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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COME BACK

현진영

벼랑 끝에 선 사람들에게서 노래를 배우다

기획 · 김명희 기자 | 글 · 김지은 자유기고가 | 사진 · 지호영 기자

입력 2016.02.12 17:37:21

대한민국 1세대 힙합 뮤지션 현진영.
누구보다 재기 발랄했지만 파란만장한 길을 걸어왔던 그가 디지털 싱글 앨범 수록곡 ‘무념무상’을 들고 돌아왔다. 2007년 ‘소리쳐봐’로 대중에게 재즈힙합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소개한 후 9년 만의 컴백이다.
현진영


현진영(45)의 디지털 싱글 앨범 〈Street Jazz in My Soul Vol.2〉에 수록된  ‘무념무상’. 현란한 재즈 트럼펫 선율에 이어 기타와 건반, 드럼이 각각의 음색으로 16비트 스윙을 선보이면 리드미컬한 스캣(가사 대신 리듬을 흥얼거리는 재즈 창법)이 파도를 타듯 뒤를 잇는다. 불혹의 나이를 넘긴 힙합 뮤지션이 무르익은 미성으로 긁어내는 재즈 선율은 감미롭고 또 감동적이다. 현진영, 그가 돌아왔다. 
그의 이름만 들어도 심장이 ‘두근두근, 쿵쿵’ 하던 시절이 있었다. 현진영은 대한민국 대중음악사의 살아 있는 전설이자 ‘빛과 그림자’다. 단어조차 낯설었던 힙합이라는 장르를 대중에게 전파한 주인공이자 국내 최대 연예기획사 SM엔터테인먼트 1호 가수로, 음악 관련 수많은 화려한 기록들이 그의 이름과 함께해왔다. 그가 국내에 소개한 것은 날것 그대로의 힙합이 아닌 재즈힙합이었다. 대한민국 재즈 피아니스트 1세대였던 아버지 허병찬 씨의 영향이 컸을 것이다.
스스로, 음악을 제대로 공부해본 적 없는 무식쟁이라 겸손해했지만 그는 타고난 솔(Soul)과 그루브(Groove)를 가진 보석 같은 뮤지션이다. 최근 그와 의기투합해 음악 작업을 이어가고 있는가 하면 ‘무념무상’ 뮤직비디오에도 참여한 재즈 피아니스트 배장은은 그런 그의 재능이 질투가 날 정도로 부럽다고 했다. 사실 처음부터 그랬다. 그의 재능은 열여덟 어린 나이에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힙합 그룹을 결성할 만큼 대단한 것이었다. 양현석, 이주노, 이현도, 김성재 등 당시 전국의 날고 기는 댄서들이 실력을 겨루던 서울 이태원 문나이트에서 유독 그가 훗날 연예계 미다스의 손으로 성장한 이수만의 눈에 가장 먼저 발견된 것도 우연일 리는 없다. 그의 무지는 다만 스스로가 얼마나 빛나는 보석인지, 그 보석을 어떻게 갈고닦아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는 데 있었을 것이다.
“그때는 너무 교만했어요. 인기라는 것이 저를 망각하게 만들고, 스스로를 돌아보지 못하게 만들었던 시절이었죠. 사고를 쳤는데도 음반을 내면 잘되고, 또 잘되고 그래서 교만이 쉽게 사라지지 않았던 것 같아요. 무대 위 제 모습이 어땠나, 그때의 제 감정은 어떤 것이었나 그런 건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제 삶이 교만했다는 것만은 또렷이 기억해요.”
가요계의 모든 빛이 그를 향해 쏟아지는 듯 질주하던 시절, 그 화려함 뒤로 길게 드리워진 그림자를 감당하기에 그는 너무 어리고 미숙했다. 몇 차례의 마약 사건으로 롤러코스터를 타기 시작한 그의 인생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황폐해져만 갔다. 1992년 2집 앨범 수록곡 ‘흐린 기억 속의 그대’와 ‘현진영  Go 진영 Go’가 잇따라 성공을 거두며 대마초 사건으로 실추되었던 이미지를 회복하는가 싶었던 그는, 1993년 3집 앨범 발표 일주일 만에 필로폰 투약 혐의로 발매 음반 전량을 압류당하게 된다. 현진영의 앨범에 사활을 걸었던 이수만은 부도 위기를 맞았고 한동준, 김광진, 신동엽, 김승현, 이홍렬 등 당시 그와 한솥밥을 먹고 있던 SM 소속 가수와 연예인들 역시 엄청난 타격을 입으며 이수만과 결별하게 된다. ‘와와’로 활동하던 이현도, 김성재는 꿈에 그리던 무대를 눈앞에 두고 백댄서 활동을 중단해야 했다.



인생의 쓴맛을 제대로 본 철부지

이후 간헐적으로 활동을 이어가다가 2007년 신곡 ‘소리쳐봐’를 발표하며 본격적인 재즈힙합 뮤지션으로서의 출발을 선언했던 그의 이름이 다시금 오르내린 것은 지난 2014년의 일이다. ‘현진영 파산 신청.’ 인터넷 포털 사이트를 뜨겁게 달구었던 그의 파산 소식은 한 해 앞서 열애 13년 만에 화촉을 밝힌 아내 오서운 씨와의 러브스토리와 함께 회자되며 안타까움을 더했다.
일어서고 무너지기를 반복했던 그의 파란만장한 인생사를 짧은 지면에 모두 담아내기란 어차피 불가능하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가 나이에 어울리지 않을 만큼 철부지이자 낙천주의자란 사실이다. 파산 신청 후 출연했던 MBC ‘황금어장 라디오스타’에서 그는 “돈을 갚으려고 정말 노력을 많이 했다. 갚고 갚다가 안 돼서 파산 신청을 한 것”이라며 “사람들이 내가 파산 신청한 것을 모를 줄 알았다. 본명이 허현석이니까 다른 사람으로 생각할 줄 알았다”고 당시의 심경을 전했다. 심지어 그는 파산 신청하는 날, 평소 친분이 있던 개그맨 노우진이 오픈하는 가게 개업식에 찾아가 활짝 웃는 얼굴로 셀카를 찍어 네티즌들로부터 뭇매를 맞았다. 하지만 훗날 그는 당시 상황에 대해 “내가 망했다고 개업하는 친구 가게에 가서 울상을 지으면 되겠느냐”는 말로 정리했다. “나는 망했지만 친구는 잘되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그를 아는 사람이라면 그 말에 담긴 철부지 같은 진심을 이해했을 것이다.
고무공보다 가벼운 몸짓으로 텀블링을 하고, 날아갈 듯 빠르고 파워풀한 춤사위와 압도적인 카리스마로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힙합 뮤지션. 대중이 기억하는 현진영은 애초에 그런 사람으로 규정지어져 있었던 것 아닐까.
“데뷔한 지 20년이 넘었는데 아직도 무대에 올라가기 전에 소변이 마려워요. 오금이 저리다고 하죠? 설레고 긴장되고…. 내가 무언가를 꼭 보여줘야 하는데 과연 그걸 전부 보여줄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 저, 사실은 겁이 되게 많거든요.”
불혹을 훌쩍 넘긴 남자가 소년 같은 눈동자를 굴리며 “겁이 난다”고 했다. 여전히 재미없고 따분한 건 죽어도 하기 싫어하는 철부지라는 것도, 다른 사람의 충고나 객관적인 근거보다는 자신의 직관을 더 따르는 고집쟁이에 ‘뮤지션’이라는 타이틀을 달기에는 여전히 쑥스럽고 모자란 것만 같다는 마음 속 두려움도 털어놓았다. 배장은과의 만남도 ‘음악을 전문적으로 공부한 사람들’에 대한 경외심이 크게 작용했다. 그녀는 낭떠러지 절벽 끝에 서 있던 현진영의 음악 인생을 다잡아준 마지막 희망끈 같은 존재였다. 배장은은 서울예대 실용음악과 출신으로, 재즈 명문 노스텍사스 주립대학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모던 재즈의 성지 블루노트 레이블의 색소포니스트 그레그 오스비의 파트너로 활동하며 이름을 알렸고 2007년 한국대중음악상(재즈 크로스오버 싱글 부문)을 수상하기도 했다.
“2007년 자라섬 국제재즈페스티벌에서 나란히 무대에 선 적이 있었어요. 그땐 서로 안면조차 없던 사이였는데 진영 씨가 먼저 SNS 친구 신청을 했더라고요. 친구 수락을 하면서도 정말 현진영 씨인가 반신반의했었죠.”
음악 작업을 제안한 건 배장은이 먼저였다.
“노래가 있는 곡을 만들고 싶었는데 흑인 보컬의 그루브를 가진 싱어가 필요했어요. 그래서 진영 씨에게 ‘건방지게’ 문자로 물었죠. 내가 곡을 쓸 건데 노래를 해주실 수 있냐고요. 그랬더니 대뜸 자라섬 페스티벌 때 같은 무대에 올랐던 사진을 보내주더라고요. 사진을 보고는 ‘내가 이 사진 속 재즈 피아니스트예요!’ 했더니 ‘우리 아버지가 재즈 피아니스트예요’라고 답장을 보내왔어요. 그러고선 부랴부랴 전화를 했더라고요. 그때가 밤 12시였는데 말이죠. 진영 씨 말로는 제가 그때 함께 무대에 섰던 피아니스트란 걸 알고서 SNS 친구 신청을 한 거였대요.”
그렇게 시작된 인연은 서로의 음악 인생에 새로운 길을 터주었다. 서로의 음악 세계에 매료된 두 사람은 본격적인 콜래보레이션 작업을 위해 의기투합했다.
배장은의 표현에 따르면 현진영의 그루브는 ‘오가닉(Organic)’이다. 타고났다는 뜻이다. 재즈의 즉흥성을 이해하고 연주자들과 끊임없이 교감하며 무대를 만들어가는 현진영의 재능은 대중성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던 재즈 음악의 영역을 보다 대중 가까이 내려놓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배장은의 찬사에 현진영은 손사래를 쳤다. 오히려 그 반대라는 것이다.
서로가 서로의 분야를 인정하고, 존경하며 공존의 하모니를 만들어내는 것. 이들이 꿈꾸던 음악은 그렇게 탄생했다. 그리고 혼자 무대에서 준비된 MR에 맞춰 노래하고 춤을 추던 시절엔 알지 못했던 뮤지션으로서의 자존감이 철부지같았던 그를 다시 무대 위 가수로 살게 했다. 



노숙인들과 함께 산 한 달

현진영이 준비한 비장의 무기는 디지털 싱글 앨범 〈Street Jazz In My Soul Vol.2〉수록곡 ‘무념무상’이 전부가 아니다. 봄이 오면 그는 재즈 기타리스트 조범진, 배장은 트리오와 함께 본격적인 재즈힙합 음반을 출시할 계획이다. 그 전에 ‘무념무상’의 스탠더드 버전을 출시하고, 각자의 솔로 앨범도 준비할 생각이다. ‘무념무상’은 그들이 따로 또 함께 만들어나갈 음악 세계에 대한 프롤로그이자 선언문인 셈이다.
지난해 11월, 현진영은 MBC ‘일밤-복면가왕’에 ‘꺼진 불도 다시보자 119’라는 이름으로 출연해 화제를 모았다. 이날 무대에서 ‘여전사 캣츠걸’과 대결을 펼친 그는 예의 리드미컬한 미성 대신 진중한 저음의 호소력 짙은 목소리로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가면 속 얼굴이 누구였든 관객들의 마음을 움직이기엔 충분한 무대였다. 하지만 김광진의 ‘편지’를 부르던 그가 가면을 벗고 얼굴을 드러내자 객석에서는 환호 대신 탄식과 울음이 터져나왔다. 판정단의 눈시울도 함께 뜨거워졌다. 무대가 끝날 때까지 흘러내리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던 유영석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오랜만이라 반갑고, 노래를 너무 잘한다. 그때도 잘하는 건 알았지만 이렇게 잘할 줄은 몰랐다.”
‘복면가왕’ 이후, 그의 삶은 조금 달라졌다. 데뷔 후 20년 넘는 세월 동안 자신의 무대 앞에서 신나게 몸을 흔들며 박수를 치고 환호하는 사람들은 숱하게 보아왔지만, 자신이 부르는 노래에 눈물을 흘리는 광경은 그로서는 처음이었던 것이다. 이제 무대에 오르면 사람들은 그의 히트곡들과 함께 ‘복면가왕’ 무대에서 불렀던 ‘편지’를 청하곤 한다. 그리고 눈을 지그시 감고 그가 부르는 애잔한 노래에 마음을 싣는다. 그럴 때면 노래를 부르던 그의 마음도 덩달아 숙연해지곤 한다. 누군가에게 노래로 감동을 전한다는 것, 노래에 애환을 싣는다는 것. 그에게는 모든 것이 생소하지만 애틋한 경험이었다.
그의 노래 ‘무념무상’은 인생의 벼랑 끝에 선 사람들의 이야기다. 곡을 준비하는 동안 그는 실제 노숙인들과 생활하며 한 달여를 보냈다. 인생의 숱한 롤러코스트를 경험하면서도 삶의 낭떠러지를 만났다고 느낀 적은 없었다던 그는 진짜 벼랑 끝 사람들과 함께하고서야 삶의 애환을 노래에 담는 법을 알게 되었다.
“노숙자분들과 생활하면서 얻은 건 마음이 아닐까 싶어요. 사람들은 그분들을 보며 ‘저렇게 살 바엔 하다못해 막노동이라도 하지’ 혀를 차지만 그분들은 그 안에서 나름의 행복을 찾고 있었어요. 노숙자 사회에도 규칙이라는 게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죠. 그 규칙에 어긋나는 일이 생기면 난리가 나는 건 노숙자 사회뿐만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도 마찬가지잖아요. 저는 정치에도 관심이 없고 신문도 잘 안 읽지만, 세상에는 많이 배우고 돈 많고 권력 있는 사람들이 그런 규칙을 지키지 못해 생기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노숙자분들과 마음을 터놓고 대화를 한다는 게 쉽지만은 않았어요. 심지어 처음엔 죄다 왕년에 잘나가는 중소기업 CEO에 대기업 임원이었다는 말들만 하더라고요. 신뢰가 안 가기도 하고 ‘뻥도 어지간히 쳐야 응수를 하지’ 싶은 마음에 괜히 허튼짓을 시작했나, 회의감도 들었죠. 그러다 한 주가 지나고 두 주가 지나면서 점차 그분들 마음속에 있는 진짜 얘기를 들을 수 있게 되었어요. 지금은 솔직히 그분들보다 내가 나은 게 뭔가, 그분들의 삶에 비해 내 삶이 나은 것이라 할 수 있나, 그런 생각이 들어요. 그런 걸 깨닫게 되는 순간 저절로 가사가 떠오르더라고요.”



현진영

요즘 의기투합해 음악 작업을 이어가고 있는 재즈 피아니스트 배장은(왼쪽)과 현진영. 배장은이 ‘무념무상’의 뮤직비디오에 출연한 데 이어 올봄에는 함께 재즈힙합 음반을 선보일 계획이다.

비우고, 내려놓으며 살기

젊은 시절의 그는 늘 사람들을 의식하며 살았다. 자신의 인생을 대중에게 저당잡힌 듯한 기분이 들 때마다 도망치고 또 되돌아오기를 반복하며 빛을 잃고 방황했다. 그러다 문득 ‘내 인생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 웃고 잘 떠들고 농담도 잘하는 진짜 현진영의 모습으로 살고 싶어진 것이다.
“사실 연예인은 유명인이긴 해도 공인은 아니잖아요. 사적인 시간에까지 일일이 남을 의식하다간 정작 제 인생을 살 수가 없을 거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극장이며 마트도 마음대로 가고, 찜질방에서 편안하게 널부러지기도 하고, 반바지도 입고 다니고, 인형 뽑기도 하고 그렇게 살았어요. 언젠가 한번은 잠옷 바지 차림으로 동네 마트에 간 적이 있었는데 시민분이 제 사진을 찍으시더라고요. 그래서 잠옷 바지를 입고 있으니 제발 인터넷에만 올리지 말아달라고 부탁을 드렸거든요. 그랬더니 진짜로 사진은 안 올리시고 대신 ‘허락도 받지 않고 사진을 찍었는데 화내지 않고 정중하게 잠옷 차림이라 인터넷에만 올리지 말아달라 부탁하더라, 고마웠다’는 글을 쓰셨더라고요. 저 나름대로는 저답게 사는 법을 터득한 것도 같아요.”
그러고 보니 인터넷상에 떠도는 그의 사진 중에는 동네 인형 뽑기 기계 앞에 매달려 있거나 편안한 티셔츠에 반바지 차림으로 거리를 활보하는 모습도 적지 않았다. 얼마 전 MBC 예능 프로그램 ‘능력자들’에서 선보였던 인형 뽑기 신공은 무엇 하나에 꽂히면 끝장을 보아야 직성이 풀리는 그의 성격을 고스란히 보여주었다. 인형 뽑기를 하는 데 2천만원을 쏟아부은 적이 있다는 그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새로 나온 게임은 어떻게든 끝판을 깨고 나서야 잠을 잘 수 있을 만큼 집착하는 것도 그의 성격이다. 친구를 사귈 때도, 일을 할 때도 누가 뭐라하든 자기 맘에 들고 자기가 마음을 열고 싶은 사람과 함께해야 직성이 풀리는 것도 그가 사는 방식이다.
그런 그가 정말 미칠 만큼, 하고 싶어 죽을 만큼 재미있는 일을 만났다. 가장 현진영다운 것, 재즈힙합은 그에게 숙명 같은 도전이다.

배장은은 서울예대 실용음악과 출신으로, 재즈의 명문 노스텍사스 주립대학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모던 재즈의 성지 블루노트 레이블의 색소포니스트 그레그 오스비의 파트너로 활동하며 이름을 알렸다. 2005년 귀국해 국내외에서 활발한 연주 활동을 하고 있으며, 2007년 한국대중음악상(재즈 크로스오버 싱글 부문)을 수상하기도 했다.

디자인 · 김영화  | 의상협찬 · 아콤플리스, 플래닛 비




여성동아 2016년 2월 62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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