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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MEMORY

지구에 상상력을 선물하고 떠난 건축가 자하 하디드

글 · 김명희 기자 | 사진 · 동아일보 사진DB파트 REX | 디자인 · 김영화

2016. 05. 12

우리에겐 동대문디자인플라자를 설계한 건축가로 잘 알려진 자하 하디드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아랍계 여성이라는 지위를 극복하고, 유려한 곡선의 건축물로 딱딱한 지구의 스카이라인을 바꾼 그녀의 드라마틱한 건축과 삶.

자하 하디드
1950년 10월 31일~2016년 3월 31일


출생지
이라크 바그다드
학력
아메리칸 유니버시티 오브 베이루트 대학(수학),
영국 건축협회 건축학교
경력
1979년 런던에 자하 하디드 아키텍츠 설립,
메트로폴리탄 건축사무소 파트너, 자하 하디드 건축사무소 공동대표,
빈 응용미술대 교수
수상 경력
유럽연합 현대건축가상(2003), 프리츠커 건축상(2004),
토머스 제퍼슨 메달(2007),
영국 왕실 ‘데임’ 작위(2012) 영국건축협회 로열 골드 메달 (2016)




자고 일어나면 변화무쌍하게 모양이 바뀌는 사막의 모래언덕을 보고 자란 소녀는 커서 건축가가 됐다. 그녀의 건축은 그 모래언덕을 닮은 부드러운 곡선으로 이루어져 있다. 지난 3월 31일 세상을 떠난 자하 하디드의 이야기다. 결혼도 하지 않은 채 모든 에너지를 일에 쏟아부으며 “건축이 당신을 죽이지 않는다면 그건 당신이 건축가로서 별로라는 얘기”라고 말하곤 했던 그녀의 직접적인 사인은 기관지염 치료 중 심장마비였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과로와 스트레스였을 거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 재임 시절인 2006년 착공돼 ‘돈 먹는 하마’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고, 동대문운동장을 철거하는 과정에서 한양 성곽 유적이 발굴되면서 공사가 지연되는 등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현재는 패션계와 디자인계가 환영하는 서울의 랜드마크로 자리매김한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는 그녀의 유작이 됐다. DDP는 지난해 인스타그램에 가장 많이 태그된 국내 명소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서 유독 건축외적 이유로 그녀의 삶과 재능이 부당하게 폄하된 것은 유감이다.

1950년 이라크 바그다드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난 그녀는 레바논의 아메리칸 유니버시티 오브 베이루트에서 수학을 전공한 후 영국의 건축협회 건축학교로 옮겨 본격적으로 건축을 공부했다. 이후에는 리움 미술관을 설계한 건축가 렘 콜하스를 따라 네덜란드 로테르담의 메트로폴리탄 건축사무소로 옮겼다. 1979년 런던에 자신의 이름을 딴 사무소를 내고 독립한 후 10여 년간 그녀에겐 ‘종이 건축가(Paper Architect)’라는 별명이 따라다녔다. 공모전에서 우승을 해도, 건축주가 파격적이고 실험적인 데다 비용이 많이 드는 그녀의 설계를 선뜻 시공할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암흑기를 보내던 자하 하디드가 본격적으로 명성을 얻기 시작한 건 1994년 독일 바일 암 라인의 비트라 소방서를 통해서다. 금방이라도 하늘로 날아오를 것 같은 비대칭 구조의 비트라 소방서는 건축이라기보단 거대한 조각 작품에 가까웠다. 비트라 소방서를 통해 스타 건축가로 떠오른 하디드는 열정적으로 활동하며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의 스키 점프대(2002), 독일 볼프스부르크의 파노 과학센터(2005) · 라이프치히의 BMW센트럴빌딩(2005), 이탈리아 로마의 막시 현대미술관(2008), 영국 글래스고 교통박물관(2011) · 런던의 서펜타인 새클러 갤러리(2013), 중국 광저우의 오페라하우스(2011) · 상하이의 스카이 소호 쇼핑센터(2013), 아제르바이잔 바쿠의 헤이드라 알리예브 센터(2013) 등 인상적인 건물을 탄생시켰다. 자하 하디드는 디자이너로서도 뛰어난 역량을 발휘했다. 루이비통 · 아디다스 · 스와로브스키 등과 콜래보레이션 작업을 했으며,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 빈 예술회관 등의 인테리어를 담당했고, 2012년 베니스 비엔날레에 금속 조형 작품을 출품하기도 했다.  



자하 하디드 건축의 핵심은 건물과 지형과 풍경이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곡선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동그랗고 납작하며 보는 사람의 위치에 따라 모양이 달라지는 비정형의 건축물은  종종 우주선에 비유되기도 한다. 누군가 그에게 “당신의 건축엔 왜 직선이 없냐?”고 묻자 하디드는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삶은 격자무늬 안에서 이루어지는 게 아니잖아요. 자연 경관을 생각해보시면 금세 이해가 될 거예요. 어느 곳 하나 평평하거나 균일한가요. 그러나 사람들은 이 장소들에 가서 매우 자연스럽고 편안하다고 느껴요. 저는 건축에서도 이렇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하 하디드는 남자가 지배하는 이슬람 국가에서 태어나, 남성 중심적인 건축계에서 일하며 고정관념에 맞서 인류에 독창적인 건축과 반짝이는 상상력을 선물한 아티스트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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