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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저리그 뒤흔든 ‘코리안 몬스터’ 류현진

EDITOR 장현구 연합뉴스 기자

2019. 06. 27

류현진이 등판할 때마다 LA 다저스 관중은 기립 박수를 보낸다. 메이저리그 최고 투수를 향한 팬들의 예우다. 미국 진출 7년 만에 야구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는 코리안 몬스터의 이야기.

메이저리그 빅 마켓 구단 중 하나인 LA 다저스는 매년 선수와 가족을 대상으로 ‘블루 다이아몬드 갈라’라는 행사를 연다. 콘서트를 열어 수익금을 기부하는 일종의 자선행사인데, 올해 6월 13일 열린 이 행사 포토월에서 가장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이는 류현진(32) 선수와 아내 배지현(32)이다. 모처럼 야구 유니폼을 벗고 블랙 슈트에 보테가 베네타 클러치백으로 한껏 멋을 낸 류현진과 블랙 스팽글 원피스에 발렌티노 클러치백을 든 배지현은 모든 카메라의 스포트라이트를 스펀지처럼 빨아들였다. 

류현진이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2013년 이래 미국 언론에 그의 이름이 이렇게 자주, 오랫동안 등장한 적이 있었나 싶다. 다저스의 연고지인 미국 캘리포니아주 LA 지역 언론은 물론 스포츠전문 매체 ESPN, 메이저리그 공식 사이트인 MLB닷컴 등 주요 언론이 류현진의 이름을 끊임없이 거론한다. 서부 지역에서만 떠돌던 류현진의 명성은 지난해 포스트시즌을 거치면서 서서히 미국 전역으로 퍼졌고, 압도적인 성적을 낸 올해 류현진은 전국구 스타로 발돋움했다. 

요즘 류현진의 이름 앞에는 ‘Masterful’(장인다운, 거장다운), Left-handed Greg Maddux(왼손 그레그 매덕스)’ 등의 수식어가 따라 붙는다. 매 시즌 최고 활약을 펼친 투수에게 주어지는 사이 영 상(Cy Young Award)을 4시즌(1992~1995)이나 연속해서 받고 은퇴 후 명예의 전당에 오른 전설의 투수 매덕스에 비견되는 것은 투수에게는 커다란 영예다. 류현진은 구석구석 원하는 곳으로 공을 찔러 넣는 덕분에 ‘컨트롤의 마법사’로 불렸던 매덕스만큼이나 제구력이 뛰어나다. 요즘 메이저리그는 홈런과 구속의 혁명 시대를 맞고 있다. 홈런도 많이 늘었고, 시속 160km를 쉽게 넘기는 강속구 투수들도 많아졌다. 이런 시대에 가장 빨라야 시속 150km의 상대적으로 느린 공으로 타자들을 추풍낙엽처럼 돌려세우는 류현진은 연구 대상에 가까울 정도다. 

류현진은 6월 17일(한국 시간) 현재 9승 1패를 기록 중이다. 6월 12일과 17일에는 각각 6이닝 1실점, 7이닝 2실점의 ‘퀄리티 스타트(선발 6이닝 이상 3자책점 이하 투구)’를 기록하고도 아깝게 승리를 챙기지 못했지만 투수를 평가하는 최고의 척도 중 하나인 평균 자책점(1.26) 분야에서는 메이저리그 전체 투수 중 단독 1위다. 현재 메이저리그 최강으로 꼽히는 다저스 선발진을 이끄는 명실상부한 에이스가 바로 류현진이다. 류현진의 동료로 메이저리그 내셔널리그 서부 지구 최강 에이스로 꼽히는 클레이튼 커쇼는 부상으로 시즌을 늦게 시작한 올해, 에이스라는 칭호를 류현진에게 넘겼다.

#어깨 수술
#5.9%의 확률로 재기 성공
#몸값 2백11억원

류현진은 올 시즌 최고 투수에게 주어지는 영예인 사이 영 상 후보로 거론될 정도로 최고의 실력을 펼쳐보이고 있다.

류현진은 올 시즌 최고 투수에게 주어지는 영예인 사이 영 상 후보로 거론될 정도로 최고의 실력을 펼쳐보이고 있다.

류현진의 이미지는 미국 진출 후 여러 번 바뀌었다. 류현진은 2006년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에 입단해 7시즌 동안 98승 52패 1세이브, 방어율 1.80을 기록하며 굴곡 없이 정상의 자리를 지키다 2012년 말 LA 다저스와 6년간 3천6백만 달러(약 4백27억원)에 계약하고 메이저리그에 입성했다. 미국에 첫발을 내디뎠을 때 류현진은 ‘담배 피우는 선수’ ‘타석에선 1루까지 전력질주하지 않는 선수’로 언론의 눈총을 받았다. 그러나 한국 KBO리그에서 메이저리그로 직행한 최초의 선수였던 만큼 2013~2014년 2년 연속 14승씩 거둬 기대에 걸맞은 성적을 냈다. 



그러다 2015년 왼쪽 어깨와 팔꿈치에 메스를 댄 류현진은 대전환기를 맞는다. 야구인들은 투수든 타자든 선수들이 가장 마지막에 택하는 게 어깨 수술이라고 입을 모은다. 어깨 수술 후 전성기 기량을 되찾은 선수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하물며 어깨를 가장 소중히 다뤄야 하는 투수의 경우엔 말할 것도 없었다. 류현진의 부활 확률은 과거 다른 선수들의 전례로 볼 때 5.9%에 불과했다. 이런 10%도 안 되는 바늘구멍을 뚫고 수술 후 복귀 3년 만에 완벽한 투수로 변신한 덕분에 미국 언론이 그 성공 스토리에 더욱 관심을 보이고 있다. 

수술 후 구단으로 돌아와 처음으로 풀타임을 치른 2017년 5승 9패에 그친 류현진은 2018년 성적을 7승 3패로 끌어올렸다. 특히 하반기 역투에 역투를 거듭해 빅 리그 진출 후 처음으로 평균 자책점을 2점대 이하인 1.97로 낮췄다. 2018년 포스트시즌에선 커쇼와 더불어 팀의 ‘원투 펀치’로 격상됐다. 류현진은 그러나 2018년 시즌을 마친 뒤 ‘아직은 제 궤도에 올라오지 않았다’는 판단에 따라 장기 계약으로 천문학적인 대박을 터뜨릴 수 있는 자유계약선수(FA) 대신 구단이 제시한 금액인 1천7백90만 달러(약 2백11억원)에 1년 계약을 맺었다. 올해 잘 던져 시즌 후 다시 FA 계약에 도전하겠다는 의지였다. 류현진은 자비를 들여 국가대표 시절부터 자신의 몸을 가장 잘 아는 김용일 LG 트윈스 트레이닝 코치와 계약하고, 다저스 구단과 협의해 그를 정식 구단 직원으로 고용했다.  ‘아메리칸드림’을 이루려면 건강이 최우선이므로 김 코치에게 몸을 온전히 맡긴 것이다. 김 코치는 어깨, 사타구니 등 류현진의 과거 통증 부위를 면밀하게 점검해 완벽한 컨디션으로 마운드에 설 수 있도록 돕는다. 

류현진은 또 어느 때보다 열성적으로 상대 타자를 공부한다. 비디오로 1차 전력 분석을 마치고, 공을 던지고 더그아웃에서 쉴 때엔 다음에 만날 타자들의 성향이 적힌 쪽지를 수시로 보고 2차 분석도 한다. 남들은 하나의 구종을 배우는 데도 1년 이상이 걸린다지만 류현진은 특유의 손기술로 비장의 무기를 벌써 2개나 만들었다. 한화 이글스에서 뛰던 때 대선배 구대성의 어깨너머로 체인지업을 배워 자신의 전매특허로 키워낸 일은 잘 알려졌다. 그는 미국에선 컷 패스트볼이라는 구종을 터득했다. 자신과 비슷한 왼손 투수 댈러스 카이클의 영상을 보며 컷 패스트볼을 매만졌고, 릭 허니컷 다저스 투수코치의 조언을 듣고 올해 명품 필살기로 장착했다. 성공이라는 ‘큰 그림’을 그리고 부족한 부분을 차례로 메운 류현진이야말로 ‘타짜’와 같은 행보로 2019년을 온전히 자신의 해로 만들어가고 있다.

#아버지의 빅 픽처
#아내는 요리왕
#결혼 후 승승장구

1 요즘 메이저리그 최고 인기 커플, 류현진 선수와 배지현 부부. 2 LA 다저스 기부 행사인 ‘블루 다이아몬드 갈라’에 참석한 부부.

1 요즘 메이저리그 최고 인기 커플, 류현진 선수와 배지현 부부. 2 LA 다저스 기부 행사인 ‘블루 다이아몬드 갈라’에 참석한 부부.

류현진은 지난해 1월 스포츠채널 아나운서 출신 배지현 씨와 화촉을 밝혔다. 동갑내기인 두 사람은 야구 선수 출신 해설가 정민철 씨의 소개로 만나 2년간 교제했다. 류현진은 타국에서 외롭게 뛰던 때와 달리 영원한 동반자와 새로 시작한 2018년부터 성적이 가파르게 좋아졌을 뿐 아니라 마인드 컨트롤 면에서도 훨씬 더 안정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올해 초 국내에서 열린 팬미팅 행사에서 아내가 세심하게 맛있는 음식을 준비해준다며 고마움을 전했다. 류현진이 부상과 재활을 거치며 힘들어하던 시절 처음 만나 힘이 돼준 배지현 씨는 요즘 류현진이 등판하는 곳이라면 홈, 원정 경기를 가리지 않고 모두 찾아가 응원한다. 

5월 13일 미국 ‘어머니의 날’ 시구 행사에 참가한 LA 다저스 선수와 어머니들. 다른 선수들은 어머니가 공을 던지고 아들이 받았지만 류현진은 이날 선발투수로 출전해 어머니 박승순(오른쪽에서 두 번째) 씨가 던지고 아버지 류재천(오른쪽) 씨가 받았다.

5월 13일 미국 ‘어머니의 날’ 시구 행사에 참가한 LA 다저스 선수와 어머니들. 다른 선수들은 어머니가 공을 던지고 아들이 받았지만 류현진은 이날 선발투수로 출전해 어머니 박승순(오른쪽에서 두 번째) 씨가 던지고 아버지 류재천(오른쪽) 씨가 받았다.

류현진이 세계적인 투수로 성장할 수 있었던 데는 아버지 류재천 씨와 어머니 박승순 씨의 조력도 빼놓을 수 없다. 럭비 선수 출신인 류재천 씨는 초등학교 3학년인 아들이 야구를 시작할 때부터 메이저리그 진출이란 큰 그림을 그리고 최고의 조력자가 돼주었다. 오른손잡이인 류현진에게 왼손 글러브를 안긴 것도 아버지였다. 야구는 구조상 왼손 투수가 유리한 종목이다. 메이저리그 스카우터들 사이에선 ‘왼손으로 빠른 볼을 던지는 투수는 지옥에 가서라도 잡아오라’는 말이 있다. 류현진은 한 인터뷰에서 “사실 아버지가 왼손으로 안 던지면 죽여버린다고 하셨다. 왼손으로 안 던질 수 없었다”고 말한 바 있다. 

류현진은 메이저리그 투수 가운데 볼넷이 적기로도 유명한데 이 역시 아버지의 영향 덕분이다. 류현진은 어릴 때부터 아버지로부터 “홈런은 맞아도 절대 볼넷은 주지 말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었다. 홈런을 맞은 날에는 오히려 격려를 받고, 볼넷을 주는 날에는 엄청 혼이 났다고 한다. 볼넷은 절대 안 된다는 아버지의 지론은 지금 류현진을 지탱하는 원칙이 됐다. 류현진의 어린 시절부터 아들을 지극정성으로 뒷바라지한 어머니 박승순 씨는 이제 내조의 배턴을 며느리에게 넘겼다. 하지만 여전히 가슴 졸이는 마음으로 야구장에서 아들을 지켜보며 그의 곁을 떠나지 않는다.

#올스타 선발 투수
#사이 영 상
#류현진 앞에 펼쳐질 꽃길

현재 메이저리그는 7월 10일 열릴 예정인 올스타전을 앞두고 팬 투표가 진행 중인 가운데 류현진이 내셔널리그 올스타 팀의 선발 투수로 뽑힐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내셔널리그 선발 투수를 정하는 건 지난해 리그 챔피언 LA 다저스의 사령탑이자 류현진이 매일 보는 데이브 로버츠 감독이다. 이벤트를 멋들어지게 진행하는 데 천부적인 미국답게, 그리고 미국인답게 로버츠 감독은 아직은 때가 아니라며 올스타전 선발 투수 답변에 뜸을 들인다. 예년처럼 올스타전 출전 투수와 선발 투수는 행사 당일에 즈음한 7월 초에나 발표될 참이다. 류현진이 지금의 상승세를 6월 말까지 이어간다면, 로버츠 감독이 올스타전 선발 투수로 그의 이름 말고 다른 이름을 호명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게 중론이다. 그는 올해 14경기 연속 2실점 이하로 던진 꾸준함을 앞세워 난공불락 투수가 됐다. 그에 버금가는 성적을 낸 투수는 크게 눈에 띄지 않는다. 

류현진은 올 시즌 시작 전 목표로 20승을 거침없이 밝혔다. 반드시 20승을 따내겠다는 것보단 20승을 올리려면 부상 없이 1년을 뛰는 게 먼저라는 생각에서 류현진답지 않게 구체적인 수치를 공개했다. 원대한 포부는 시즌 반환점을 앞둔 현재 꿈이 아닌 현실로 입증됐다. 건강한 몸으로 이룰 올스타, 20승 투수, 사이 영 상, 그리고 월드 시리즈 우승이라는 역사적인 이정표까지. 류현진의 완벽한 2019년을 기대해본다.

기획 김명희 기자 사진 뉴시스AP 배지현 인스타그램 LA다저스 트위터 디자인 최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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