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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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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살이 주부들 시름 깊게 하는 분양가상한제

정혜연 기자의 부동산 포인트

정혜연 기자

2019. 09. 05

내년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딸아이 엄마 A씨는 새 학기 전 이사하기 위해 여름 내내 부동산 중개사무소의 문을 두드렸다. 최근 1년 사이 새 아파트 단지가 대거 들어선 서울 서초구 반포동에 전용면적 84㎡ 전세를 구하고 싶었다. 그런데 새 아파트는 매물도 없거니와 있어도 며칠 시간을 끄는 사이 ‘계약됐다’는 통보를 받기 일쑤였다. 

8월 12일 정부가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 적용’을 발표하자 그나마 나와 있던 매물의 전세가는 더 올랐다. 대기 수요가 청약을 목표로 임차 기간을 늘릴 것으로 본 집주인들이 전세가를 올린 것. A씨는 “정부가 집값 잡으려 정책을 내놓을 때마다 정작 피해 보는 건 세입자들”이라고 토로했다. 

아이러니하게도 2017년 5월 새 정부 출범 후 집값, 특히 서울의 아파트 값은 가파르게 상승해왔다. 그렇다고 정부가 손 놓고 있었던 건 아니다. 집권 2년 3개월 사이 급한 불을 끄기 위해 굵직한 부동산 정책들을 쏟아냈다. 

정부는 ‘투기 목적의 수요’를 주원인으로 보고 2017년 8월 2일 ‘대출 제한’ ‘세금 확대’ ‘전매 제한’ 등을 골자로 한 ‘주택 시장 안정화 방안’을 내놨다. 

그 영향으로 진정되는 듯했던 집값은 2018년 하반기가 되자 또다시 상승했다. 서초구 반포동 아크로리버파크 아파트는 3.3㎡당 1억원을 호가할 정도였다. 2018년 9월 13일 정부가 주택청약을 실수요자 위주로 개편한 정책을 내놓았지만 악화된 여론은 돌아설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결국 2018년 9월 21일 ‘수도권 주택공급 확대 방안’ 발표 후 올해 5월까지 총 세 차례에 걸쳐 30만 호에 달하는 공급 예정 택지가 공개됐다. 하지만 서울 집값을 안정시키기에는 역부족인 데다 1·2기 신도시만 피해를 볼 것으로 예상돼 비난 여론이 들끓었다. 



이 정도로 정책을 쏟아냈으면 정부 바람대로 될 법한데 지난 7월 서울 집값은 34주 만에 다시 상승 전환하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이에 정부는 8월 12일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 적용 기준 개선’ 카드를 꺼내들었다. 하지만 정작 실수요자들은 불만을 터뜨리는 실정이다. 

결혼 후 10년째 전세살이 중인 30대 주부 B씨는 “신혼 때야 아이가 없으니 청약 점수가 낮아 떨어지는 게 당연했지만, 이제 아이 둘이 생겨 간신히 40점대가 됐는데도 매번 떨어진다. 작년부터 서울은 분양가 9억원 이상은 중도금 대출까지 막혀 그림의 떡이다. 그나마 기다리던 지역의 재건축 아파트 일반분양도 분양가상한제 때문에 미뤄질 판이어서 언제까지 전세살이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금융결제원 집계에 따르면 국내 청약통장 가입자 수는 7월 말 기준으로 2천5백6만여 명에 달한다. 정부가 최근 2년간 ‘인근 분양가의 110%’로 분양가를 통제하면서 ‘로또 분양’ 붐이 일자 가입자 수가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때문에 새 아파트 청약 경쟁은 더욱 극심해지고,당첨자 평균 가점도 더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2019년 상반기 투기과열지구 내 아파트 당첨자 평균 가점은 50점이었다. 인기 지역은 더 높은데 서초구 서초동 ‘서초그랑자이(구 무지개 아파트)’ 평균 가점은 69점에 달했다. 청약 가점은 84점이 만점인데 무주택 기간 15년 이상, 부양가족 수 6명 이상, 통장 가입 기간 15년 이상을 채워야 가능한 점수다. 4인 가족은 최대 69점을 넘을 수 없는데, 이는 인기 단지 평균에 겨우 턱걸이하는 수준이다. 향후 시세 반값 이하에 분양가가 책정되면 가점이 만점에 가까워야 당첨되는 촌극이 벌어질 수도 있다. 

그래도 분양만 제때 이뤄진다면 다행일 테지만, 그럴 가능성이 낮아 보인다. 분양가가 시세의 반값이면 건설사 이윤이 발생하기 어려운 데다 조합원 분양가가 더 높아지는 역전 현상이 벌어져 서울 시내 재건축 사업이 대거 중단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번 분양가상한제 적용 기준 개선 발표 당시 정부는 ‘실수요자의 내 집 마련 부담을 완화하기 위한 정책’ 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공급이 축소돼 실수요자 청약 접수 기회가 줄어든다면 부담 완화는커녕 지금보다 더한 시장 불안이 일어날지 모를 일이다.

사진 홍중식 기자 디자인 김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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