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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오너들의 수행기사 상대 ‘매뉴얼’ 갑질

대림산업 · 이해욱 부회장 현대비앤지스틸·정일선 사장

글 · 김명희 기자 | 사진 · 뉴시스 셔터스톡 | 디자인 · 김영화

입력 2016.05.11 16:24:46

이해욱 대림산업 부회장과 정일선 현대비앤지스틸 사장이 수행기사를 상대로 상습적인 폭행과 폭언, 부당 행위를 해온 사실이 알려져 공분을 사고 있다. 취재 결과 이들은 수행기사 업계에서도 이미 악명이 높았다. 두 사람의 갑질 행태를 들여다봤다.
재벌 오너들의 수행기사 상대 ‘매뉴얼’ 갑질
‘사장님이 출발하기 30분 전부터 현관 기둥 뒤에서 대기하고 있어야 하고, 출발과 정지는 컵에 담긴 물이 한 방울도 흘러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부드럽게 해야 한다. 주행 시 사이드미러는 접어야 하고, 잘못하면 욕설은 물론 뒤에서 물건을 집어던지거나 폭행을 하기도 한다.’  

영화 〈베테랑〉의 막장 재벌 2세 조태오나 드라마 〈리멤버-아들의 전쟁〉 남규만 이야기가 아니다. 대림산업 이해욱(48) 부회장과 현대비앤지스틸 정일선(46) 사장이 수행기사를 상대로 저지른 부당한 횡포의 일부분이다. 대림산업은 지난해 매출 9조5천억원을 기록한 재계 서열 18위의 대기업 (기업평가사이트 ‘CEO스코어’ 기준)이고, 현대비앤지스틸은 냉연강판 생산 업체로 지난해  6천8백억원의 매출을 올린 탄탄한 중견기업이다.

지난 3월 23일 노컷뉴스의 보도에 의해 드러난 이해욱 부회장의 수행기사 상대 갑질은 비인간적인 차원을 넘어서 생명을 위협하는 수준이다. 과거 그의 차를 운전한 적이 있다는 한 기사는 인터뷰에서 “사이드미러 없이 운전하다 브레이크와 핸들에 신경을 잘 못 쓰면 폭언이 쏟아졌다”고 증언했다. 운전기사들에게 ‘쓰레기’ ‘새끼’ 등 폭언을 퍼붓고, 물건을 던지고 뒤통수를 때리거나 발로 차는 등 폭행을 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대림산업이 수행기사들에게 교육한 항목 중에는 ‘(이해욱 부회장이) 본의 아니게 과격한 언어를 사용하더라도 절대 진심으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 실언할 경우 곧이곧대로 듣고 스트레스 받지 말아야 한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이는 이 부회장의 도를 넘어선 행태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라는 걸 보여준다.   



수행기사 매뉴얼은 현대판 노예 계약서

정일선 사장의 갑질도 결코 이 부회장에 뒤지지 않는다. 현대비앤지스틸은 정 사장의 수행기사들을 정해진 매뉴얼에 따라 교육했다. A4 용지 1백40여 장에 달하는 매뉴얼에는 모닝콜과 초인종을 누르는 시간과 방법, 정일선 사장이 운동을 하고 난 뒤 운동복의 세탁 방법과 운동 후 봐야 하는 신문을 두는 위치 등 하루 일과가 상세하게 적혀 있었다. 이에 따르면, 모닝콜은 정 사장이 받아 “일어났다. 알았다”고 할 때까지 해야 한다. 모닝콜 뒤 ‘가자’라고 문자 메시지가 오면 바로 뛰어 올라가야 하고, 정 사장 부인의 취침 후와 기상 전에는 방해가 되지 않도록 조용히 해야 한다. 정 사장이 빨리 가자고 하면 위험하지 않은 범위 내에서 신호, 차선, 과속 단속 카메라, 버스 전용차로를 무시하고 무조건 달려야 한다. 기사들의 증언에 따르면 정 사장은 매뉴얼을 지키지 않거나 약속 장소에 늦을 경우 폭언과 폭행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갑질 두 오너, 아내끼리 7촌지간

재벌 오너들의 수행기사 상대 ‘매뉴얼’ 갑질

정일선 현대비앤지스틸 사장(왼쪽)과 이해욱 대림산업 부회장은 갑질에 대해 사과 입장을 밝혔지만 진정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갑질 논란의 중심에 선 이해욱 부회장과 정일선 사장은 모두 재벌 3세다. 이 부회장은 이재준 대림산업 창업주의 손자이자 이준용 명예회장의 장남. 경복고를 거쳐 미국 덴버대학교에서 경영통계학을, 컬럼비아대학교 대학원에서 응용통계학을 공부했다. 1995년 대림엔지니어링에 입사, 2010년 부회장으로 승진한 후에는 실질적으로 기업을 이끌고 있다. 꼼꼼하고 섬세한 스타일로, 대림산업의 아파트 브랜드인 ‘e편한 세상’을 탄생시킨 주역이기도 하다. 재즈 감상과 드럼 연주를 즐기며 미술에도 조예가 깊다. 모던한 기획으로 젊은이들의 명소로 떠오르며 서울 서촌의 지가를 끌어올리는 데 기여한 대림미술관의 관장으로, 최근에는 한남동에 디뮤지엄을 새로 오픈했다. 이런 이유로 갑질 논란이 불거지기 전에는 문화를 경영에 접목시켜 기업의 가치를 끌어올린 경영인이란 평을 얻고 있었다. 자동차 마니아로 보유 차량만도 상당한 숫자인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레이싱에도 관심이 많아 운전기사 면접을 볼 때는 ‘최고 시속 몇 km까지 달려봤냐’ ‘서울에서 인천국제공항까지 몇 분만에 주파할 수 있냐’ 같은 질문을 자주 했다고 한다. 아내는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여동생 구훤미 여사의 맏딸 김선혜 씨.

정주영 현대 창업주의 넷째아들 정몽우 회장의 세 아들 중 장남인 정일선 사장 역시 경복고 출신에, 처가는 LG가다. 그의 아내는 구자엽 LS전선 회장의 장녀 구은희 씨로, 이해욱 부회장의 아내 김선혜 씨와는 7촌지간이다. 김씨와 구씨도 수행기사들을 비하하는 발언을 했다는 증언이 있었지만 사실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아나운서 출신으로 재벌가에 시집가 화제가 된 노현정의 남편 정대선 씨가 정일선 사장의 막내 동생이다.  



창업주에서 2세, 3세로 내려갈수록 심해지는 갑질

최근의 언론 보도로 수면 위로 떠올랐을 뿐이지, 이해욱 부회장과 정일선 사장의 수행기사 상대 갑질은 업계에서는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해욱 부회장 부부는 각각 기사를 따로 두고 있는데, 지난해 교체된 운전기사가 40명에 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원래 대기업은 인사 · 총무팀에서 수행기사들을 관리하지만, 대림의 경우엔 기사가 자주 바뀌는 탓에 회사 차원에서 해결할 수 없어 수행기사 채용을 대행하는 업체를 통해 인력을 공급받았다. 하지만 이들 업체들도 대림산업과 한두 번 거래를 해보고는 손을 떼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재벌 오너들의 수행기사 상대 ‘매뉴얼’ 갑질
한 업체 관계자는 “기사들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고 비인간적으로 대우하는 바람에 중간에서 애를 많이 먹었다. 사람으로서 할 짓이 아니라고 생각해 거래를 끊었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이 부회장과 정 사장을 비롯해 갑질로 유명한 재계 인사 몇 명의 블랙리스트가 돌고 있는데, 여기에는 운전기사가 마음에 안 들면 고속도로든 어디든 내려놓고 가버리는 모 중견기업 회장, 기사를 심부름꾼처럼 부리면서 사소한 일도 꼬투리를 잡아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대기업 회장 부인 등도 포함되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창업주에서 2세, 3세로 내려갈수록 갑질의 수위가 높아진다”고 말했다. 이해욱 부회장의 부친인 이준용 명예회장은 수행기사가 자동차 문을 열어주는 것조차 마다할 정도로 소탈한 성격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해에는 자신의 전 재산인 2천억원을 기부하겠다고 약속하며 “대림 가족들이 어디 가서든 칭찬받고 보람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으나, 이번 사건으로 선행의 빛이 바랬다.       



과연 제대로 사과했을까 

갑질 행태가 보도된 후에도 한동안 침묵을 지키던 이해욱 부회장은 논란이 거세지자 3월 25일 정기 주주총회에서 발표문을 통해 사과의 뜻을 밝혔다. “저의 잘못된 행동이 누군가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기게 됐다”고 고개를 숙인 그는 “상처 받은 분들을 위로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찾도록 하겠다. >한 분 한 분 찾아뵙고 사과드리겠다”고 말했다. 정일선 사장도 회사 홈페이지에 “물의를 일으킨 것에 대해 사과하며, 경솔한 행동으로 인해 상처를 받은 분들께 깊이 머리 숙여 사죄드리고 용서를 구한다. 관계된 분들을 찾아뵙고 용서를 구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하지만 두 회사 모두 사과가 진행되는 과정을 투명하게 밝히지 않고 있다. 대림산업 홍보팀 직원은 이 부회장이 피해자들에게 전화를 하거나 직접 만나 사과를 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지만 개인적으로 진행하는 일이라 정확히는 모른다고 말했고, 현대비앤지스틸 측도 사과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진행되는지는 알지 못한다는 입장을 전해왔다.

잊을 만하면 불거지는 재벌들의 갑질. 그들에게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바라는 건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일까.



여성동아 2016년 5월 62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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