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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interview

BIG ISSUE : 박영선이 돌아왔다

EDITOR 김명희 기자

2019. 05. 30

바비 인형 같은 외모로 1990년대 런웨이를 주름잡았던 모델 박영선이 은퇴 20여 년 만에 드라마로 컴백했다. 여전한 아우라에 그녀의 지난 시간이 궁금해졌다.

얼마 전 종영한 SBS 드라마 ‘빅이슈’에서는 반가운 얼굴을 만날 수 있었다. 자신의 살롱과 클럽에서 마약을 거래하고 신인 여배우를 권력층에 성 접대해 쌓은 네트워크로 권력의 비호를 받는 엔터테인먼트 회사 대표 김흥순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 배우. 큰 키에 빨간 원피스, 호피 무늬 재킷, 악어가죽 백을 ‘간지 나게’ 소화한 그녀는 한때 대한민국 모델계를 주름잡던 슈퍼스타 박영선(51)이다. 

‘박영선’이란 이름이 낯설다면 1990년대 앙드레김의 패션쇼 무대로 기억을 소환해보자. 한국을 대표하는 디자이너 앙드레김의 시그니처이기도 했던 피날레 무대에서 7겹 레이어드 드레스를 한 겹 한 겹 벗어던지던 그녀의 모습이 떠오를 것이다. 대한민국의 내로라하는 모델들과 두루 작업한 디자이너 이상봉은 과거 한 인터뷰에서 “지금도 가끔 패션 피플들과 이야기하면서 박영선만큼 피날레를 멋지게 장식한 모델은 없다고 할 만큼 무대를 가장 드라마틱하게 소화할 수 있는 최고의 모델”이라고 그녀를 회고했다. 

175cm의 큰 키에 바비 인형 같은 몸매, 작은 얼굴, 오목조목한 이목구비 등 동서양 미인의 조건을 두루 갖춘 그녀는 1987년 모델로 데뷔해 CF와 방송 MC까지 두루 섭렵했다. ‘미스 코뿔소 미스터 코란도’ ‘연애는 프로 결혼은 아마츄어’ 등 영화에도 출연하며 전천후 스타로 입지를 다지던 그녀는 최민수와 공동으로 주연한 영화 ‘리허설’을 끝으로 1999년 돌연 연예계에서 자취를 감췄다. 이후 그녀는 미국으로 건너가 사진 공부를 하다가 재미교포와 결혼해 아들을 낳았다. 미국에서 사는 동안 그녀는 단 한 번도 한국에 들어오지 않았다. 화려했던 시절을 뒤로하고 아이를 키우며 평범한 주부로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결혼 10년 차에 가까워지면서 남편과 갈등의 골이 깊어졌고 결국 화해하지 못한 채 갈라진 2014년 홀로 한국으로 돌아왔다. 

‘여성동아’ 화보 촬영 현장에서 다시 만난 그녀는 카메라 셔터 소리에 맞춰 능수능란하게 포즈를 취했다. 은퇴한 지 20년이 지났지만 몸은 과거의 기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듯했다. 아름다운 몸매도 여전했다. 현재 그녀는 온라인 쇼핑몰 썬나인을 오픈하고 사업가로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모델로서의 인생 1막, 엄마라는 뿌듯한 이름을 안겨준 2막을 거쳐 인생 3막 런웨이에 오른 그녀를 만났다.

키가 정말 크네요. 모델 포스도 여전하고요. 



한국에 와서 키가 더 큰 것 같아요. 미국에서 평범한 아줌마로 지내다가 여기 와서 다시 일을 시작하려고 하니 옷이 하나도 안 맞는 거예요. 일단 소식을 하면서 위를 줄이고, 필라테스와 러닝머신도 열심히 했어요. 스트레칭도 꾸준히 하고요. 그랬더니 미국에 있을 때보다 사이즈는 줄고 키는 1cm정도 더 큰 것 같아요. 

드라마 ‘빅이슈’ 촬영이 끝나자마자 미국에 다녀왔다고 들었어요. 아들을 보기 위해서인가요. 

네. 아이에게는 같이 있어주지 못하는 미안함이 있어요. 그래서 되도록이면 자주 가서 만나려고 하죠. 아이를 미국에 유학 보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외국에서 혼자 조기 유학하는 아이들도 있는데, 저희 아이는 그래도 아빠와 함께 있으니까 마음이 놓이죠. 

아이가 엄마를 닮아서 모델 체형에 공부도 잘한다고 들었어요. 


얼굴이 작고 체형이 길쭉해요(웃음). 끼가 많아서 기타, 드럼도 잘 치고 공부도 잘해요. 

아이에 대한 기대가 많으시겠어요. 

제가 아이와 함께 살면서 보살피는 입장이었다면 좀 더 (아이를) 조이고 했겠지만 아이 옆에 있어주지 못하니까 그런 욕심은 내려놨어요. 무조건 아이를 응원하고 어떤 고민이든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친구 같은 엄마가 되려고 해요. 이렇게 마음먹으니까 아이도 저한테 더 오픈 마인드가 되는 것 같아요. 

드라마 ‘빅이슈’에는 어떻게 출연하게 됐나요. 

드라마 감독님(이동훈 PD)이 젊은 분인데, 저를 알더라고요. 캐스팅 제안을 하면서 작은 배역인데 괜찮겠냐고 물으셨는데, 저는 너무 감사했어요. 오래 쉬어서 저를 모르는 사람도 많은데 다시 써준다니 얼마나 고마워요. 그리고 ‘나 이제 예전의 그 발연기 아냐, 이젠 좀 자연스러워졌어’라는 걸 보여주고 싶기도 했고요(웃음). 

과거 영화에서 주연급으로 활약했는데 발연기라니요. 

옛날 드라마나 영화에 출연했을 때는 인기에 힘입은 면이 컸죠. 이번에는 대본 속 대사 하나하나 레슨을 받으며 열심히 준비했어요. 다시 시작하고 싶은 마음이 정말 간절하거든요. 예전에 이렇게 했다면 지금쯤 슈퍼스타가 돼 있었을 거예요(웃음). 

처음 모델을 시작한 계기가 궁금해요. 

고등학교 1학년 때 우연히 학생 잡지 표지 모델을 하게 됐고, 그걸 계기로 엄마가 차밍 스쿨에 보내셨죠. 처음 모델 학원에 갔을 땐 살 빼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고등학교 때까지 테니스 선수를 한 탓에 근육이 많이 붙었었거든요. 그때만 해도 175cm 넘는 여자 모델이 흔치 않았는데, 요즘은 180cm가 넘는 친구들도 많더라고요.

화이트 베스트와 팬츠 노드, 이어링과 브레이슬릿은 썬나인.

화이트 베스트와 팬츠 노드, 이어링과 브레이슬릿은 썬나인.

전성기 시절엔 앙드레김 쇼의 피날레 모델로 유명했죠. 

앙드레김 선생님이 저를 많이 예뻐해주셨어요. 때론 모델들에게 엄격하셨지만 참 따뜻한 분이셨죠. 미국에 사는 동안 한국에는 한 번도 안 왔고, 한국 지인들과도 일절 연락을 끊고 살았던 탓에 선생님이 별세하셨다는 소식도 뒤늦게 알았어요. 한국에 돌아와서야 묘소를 찾아가 인사를 드렸죠. 선생님이 운영하시던 의상실은 아들 중도 씨 부부가 맡아서 하고 있는데 6월에 선생님 추모 패션쇼를 계획하고 있어요. 저도 무대에 설 예정이고요. 

안정환·이혜원 씨, 이승엽·이송정 씨 등 앙드레김 쇼에서 인연이 닿아 결혼한 커플도 많은데 혹시 기억에 남는 남자 모델은 없나요. 


이성으로 생각해본 남자 모델은 없었고, ‘앙드레김 무대에 서면 무조건 뜬다’는 공식이 있을 정도로 앙드레김 선생님은 스타들을 발굴하는 데 탁월한 능력이 있으셨어요. 원빈 씨가 막 뜨려고 할 때 파트너로 무대에 선 적이 있는데, 여드름투성이의 앳된 얼굴인데도 얼마나 잘생겼던지 신인이라 워킹이 서투른데도 무대에서 빛이 났던 기억이 나요. 

전성기에 갑자기 은퇴를 한 이유는. 

데뷔한 이후 10년 넘게 거의 하루도 제대로 쉰 날이 없었어요. 생일 같은 기념일 한번 챙겨본 적이 없어서 지금도 생일이 뭐 별건가 하고 그냥 지나가기도 해요. 모든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일을 다 놓고 은퇴하다니, 지금 생각하면 너무 어리석었죠. 

미국으로 건너가서 처음엔 사진 공부를 했다고 들었어요. 

그럴 계획이었는데, 공부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니더라고요(웃음). 카메라를 늘 가까이하다 보니 만만하게 생각됐나 봐요. 찍히는 것과 찍는 건 엄연히 다른데 말이에요. 

결혼 생활은 어땠나요. 

미국 교포를 만나 뉴욕에서 차로 30분 정도 걸리는 중산층 거주 지역에서 평범한 주부로 살았어요. 한국에서 알던 사람들, 한국에서 했던 일은 전부 다 잊은 채 아이 키우고 학교 데려다 주고 그게 전부인 삶이었죠. 잡지도 육아 매거진만 봤지, 패션지는 안 봤어요. 제가 한 가지에 빠지면 다른 건 다 잊고 거기에만 몰입을 하는 편이거든요.

카키색 롱 베스트 모에, 화이트 팬츠 노드, 이어링 · 브레이슬릿 · 
위트 있는 디자인의 클러치백 썬나인.

카키색 롱 베스트 모에, 화이트 팬츠 노드, 이어링 · 브레이슬릿 · 위트 있는 디자인의 클러치백 썬나인.

미국 엄마들도 교육열이 높다고 하던데. 

제가 살던 동네는 학교 그레이드가 좋았어요. 그것 때문에 이사 오는 가족들도 많았고요. 사교육을 시키는 엄마들도 많지만 음악과 스포츠 위주고, 아이들을 들들 볶는 분위기는 아니에요. 저희 아이는 어릴 때부터 책을 많이 읽었고, 미국에도 한국 학습지가 있어서 그걸로 공부를 했답니다. 

아이 때문에라도 이혼 결정이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이혼은 선택하고 말고의 문제는 아닌 것 같아요. 부부가 끝까지 가는 거니까. 돌아보면 아이를 위해서는 오히려 잘한 결정인 것 같아요. 쇼윈도 부부로 살면서 아이에게 우울하고 불행한 엄마의 모습을 보이는 것보다 지금이 훨씬 더 나은 것 같아요. 

한국에 돌아와 다시 연예계에 적응하기 힘들지 않았나요. 

옛날 생각하면 힘들죠. 저는 이제 다시 출발점에 섰는데, 예전에 같이 일했던 친구나 후배들이 저만치 앞서 나가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그 친구들도 정말 열심히 노력했고, 그사이 저는 귀한 아들을 낳아 키웠으니 후회는 없어요. 이제부터 새로 시작한다는 각오로, 아무리 작은 것도 감사한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서 한번 해보려고 해요. 

요즘 가장 재미있는 일이 있다면. 


쇼핑몰을 운영하고 있는데 새로운 디자인을 구상하는 게 큰 즐거움이에요. 모델 일을 오래 한 덕분인지 미국에서 살 때 만날 트레이닝복과 운동화 차림에 머리를 질끈 묶고 다녔는데도 아이 친구 엄마들이 종종 “모델 같다”며 “옷을 어디서 사냐”고 묻곤 했어요(웃음). 9월에는 ‘20세기 작가’라는 작품으로 연극 무대에 오를 예정인데, 연기 연습도 재미있고요. 나이가 들고 삶의 연륜이 쌓이다 보니 사람을 이해하고 표현하는 폭이 넓어지는 것 같아요. 

다시 사랑을 할 마음도 있나요. 


한동안은 전혀 그럴 마음이 없었는데 시간이 지나니까 결혼은 아니더라도 다시 연애를 하고 싶은 마음은 있어요. 

모델 박영선은 무대에서 한 번도 넘어진 적이 없다. 무거운 드레스를 7벌이나 겹쳐 입었던, 아슬아슬했던 앙드레김의 피날레 쇼에서도 말이다. 박영선의 인생 3막 런웨이도 꽃길만 펼쳐지길 응원한다.

사진 홍중식 기자 디자인 김영화 제품협찬 NODE MOE 
헤어·메이크업 김재화 스타일리스트 박성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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