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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YLE

KALEIDOSCOPE

The Homing Instinct

패션 거장들의 回歸本能

글 · 조엘 킴벡 | 사진 · REX | 디자인 · 유내경

2016. 01. 25

회귀본능(回歸本能)이란 말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동물, 특히 어류 따위가 태어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하여 성장한 뒤, 산란을 위해 태어난 곳으로 다시 되돌아오는 습성’이라고 돼 있다. 동물의 세계에서나 접할 수 있다 생각했던 이 단어가, 요즘 패션계에서 아주 자주 언급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요즘 패션계에서는 ‘하우스’라 부르는 대기업 브랜드에서 탈출한 거장 디자이너들의 홈그라운드 복귀가 계속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전례 없이 큰 규모로 말이다.
2012년 11월, 뉴욕 패션 위크의 신성으로 불리다 일약 세계 패션계의 거성으로 성장한 디자이너 알렉산더 왕이 프랑스를 대표하는 패션 하우스 발렌시아가의 대표 디자이너로 발탁됐다. 이는 당시 그야말로  쇼킹한 뉴스였다. 1997년부터 16년간 브랜드를 진두지휘하며 죽어가던 하우스를 부활시킨 천재 디자이너 니콜라 제스키에르가 발렌시아가를 떠난 후, 과연 누가 차기 수장이 될 것인가는 업계 초미의 관심사였고 그 자리를 뉴욕 컬렉션의 스타였던 중국계 미국인 디자이너 알렉산더 왕이 꿰찼다는 것은 여러 가지로 의미심장한 사건이었다. 자존심 강한 프랑스 패션 하우스의 수장이 뉴욕에서 건너온 디자이너였다는 것도 브랜드로서는 새로운 도전이자 커다란 변화였지만, 그보다도 새롭게 브랜드를 이끌게 된 책임 디자이너가 아시아인이라는 것이 시사하는 바가 컸다.  


마치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알리듯, 발렌시아가 디자이너로서 알렉산더 왕의 행보는 한 발짝 한 발짝이 모든 이의 시선을 주목시켰다. 그도 그럴 것이 전임 디자이너인 니콜라 제스키에르가 훌륭하게 구축해놓은 브랜드의 큰 축을 과연 알렉산더 왕이 어떤 식으로 바꾸고 어디에 변화의 첫 단추를 달아매느냐에 따라 향후 발렌시아가의 향방이 판가름 나는 것이기에, 알렉산더 왕의 첫 번째 파리 컬렉션은 그야말로 패션계의 거물급 인사들로 장사진을 이루며 보랏빛 미래를 약속하는 듯했다.
하지만 불과 3년도 채우지 못한 2015년 7월, 알렉산더 왕은 파리 생활에 종지부를 찍었다. 그가 발렌시아가의 새 디자이너로 영입되었다는 뉴스만큼 대대적으로 보도가 되지는 않았지만, 그가 이렇게 단기간에 발렌시아가를 떠난다는 뉴스 역시 패션계에 충격을 주었다.


촉망받던 차세대 디자이너의 영입으로 승승장구하리라 예상되던 랑데부였기에, 이 결별 소식에 각종 억측과 뒷이야기가 난무했다. 가장 유력한 소문 중 하나는 물론 전임 디자이너 시절에 비해 알렉산더 왕이 브랜드에 참여한 이후 매출이 그리 눈에 띄게 신장세를 보이지 않아 결국 사임을 종용받았다는 것이었지만, 실상은 그것과는 달랐다. 왜냐하면 알렉산더 왕이 디자이너로 취임한 이후, 전 세계적으로 봤을 때 매출은 오히려 상승했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계 미국인 디자이너라는 이점이 크게 작용해 중국 내 발렌시아가의 성장률은 과거에 경험하지 못한 최고치로 신장했을 정도라는 것.
이런 큰 성장률에도 불구하고 결별의 이유가 매출 부진이라는 소문이 돌게 된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전임 디자이너인 니콜라 제스키에르가 약관 25세의 나이에 발렌시아가에 합류한 뒤 선보인 이른바 ‘모터 백’이 가방의 역사에 길이 남을 잇 백이 된 데 비해, 알렉산더 왕은 발렌시아가를 통해 이렇다 할 히트작을 내지 못한 것. 그리고 자신의 이름을 내건 브랜드 알렉산더 왕과 T by 알렉산더 왕이 조금 쇠퇴하는 듯한 경향을 보인 것이 소문의 이유라면 이유가 됐을 것이다.


하지만 알렉산더 왕 측근의 말에 따르면, 그가 발렌시아가를 사직한 진짜 이유는 이렇다. 명망 높은 프랑스 하우스를 대표하는 디자이너로 활약하는 것은 큰 영광이지만 발렌시아가의 명성을 유지하며 최상의 결과물을 내기 위해서 엄청난 노력이 필요했으며, 이를 위해 많은 시간을 투자하다 보니 자신의 브랜드 알렉산더 왕에 소홀해질 수밖에 없었고, 이는 결국 패션계 전체가 발렌시아가에 주목하게 돼 자신의 브랜드 명성이 다시 또 떨어지는 악순환 아닌 악순환이 이어지는 것 같아 과감히 알렉산더 왕에 전력 집중할 필요를 느꼈기 때문이라는 것. 여기에 뉴욕과 파리를 끊임없이 오가는 이중생활에도 한계를 느껴서 계약이 만료되기 얼마 전부터는 파리를 거의 방문하지 않았을 정도라고 한다.
마치 바다로 갔던 연어가 산란을 위해서 자기가 태어났던 강으로 다시 돌아오는 것처럼, 더 넓은 세계를 경험하고 돌아온 알렉산더 왕은 자신의 뿌리가 있는 자리로 돌아와 H&M과 콜래보레이션을 단행했다. 이를 통해 알렉산더 왕이라는 디자이너 브랜드가 그 힘과 매력을 잃지 않았다는 강렬한 메시지를 발신한 셈이다.
이렇듯 거물급 디자이너들이 자신의 이름을 건 브랜드에 전력투구하기 위해 세계적 패션 브랜드의 책임 디자이너 자리를 내놓는 경우가 상당히 많아졌다.


역시 2015년 10월, 3년 반의 동행을 마치고 ‘디올’의 책임 디자이너 자리에서 하차한 디자이너 라프 시몬스 역시 ‘이별의 이유’를 자신의 브랜드에 좀 더 집중하기 위해서였다고 말했다. 1997년부터 2014년까지 ‘루이비통’을 장기 집권했던 디자이너 마크 제이콥스 역시 17년간의 동행에 종지부를 찍으며 ‘자신의 원점인 자신의 이름을 건 브랜드에 더욱더 충실하기 위해서 과감한 결단을 하게 됐다’고 패션 미디어 ‘WWD’와의 인터뷰에서 말하기도 했다. 결국 마크 제이콥스 역시 세계 최고의 브랜드 중 하나인 루이비통의 본사가 있는 파리에서 수많은 경험을 마친 후, 홈그라운드인 뉴욕으로 회귀해서 다시 한 번 자신의 브랜드를 부흥시키겠다는 선택을 한 것이다.
오래전 셀린느의 책임 디자이너로 활약했던 마이클 코어스는 파리 하우스와의 동행을 뒤로하고 본거지인 뉴욕으로 돌아와 자신의 이름을 건 브랜드에 전력을 쏟아 명실상부 세계적인 톱 브랜드로 키운 사례가 있다. 1997년 마크 제이콥스는 루이비통, 마이클 코어스는 셀린느의 책임 디자이너로 취임했지만 2003년에 셀린느를 그만두게 된 마이클 코어스를 두고, 마크 제이콥스에 비해 역량이 부족하다는 소문까지 돌기도 했지만 돌이켜보면 당시 마이클 코어스의 선택은 신의 한 수였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 그때의 결정으로 마이클 코어스는 미국 출신의 단일 디자이너 네임 브랜드 중, 전 세계적으로 가장 높은 수익을 내는 브랜드로 등극했을 정도로 그 기세가 상당하다. 이는 이전까지 최고였던 랄프 로렌을 누른 것으로, 영원한 라이벌이라고 불리는 마크 제이콥스 역시 마이클 코어스의 이 괄목할 만한 성장에 자극받아 루이비통 디자이너 자리에서 물러나는 초강수를 두었으니 향후 자신의 이름을 건 브랜드의 확대에 전력을 다할 것이라고 예상하는 사람들이 많다.
디자이너들의 회귀본능은 결국 선택과 집중의 결과물이다. 한때는 동시에 몇 가지 일을 척척 추진해가는 이른바 멀티 태스커가 더 각광받기도 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한 가지를 잘하는 것, 대신 그 한 가지를 아주 센스 있고 감각이 ‘쩔게’ 발전시키는 사람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이른바  크래프츠맨십(Craftsmanship), 즉 장인 정신적인 평가가 통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기에 천재 디자이너들이 자신의 이름을 걸고 최고의 결과물을 고급지게 뽑아내는 것이 이 시대가 요구하는 최선이라는 것을 간파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회귀본능을 따른 디자이너들의 다음 목적지에 주목하며 2016년을 맞이할 일이다.





Joel Kimbeck
뉴욕에서 활동하는 광고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안젤리나 졸리, 기네스 팰트로, 줄리아 로버츠, 아만다 사이프리드, 미란다 커 등 세기의 뮤즈들과 함께 작업해왔다. 현재 ‘pertwo’를 이끌며 패션 광고를 만들고 있다. ‘레드 카펫’을 번역하고 ‘패션 뮤즈’를 펴냈으며 한국과 일본의 미디어에 칼럼을 기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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