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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interview

다니엘 린데만과 나눈 대화의 희열

EDITOR 조윤

입력 2019.06.03 17:00:01

한국의 역사와 문화, 남북문제에 관해 한국인보다도 더 해박한 지식을 지닌 독일인 다니엘 린데만. 여기에 더해지는 다재다능한 면모와 부드러운 미소, 선한 성품은 그의 이야기를 더욱 궁금하게 만든다.
다니엘 린데만과 나눈 대화의 희열
“텀블러 가져오는 걸 깜박했네요.” 다니엘 린데만(33)은 이같이 말하며 병 음료를 집어 들었다. 기자의 손에 들린 주스가 담긴 플라스틱병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앞서 그가 들려준 이야기가 스친 탓이다. 한국의 분리수거 제도와 실천 수준은 아주 높은 데 반해 플라스틱 소비량 또한 세계 최고라는 것. 사용 후 플라스틱 용기를 가져오면 보증금을 되돌려주는 독일의 제도가 한국에도 정착되면 좋겠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이 이야기에는 한옥과 같이 친환경적인 요소가 많은 한국의 전통문화가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그의 바람이 담겨 있었다. 2008년 한국에 처음 온 날 보았던 파란 하늘 아래 창덕궁의 모습은 그가 12년째 우리나라에 둥지를 틀게 만든 한국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다. 이처럼 때로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잘 알고 깊은 애정을 보여주는 그의 모습은 신기하기도, 고맙기도, 종종 우리를 부끄럽게 만들기도 한다. 

그가 대중에 처음 얼굴을 알린 건 2014년 jtbc 예능 프로그램 ‘비정상회담’을 통해서였다. 한국에 거주하는 세계 각국의 외국인들이 연애, 결혼, 음식에서부터 정치와 경제, 국제사회 관계까지 다양한 주제로 토론하는 이 프로그램은 큰 인기를 끌며 3년간 방송됐다. 독일 대표로 출연한 다니엘은 그 속에서도 뛰어난 한국어 실력과 함께 남다른 한국 문화와 역사에 관한 지식을 드러냈고, 여기에 특유의 온화한 성격과 부드러운 미소가 더해지면서 큰 인기를 얻었다. 프로그램이 종영한 뒤 함께 출연했던 외국인 패널들의 활동은 다소 뜸해졌으나 다니엘은 각종 방송과 행사 등에서 더욱 활발하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활동 영역 역시 예능뿐 아니라 다큐멘터리, 시사 ·교양, 스포츠와 드라마 등 더욱 다양해졌다.


다니엘 린데만과 나눈 대화의 희열
그중에서도 최근 그의 활약이 돋보이는 프로그램은 단연 KBS 2TV ‘대화의 희열2’다. 지난해에 이어 시즌2가 방영 중인 이 방송은 유희열과 다니엘을 비롯한 네 명의 MC가 게스트와 대화를 나누는 토크 프로그램이다. 

“제작진이 18페이지 분량의 게스트에 관한 정보를 알려주면 MC들이 어떤 질문을 할지 미리 보내야 해요. 게스트에 관해 공부하는 데만 8~9시간 정도 투자하죠. MC의 역할은 모르는 걸 물어보는 게 아니라 많이 알고 있는 와중에 더 궁금한 걸 물어봐야 하는 거예요. 특히 제작진이 저를 섭외한 이유는 색다른 시각을 보여주길 바라는 거라고 생각해요. 지난해 표창원 의원이 출연해 1980년대 경찰로 근무하던 시절 이야기를 했을 때, 학생운동이 활발했던 시기이니 경찰에 대한 국민들의 이미지가 좋지 않아 힘들었겠다고 말했죠. 제작진이 ‘우리도 생각하지 못했던 거’라며 좋은 질문이었다고 하더군요.” 

다니엘은 가장 기억에 남는 게스트를 묻는 질문에는 역시 지난해 출연자인 경기남부권역 외상센터를 이끄는 이국종 아주대병원 교수를 꼽았다. 그 밖에 발레리나 강수진,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이수정 교수와의 대화도 아주 유쾌했다고 전했다. 그리고 수많은 게스트와의 대화를 통해 남은 건 스스로를 향해 던진 정체성에 관한 질문이었다. 



“이국종 교수님 편은 제가 출연한 방송을 통틀어 가장 힘들었어요. 아주대병원 옥상에서 새벽 3시까지 촬영을 했는데 중간에 응급 상황이 생겨 교수님이 뛰어가시기도 했고 실제로 그날 돌아가신 환자도 있었죠. 같은 날 오후에 강연이 있었는데 촬영이 끝나고도 잠이 안 와 날을 새웠어요. 병원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눈앞에서 보고 나니 충격을 받아 진정이 안 되더라고요. 지난해 촬영한 그때의 기억이 지금까지도 남아 있어요. 이렇게 자신의 분야에 올인하는 전문가들을 만나다 보면 ‘내가 올인하고 있는 건 뭐지?’ 하는 고민도 하게 돼요. 방송이 직업이 돼 다양한 분야에서 재미있게 일하고 있지만 저만의 전문 분야는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죠.”


한국인에게 한국 가르치는 독일 남자

다니엘 린데만과 나눈 대화의 희열
자신의 전문 분야가 없는 것 같다는 그의 답변에 “한국 전문가이지 않느냐”고 묻자 다니엘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실제로 그는 한국학을 전공한 준전문가다. 다니엘은 어린 시절 9년간 태권도를 배우며 그 매력에 빠져 한국어까지 익혔다. 독일 본대학교에서 동아시아학을 전공한 뒤엔 고려대학교 교환학생으로 처음 한국 땅을 밟았다. 대학 시절 경희대학교 주최 ‘외국인 한국어 말하기 대회’에서 우승했으며 이후 연세대 국제학대학원에 진학해 한국학과 국제관계학을 전공했다. 졸업 논문 주제는 ‘북한’이었다.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이야기하는 방송의 고정 패널로 출연하고 간송미술관 해설자로 나서는 등 한국의 사찰과 고려청자, 정선의 그림, 그리고 남북관계를 이야기하는 파란 눈의 남자에게서 한국인들은 한국에 대해 배울 것이 많다. 그는 독일 드레스덴에 갈 거란 기자의 여행 계획을 듣고는 “그곳에 있는 박물관에는 임진왜란 직후 조선의 장인들이 전수한 기술로 만들어진 일본 도자기가 전시돼 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이러한 모습이 때로 한국인들을 부끄럽게 한다고 하자 자신도 독일에 대해선 모르는 게 많다며 칭찬을 겸손으로 받았다. 이 역시 한국인을 닮은 면모다. 

“동양학을 공부할 때 교수님께서 동양을 알려면 결국 세계사를 공부해야 한다고 하시더군요. 대학원에서 한국학을 전공하면서 국제관계학을 복수 전공한 것도 마찬가지 이유였어요. 한국뿐 아니라 한중, 한일 관계까지 공부한 게 많은 도움이 돼요. 이후 방송을 통해서도 배운 게 많죠. 한 곳에서 배운 걸 다른 데서 여러 번 써먹기도 하고요. 하하. 오히려 독일에 대해서는 저도 모르는 게 많아요. 독일 사람들은 국내보다는 프랑스나 이탈리아 여행을 많이 가거든요. 그에 반해 한국인들은 국내 여행도 많이 즐기니 절대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요.”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잘 아는 남자. 방송에서 그의 친구들은 다니엘이 “독일인치고 축구나 맥주도 별로 안 좋아하고, 심지어 자동차에도 크게 관심이 없다”면서 놀리기도 했다. 이에 대해 그는 “나는 정서적으로 딱딱하고 진지한 독일인보다는 밝고 흥이 많은 한국인에 더 가깝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러면서도 다니엘은 방송을 통해 자신의 독일 집을 공개하고, 독일 친구들과 한국을 여행하는 모습을 통해 독일인의 면모를 보여주기도 했다. 그 덕분에 독일에 대한 시청자들의 관심도 높아졌다. 한국과 독일을 잇는 문화적 다리 역할을 하고 싶다는 그에게 한국과 독일이 서로 배웠으면 하는 모습에 대해 물었다. 

“독일인들은 잘 놀 줄 아는 한국인들의 흥을 닮으면 좋겠어요. 특히 독일 대학 생활은 ‘인문 생활의 끝판왕’이라고 할 만큼 사색하는 분위기가 강한데 한국처럼 MT도 가고 축제도 하면서 좀 더 즐겼으면 해요. 음식을 나눠 먹고 음식 값을 함께 계산하는 모습 속에 담긴 ‘정’도 배우면 좋겠고요. 언제나 웃으면서 응대하는 한국의 친절한 서비스도 최고예요. 반대로 독일인의 생활 속에 밴 배려, 안전 의식 같은 건 한국인이 본받을 만하죠. 걷다 멈출 때는 뒤를 한번 봐준다든지, 문을 열고 들어갈 때 뒷사람을 배려해 문을 잡아준다든지 하는 사소한 것부터요. 한국에서 문에 부딪혀 코가 두 번 정도 부러질 뻔했죠(웃음). 자동차 뒷좌석에서도 안전벨트 착용을 습관화하고 구급차가 지나갈 땐 의무적으로 비켜주는 독일의 문화와 제도도 한국이 닮아가면 좋겠어요.”


한국의 인상 담은 세 번째 피아노 앨범 발표

다니엘 린데만과 나눈 대화의 희열
한국에 여행 온 첫날 서울 광화문에서 본 ‘잘 차려입은’ 여성들은 다니엘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한국의 모습 중 하나로 기억되고 있다. 

독일 남성이 바라본 한국 여성은 어떤 모습일까. 

“한국에 처음 온 날은 날씨가 아주 좋은 8월이었어요. 경복궁과 북한산 등 광화문의 풍경이 인상 깊었는데, 그 와중에 흰색 블라우스와 치마를 입고 구두를 신은 직장 여성들의 모습이 까만 머리와 잘 어울려 무척 아름다워 보였어요. 독일 여성들은 티셔츠에 청바지, 운동화를 신는 게 일반적이거든요. 그게 자연스럽고 꾸밈없다고 여길 수도 있지만 저는 한국 여성의 모습이 더 좋았어요. 내적인 면에서도 참 달라요. 독일 여성은 친해지기 전과 후가 비슷한데 한국 여성들은 달라요. 평소엔 잘 웃고 밝은 반면 수줍음도 많죠. 그런데 화가 나면 정말 무서워요. 갑자기 용이 되거든요(웃음).” 

여성을 주제로 한 대화는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방송에서도 여러 차례 모습을 비친 어머니에 대해 그는 미혼모였던 어머니와는 친구 같은 사이라며 흥이 많고 책과 자연, 음악을 좋아하는 분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외모뿐 아니라 예술적 면모까지 어머니를 고스란히 빼닮은 듯했다. 특히 열 살 무렵 어머니에게 배운 피아노는 그의 가장 중요한 취미 생활 중 하나다. 다니엘은 그간 두 차례 연말 피아노 콘서트를 열어 수익금을 전액 기부하기도 했으며 지난해 KBS ‘뮤직뱅크 인 베를린’ 편에서는 걸 그룹 멤버들과 함께 무대에 올라 연주를 선보였다. 그리고 지난 3월엔 직접 작곡한 피아노곡을 묶어 ‘스토리’라는 제목의 앨범을 발표했다. 미니 앨범을 포함해 벌써 세 번째 자작 피아노 앨범이다. 특히 이번 앨범에선 한국 생활을 통해 받은 영감을 표현했다. 

“어머니께서 독일에서 매년 자선 콘서트를 열어요. 한국에서 팬들에게 받은 사랑을 어떻게 돌려줄까 고민하다 저도 자선 피아노 콘서트를 열었죠. 그때 어떤 분이 자작곡은 어디서 들을 수 있냐고 묻더군요. SNS나 유튜브에 영상을 올려놓긴 했는데 음질이 좋지 않아 좋은 음질로 기록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에 앨범까지 내게 됐어요. 이번 앨범에선 어린 시절 어머니가 책을 읽어주던 아날로그 시대의 낭만과 추억을 표현했어요. 또 누구나 자신만의 인생 스토리를 만들어가고 있다는 메시지를 음악을 통해 표현하고 싶었어요. 어느 날 탄 택시 안에 ‘택시 기사도 누군가의 아버지입니다’라고 쓰인 문구가 인상 깊었죠. 영화 ‘국제시장’을 보며 평범한 할아버지 같지만 알고 보면 파란만장한 역사를 지나온 주인공에게서도 영감을 얻었고요.” 


다니엘 린데만과 나눈 대화의 희열
그는 한국에서의 다양한 활동 가운데 가장 특별한 경험으로 드라마 출연을 꼽았다. 2016년 방영한 KBS 드라마 ‘무림학교’에서 다니엘은 예절과 토론, 합기도를 가르치는 선생님 역을 맡았다. 연기는 어려웠지만 액션스쿨에 다니며 훈련한 경험이 스턴트맨이라는 어린 시절의 꿈을 일깨워주었고 한국에서 합기도장을 여는 것이 그의 또 다른 목표가 되었다. 다니엘은 합기도 4단, 태권도 2단의 무술 전문가이기도 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큰 그의 목표는 방송을 통해 한국과 독일 양국의 매력을 더 널리 알리고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다. 그는 “외국인이 TV에 나와 ‘김치 맛있어요’라고 말하는 시대는 지났다”며 외국인 방송인으로서 더 큰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전에는 외국인들의 방송 출연이 주로 예능 프로그램에만 국한됐지만 이제는 각자 자신만의 영역을 만들어가고 있는 듯해요. 저는 방송 활동을 통해 대학에서 공부한 걸 더 깊이 파보고 싶어요. 통일이 한국 사회의 큰 화두가 되면서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이 많아질 거라고 봐요. 그리고 독일에 대해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는 것도 큰 몫이죠. 이전에 ‘다니엘은 곧 독일이고 독일은 곧 다니엘이다’라고 한 댓글을 본 적이 있어요. 저에 관한 과분한 평가는 감사하지만 독일에 대한 한국인들의 환상을 깨는 것 역시 저의 임무예요. 많은 사람이 독일인들은 역사의식이 훌륭하다고 생각하지만 최근 신나치 문제가 대두하고 극우파 정당이 생겨나는 등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아요. 독일의 통일 모델을 한국이 그대로 모방해서도 안 될 거고요. 저 역시 계속해서 공부하고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겠습니다.”


기획 김명희 기자 사진 홍태식 디자인 김영화




여성동아 2019년 6월 66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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