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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엄마’를 부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어

글 · 김지영 기자 | 사진 · 홍태식 | 디자인 · 김영화

입력 2016.05.18 15:52:03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어는 무엇일까. 이 물음에 지구촌의 많은 사람들이 ‘엄마’라고 답했다는 설문조사 결과가 있다. 그런데 이보다 더 마음을 짠하게 하는 단어가 바로 ‘친정엄마’ 다. 자신의 병든 몸보다 시집간 딸의 몸살을 더 걱정하는 이가 친정엄마 아니던가. 그동안 TV에서 주로 활동한 중견 배우 정애리가 최근 뮤지컬 <친정엄마>에 출연한 이유 중 하나도 그 때문이다.
배우 정애리(56)가 오랜만에 뮤지컬 나들이에 나섰다. 그녀가 선택한 작품은 여러 번 연극 무대에 올려졌던 〈친정엄마〉. 자식을 위해 희생을 마다하지 않는 이 시대의 보통 엄마 역으로 열연 중인 그녀 역시 딸을 둔 엄마이자 한 어머니의 딸이다. 2년 전 이혼의 아픔을 겪은 후에도 변함없이 나눔과 봉사 활동을 즐기며 어머니와 딸에게 극진한 사랑을 쏟는 그녀를 무대 밖에서 만났다.  

“이 작품은 연극 무대에 오를 때마다 큰 호응을 얻은 〈친정엄마〉의 뮤지컬 버전이에요. 처음 친정엄마 역을 제의받았을 때는 그동안 다른 배우들이 연기한 것보다 과연 내가 더 잘해낼 수 있을까 하는 부담감이 컸지만, 우리 엄마들의 이야기라서 공감이 갔고 한번 해보고 싶었어요. 또 많은 문화 공연이 젊은 층 위주인데, 나이 많은 세대까지 폭넓게 공감할 수 있는 뮤지컬이라는 점도 마음에 들었고요. 가슴이 먹먹하면서도 웃고 즐기며 추억을 나눌 수 있는 뮤지컬이거든요.”



엄마도 소녀였다

〈친정엄마〉는 대학에 진학하자마자 가족과 고향을 떠나온 딸이 자신을 늘 걱정하는 엄마, 모질게만 대하는 시어머니와 겪는 갈등과 화해를 그린다. 연극과 확연히 다른 점은 남진의 ‘님과 함께’, 이승철의 ‘소녀시대’, 송골매의 ‘어쩌다 마주친 그대’ 등 추억의 노래도 들을 수 있는 주크박스 뮤지컬이라는 것이다. 정애리 역시 극에서 가수 못지않은 노래 솜씨와 구수한 사투리로 관객을 쥐락펴락한다.

▼ 기억에 남는 대사가 있나요.



죽기 직전 친정엄마가 “우리 딸 생일이나 지나고 갑시다”라고 말해요. 생일 앞두고 세상을 뜨면 딸아이의 생일을 망칠 것이 걱정돼서요. 개인적으로는 그 대사가 가장 가슴에 와 닿았고, “엄마도 소녀였다”는 말도 기억에 남아요. 엄마에게도 환하게 빛나던 시절이 있었는데, 엄마로 살다 보니 많은 부분을 놓치고 말잖아요. 노숙인들에게 처음 밥을 퍼주는 봉사활동을 할 때도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어요. 이분들도 누군가의 아빠, 남편으로 찬란하던 시절이 있었을 텐데, 거기로 처음 밥을 먹으러 올 수밖에 없었을 그날을 떠올리니까 너무 가슴이 아팠어요. 그런 생각을 해서인지 “엄마도 소녀였다”는 말이 아프게 와 닿더라고요.

▼ 소녀 정애리는 어떤 아이였나요.

늘 조용하고 튀지 않게 행동하는 아이였어요. 활동적이지도 않았고 말수도 적었어요. 그래서 제가 연예인이 됐을 때 친구들뿐만 아니라 친척들도 많이 놀랐어요. 제가 아니라 언니가 합격한 것으로 생각할 정도로요. 배우가 된 건 우연이었어요. 1978년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오빠의 권유로 KBS 공채 5기 탤런트 시험을 봤는데 거기서 대상을 받아 연기를 하게 됐어요. 그때는 상금도 있어서 2백만원을 받았어요. 그 당시에는 집 한 채 값이었어요. 경쟁률도 3400 대 1로 어마어마 했죠.

▼ 실제로 친정엄마에게는 어떤 딸인가요.

저희 엄마는 저한테 늘 효녀라고 하세요. 엄마 말에 의하면, 하늘이 낸 딸이래요. 하하하. 그래도 자식은 이기적인 것 같아요. 뮤지컬 〈친정엄마〉의 대사에도 있어요. “엄마가 가장 사랑한 건 나인데, 내가 가장 사랑하는 건 엄마가 아니어서 미안해.” 그게 맞는 것 같아요. 사실 요즘은 엄마 이야기만 하면 눈물이 나요. 전화로 대화할 때는 말짱한데, 정신이 좀 오락가락하시거든요. 그래도 저와는 이야기를 잘하는 편이세요. 제가 자분자분 잘 들어주고 추임새도 잘 넣어주니까…(그녀는 잠시 말을 잊지 못하고 숨을 골랐다. 그녀의 눈시울이 어느새 붉어졌다).

▼ 딸과도 사이가 좋나요.

무척 친해요. 딸아이가 지금 스물네 살인데, 저희는 정말 친구 같은 사이예요. 엄마와 전화할 때마다 “사랑해”라고 하는데 그때마다 딸아이에게보다는 그 말을 덜 한다는 걸 느껴요. 그래서 제가 가장 사랑하는 건 미안하게도 엄마가 아닌 것 같아요. 딸이지.

▼ 만약 딸이 엄마와 같은 길을 가겠다고 하면 기꺼이 지지할 건가요.

어릴 적에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어요. 어릴 때부터 영화, 연극, 뮤지컬을 자주 봐서 그런지 고등학교 진학하기 전 배우가 되고 싶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아주 냉정하게 “깊이 생각해보라”고 했어요. “네가 노래를 특출나게 잘하는 것도 아니고 춤을 완벽하게 잘 추는 것도 아닌데 그 때문에 겪을 힘든 시간들을 다 견뎌낼 만큼 그 일을 사랑하는지는 내가 모르겠다, 그렇게 사랑하는지를 깊이 생각해보라”고 했더니 나중에 울면서 말하더라고요. 그 정도로 사랑하는 것 같지는 않다고요.

그녀는 ‘현재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해 집중하자’는 주의다. 연기를 할 때도, 봉사활동을 할 때도, 딸과 함께할 때도 그런 원칙을 고수한다. 딸에게 어떤 방식으로 최선을 다하는지 묻자 “아이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사랑하는 마음을 아낌없이 표현하려고 노력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엄마는 제게 늘 고맙고 미안한 존재지만, 딸은 좀 달라요. 고마운 건 있어도 미안하다는 생각은 안들게 하려고 노력했어요. 잘못 말해서 아이의 기분을 상하게 했을 경우에는 그 즉시 사과를 하거든요. 집을 나가고 들어올 때마다 안아주고, ‘내 딸로 태어나줘서 고마워. 네가 내 딸이어서 자랑스러워’ 그런 말도 자주 하고요. 그랬더니 딸아이도 저한테 ‘엄마가 내 엄마여서 고맙고 자랑스러워.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엄마야’라고 하더군요. 그 말을 듣고 가슴이 뭉클했어요.”



‘나눔’은 내 인생의 선물 같은 것

‘친정엄마’를 부르다
그녀는 ‘나눔 전도사’로 불린다. 지금처럼 봉사에 대한 인식이 확산돼 있지 않은 1989년부터 아동보육시설인 ‘성로원’을 매주 방문해 후원해왔고, 2004년부터 국제구호단체인 월드비전을 통해 세계 곳곳의 아이들을 돕고 있어서다. 그녀의 지원을 받는 지구촌의 아이들은 현재 3백 명에 달한다. 2년 전부터는 ‘더 투게더’라는 NGO도 직접 만들어 탄자니아, 남수단, 케냐, 미얀마 등지에 희망을 불어넣고 있다. 월드비전이 대동맥이라면 더 투게더는 모세혈관이라고 그녀는 말했다.

▼ 본인의 삶에서 ‘나눔’은 어떤 의미인가요.  

제 인생의 선물이 아닌가 싶어요. 나눔 활동은 내 것을 일방적으로 나누는 게 아니라 주고받는 거예요. 저는 주는 것 같았는데 그 자체가 저를 정신적으로 행복하고 여유 있게 만들어 주더라고요. 제게 나눔이 허락돼서 너무 감사할 따름이에요. 생을 다하는 날까지 그게 허락되면 좋겠어요.


살다 보면 누구나 예기치 않은 고비와 맞닥뜨린다. 그것은 병마일 수도 있고, 교통사고일 수도 있고, 가족의 상실일 수도 있다. 40년 가까이 배우로 왕성하게 활동해온 그녀도 2009년 막내오빠를 먼저 떠나보냈고, 2년 전에는 이혼이라는 아픔을 겪었다. 남의 아픔을 보듬는 일에 앞장서온 그녀는 정작 자신에게 닥친 인생의 시련을 무엇으로 극복했을까.   

“제가 살면서 느끼는 건, 이 세상에 있을 수 없는 일은 없다는 거예요. 그걸 봉사하면서 절실하게 느꼈어요. 이 세상에 있어선 안 될 것 같은 일을 겪은 많은 분들을 보면서 사람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졌다고 할까요. 그래서인지 난관이 닥쳐도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가 아니라 ‘그럴 수도 있지!’ 하게 되더라고요. 돌이켜보면 나눔은 평온한 삶을 유지하게 하는 힘을 주는 것 같아요(웃음).”



여성동아 2016년 5월 62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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