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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art #landmark

동아미디어센터 with 다니엘 뷔렌

‘세상을 보는 맑은 창’이 ‘꿈을 담는 캔버스’로

EDITOR 김명희 기자

2019. 04. 01

광화문의 표정이 밝아졌다. 동아미디어센터가 프랑스 출신의 세계적인 예술가 다니엘 뷔렌의 작업을 통해 형형색색의 예술 작품으로 거듭난 것. 동아일보 사옥도, 대한민국의 심장부인 광화문과 청계천도, 이곳을 지나는 사람도 작품의 일부가 된다.

서울 광화문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특별한 공간이다. 세종대왕상과 이순신 장군상, 얼마 전까지 그곳을 지켰던 세월호 천막이 기억해야 할 역사라면 광화문에서 열리는 집회와 그 공간을 채우는 구호는 바로 지금 대한민국의 자화상이다. 2002 한일 월드컵과 촛불 집회의 뜨거웠던 열기를 고스란히 간직한 채 묵묵히 2019년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길을 내어주는 그곳, 광화문에서 또 하나의 역사가 될 근사한 아트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 동아미디어센터가 프랑스 출신의 세계적인 예술가 다니엘 뷔렌(Daniel Buren·81)의 외관 작업을 통해 예술 작품 ‘한국의 색, 인 시튜 작업(Les Couleurs au Matin Calme, travail in situ)’으로 거듭난 것이다. 

다니엘 뷔렌은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인 8.7cm 폭의 줄무늬와 8가지 색의 컬러 필름을 동아미디어센터 건물의 5층에서 20층까지 총 16개 층의 창문 안쪽에 설치했다. 컬러 필름은 8개 층씩 한 조를 이뤄 반복적으로 설치됐는데, 컬러 배치는 한글 자음의 순서에 따라 아래서부터 노랑, 보라, 오렌지, 진빨강, 초록, 터키블루, 파랑, 핑크 순이다. 광화문과 청계천 주변을 걷는 사람들은 그날의 날씨와 바람의 방향, 태양의 위치에 따라 매일 다른 표정으로 우리를 맞이하는 살아 있는 건물과 미술을 직접 경험하게 된다. 

이번 전시는 동아미디어그룹이 2020년 4월 1일 동아일보 창간 1백 주년을 앞두고 뷔렌을 초청하면서 이뤄졌다. 동아미디어그룹은 새로운 1백 년을 향한 밝은 꿈을 서울 도심 광화문에서 국민들과 함께 나누기 위해 이번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미술관 안에 머물지 않고 거리와 광장을 배경 삼아 그곳을 지나는 사람들과 교감하는 뷔렌의 작업 방식은 역사의 현장을 지키며 매 순간 진실을 보도하는 언론 본연의 자세와 맞닿아 있다.  


공간에서 받은 영감을 바탕으로 새로운 시각적 경험을 제시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인 컬러 필름을 이용해 동아미디어센터를 
생동감 넘치는 예술 작품으로 만들어낸 다니엘 뷔렌.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인 컬러 필름을 이용해 동아미디어센터를 생동감 넘치는 예술 작품으로 만들어낸 다니엘 뷔렌.

다니엘 뷔렌은 현존하는 가장 위대한 예술가를 꼽을 때 빠지지 않는 인물이다. 마르셀 뒤샹이 남성용 소변기에 ‘샘(Fountain)’이라는 이름을 붙여 전시회에 출품해 레디메이드까지 예술품으로 등극시키며 현대미술의 영역을 확대했다면, 뷔렌은 갤러리 밖으로 미술관을 확장했다는 평을 얻고 있다.

그가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린 건 1968년 프랑스 파리에서 줄무늬 패널을 등에 짊어진 ‘샌드위치 맨’이 길거리를 걸어 다니는 퍼포먼스를 열면서다. 미술 작품은 갤러리의 규정된 전시 공간에 걸리고 관객은 전시된 작품을 수동적으로 감상하는 것이 당연했던 시대에 거리를 캔버스 삼아 건축물도, 지나가는 행인도, 구경하는 사람도 작품의 일부로 만든 그의 퍼포먼스는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미술관 혹은 아티스트에게 권위를 부여하던 기존 예술의 틀을 깬 뷔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언제나 현장이었다. 현대미술은 ‘화이트 큐브’라는 획일적인 형태의 공간 속에 전시됨으로써 작가도 관객도 무의식적으로 그런 규격화된 공간에 갇힌다고 생각한 그는 특정한 장소에 작품을 설치해 그 공간을 작품으로 끌어들이는 ‘인 시튜(In Situ)’ 작업을 통해 새로운 시각적 경험을 제시한다. 지난 50년간 프랑스의 팔레 루아얄·그랑 팔레·루이비통재단 미술관·스트라스부르 현대미술관,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 베이징 천단공원, 도쿄 긴자식스, 런던 토트넘 코트 로드 역 등 세계 곳곳의 기념비적인 건물과 공공장소에서 인 시튜 작품을 전시했다. 뷔렌이 작업에 사용하는 8.7cm 폭의 줄무늬는 명품 하우스 버버리의 체크무늬나 루이비통의 모노그램 패턴처럼 그를 상징하는 아이콘이 됐다.



“1백 주년이란 것은 정말 멋지고 기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동아미디어센터를 처음 보고 받은 인상은, ‘서울의 한복판에 멋지게 서 있구나’였습니다. 당연히 이 장소의 커다란 규모가 먼저 다가왔고요. 그리고 빛을 많이 받아 환하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이 건물의 특징 중 하나가 두 면이 완전히 유리로 되어 있고 큰 가로등이 교차하는 거리로 나 있다는 점이죠. 건물의 사람들에 대해선 굉장히 열심히 일한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동시에 분위기는 편안해 보였어요. 이러한 점에서 출발해 이 유서 깊은 신문사의 대규모 빌딩, 특히 이 건물의 창들을 활용할 수 있으면서 색감도 작용할 수 있는 무언가를 상상해보았습니다.”

다니엘 뷔렌은 동아미디어그룹의 작품 제작 의뢰를 받고 지난해 7월 동아미디어센터를 방문해 건물과 주변 청계천, 광화문 환경을 둘러본 소감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는 특정 장소에서 얻은 영감을 바탕으로 작업을 하는데 여기에는 건물의 창·출입구·계단 같은 물리적이고 구조적인 부분, 빛·바람 같은 자연적인 요소뿐 아니라 건물과 그 안의 사람들이 지니고 있는 역사와 사회경제적 네트워크·관계 같은 추상적인 면까지 포함된다.

동아미디어센터와 나란히 붙어 있는 동아일보 옛 광화문 사옥(현재 일민미술관과 신문박물관)은 일제강점기 일본이 광화문에 조선총독부를 짓자 “조선총독부를 감시하기 위해 동아일보가 광화문 네거리에 자리해야 한다”는 인촌 김성수 선생의 뜻에 따라 1926년 세워진 건물이다. 동아일보는 ‘세상을 보는 맑은 창’을 캐치프레이즈로 내걸고 새 밀레니엄이 시작되는 2000년 1월 1일 동아미디어센터에 입주했으며, 이 건물에 2011년 입주한 채널A는 ‘꿈을 담는 캔버스’를 표방하며 시청자들이 바라는 세상을 함께 그려가겠다는 의지로 방송 제작을 하고 있다.

뷔렌은 동아일보와의 협업에 대해 “동아일보가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수호하고자 하는 확고한 사명을 갖고 세워졌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오늘날에는 언론의 자유라는 것이 당연한 권리로 인식되고 있지만, 이것이 항상 수호되지는 않는다는 측면에서 동아일보의 설립 취지를 상당히 공감하고 지지한다”고 밝혔다.

동아미디어센터의 변신, 자유롭게 느끼고 즐겨주길

그는 또 8가지 색을 쓴 이유에 대해 “이 거대한 건물의 각 층에서 저마다 다른 업무를 하는 이들의 다채로운 모습을 상징한다”고 했다. 동아미디어센터 내부에서 작품을 보는 사원들 입장에서 갖가지 컬러의 띠는 건물 밖에서 다양한 목소리를 내는 독자와 시청자들을 상징한다. 

지난 6개월여를 오롯이 ‘한국의 색’ 작업에 몰두한 백발의 거장은 작품 앞에서, 그리고 이것을 함께 즐길 대중 앞에서 한없이 겸손했다. 지난 3월 20일 시작된 ‘한국의 색’ 전시는 2020년 12월 30일까지 계속된다. 

“한국 관객들께서 서울 중심에 위치한 이 신문사 건물의 변신을 흥미롭게, 재미나게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이 작품 역시 저의 다른 작품들처럼 자유롭게 해석하시면 됩니다. 물론 비판에도 열려 있고요. 저는 무엇이든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습니다. 제 역할은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 형태 및 색상을 조합해 작업하는 것이고, 이를 자유로이 느끼고 관찰하는 것이 관객들의 역할이자 올바른 태도입니다. 관객들은 내 작품을 통해 내가 예상한 것과 전혀 다른 감정을 느낄 수도 있지만, 이는 결코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내가 의도하는 모든 것은 작품 속에 내재돼 있고 이에 따른 효과는 작품을 바라보는 관객의 몫이기 때문입니다.”

다니엘 뷔렌의 아트 프로젝트

1938년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난 다니엘 뷔렌은 프랑스 현대미술의 대표 주자 중 한 명으로 미술 직업학교와 파리 국립 미술학교를 거쳐 1958년부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화이트 큐브’라는 획일적인 형태의 공간에서 벗어나 우리가 일상적으로 접하는 익숙한 장소에 작품을 설치하고 그 공간을 작품으로 끌어들이는 ‘인 시튜’라는 작업 방식을 택해 일상과 예술의 경계를 무너뜨린다. 우리나라에는 2006년 서울 강남구 청담동 아뜰리에 에르메스 개관전에 참여하면서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렸고, 같은 해 종로구 부암동 환기미술관의 ‘공간의 시학’ 그룹전, 2015년 313 아트 프로젝트에서 개인전 ‘Variations, Situated and In Situ Works’를 열었다.

프랑스 파리 팔레 루아얄 ‘두 개의 고원’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 인근의 팔레 루아얄은 규모는 작지만 역사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곳이다. 원래는 루이 13세의 재상 리슐리외의 저택으로, 그의 사후 프랑스 왕가에 기증해 루이 14세가 잠시 살면서 팔레 루아얄이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 1789년 프랑스혁명 당시 민중이 이곳에서 바스티유 감옥으로의 행진을 시작해 프랑스 국민들에게는 의미가 각별한 공간으로, 현재는 상원 의사당이 위치해 있다. 뷔렌은 궁전 안뜰에 높이가 다른 흑백 스트라이프 원기둥 2백60개를 세워 ‘두 개의 고원’을 완성했다. 1986년 발표 당시 “옛 궁전에 흑백의 줄무늬 원기둥이 웬말이냐”는 격한 논쟁을 일으켰으나 현재는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관광 명소가 됐다. 

전시기간 1986년~현재

프랑스 파리 루이비통재단 미술관 ‘빛의 관측소’

디자이너 프랑크 게리의 설계로 2014년 개관한 루이비통재단 미술관은 12개의 돛을 형상화한 독특한 외관과 구조로 사랑받는 건축물. 모든 컬렉션은 1960년대 이후 제작된 현대미술 작품이다. 뷔렌은 총 3천6백 개의 유리창 중 1천4백27개에 13가지 컬러의 필름을 입히는 방식으로 작품을 완성했다. 베르나르 아르노 LVMH 그룹 회장은 “건물과의 진정한 대화를 통해 매혹적이고 장대한 프로젝트를 완성했다”고 극찬했으며 경제 전문지 ‘포브스’는 “유리창을 관통하는 빛이 박물관의 인테리어에 신성한 느낌을 부여했다”고 평했다. 

전시기간 2016년 5월 11일~2017년 5월 2일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현대미술관 ‘아이의 놀이처럼’

프랑스 북동부 스트라스부르에 위치한 현대미술관은 1만8천여 작품을 보유하고 있는 프랑스 최대 규모의 갤러리. 뷔렌은 1500㎡ 규모의 미술관 유리벽에 컬러 필름을 입히는 방식으로 작업을 했다. 세계적인 아트 매거진 ‘스튜디오 인터내셔널’은 당시 “스트라스부르 미술관의 변신은 뷔렌이 색을 아주 잘 이용한다는 것을 증명한다. 이러한 예술에 감동받지 않기는 힘들다”고 평했다. 

전시기간 2014년 6월 14일~2015년 1월 15일

사진 홍중식 기자 동아일보 사진DB파트 디자인 최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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