▼ 늘 이렇게 소탈하신가요?


(노 관장 대신 옆에 있던 직원이 대답했다) 그럼요. 그나마 오늘은 옷을 좀 차려입으신 거예요.

▼ 원피스가 무척 잘 어울려요.

이거 한 벌뿐이에요. 하하. 오늘은 저처럼 나이 드신 여자분들 앞에서 강의하려고 좀 차려입었어요. 산뜻하게 꾸미고 싶더라고요. 그분들 앞에서는. 앞으로 딸들 옷을 좀 빌려 입고 다녀야겠네요. 하하하.  





여성동아 2016년 6월 63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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