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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HERO

피아니스트 조성진, 쇼팽 콩쿠르 전과 후

글 · 김명희 기자 | 사진 · 홍중식 기자, 크레디아 제공 | 디자인 · 김영화

2016. 03. 09

지난해 10월 한국인 최초로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한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3개월여 만에 처음으로 고국 땅을 밟았다. 갈라 콘서트와 인터뷰를 통해 천재 음악가의 실력과 인간적인 면모를 엿볼 수 있었다.

모두가 기다렸던 쇼팽 콩쿠르 우승자 조성진(22)이 2월 2일 갈라 콘서트를 통해 드디어 한국 팬들과 만났다. 그가 불러온 쇼팽 열풍이 기울어가는 한국 클래식계에 심폐 소생기가 될 거라는 전망이 있었지만, 이번 콘서트와 관련해 벌어진 각종 에피소드들은 상상 그 이상이었다. 이날 오후 8시 공연 표는 예매 시작 50분 만에 모두 팔렸다. 오후 2시 공연이 추가됐지만 이마저도 35분 만에 매진됐다. 콘서트 당일에는 클래식 공연으론 드물게 암표상이 등장했고, 취소 표라도 구하기 위해 무작정 공연장을 찾은 팬들도 있었다.
공연은 콩쿠르 순위와 역순으로 진행됐다. 드미트리 시쉬킨(6위), 토니 양(5위), 에릭 루(4위), 케이트 리우(3위), 샤를 리샤르 아믈랭(2위) 등에 이어 무대에 오른 조성진은 녹턴 Op.48-1, 환상곡 Op.49, 폴로네즈 Op.53 ‘영웅’을 레퍼토리 삼아 청중을 한껏 사로잡았다. 5년에 한 번씩 깐깐한 심사를 거쳐 우승자를 가려내는(적합한 사람이 없으면 수상자를 내지 않기도 한다!) 쇼팽 콩쿠르가 왜 그를 선택했는지를 여실히 입증하는 무대였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프랑스 작가 앙드레 지드는 아마추어 피아니스트이자 쇼팽의 열렬한 추종자였다. 최근 그의 일기와 기고문 중 음악에 관한 부분을 정리한 <쇼팽 노트>라는 책이 출간됐는데, 여기서 지드는 쇼팽의 음악에 대해 ‘그는 제안하고 가정하고 넌지시 말을 건네고 유혹하고 설득한다. 쇼팽이 딱 잘라 말하는 일은 거의 없다’고 적었다. 러시아, 프로이센, 오스트리아 등 강대국 틈바구니에서 바람 앞 촛불 같았던 조국 폴란드의 운명을 은유적으로 노래한 ‘피아노의 시인’ 쇼팽의 곡은 연주자들에게도 어려운 음악으로 손꼽힌다. 기교적으로는 쉬워 보이지만 탄탄한 기본기와 작품에 대한 통찰력 없이는 설득력 있는 연주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이제껏 쇼팽의 음악을 제 마음에 와 닿게 연주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지만, 조성진의 연주는 정말 공감하게 된다”며 “조성진은 피아노 키보드를 완벽히 장악하고 있으며, 쇼팽 음악에 대해 완전하고 환상적으로 이해하고 있고, 관객과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아르투르 슈클레네르 쇼팽협회장의 평은 조성진이 왜 탁월한지에 대한 좋은 설명이 된다. 다음은 갈라 콘서트 하루 전 있었던 조성진과의 인터뷰.


▼ 쇼팽 콩쿠르 우승 이후 인생이 많이 바뀌었을 것 같아요. 그동안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사실 너무 긴장하고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에 콩쿠르를 좋아하지 않아요. 콘서트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었고, 꿈을 이루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 참가하기로 했죠. 우승 후엔 생각했던 것보다 많은 관심을 받아 신기하기도 하고, 앞으로 잘해야겠다는 부담감도 있어요.
▼ 콩쿠르를 위해 특별히 준비한 게 있었나요? 몇 달 동안 스마트폰을 자제했다는 소문도 있던데.
지금 파리에 살고 있는데, 작년 초에 스마트폰을 도둑맞았어요. 벌써 두 번째라 아까운 마음에 2G폰을 사서 사용하다가 콩쿠르 끝나고 새로운 전화기를 구입했죠. 콩쿠르를 위해 뭔가 특별한 준비를 한 건 아니고, 쇼팽에 대해 깊이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고 유명 피아니스트들의 연주도 다양하게 많이 들었어요.
▼ 콩쿠르 전에는 쇼팽을 어렵게 생각했다고 하던데.
쇼팽에 대한 해석은 다양해요. 어떤 사람은 쇼팽을 낭만적이라고 생각하고, 어떤 사람은 아카데믹하다고 여기죠. 저 역시 쇼팽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하다가 이번 콩쿠르를 준비하고 또 우승 이후 콘서트에서 계속 연주하면서 그의 곡을 더 깊게 이해하게 됐어요. 하지만 똑같은 곡을 여러 번 무대에 올리다 보면 매너리즘에 빠질 수 있을 것 같아서 악보를 다시 보고 계속 프레시한 느낌을 가지려고 노력합니다.
▼ 어떤 계기로 피아노에 빠지게 됐나요.  
어릴 때부터 클래식 음악을 좋아했어요. 바이올린도 배웠는데 서서 연습하는 게 힘들더라고요. 피아노는 앉아서 해도 되니까 좋았어요.
▼ 피아니스트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부모님은 어떤 도움을 주셨나요.
부모님은 음악가도 아니고 음악과 관련된 일을 하시지도 않지만, 제가 음악을 하겠다고 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항상 뒤에서 묵묵히 도와주셨어요. 가장 고마운 것은 저를 항상 믿어주신 거예요. 음악을 잘 몰라서 그랬을 수도 있지만, 얼마나 힘든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데 믿음을 갖고 허락해준 것에 감사드려요.
▼ 평소 친하게 지내는 사람이 있나요.
친하게 지내는 분들은 대부분 저보다 나이가 많고, 또래 친구는 거의 없기 때문에 요즘 20대들이 어떻게 사는지 잘 몰라요. 클래식 음악 외엔 발라드도 가끔 듣고, 피아니스트 선배인 김선욱 형, 손열음 누나, 임동혁 형 등과 가깝게 지내요.
▼ 앞으로 앨범을 낼 계획이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도이치 그라모폰과 5년 동안 5장의 CD를 녹음하기로 계약했어요. (이미 발매된 ‘2015 쇼팽 콩쿠르 실황 앨범’ 이후) 두 번째 음반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지 않았지만, 쇼팽이 아닌 다른 작곡가의 음악이 될 것 같아요.  
▼ 지금이 조성진 씨 인생의 정점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는데, 스스로는 어떤 시점이라고 생각하나요.
콩쿠르 우승이 인생의 정점이자 목표라면 너무 슬픈 일일 것 같아요. 제게 콩쿠르는 훌륭한 연주자가 되기 위한 수단일 뿐 목표가 아니에요. 저는 이제 스물한 살이고, 시작일 뿐이죠.
▼ 훌륭한 연주자란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가요?
뭔가 귀하게 느껴지는 연주를 하는 사람이에요. 그리고 저희가 연주하는 곡에는 작곡가들의 엄청난 노력과 고뇌가 녹아 있기 때문에 음악을 할 때만큼은 진지한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 자세를 갖춘 사람이 훌륭한 음악가 아닐까요.  
콘서트 피아니스트가 꿈이라고 했는데, 롤 모델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개인적으로 존경하고 좋아하는 피아니스트는 루마니아 출신의 라두 루푸지만 롤 모델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그분과 저는 스타일이 다르고, 저는 저만의 길을 개척하고 싶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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