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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견이 삶을 바꿨다‘개밥남’ 주병진의 싱글 라이프

기획 · 김지영 기자 | 글 · 김지은 자유기고가 | 사진 · 채널A 제공 | 디자인 · 최정미

2016. 02. 11

개그맨 주병진. 그의 최근 직함은 ‘개밥 주는 남자’다. 우스개로 하는 말이 아니라 요즘 그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정말로 개밥 주는 일이기 때문. 어렵게 결심하고 입양한 반려견 웰시 코기 삼둥이가 그의 인생을 이토록 살뜰히 보살펴줄 줄은 조금도 예상치 못했다. 썰렁하기 짝이 없던 그의 집 안에 따스한 온기가 돌고, 곰팡내 나던 마음 구석구석에도 웃음꽃이 피기 시작했다.

누군가를 처음 만났을 때, 상대를 긴장하게 만드는 제스처가 있다. 의례적으로 건넨 명함을 대충 집어넣지 않고 손에 받아 쥐자마자 샅샅이 읽어내는 것이다. 별것 아닌 이 행동 하나만으로도 상대는 ‘아, 이 사람이 나와의 만남을 중요하게 생각하는구나’ 여기며 한편으로는 안도하고, 또 한편으로는 그와의 만남에 최선을 다하겠노라 마음을 다잡게 된다. 주병진(57)을 처음 만났을 때가 딱 그랬다. 한사코 인터뷰를 거절하던 그가 모처럼 시간을 내줬을 때만 해도, 지난해 12월 중순 방송을 시작한 채널A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로 컴백한 근황 정도나 듣지 않을까 걱정했다. 그런데 그의 반듯한 태도를 마주하니 마음이 달라졌다. 정중하게, 그의 마음을 읽어내고 싶어졌다.



던질 준비가 되었는가

그가 한사코 거절했던 것은 인터뷰만이 아니었다. 방송국 PD들이 언제가 마지막이었는지 기억조차 까마득해진 방송 일을 다시 해보자고 제안할 때마다 그는 번번이 손사래를 쳤다. 제아무리 왕년에 잘나가던 개그맨에 유재석 뺨치는 톱 MC였다 해도 요즘처럼 변화의 속도가 빨라지는 방송 트렌드를 따라잡기엔 역부족이라 판단한 것이 첫 번째 거절 이유였다. 설령 용케 트렌드를 읽었다 해도 카메라 앞에 서본 지 너무 오래된 탓에 감을 잡기도 쉽지 않을 것만 같았다. 게다가 이제는 그를 알아보는 시청자보다 그의 이름 석 자조차 모르는 시청자가 더 많다. 그만큼 세월이 흘렀기에 그의 처지는 절대적으로 불리했다. 조금만 틈이 보여도 금세 외면받을 것은 불 보듯 뻔했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출연하기 시작한 것이 KBS2 라디오 다. TV 브라운관을 통해 시청자들과 만나기에는 스스로도 준비가 너무 덜되었다고 느끼던 찰나, 담당 PD가 라디오 프로그램 개편을 맞아 그에게 MC 자리를 제안한 것이다. 덕분에 방송계의 변화를 직접 체감하고, 출연에 대한 두려움도 어느 정도 떨칠 수 있게 된 건 큰 소득이었다.
“방송 준비를 많이 하는 편이었어요. 생각이나 자세 같은 것들도 하나하나 점검하면서 절대 실수하지 말자고 마음을 다잡기도 했고요. ‘밥값은 꼭 하자’주의였으니까요. 그런데 막상 다시 TV 출연을 결심하고 요즘 방송 프로그램들을 살펴보니 제가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너무 막연해지더라고요.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같은 경우엔 뭔가 인위적으로 준비하는 것이 더 프로그램을 망치는 일 같고…. 그러다 문득 ‘의도적으로 무언가를 보여주려 준비하는 것이 준비냐, 내가 나를 내보일 수 있도록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것이 준비냐’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게 되더군요. 결론은 ‘나를 던지는 것이 곧 적응하는 것이다’였습니다. 는 제 자신을 던져놓고 적응시키는 일종의 실험대였던 셈이죠.”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는 방송을 시작하고 몇 주가 지나도록 모니터링 한번 제대로 하지 못했다. 브라운관에 비친 자기를 다시 마주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가 TV 화면을 통해 개밥 주는 자신의 모습을 확인한 것은 인터뷰 전날이 처음이었다.
“진짜 막 던졌더라고요. 외모고 뭐고, 그냥 다 망가졌더라고요. 해도 해도 너무하다 싶은 게, 이야, 이 정도로 막 던져도 되는가 싶던데요?”



의지할 곳 없는 내게 다가온 새 식구

지금 그와 함께 살고 있는 반려견 ‘대’ ‘중’ ‘소’는 를 시작하면서 새로 입양한 웰시 코기 형제견들이다. 반려견과의 동거가 처음은 아니었다. 그의 어머니가 살아 계시던 때에도 반려견을 드문드문 키운 적이 있지만, 혼자 살면서 집 안에 반려동물을 들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예전에는 어머님도 계시고, 형제들도 함께 살 때라 제 손으로 뭔가를 할 일이 별로 없었어요. 반려견과 함께 사는 것이 얼마나 손이 많이 가고 세심하게 마음을 쏟아야 하는 일인지 몰랐던 거죠. 요즘에는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양손에 비닐장갑부터 껴요. 세 녀석이 여기저기 싸놓은 대소변을 치우고 물걸레질을 하고 소취제를 뿌리고 환기를 시키고 어지럽혀놓은 집 안 정리까지 하다 보면 30분은 훌쩍 지나버리더라고요. 그런데 최근 들어 요 녀석들이 조금 커서 그런지 외출했다 돌아와도 집 안이 깨끗할 때가 있어요. 얌전히 정해진 자리에만 대소변을 싸놓은 날은 횡재한 기분이에요.”
방송을 통해 알려진 것처럼 그의 집은 자그마치 660m2(2백 평)나 되는 펜트하우스다. 집 안을 한 바퀴를 돌며 대충 청소를 하는 것도 예삿일이 아니다. 청소와 정리 정돈을 원래 좋아하는 성격이라지만 돌아서면 집안을 엉망진창으로 만드는 말썽꾸러기 녀석들이 마냥 예쁘기만 하랴.
“처음 대, 중, 소를 입양했을 때는 솔직히 너무 벅찼어요. 대소변은 여기저기 흘리고 다니지, 그렇게 흘리고 다니는 걸 치우면서 목욕도 시켜야지, 예방주사도 맞히러 다녀야 하고 밥도 챙겨줘야 하고 내가 이걸 다 해낼 수 있을까 싶더라고요.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니 이 모든 일들은 너무 당연한 거더라고요. 집 안에 생명이 셋이나 새로 들어왔는데 어렵고 귀찮은 일이 많아지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잖아요. 그게 또 ‘같이 사는 거’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건 사람이건 동물이건 마찬가지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렇게 받아들이고 나니 마음이 편안해지더군요.”
그는 이제 반려견들을 위해 간식을 만들고 아픈 막내 ‘소’를 위해 영양제를 따로 챙길 줄도 알며, 수시로 빗질을 해주고 산책시키는 일에도 제법 능숙한 아빠가 되었다.
“어머님 생전에는 같은 하늘 아래 어머니가 계신다는 것만으로도 크게 의지가 되었었어요. 어디로 여행을 가든지 남들이 자식 선물 사느라 돌아다닐 때 저도 어머님 선물을 골랐고요. 그런데 어머님이 돌아가시고 나서는 그럴 일조차 없더라고요. 의지할 곳이 아무 데도 없었죠. 그런데 최근 좀 달라졌어요. 오늘도 지나는 길에 ‘다이소’에 들러 강아지용품 코너를 한참 기웃거리다 왔어요. 제 의식 속에 강아지들이 있는 거죠. 참 희한한 게, 그 녀석들이 저한테는 엄청나게 의지할 구석이 되어주고 있어요. 같은 하늘 아래 제 식구가 있다는 걸 느끼게 된 거죠.”
반려견들에 대한 애정과 사랑이 커지면서 고민도 깊어졌다. 올망졸망 아무것도 모르던 철부지 강아지들이 조금씩 머리가 굵어지면서 서열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처음에는 장난치는 줄로만 알았던 반려견 삼둥이가 이제는 제법 이빨까지 드러내고 사납게 싸울 때가 있다. “어쩌면 좋을까요?” 대, 중, 소에게 온통 관심이 쏠려 있는 아빠 주병진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와 함께 에 출연 중인 강형욱 훈련사는 “웰시 코기의 경우 생후 7개월쯤 되면 먹을 것 앞에서뿐만 아니라 수시로 싸움을 벌인다”면서 “다른 개가 자기보다 앞서 걸어간다거나, 주인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모습만 봐도 격하게 싸움을 걸 수 있으니 한 배에서 난 사내아이 셋을 키우는 것은 가급적 피하라”고 조언했다. 그러나 세 아이에게 이미 옴팍 정이 든 아빠, 시름이 더 깊어졌다.





운동으로 다진 감정의 굳은살

한때 그는 대한민국 최고의 MC이자 개그맨이었고 잘나가는 속옷 회사 사장이었다. 번듯한 외모와 훤칠한 키, 운동으로 다져진 탄탄한 몸매, 여기에 재치 있는 입담과 사업 수완까지 갖춘 그는 명실공히 대한민국 최고의 워너비이자 개그맨들의 롤 모델이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잘될 때는 무엇을 해도 잘되었다. 어떻게 이런 게 잘될 수 있지, 싶은 것들도 그의 손을 거치기만 하면 대박이 났다. 집세를 내지 못해 1년에도 몇 번씩 쫓겨나듯 이사를 다니며 온 식구가 좁은 방에서 칼잠을 자야 했던 어린 시절의 가난을 모조리 보상하기라도 하듯 돈도 사람도 모두 그에게로 몰려들었다.
한창 전성기를 누리던 순간 그는 불미스러운 사건에 휘말려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었더랬다. 그 일로 그는 너무 많은 것을 잃었다고 털어놨다. 무죄판결을 받은 뒤로도 방송 복귀는 물론 생활조차 하기 힘들 정도로 삶이 망가지고 피폐해졌다는 것.
“구치소에 수감됐던 한 달 동안에는 바깥세상에만 나가면 살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운동도 워낙 좋아하고 활동적인 성격이다 보니 그 좁고 밀폐된 공간을 견디지 못했던 거죠. 그런데 막상 무 죄판결을 받고 세상에 나와보니 갈 데가 없더라고요. 이 넓은 세상이 온통 암흑이었죠. 하루 종일 울어도 보고, 몇 날 며칠 술도 마셔보고, 끝없이 걸어도 보고….”
아무리 무언가를 해봐도 미칠 듯이, 죽을 만큼 억울했다. 그러다 정말 나쁜 마음을 먹은 적도 있었다. 그러는 사이 그는 조금씩, 이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스스로의 모습과 마주하게 되었다고 한다. 무엇이든 원하는 대로 척척 되던 때의 교만했던 자신, 모난 돌처럼 뾰족뾰족했던 자신, 안하무인 격으로 자기 고집만 내세우던 자신…. 무너진 폐허 속에는 스스로를 포장하던 숱한 껍데기들이 나뒹굴고 있었다.
“그 사건이 지나고 몇 년 후 스스로에게 물어봤어요. 누군가가 저에게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를 주면서 그때의 사건을 피해서 올래, 통과해서 올래 묻는다면 저는 다시 돌아가더라도 그 사건을 통과해서 오겠다고 말할 것 같아요. 그런 과정이 없었다면 저는 여전히 교만하고 저만 잘난 줄 아는 인간으로 살고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기나긴 고통의 시간, 그를 지탱해준 것은 운동이었다. 과거 그는 제주 서귀포부터 파주 임진각까지 국토 종단 마라톤을 두 번이나 해낼 만큼 대단한 운동 마니아였다. 덕분에 전성기 시절에는 자신이 경영하던 속옷 브랜드 ‘보디가드’의 모델로도 직접 출연해 화제를 모았다. 지금도 그의 몸매는 57세의 나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탄탄하고 멋지다. 매일 꾸준히 체육관에서 운동하는 것이 그의 중요한 일과인 덕분이다.
“앞으로 언제 올지 모를,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운동을 했어요. 잃어버린 세월이 너무 아까워서라도 어떻게든 체력을 유지해 그 시절을 다시 보상받아야지, 그러려면 내가 꼭 살아 있어야 한다, 그런 마음이었죠.”
그렇게 상처 받은 마음과 몸을 스스로 다독이는 사이, 그에게는 웬만한 상처 따위에는 아랑곳하지 않을 만큼 단단한 굳은살이 박였다.



어린 시절 꿈이 담긴 집

방송을 통해 그의 펜트하우스를 처음 접한 시청자들은 가정집이 아니라 호텔이나 모델하우스 같다는 반응을 보였다. 혼자 살기에는 너무 호화스럽고 넓은 집이어서다. 그의 어머니도 생전에 그에게 같은 말을 하셨다. 그럼에도 그가 이 집을 고집하는 건 단순한 주거 공간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어서다. 남의집살이를 전전하며 온 식구가 발뻗고 잠을 잘 수도 없었던 시절 그가 소원했던 것은 단 하나, 넓은 집이었다. 그에게 지금의 집을 포기하는 건 어쩐지 어린 시절의 꿈을 포기하는 것만 같아 싫고 두려운 일이라고 한다.  
“서울 시내에서 베란다가 동서남북 네 군데로 나 있는 곳은 저희 집밖에 없어요. 이곳으로 이사하면서, 인테리어 공사를 1년 반 동안 했습니다. 바닥재부터 타일, 조명 어느 것 하나 제 손을 거치지 않은 것이 없어요. 일일이 자재를 고르고 디자인을 그려가며 제가 꿈꿔왔던 공간을 만들어나간 거예요. 남들 보기엔 그냥 집일지 몰라도 제 땀과 노력이 모두 배어있는 공간이라 제겐 무엇보다 소중해요.”
그의 친절한 설명에도 불구하고, 그의 집에는 왠지 썰렁하고 허전한 기운이 맴돈다. 단지 집이 넓어서만은 아니다. 규모에 비해 내용물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의외로 옷가지도 많지 않고, 가구며 가전도 정말 최소한의 것들만 들여놓은 상태다 보니 살림 냄새가 나지 않는다.
“예전에 어머니가 뭘 사더라도 항상 임시로 사는 것처럼 ‘일단은 이걸로 사고 나중에 더 좋은 것, 제대로 된 걸로 사자’고 말씀하셨는데 그 나중이라는 것이 언제인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였거든요. 그런데 가만 보니 제가 습관처럼 그러고 있더라고요. 즉석 밥에 인스턴트만 먹으면서도 언젠가는 제대로 된 밥을 해 먹어야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거죠. 가구도 마찬가지예요. 지금은 싱글이지만 언젠가 장가를 가게 되면 함께 살 사람의 취향을 고려해야 하니 이대로 살자는 생각을 막연히 하고 있는 듯해요. 필요한 굵직한 것들은 갖춰놓되 세부적인 것들을 들이는 일은 미뤄놓았다고 할까요.”
하지만 훌쩍 나이가 들어버린 지금, 그는 종종 두려움에 휩싸인다. 그가 생각하던 언젠가가 사실은 영영 오지 않을 미래이고, 지금 살고 있는 ‘임시적 삶’이 앞으로도 계속될 현실이라면? 이러다 매일 즉석 밥에 냉동식품만 먹다 인생이 끝나버리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문득문득 공포가 엄습해온다고 한다.
“그렇다고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거나 안쓰럽게 보이고 싶지는 않아요. 그러기엔 이를 악 물고 살아낸 시간들이 너무 아깝고 아프거든요.”
그래서 그는 다시 꿈을 꾼다. 다른 사람을 비난하고 깎아내리는 방송 말고, 튀어 보이려고 남의 잘못을 폭로하고 무례를 자랑으로 삼는 방송 말고 진짜 땀 흘려 노력하는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방송을 하고 싶다. 그리고 조금 더 훗날에는 교외의 어느 한적한 마을에서 유기견 보호센터를 운영하는 것이 꿈이다. 방송 여건상 애견 매장을 통해 건강한 반려견들을 입양하긴 했지만, 그는 누구보다 유기견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또 고민하고 있다. 귀엽다고 혹은 내가 외롭다고 함부로 반려견을 입양하였다가 가족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버리는 사례를 너무나도 많이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여건상 반려견을 키울 수 없거나, 혹은 반려견과 생을 함께할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은 분들이 저의 동거 생활을 통해 대리 만족을 느끼실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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